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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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의 내기

<<지금 츠부미님과 이토님이 도착하셨습니다. 담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일본에서 일어나는 지진 같은데요. 더럽게 떨리네.”

담 위에 올라갔을 때부터 몸이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로 떨리고 있었지만 원체 균형감각이 뛰어나니 이 정도야, 하지만 역시 지진국 답다고 생각하며 서우는 혼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런데 상대편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

“저기요?”

말이 없다. 뭐야? 서우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이봐요! 하고 소리치자 서포터가 그제야 큼큼거리며 말을 이었다.

<<...시, 십 초 뒤에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아 예에.”

사실인데 뭐 어쩌라고? 서우는 담배라도 필까 하다가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닫고 제 밑에서 죽어라 촉수를 뻗는 촉수형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서포터들이 세는 숫자가 3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3>>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피었다. 왠지 입안에 절로 침이 고이는 것 같았다. 바로 앞에 드디어,  먹음직스럽다 못해 두고두고 아껴 먹어야 할 하네다마저, 교단에 그대로 두고올 만한 가치가 있는 돌연변이가 바로 앞에-

<<2>>

“그럼 슬슬...... ?!”

카하아아아---- 괴상한 소리를 내던 촉수형이 서우를 향해 손을 확 뻗는 순간, 그 무게가 벽에 그대로 쏟아졌다. 서우는 그대로 도미노처럼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기울어진 벽 밑으로 슬쩍 몸을 내림으로써 균형을 맞추었다. 한번 제대로 기울기 시작하자 거기에 돌연변이와 좀비들의 무게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우는 와이어를 최대한 길게 뻗었다. 딱히 저쪽 서포터들을 구해줄 마음은 없지만 좀비에 섞여 저 놈들까지 베었다가는 또 나중에 나불나불, 귀찮은 일만 생길 테니까. 팔에 착용한 기계 덕분에 평소의 몇 배는 두껍고 길어진 와이어를 보며 서우는 그것을 밑으로 슥, 스쳤다. 

덕분에 돌연변이들이 다 제게로 시선 집중, 서우는 일단 반대쪽으로 유인해 주자는 생각으로 적당히 움직일 장소를 물색했다. 오른쪽이 좋아 보이는 것 같아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려는 그때, 무전기에서 지휘관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서우님, 오른쪽으로 이동해 주십시오! 그쪽 벽으로 몰면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

순간이지만 서우는 확 기분이 나빠졌다. 가뜩이나 얇은 인내심의 막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나도 하려고 했는데 왠 명령질? 막 컴퓨터 끄려고 했는데 넌 공부도 안 하고 컴퓨터만 하니! 라고 엄마가 소리치면 더 끄기 싫고, 이제 공부하려고 했는데 공부 좀 해라! 이러면 빡쳐서 더 하기 싫은 것과 같았다.

<<서우님?>>

왠지 마악 하려고 했는데 말하는 게 화가 나서 서우는 그냥 무전기를 잡고 좀비를 향해 던졌다. 서포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서서히 작아져 서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서우님! 죄송하지만 빨리 좀 움직..............>>

“빠이.”

어디서 명령질? 이내 콰직!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좀비의 이마에 반쯤 무전기가 들어가자, 발악하고 있던 좀비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서우는 벽을 조금 미끄러져 내려가다가 오른쪽 벽으로 달렸다.

예상대로 좀비와 돌연변이들이 저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서우가 오른쪽 벽으로 이동하자, 뒤에서 츠부미와 이토가 다가와 지원하기 시작했다. 좀비는 대부분 소리에 반응하기 때문인지 이토의 능력에 의해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그쪽으로 몰리고 있었다. 

서우에게 제대로 얻어맞은 촉수형 또한 무의식적으로 큰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하려고 해, 서우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와이어를 한 번 휘둘렀다. 촥! 하는 소리와 함께 오징어 다리마냥 촉수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야, 병신아! 이쪽으로 오라고! 이쪽, 이쪽 새끼야!!!!”

                   

급한 마음에 한국어까지 튀어나와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와이어를 휘두르자 그제야 제 쪽으로 달려온다. 빨리와라 새끼야, 서우는 와이어를 여러갈래로 펼친 뒤 목 근처든 어디든 좀 잘라주자고 생각해 하늘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순간 분명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다고 하던 그 촉수가 8M는 되는 서우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며 뻗어와 서우의 다리를 감아 버렸다.

“크?”

정확한 간격은 몰랐지만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었다. 정말 좆 됐다, 문득 그런 생각이 서우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반대로 이게 기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쿠르르...! 쿠흐으으으으!”

촉수가 제 다리가 끊어져라 묶는 것에 서우는 이를 악물었지만 이대로 녀석이 저를 얼굴쪽에 가져가기만 한다면, 입안으로 집어 넣는다면 되려 그때 폭탄을 쑤셔 넣을 수도 있었다.그런데-

“....?!”

뇌는 녹아도 본능적으로 서우가 반항하는 것을 알아차린 탓인지, 서우가 발악하는 것을 보니 제 입에 넣고 꿀꺽 삼키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서우를 가차없이 벽으로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고기는 자고로 말랑하게 다져야 맛있다는 것을 득도한 건가? 벽에 부딪칠 때 팔로 쉴드라도 치고 몸통을 보호한 뒤에 벗어나려 했더니, 연속적으로 뒷부분만 강하게 내리치기 시작하는 촉수형이었다.

“야, 이 미친....개!”

                   

그런 연속적인 패대기질에 머리가 뒤통수가 어질해졌다. 촉수를 와이어로 끊으려고 해도 그 순간 바로 내리쳐 버리니 서우는 속으로 욕을 삼키다가 입 안으로 뜨끈한 액체가 질질 새어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뒷통수를 가격 당하고 있는데 왜 코피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우는 이를 악물고 촉수를 끊은 다음 뒤로 물러났다. 

슬쩍 옆을 보니 츠부미나 이토인가 뭔가 하는 능력자는 저쪽에서 자잘한 것들과 고전 중, 즉 지금은 이 돌연변이와 자신의 1:1 싸움이었다. 

“더럽게 아프네.... 내 뒷골.. 저 모친 없는 새끼가....”

“쿠르르르, 크흐, 큽. 그어어어어어어!!!!!”

“아 그만 좀 짖어, 닥치고 느이 부모님 만수무강 백년해로 해라 개새끼야!!!!”

돌연변이의 부모님 안부를 물으며 서우는 목을 옆으로 꺾었다. 우드득 소리를 내며 뭔가 좀 짜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후우.......”

어쩔 수 없는 돌연변이와의 힘의 격차. 한 번 기세를 잡으면 순식간에 반전시킬 수 있지만 한 번 잘못 걸리면 바로 이 지경이 된다. 하지만 그게 재미 있는 게 아닌가. 아슬아슬하게 한계까지 떨어졌다가 겨우겨우 기어 올라와서 꺾는 게 재밌지, 서우는 가볍게 몸을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숙였다. 한쪽으로 확 쏠려 있던 장기들이 다시 원래 위치를 잡아 가는 듯한 기묘한 진동이 배에서 울렸다.

패대기질 몇 번 좀 쳐졌다고 벌써 이 모양이라니, 능력이 없으면 결국 저 거대한 돌연변이를 때려잡는 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서우는 느리게 깨달으며, 간만에 피를 쏟게 된 코피를 손등으로 문지른 다음 그냥 바닥을 향해 털었다. 그닥 많지도 않은 양인데 좀비들은 바닷속의 상어마냥 고개를 번쩍번쩍 쳐들었다.

“퀘엑, 켁!!! 케헤에에에에엑-----”

“크허어, 어어어---”

햇빛에 썩어가고 부패해, 살이랑 피에 잔뜩 굶주려 있는 녀석들이 돼지 울부짖듯 짖으며 손을 내민다. 그 모습이 마치 사생팬 같아서 서우는 물끄러미 녀석들을 내려다 보았다. 하이파이브라도 해달라는 듯이 미친듯이 손을 휘젓는 모습이 너무나도 간절해 서우는 가만히 와이어를 휘둘러 친히 팔을 잘라주었다.

그렇게 졸지에 팔 내지는 손이 없어진 돌연변이나 좀비들은 막대기 같은 손을 열심히 휘저었지만 이미 너희들은 아웃 오브 안중, 서우는 촉수형 돌연변이의 중심에 와이어를 꽂아넣고 그것을 주축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위로 뛰어올랐다. 

콰직, 콰지직-!

고기를 찢고 뼈를 가르는 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리고, 와이어를 통해 몸으로도 전해져 오는 느낌이다. 그 짜릿한 손맛에 서우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허공에서 고개를 뒤로 확 젖히자 돌연변이의 머리가 케이크처럼 잘려 피를 허공을 향해 흩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분명 죽지 않겠지, 이걸로 죽어선 안 된다. 아직 물고 씹고 맛 보고 뜯지도 못했는데.. 과연 예상대로 돌연변이는 머리가 반으로 갈라진 상태로도 반으로 썰린 불고기 마냥 단면을 너풀너풀거리며 서우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있었다.

“어...?!”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서우는 바닥에 착지했는데, 착지한 부분이 하필이면 폭탄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머릿속으로 종이 땡, 하고 울렸다.

지금 돌연변이가 다가오고 있는데, 저를 내리치려고 오고 있는데 폭탄 위? 아, 음경 됐다. 이건 진짜 음경된 거다. 그리 생각하는 순간 서우의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쭈욱 늘어졌다. 슬로우 모션처럼 돌연변이가 침을 질질 흘리고 서우를 향해 수백 수천 개의 촉수가 날아들었다.

‘미친.’

녀석과 달라 붙어 있으면 주옥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돌연변이가 폭탄을 찌부러 뜨리거나 압박이라도 가하면? 그땐 그냥 자가치유고 뭐고 그냥 슈퍼하게 음경되는 거예요, 아주 음경되는 거야. 서우는 이를 악물고 촉수들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죽으면 죽었지 설마 촉수플레이 당하지는 않겠지.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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