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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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의 내기

“별로 친하지도 않고 왕래도 없는 사람인데 왜 그 사람, 하네다 씨 일을 저한테 물으시죠?”

“예? 아, 으아... 아니, 그게......”

“누가 들으면 제가 하네다 씨랑 친한 줄 알겠네요. 죄송하지만 번호도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하네다님이 돌아오지 않으셔서, 저 그게... 혹시 아시는 일이라도 있으신가 하고..”

마리코를 선동해 제 기지 안으로 납치한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뻔뻔하고 당당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였다. 서우는 제법 제 연기력에 경이를 표하며 상반신에도 슈트를 입기 위해 겉에 걸치고 있던 상의 벗었다. 그렇게 되자 서우는 위에 저절로 나시만 걸친 모습이 되었는데, 서포터는 아직도 어버버 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계속 보려고요?”

“앗,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직 더 여쭈어 볼 것이....”

말하면서 서우가 나시를 손으로 잡고 펄럭펄럭 거리자 얼굴을 확 붉히면서 서포터가 뒤를 돌았다. 그 어벙한 모습에 서우는 소리 죽여 웃으며 슈트를 갈아 입다가, 아직도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선심쓰 듯 툭 말을 던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그.. 그러니까, 그게...”

서우는 부러 까칠한 말투로 서포터를 내려다보았다. 조막만한 여자 서포터를 괴롭혀 봤자 얼마나 유익하겠느냐만은 우물쭈물하는 듯한 그 표정이 썩 마음에 들었다. 서우는 슈트와 장비를 다 챙길 때까지 아직도 끙끙 거리는 서포터의 뒤로 다가갔다. 서포터라 분명히 바쁠 텐데 이 와중에도 잘 씻고 다니는지 서포터에게서는 여자 샴푸 특유의 달큰한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서우는 그 중심을 국 눌렀다.

“흐꺅! 무, 무슨 일이십니까!”

서우가 저에게 무슨 해라도 끼칠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냥 눌렀기만 했는데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거참 행동적인 여잘세, 토끼눈을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서포터를 보며 서우는 입꼬리만 한쪽 슥 올렸다.

“미안하지만 난 하네다 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 여자랑은 친하지도 않고, 그쪽도 절 싫어할 텐데 미쳤다고 같이 지내겠습니까? 여기 오라고 시킨 사람한테 그렇게 전해 주시죠, 전-혀 모른다고. 유우리도 있는데 미쳤다고 능력자인 여자랑 괜히 엮이겠습니까?”

“예? 아....”

나름대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은 했는지 여자는 멍하니 고개를 끅덕끄덕 거렸다. 하네다와 서우의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고 듣긴 한 것 같았다. 서우는 거기에 쐐기를 박듯 불쾌한 표정으로 오히려 제가 피해자인양 몇 마디를 덧붙였다.

“게다가 난 하네다 그 여자 때문에 죽을 뻔도 했습니다. 붙어 다니거나 할 만한 사이도 아니고 이제 옛날 일이니 괜히 들추기도 귀찮고. 아시겠으면 저한테 그 여자 이야기 더는 하지 마시고 그만 가시죠?”

‘..하네다에게 당한만큼 몇 배, 아니 수십 배는 되돌려 갚아줬지만 말이지...’

그리고 앞으로도 더 갚아줄 것이고.

은혜는 갚고 싶으면 갚고 싶을 때 갚고, 원한은 수십 배로 되돌려 갚아주는 게 삶의 신념 아니던가. 

서우는 유우리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네다의 도도한 표정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던 것을 반추하다 흘러나올 뻔한 웃음을 겨우 삼키고 무표정하게 서포터를 내려다 보았다.

제가 생각해도 지극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무지하게 심드렁했고.. 정말 신들린 연기였다고 생각하며 서우가 그 표정을 유지하자, 서포터도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 버렸다. 

“진짜 멍청이네 그걸 믿냐...”

‘딱 보니 막내여서 선배들이 등 떠미니까 시킨 것 같은데... 멍청한 놈들, 능력자를 심문하는 것도 웃긴데 저런 여자를 보내면 병신이라도 사실대로 안 말하겠다.’

제가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보여준 것은 생각 안 하고 서우는 낄낄 거리면서 주머니 안쪽에 들어 있던 담배를 물었다. 일본제 담배는 처음에는 피워도 피는 맛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무언가 밋밋했지만 이제는 나름대로 입에 맞아 이제는 원래 피던 것이 되려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나저나 하네다가 사라진 후 이쪽을 먼저 의심하다니, 뭐 당연한 수순이기는 하다. 유우리에 이어 호타루 납치 경력, 그리고 얼떨결에 마리코의 마음까지 꿀꺽한 경력이 있는데다 일본 정치인, 일명 높은 분의 따님이라는 유리마저 일단은 제 곁에 두고 있으니... 얼떨결에 희대의 납치범이 되어버린 서우였다. 

그러니 하네다의 납치에 저를 의심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것이 문제였지, 마리코 덕분에 이어진 협상 이후 나름대로 평화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었고 그것을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이던 서우가 뜬금없이 하네다를 납치한다는 스토리도 말도 안 되기는 하고... 서우는 순간 교단이 걱정 되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럼 이제 제가 할 것은, 그저 눈앞에서 죽여달라고 앙앙거리는 돌연변이를 잡으러 가는 길 뿐이겠지. 서우는 휴대하기 쉬운 무기들의 장비를 완료하고 밖으로 나갔다. 이미 밖에는 cm부와 이토가 대기 중이었고, 딱히 갑옷 같은 준비가 필요 없는 마리코는 아직까지도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리인 듯 싶었다.

“마리코는 무리인 겁니까?”

“서우 아저씨이이.... 후잉... 무리예요 절대로 무리야아아!”

물어본 것은 서포터였지만 대답은 마리코였다. 한참은 떨어져 있는데도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감각은 문제 없지만, 제 영역 발동은 어떻게 되어도 염력이 더 안 되는 모양이었다. 마리코가 짜증이 난 듯 발로 애꿏은 바닥만 두드리기 시작했다. 마리코를 돌보는 레이코라는 여자가 한숨을 쉬며 이런 적은 드물었는데.. 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니 그 드문 것이 하필 오늘이었나 보다.

“이대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서요.. 예상대로라면 마리코님이 중앙에 있는 폭탄으로 가서 폭탄을 막아주실 것을 생각하고, 능력자님들이 다 제거를 해 주시면 폭탄을 제거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폭탄이요?”

이건 무슨 소리? 츠부미도 들은 바가 없었는지 다소 당황하는 눈치였다. 

“일단 겨우겨우 폭탄의 위치를 찾기는 했는데, 이게 무척 위험합니다. 현재 원격 조종이 되는 장치도 분실한 상태여서 충격을 받으면 그대로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게 터지면 연속적으로 다른 폭탄들도 터지게 되어서.. 그래서 마리코님께 먼저 이것의 이동을 부탁드렸는데..”

“....거 참 복잡하네.”

그냥 좀비만 썰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폭탄이라니, 예상 외의 복병에 서우는 입술을 실룩였다. 아무리 능력자의 재생력이, 자신의 재생력이 요즘 여자의 손톱에 등을 쫘악 긁히면 그 순간 바로 재생될 정도로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폭탄이라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목이 뚫리고 복부의 일부가 날아가도 재생은 되었지만.. 통째로 날아가 버리면? 그건 뭐. 어떻게 재생이 된다고 해도 그닥 아름다운 모습은 아닐 것 같다고 할까. 이제 기껏 꿈과 희망의 하렘을 차렸는데 폭탄에 뒤지기는 싫으니 서우는 서포터가 하는 말들을 경청했다.

지정된 위치로 담을 너머 들어갔을 때 폭탄은 바로 중앙에 있을 것이다. 거기에 츠부미나 이토가 공격을 가했을 시에 터질 위험이 매우 높다. 서우가 와이어로 베면 피할 시간은 있지만 그들을 공격 면적이 넓으니까. 그러니 츠부미나 이토는 뒤에서 지원을 맡고, 서우가 앞으로 나서달라는 이야기였는데 물론 서우로서는 더 좋은 이야기였다. 

@@애초부터 보스 좀비 있음 레이드 팟 구함@@ 같은 지원글에 혹해서 온 것인데 누구의 지원을 할 마음은 없었다. 순전히 스트레스 풀러온 것인데 미쳤다고... 당연히 서우가 좋다고 수락하자 옆에서 그 이야기를 서우의 수십 배는 긴장한 채 듣고 있던 츠부미가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서우를 올려다 보았다.

“좋습니다, 그럼 빨리 가죠? 시간 낭비해 봐야 뭐합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오, 오빠...! 아무리 그러셔도...... 저, 오다기리 씨,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오빠 혼자 나섰다가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냥 예상대로 마리코 언니가 회복되었을 때 하면 안될까요? 아직 담이 넘어간 것도...!”

하지만 츠부미의 말이 우스워져 버릴 정도로,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담에서 쿠르릉- 하고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서우는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이렇게 보챌 줄이야. 하지만 츠부미는 완고했다. 서우가 다칠 수도 있으니 극구 반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츠부미님, 지금 들으셨다시피 한 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마리코님의 능력이 언제 제대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렇다고 서우 오빠에게만 위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잖아요! 이건 너무 위험해요! 돌연변이들이 폭탄을 건드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돌연변이나 좀비는 사람 냄새와 소리를 감지해서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여기 있는 한 완벽한 미끼가 되어서 폭탄 쪽은 안전할 겁니다.”

“그... 그래두요, 조금만 기다리면 안 되는 걸까요? 언니의 염력이 금방 돌아올지 모르니까..”

.....오히려 서우에게 그 일은 귀찮았다. 서우의 성격을 뻔히 아는 사쿠라라면 그냥 걱정하다가도 결국 보내 주었을 텐데 츠부미는 그게 아니니까. 결국 츠부미가 하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던 서우는 조금 앞으로 나섰다. 몸이 이미 잔뜩 달아 있었다.

“됐고, 전 괜찮으니까. 이만 나가죠? 바로 이토 씨나 츠부미는 뒤에서 서포트나 해 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그러니까 빨리...”

“오빠, 그래도....”

“...츠부미.”

“......”

저도 모르게 목소리에 다소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제 진격하나 했더니 츠부미 때문에 또 몇 분이 지체되고, 또 지체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츠부미가 놀란 눈을 하고 뒤로 물러나, 서우도 순간 제 목소리 톤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런 것보단 짜증이 앞서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튼 빨리 가죠. 그냥 전 담 안에 들어가서 재주껏 썰면 되는 거겠죠?”

"예?.... 아.. 예, 그러면 일단 서우님 먼저 함께 가시죠, 두 분은 담 위에서 최대한 서우님을 지원해 주시고요. 그리고 절대 폭탄 근처에는 공격하지 않도록 주의해 주십시오. 츠부미님은 가까운 곳을, 이토님은 먼 부분을 타겟으로 해서요. 그리고 서우님은 무엇보다 가장 큰 녀석, 촉수형을 조심해 주십시오."

"..촉수형이요?"

".....모르십니까?"

이건 무슨 말이래? 서우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돌연변이에 형태를 나누어 종류를 분류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냥 보이면 닥치는대로 썰어서 모양에는 딱히 신경을 안 썼더니, 일본 정부는, 그리고 각 나라는 나라별로 보이는 돌연변이를 분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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