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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동안의 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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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와 츠부미, 그리고 마리코 셋이서 탄 차량은 예전에 대피소에서 도쿄로 향할 때도 탔었던 차와 같은 종이었다. 좀비는 물론이고 왠만한 돌연변이의 습격에도 끄떡 없는 그 커다란 차량은 30명 가량을 넉넉하게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컸는데, 능력자들은 거의 혼자서 네 사람 분의 좌석을 사용했기에 깜빡 졸았던 서우는 의외로 그 안에서 깊은 단잠에 빠져버렸다.
해서 너무나도 곤히 자는 바람에, 서우를 깨울 자신이 없었던 서포터들만 그 근처에서 끙끙거렸다. 게다가 어제 서우가 서포터들의 단장인 하세쿠라 카즈히코를 패대기 친 바람에 그들의 괴로움은 더해졌다.
“왜 나한테 하라고 그래! 나도 무섭단 말이야!”
“넌 능력자님들한테 말 잘 걸잖아!”
“...그, 그건......! 저 사람이 아니잖아, 다른 능력자 분들은 서포터를 그렇게 먼지나도록 패지 않아!”
자세한 사항을 모르니 그들은 그저 하세쿠라가 서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 혹은 우연히 기분 나쁘던 서우에게 걸려서 그렇게 되었다, 그 정도로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어, 어떡해.... 지금 바로 나가야 되는데, 아, 안 일어나시려나?”
“내, 내가 한번 해보겠어.”
“마츠시타...!”
마츠시타라고 불린 서포터가 깊게 숨을 들이키더니 크게 헛기침 같은 소리를 내었다.
“큼, 크흠. 큼! 아이고, 요즘 목이 안 좋네!”
“..아, 안 일어나시나?”
하지만 용기를 낸 헛기침에도 서우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서포터 중 한 명이 멀찍이 떨어져 ‘이제 도착했습니다! 모두 내려주세요!’ 하고 모르는 척, 서우를 깨우려던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을 내리게 하려고 한 척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최서우는 내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잠들어 있었다.
“역시 잡고 흔들어 보기라도 해야겠어, 이러다간 우리 집합시간에 늦어! 그러면 능력자분들한테는 뭐라고 못하니 괜히 우리만 감봉이라고!”
“네가 해봐. 네가 우리 중에 제일 체격이 좋잖아, 오다기리이이...”
“안 돼, 나... 난 못해! 이봐, 난 다음 달에 딸이 태어난다구! 너도 알잖아, 내 딸 이름이 요우인 거! 우리 애를 아빠 없는 딸로 만들 수 없어! 흔들었다가 반사적으로 날 집어 던지기라도 하면 난 중국산 제품처럼 녹아내릴걸!”
사실 그들은 그리 말하면서도 서우가 그 수군거림에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지만 서우는 야속하게도 살짝 꿈틀거릴 뿐, 아직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응? 뭐하세요, 안 나가시고.”
“츠, 츠부미님! 제발 도와주세요오...!”
“..?”
결국 밖으로 나가 옷을 다 갈아 입은 츠부미가 다시 차량 안으로 들어올때가 되어서야 그들은 울먹이는 얼굴로 츠부미에게 도움을 청했다. 츠부미로서는 당연히 그들의 울먹임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스스럼없이 서우에게 다가갔고, 서포터들은 혹여나 무서운 일이 생길까 밖에 일을 도와준다며 재빨리 나갔다. 츠부미는 서우의 단단한 어깨를 잡으며 가볍게 그를 흔들었다.
“오빠, 서우 오빠.”
“....으음...”
“일어나보세요, 이제 도착했어요. 서우 오빠아-”
츠부미의 낭랑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서우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눈을 희미하게 떴다. 그리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짖궂게도 위에 지퍼를 쇄골 밑까지 내리고 있어, 몸을 숙이면 그대로 보이고 마는 츠부미의 새하얀 속살이었다.
게다가 츠부미는 어리다 보니 몸을 굽힐 때 옷이 처지니 가슴쪽을 손으로 조신하게 잡고 숙이자는 생각 같은 것도 하지 못했고, 그것은 절반 뿐이었지만 여과없이 서우의 눈앞에 드러났다. 당연히 아직 여물지도 못한 것이 익은 것을 좋아하는 서우의 눈에 차겠느냐만은, 서우는 왠지 그 순간만은 굉장히 놀라 눈을 확 뜨고 말았다.
“아, 일어나셨네요.”
“......어... 뭐야? 도착했어?”
“네, 여기 옷 있으니까 갈아 입고 나오시래요.”
“....아, 그래. 알았다.”
어색하게 츠부미와 몸을 떼면서, 밖으로 나가는 츠부미를 보자 서우는 그제야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이게 뭐하자는 거람? 고작 저런 어린애한테. 금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 모양인지, 왠지 모를 짜증마저 솟구쳐 서우는 재빨리 옷을 갈아 입고 나서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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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왼데.....?”
“그, 그러게. 생각이랑은 다르네. 그래서 다행이야.”
할 일이 없는 서포터들은 차 점검을 마치고 다른 장비들의 점검을 마친 뒤, 침을 꿀꺽 삼키며 망원경으로 서우를 살펴보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최서우는 말없이 그냥 몸만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처럼 무전기를 또 던질까, 부러주지 않을까 생각했더니 자기가 알아서 이어폰을 착용했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장 서서
‘빨리 끝냅시다.’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앞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제 구역에서 서우는 말 그대로 펄펄 날았고,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가는 서우의 와이어는 빛의 와이어라는 이름 그대로 빛처럼 빨라, 눈을 깜빡일 때마다 좀비가 정육점 고기마냥 썰리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살덩이가 곳곳에 흩날리는 것이, 마치 하나라도 주워 밥위에 얹어 스시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 위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서우에게 지시를 내리는 지휘관은 의아해 했지만 빨리 끝내자고, 서우가 말을 들을 때 최대한 일을 진행하자고 생각해 일사천리로 구역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히키코모리 능력자인 이토는 다른 지역으로 갈 일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 버리고, 츠부미는 원래부터 남길 예정이었기에 그대로 두었는데, 마리코가 굳이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 결국 둘이 함께 한 구역을 청소시켰다. 츠부미를 서우의 구역으로 들여보냈다가는 날아다니다 시피 좀비를 처치하는 서우에게 다칠 것 같아 넣을 수 없었고, 마리코는 ‘마리코의 영역’이 있으니 들여보낼 수는 있었지만...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마리코도 츠부미의 구역을 돕겠다 말한 것도 있었고.
“쿠에, 퀙... 퀘에에에에........케.........”
돌연변이가 입을 벌리자 옥수수를 수확하듯 우수수 누런 이빨들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로 앞에 있던 돌연변이를 베려하던 서우의 발에 그대로 맞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돌연변이의 얼굴위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이빨이 모두 빠져 시뻘건 잇몸만 번들거리고서 끼, 끼이 거리는 녀석이 손을 내밀자 서우는 문득 이빨 하나당 100달러씩 쳐주기로 하고 틀니를 만들어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북한의 최룡해가 생각나는군.”
서우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가 와이어를 쭈욱 뽑아 돌연변이를 베어버리고 뒤에서 제 머리를 깨물려 덤비는 커다란 아가리를 손으로 잡고 그대로 상악과 하악을 분리시켜 버렸다.
“케겍!”
입이 너덜너덜해진 돌연변이가 입을 벌렁벌렁 거리자, 다른 좀비를 잡아 그 입에 그대로 쑤셔 넣고서, 좀비의 허리를 받침대 삼아 돌연변이라기엔 왠지 모르게 찰흙, 아니 날고기를 이리저리 뭉쳐 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햄버거 고기 패티를 뭉쳐 놓은 모습. 그래서 그런지 와이어로도 아주 깔끔하게 잘린다. 스테이크 같은 손맛에 서우는 가볍게 희열하면서 애써 심란한 마음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마음이 심란해져도 그렇지 겨우 애인데. 고작 그 조그만한 애한테 무슨 생각이람? 순간이지만 츠부미에게 가졌던 생각을 하니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욱 날뛰던 서우는, 얼마가지 않아 제 구역을 전부 정리해 버렸다.
“세상에... 벌써 다 끝낸 거야?! 저, 저쪽에는 두 사람이 있다고...!”
촉망받는 유망주인 츠부미와, 1인자인 마리코. 물론 츠부미는 아직 능력을 사용하는 게 어색하고, 마리코는 빨리 끝내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질리고 귀찮다는 듯이 대충대충 하고 있었긴 했지만 두 사람의 몫 보다 빨리 끝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 끝까지 피를 뒤집어쓴 서우는, 근처에서 꺼억꺼억 거리고 있던 좀비를 잡아 옷을 그대로 벗기고는 제 얼굴을 문질렀다.
“다행이긴 한데....... 좀 무섭다.”
“하세쿠라 단장님을 이유없이 두들겨 팼다고 해서 난 엄청 긴장했어. 게, 게다가..... 그 유우리님도 납치해서 데리고 있는 사람이라며, 무지 셀 거야.”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서포터는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사실 단장인 하세쿠라가 입에 빵이 물린채 빨랫감처럼 두들겨 맞은 것은, 그가 평소에 흠모하고 있던 유우리에 대한 복수심 아닌 복수심이었고, 제 딴에는 서우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해 엿이나 먹어라! 싶은 마음으로 저지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서우가 모를 리 없었고 결국 하세쿠라는 다음 날 입에 빵과 거품을 문 채로 제 밑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도쿄로 긴급호송 되었다. 어찌나 기술적으로 때렸는지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지만 온몸이 타박상 투성이에 가벼운 뇌진탕도 일으킨 상태라고 했다.
당연히 서포터들은 그 이유를 모르니 서우를 보며 부르르 떨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시선에는 서우가 폭주를 일으켜 일방적으로 서포터를 두들겨 팬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우, 무서워... 이러다가 아무나 잡고 또 어제처럼 그러면 어떡해? 게, 게다가 엄청.... 밝힌다며.”
“혹시 잡히기라도 하면... 웃, 끔찍해.”
능력자의 체력은 인간과 다르다. 아니, 체력이 아니라 신체 자체가 아예 다른 종과 같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다. 신체 자체가 능력인지라, 바다에 들어가면, 특히 얼마전에 보았던 노스카와 우드.... 바다의 먼치킨이라는 범고래마저 몇 분만에 때려 눕히는 그 모습을 생각하며 그녀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노스카와의 신체는 서우의 신체보다 당연히 수십 배 강하지만 이제까지 그를 서포터했던 그녀들이기에 생각나는 대상은 노스카와 밖에 없었다.
“그런 것 같아, 어.. 어제두..... 흐꺅!”
수군거리던 여 서포터는 어느샌가 제 앞까지 다가온 서우와 눈이 마주쳤다가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잠시 그 서포터를 위 아래로 훑어보던 서우는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
“수건.”
“드, 드리겠습니다!”
“.......”
서포터가 달달 떨면서 수건을 내민다. 서우는 수건을 잡으려다가 무심코 그 여자를 내려다 보았는데, 오가와 사유라는 네임택이 목에 걸려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가와 사유는, 얄궂게도 츠부미와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분명 이제 괜찮은 헤어관리 같은 건 받지 못할 텐데도 살랑이는 검은 생머리라던가. 볼 부분은 토실토실한테 턱 부분만 갸름하게 빠진 것이라던가. 뽀얗게 우물거리는 뺨, 그 위에 언뜻 보이지만 그닥 티는 안 나는 주근깨. 웃을 때마다 파이는 보조개나 작고 귀엽게 자리잡은 이. 웃을 때마다 저절로 눈웃음을 치게 되어 애굣살이 만들어지는 까아만 눈까지.
아까는 별로 그리 생각하지 않았는데, 뜯어 보니 오가와 사유와 츠부미는 몹시도 닮아 있었다. 서우는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필요 없어.”
“...예옛?!”
뭐지? 오가와 사유가 위를 올려다 보자 서우는 저만치로 가더니 갑자기 지나가는 남자 서포터가 들고가던 수건을 무턱대고 빼앗아 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