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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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의 내기

“츠부미이이이!”

멀리 있는 츠부미를 부르며 마리코는 마구 손을 휘저었다. 집중해서 돌연변이를 하나하나 쓰러뜨리고 있던 츠부미는 그 목소리에 겨우 옆을 돌아보았다. 끼고 있는 초록색 색안경 때문에 자잘한 사물은 조금 흐렸지만, 마리코의 심하게 역동적인 손놀림에 금방 마리코를 알아볼 수 있었다.

“아, 마리코 언니?”

“도와주러 왔어용!”

“버, 벌써 끝나셨어요? 감사합니다..!”

“우리 빨리 끝내고 가자!”

살짝 하늘에 뜬 마리코가 츠부미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동시에 돌연변이들 사이에 있던 좀비들이 하늘로 붕 뜨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높이 떠올랐다가 머리부터 땅에 쳐박히기 시작했다. 

마리코도 제 능력의 한계, 사용시간을 몸으로 확실하게 체감했기 때문에 조금 버겁더라도 빨리 끝낼 생각이었는지, 돌연변이들도 이어 괴상한 모양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넘쳐나기 시작한 돌연변이들은 무척이나 질긴 녀석들이어서 마리코가 집중하는 사이, 츠부미는 벽 위에 올라선 상태로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돌연변이들을 향해 구형을 날리는 중이었는데, 츠부미는 능력을 사용하면 할수록 처음 한 시간은 처음처럼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이후부터는 계속 약해지는 타입이어서 상당히 고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은 사용시간은 거진 20분 정도, 이미 많이 약해진 상태여서 구형을 던져도 돌연변이들이 큰 타격을 입지 못하는 상태이기에 마리코의 도움이 무척이나 필요했다. 츠부미는 코끝으로 깊숙하게 스며드는 피냄새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겨우 참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공격할 부위는 머리, 아니면 목에 집중하는 것. 거기가 힘들면 등의 정중앙을 노려도 좋았다. 츠부미는 최대한 손끝에서 많은 구를 만들어 냈고, 그것을 사정없이 돌연변이들을 향해 날렸다. 빨리, 최대한 빨리 이것들을 해치우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더욱 더 많은 구를 만들어 내던 츠부미는 한쪽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츠부미!! 너무 무리하는 것 같은데, 조심해!>>

“네..? 아, 으앗!”

눈앞이 크게 한번 빙글 돌았다. 그 다음 순간 츠부미는 제 발 밑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고 다음 순간 그대로 밑을 향해 추락했다. 어떻게든 벽을 붙잡으려 했지만 벽은 아무것도 잡을 것 없는 일자였고, 츠부미는 능력자의 신체만 있을 뿐 활용력은 부족했다. 

“쿠르르르---”

“힉!”

한참 저를 공격하고 있던 것을 고스란히 맞으며, 그 근원지를 찾고 있던 돌연변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괴성, 츠부미의 여린 살이 그 끔찍한 무참히 흔들리고, 그녀를 향해 돌연변이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츠부미, 조심해!!>>

헬기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이 츠부미를 구하기 위해 헬기를 내렸지만 돌연변이들이 더 빨랐다, 그리고-

“으핫, 조심해야지!”

“마리코 언니...!”

“헷, 마리코가 츠부미 구했당!”

그보다는 마리코의 염력이 더 빨랐다. 마리코도 츠부미 보다 사용시간이 훨씬 길기는 하지만 츠부미와 마찬가지로 사용하면 할수록, 어떤 시간을 기점으로 능력이 약해지는 마리코였다. 하지만 과연 ‘여신’ 내지는 ‘일본의 희망’ 이라고 불릴만한 마리코였다. 

해사한 얼굴로 손을 휘젓는 마리코가 까르륵, 머리가 완전히 몸만 덩그러니 남아 엉켜 있는시체더미 사이에서 웃었다. 

“조심해애-”

“고, 고맙습니다...!”

손을 휘휘 젓는 마리코는 제 영역안에 들어가 꼼짝도 못하는 돌연변이의 위에 서서 다른 돌연변이들을 말 그대로 해체하고 있었다. 목 위주로 돌연변이들의 살이 찢겨지고, 꽤 찢어졌다 싶으면 콩나물처럼 머리를 뜯어가 버리는 무서운 방식, 그런데도 마리코는 제 힘을 츠부미가 있는 곳까지 사용해, 그녀를 다시 담 위로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그럼 빨리 끝내자, 마리코 너무 더워.. 우우우.”

가까이 있던 좀비들의 머리가 마치 믹서기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갈려지고, 땅으로 꺾이듯 쓰러지기 시작했다. 예전.. 아니 몇 년 전의 일본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좀비들도 자기 가족이라고, 가족의 시체라도 최대한 시신에 손상이 가지 않게 죽여달라고 감성팔이를 하며, 은근슬쩍 정권의 탓으로 돌리고 그 와중에 정권교체를 노리던 세력도 있었다. 하지만 죽은줄 알았던 좀비가 땅속에서 기어 나오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때부터 좀비는 확실히 죽여야 한다는 인식이 박혀, 군인은 물론 능력자들은 완전히 좀비의 머리와 몸을 분리하거나 아예 고깃덩어리처럼 분해하는 방식으로 좀비를 쓰러뜨리는 법을 익혔다. 그래서 마리코에게는 이게 당연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배운 것 그 자체니까.

누구도 마리코에게 나쁘다고 가르쳐 주지 않았다. 좀비를 죽이면 상을 받고 선물을 받았으니, 마리코에게 있어서는 그게 착한 일이었다. 그래서, 마리코는 더 열심히-

“우...”

색안경을 썼음에도 이리저리 마구 찢어지는 살덩이를 보자니, 츠부미는 집중이 되지 않았다. 구를 사용해서 터뜨리면 그나마 터지는 순간에는 구가 흐트러지면서 막 같은 것이 펼쳐져 가장 끔찍한 순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마리코는 달랐다. 여과없이 그 해체 장면이 보일 때마다... 츠부미는 겨우겨우 마음을 다잡고 눈앞의 돌연변이들을 보았다.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호타루는 넌 아직 어리니까, 게다가 능력을 사용하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 정도면 무지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늘 츠부미에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츠부미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강해지고 싶었다. 몇 번 마주친 유우리 보다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마리코보다도 강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강해져서 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해져서 대체 어쩔 건데? 강해져봤자 뭐 똑같았다. 똑같이 좀비를 죽이고 돌연변이를 죽이고 하는 일은 많아지고..

좀비들을 더 죽이고 싶어서 강해지고 싶은 걸까? 아니다. 이제 먹고 사는 걱정 같은 건, 위험해질까봐 두려움에 떨어야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을 뿐, 좀비들을 죽이는 건 그닥 즐겁지 않았다. 저 사람들도 누군가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미안하고 불쌍했다.

..그럼 왜 강해지고 싶은 거지? 왜, 왜.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생각하던 츠부미는 겨우 생각을 접고 담 밑으로 내려왔다.

“으응. 옷 다 더러워졌어요..”

“잠시만요 마리코님, 금방 옷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핑크 원피스!”

“네, 잠시만요. 히미코, 마리코님 좀 닦아드려-”

“알겠습니다.”

이렇게 얼마가지 않아서 츠부미가 있는 곳도 정리가 되었고, 마리코는 피에 질척해진 옷을 가지고 한숨을 쉬었다. 멀리서 한다고 해도 아무래도 크기가 크기니 만큼, 혹은 비정상적으로 커진 돌연변이인 만큼 육체는 마치 물이 가득 든 풍선 같아서 마리코가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터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언니 옷이 다 더러워졌네... 아, 아까 도와준 거 고맙다고 해야겠다..’

색안경을 벗으면서 츠부미는 조심스레 담 밑으로 내려갔다. 담이 상당히 높아 조심스레 내려가던 츠부미가 겨우 땅에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갔을 즈음, 서포터인 히미코의 도움을 받아 몸을 닦는 마리코는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럼 마리코님, 바로 출발하실 건가요?”

“응응, 서우 아저씨 만나러 갈 거예요! 아저씨가 아까 연락도 왔어요, 마리코- 보고 싶으니까 빨리와아- 하구. 헤헤.”

“마리코님- 옷 가지고 왔어요, 여기로 와 주세요!”

저 멀리서 마리코가 옷을 갈아 입을만한 공간을 마련한 레이코가 손짓하자 마리코가 네에- 하고 그쪽으로 쫄래졸래 걸어갔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츠부미는 땅에 다리라도 붙은 것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옷을 다 갈아 입고 나온 마리코가 나와 제 손을 잡았을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가자, 츠부미!”

“네? 아...... 언니는 어디로 가세요?”

“응? 너랑 같이 가지, 서우 아저씨랑 같이 커다란 좀비 잡으러 간데.”

“아....”

츠부미는 마리코의 손에 끌려 하릴없이 걸어갔다. 그리고 그렇게 그녀를 따라갈 때마다 이상하게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조금 화가났다...... 아니, 너무 많이. 너무 많이. 많이. 츠부미는무심코 제 등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걷고 있던 마리코가 걸음을 멈췄다.

“에, 헤헷?”

“....어........”

공중에 멈춰 있는 까만 볼, 그건 츠부미가 사용하는 폭탄이었다. 좀비 하나를 쓰러뜨릴만한 크기의 주먹만한 볼이 공중에 떠올라 있던 것이다.

“으웅 이게 뭐야? 아아, 츠부미의 능력이구나.... 이게 팡! 하고 터지는 것 맞지?”

“네? 네에, 마... 맞아요.....”

구가 빙그르르 돌았다. 츠부미는 안색이 더 창백해질 수 없을만큼 창백해졌다. 지금 무슨 짓을 하려던 거지? 분명히.... 츠부미는 마음속으로 미친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해. 그런데 이건 왜 아직 안 터진 거야? 마리코가 이렇게 잡고 있어서 그런 거야?”

“네? 아.. 아마두..”

“으웅....”

구를 날렸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츠부미의 의지 없이는 터지지 않는다. 지금은 마리코의 영역 안에 있어서 그렇겠지만... 츠부미는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헤에- 그리 말하며 마리코는 해맑게 웃다가 그것을 공중에 던졌다. 이내 구는 콰직, 하고 터져 버렸다.

“어..? 안 터지는데, 츠부미...... 마리코가 터뜨려서 그런가.... 에, 모르겠다.”

다시 함박 웃음을 짓던 마리코가 츠부미의 손을 잡았다. 츠부미는 저도 모르게 구를 사용했다는, 그리고 마리코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생각에 몸을 덜덜 떨었다. 자기 능력을 자기도 모르게 사용한 적은 없었는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그런 생각에 바들바들 떨면서도 마리코의 손을 겨우 잡고 있던 츠부미는,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츠부미.”

마리코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 들어도 웃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써 츠부미가 그에 맞춰 대답하는 순간이었다.

“조심해.”

“...네?”

이상하게 그 목소리가 서늘하게 들렸다. 다시 뒤를 돌아본 마리코는 웃고 있었는데도, 하필이면 빛이 마리코의 뒤에서 내리쬐 역광이 된 탓이었을까. 츠부미가 무심코 걸음을 멈추었지만 여전히 마리코는 웃고 있었다.

“아까 말야, 아까아- 위험했잖아, 히히.”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아마 마리코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는 할 것이다. 지금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은 그저 말 그대로 조심하라는 뜻일지도 모르지만, 츠부미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

“츠부미? 왜 마리코 손 놔아, 다시 잡자.”

마리코가 웃는다. 츠부미는 내내 잡고 있었던 제 손을 내려다 보았다.

“..언니 먼저 차 안에 들어가세요, 전 잠시만요.”

왠지 자기가 그리도 강해지고 싶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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