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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의 내기
“........”
가서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다. 서우의 뒷모습을 보니 더욱 그랬다. 뭐라도 좋으니 같이 말하면 좋은데.. 츠부미는 괜히 제 구두를 바닥에 질질 끌다가 서우를 쳐다보았다. 작게 보이는 서우를 보니 더욱 더 마음이 심란해, 결국 츠부미는 조심스레 밖으로 나가 서우쪽으로 걸어나갔다.
“더럽게 잠도 안 오고...”
그리고 서우는 중얼거리면서 담배를 바닥에 지지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거진 한 갑이 서우의 발 밑에 떨어져 있었다.
그 성취감과 충족된 욕구에 괜시리 심장이 쿵쿵거려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근처에 여자, 정확히는 여자 능력자가 있다면 만족할 때까지 하고나면 그나마 잠이라도 잘 오련만, 여기에 여자 능력자라고는...
‘그냥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서우는 애꿎은 담배만 다시 태우면서 빨리 몸이 피로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냥 잠이라도 잘 수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낮에 길게 잠을 자 버려서 잠은 조금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타들어가는 불만 보고 있던 서우는 발걸음 소리에 뒤를 돌았다. 누가오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마리코의 강한 파장이 너무 넓게 퍼져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가까이 온다면..
‘...무슨 일로 온 거지?’
서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둠속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츠부미를 찾았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가온 츠부미가 서우의 옆에 앉았다.
“아, 안 주무세요?”
“아까 좀 많이 잤더니 난 별로 안 졸려서, 넌?”
“저두...”
피곤할 것 같은데.. 서우는 그늘진 츠부미의 눈밑을 보다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츠부미가 있어서 담배를 피기는 뭐하고, 앞에 피워놓은 불옆에 놓여져 있던 비상식량으로 배치된 과자 하나를 츠부미에게 건넸다. 발갛게 불빛에 얼굴을 물들이며 츠부미는 과자를 잡고 웃었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제 눈치를 흘긋흘긋 보다가 입을 벌렸다.
“저기 오빠아... 괜찮으세요?”
“뭐가?”
“아니, 다치신 곳 없나 해서..”
“뭐 좀 긁히긴 했는데 금방 나았어.”
서우는 다 아물어가는 팔을 슥슥 내밀었다. 사실 촉수형한테 제대로 얻어 맞았을 때나 벽에 내리쳐졌을 때 내장이 뒤틀린 것 때문에 아직까지도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츠부미 앞에서 괜히 티 냈다가는 또 저 송아지 같은 눈으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을 테니까.
바스락 바스락, 츠부미가 과자를 까서 먹는 소리가 들렸다. 서우는 살짝 허기가 진 느낌이 들어서 앞에 있던 통조림을 와이어로 대충 깐 다음, 손에 묻히기 싫어 와이어를 단단하게 만든 뒤 젓가락처럼 사용했다.
“..!”
가끔 젓가락 가지러가기 귀찮으면 하는 행동이었는데, 츠부미는 그것을 처음 보았기에 마냥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제 능력은 공격하는 것, 오직 그것 하나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서우는 그게 아니었다. 빛으로 구성된 와이어를 제 마음대로 끈처럼 이용할 수도 있었고, 지금처럼 이용할 수도 있었으며 제 마음대로 성분 모를 독을 바를수도 있다고.. 그렇게 지금 자신에게 능력자로써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말했다.
“왜 그래, 츠부미?”
“아니요, 어.... 음. 그냥...”
서우가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흘긋 츠부미를 돌아보았다. 츠부미는 마구 고개를 저으며 아뇨, 아뇨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확, 츠부미는 제 손에 들고 있던 과자 봉투를 떨어뜨렸는데, 서우가 그것을 잡으려 몸을 숙이고 츠부미가 그것을 잡으려 몸을 숙이다가 어색하게 둘의 몸이 닿았다.
평소라면 당연하게도 아무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잔뜩 몸이 달아 있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마주 보는 츠부미의 모습이 불빛에 일렁거려 괜시리 예뻐 보이고, 그리고 아이 같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 아니다.
"저, 서우 오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물론 정말 모르겠지만 마냥 순진무구하게 저를 올려다 보는 눈에서 서우는 소라나 에리, 조금 일그러졌지만 유우리가 짓는 표정이 보였다. 말 그대로 [좋아 죽겠다] 같은 것.
"아..."
서우는 무심코 츠부미의 한쪽 어깨를 잡아 끌어당기고 있었다.
“에..?!”
놀란 츠부미가 커다란 눈망울을 일렁이며 서우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아이의 눈이 느리게 감기는 찰나, 서우는 확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제가 잡고 있던 어깨가 얼마나 작고 가냘펐는지, 그리고 츠부미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이제까지 츠부미를 몇 번이고 위기에서 구해주었기에 더더욱.
‘..애한테 뭔 지랄이냐, 이게.’
서우는 몸을 뒤로 확 물렀다. 깜짝 놀란 츠부미가 눈을 꿈뻑이자 서우는 손으로 츠부미의 어깨를 가만히 밀었다. 하마터면 이대로 아청아청 할 뻔했던 서우였다. 저도 그것을 알았기에 조금 놀랐다.
츠부미 나이가 몇인데, 아무리 남자는 자고로 도둑놈이 되어야 한다고 해도, 남자 셋이 모이면 동태지와 아이들처럼 어린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도원결의 해야 한다고 해도, 이 정도면.. 게다가 그저 애인데.
강간 바이러스를 뿜어내며 다니기라도 하는지, 전시 상황에 가깝고 아무리 어린 여자아이라고는 하나 이제까지 몇 번이고 위기를 겪어왔던 츠부미를 구해주었던 것도 저면서, 서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츠부미가 다 컸다면 모를까 제 갈비뼈의 중간까지 겨우 오는 키의 츠부미였다. 거기에 나이도 나이.
“그만 들어가서 자라.”
츠부미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고 서우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츠부미는 그 자리에 남아 멍하니 서우와 닿을 뻔했던 제 입술만 만지다가 멀어져가는 서우의 뒷모습만 불안하게 올려다보고, 서우는 스스로의 이성이 이 정도면 꽤나 칭찬 받을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 상태에서 혹여나, 혹여나 그대로 츠부미의 어깨를 잡고 입술이라도 부볐었다가는..... 서우는 마구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무심코 츠부미에게 투자하는 마음으로[?] 잘해주자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에리를 알게되고 나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른 여자랑 부대낀다면 모를까, 친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츠부미인데...
에리가 깨어나고 그걸 안다면 [사진 有] 제발 도와주세요 ㅠㅠ 남자친구가 제 어린 여동생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ㅠ... 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릴지도.. 서우는 제가 생각하고 나서도 참 실없다 생각하며 제 뒷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음이 참 오랜만에 심란했다. 그것도 츠부미 때문에 이런식으로..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꿉꿉해진 채로 대피소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간 서우는 저에게 잘못된 정보를 말해주었던 서포터와 거짓말처럼 마주쳤다.
“허..?”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나. 서우는 저도 모르게 박장대소하며 대피소의 복도가 윙윙 울리도록 웃었다. 청각이 예민할 능력자 이토는 이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깰지도 모르지만 알바 아니지, 서우는 제 앞에서 달달 떨고 있는 서포터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나름 정부 내에서, 정확히는 이 부대 안에서 위치가 높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러니까 저에게 무어라 무어라 설명도 했던 것일 테고 서우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그를 가만히 위 아래로 훑었다. 여자였으면 방망이로 벌했겠지만 아쉽게도 서포터는 남자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바들바들 떠는 서포터, 머리를 깊숙하게 숙이는 것이 마음에는 들었지만.. 서우는 입꼬리 한쪽을 스윽 올리며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그리고는 바로 구석으로 끌고가 입안에 주머니에 넣어져 있던 작은 빵 하나를 쑤셔 넣었다.
“사, 살려주십... 우웁, 우우우우...!”
“가뜩이나 마음도 심란한데 잘 걸렸다.”
“우욱!”
서우는 도망치려 발버둥치는 서포터의 종아리를 한 손으로 잡은 채, 다른 손으로는 군화의 끈을 단단히 묶으며 그대로 다리를 들어올렸다.
“두 번 다시 거짓말을 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주겠어.”
....서우는 말해놓고 한국어로 말한 탓에 그가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두 번 말하기 귀찮아 그대로 높이 들었던 다리를 내리찍었다.
츠부미.
나이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츠부미는 어리다, 아마 열 다섯도 채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발육이 좋지 않은 탓에 키도 작고 몸도 얇으며 여성스러운 라인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리 봐도 애다. 어눌한 말투, 미성, 아이 특유의 보드라운 피부나 통통한 손가락.
그런데도 츠부미는 때때로 참 묘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 볼 때가 있었다. 서우도 그것을 깨닫고 있었기에 기분이 괜히 이상했던 것이다. 츠부미가 애초에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그런식으로 접근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까 그렇게 하려던 시도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서우는 호타루가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잇새로 한숨을 쉬고 발길질을 멈췄다. 마지막 한 방에 이미 서포터는 빵을 문채 게거품을 물며 쓰러져 있었다.
“..쯧.......”
서포터를 내려다본 서우는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제 생각과는 달리 곧바로 깊게 잠이 들어 침대에 몸을 푹 묻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서우는 흔들리는 차량에 몸을 맡기면서, 옆에서 놀아달라고 저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마리코의 시선을 알면서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멀찍한 곳에 앉아 있는 츠부미가 눈에 자꾸만 밟히는 느낌이었다.
'괜히 심란하게 하네, 저 계집애가....'
어린 주제에. 서우는 고개를 창가쪽으로 돌렸다.
============================ 작품 후기 ============================
ㅋㅋ
자정연재 실퍀ㅋㅋㅋㅋ 왜 연참했니 찰싹찰싹, 연참했으니 용서해주세요 흑흑. 주말에 연참 열심히 해야지 찰싹찰싹.
그보다 님들.
남자친구랑 데이트 하라구요...
먼저 있나 없나 물어보는 게 예의입니다. 아시겠습느끄.
아니면 남자친구를 사귀라구요.. ㅇ..ㅇ...?
님들이 참한 놈으로다가 하나 구해주시져. 생일선물로 노량진에서 연어 토막을 사다주는 남자친구를 원합니다. 오늘 이마트에서 연어토막 사다 혼자 썰어먹고 있자니 제 마음이 싱숭생숭 심란복잡. 두 토막을 샀지만 한 토막은 아부지를 필연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연어 좋아하심. 흑흙흙, 연어로 배부르고 싶다.
그럼 오늘의 연어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