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38화 -- >
하룻밤이 지나고, 부대 막사의 식당에 얼굴을 내민다.
암컷 노예들은 나보다 훨씬 반듯한 상태에서, 개운해 보이는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먹고 있었다.
나에게는 길고도 긴 밤이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녀들의 입장에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피곤해 보이는 아가씨는 아무도 없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내 입장에서는 여자를 바꿔가면서 종횡무진 섹스했지만, 그녀들은 그저 자기 차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부담은 10분의 1 이하다. 뭐 나는 그보다 앞서서 자위하느라 체력을 조금 많이 소모한 상태이기도 했지만.
원래 체력이 이상할 정도로 강한 아가씨가 많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어젯밤 섹스의 여운은 거의 남지 않은 듯하다……뭐, 부대 녀석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까 어찌되든 잘됐지만.
「스마이슨. 어젯밤은 듬뿍 즐겼냐?」
「특무백인장」
이것 또 아침의 상쾌한 분위기로 말을 걸어오는 것은……아, 술냄새 나는 벡카 특무백인장.
「숨결에서 아직 술냄새가 조금 납니다만」
「오랜만에 세레스타의 술집에서 마셨으니까. 이 근처에는 익숙한 술이 많아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여러가지로 그리워진 모양이야」
「특무백인장은 이 근처 출신이었나요?」
「서부야. 대 아르모니카 하류 지역이지. 하지만, 여기 밧슨은 술의 문화권이라는 의미에서 보면 동부보다는 서부에 가까워」
「어느 쪽이냐면 트롯 근처이기도 하지만요」
세레스타는 국토 중앙의 대부분을 사막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서부(정글 - 여우 수인의 영역)•동부(초원 - 인간의 영역)•남부(호수와 늪&해안 - 다크 엘프•오거의 영역) 등등 문화권이 꽤나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각각의 특색도 강하다. 그리고 남동부의 엘프령도 문화가 상당히 독특하고.
굳이 구분하면 밧슨은 북부에 속하겠지만, 사막의 영향과 트롯과의 국경선이기 때문인지, 이 근처에는 각 지방처럼 특색이 강한 문화권을 형성한 인구 밀집지역은 없다. 그렇달까, 풍요로운 땅은 대부분 트롯이 차지하고 있다.
오픽 레이드에서 밧슨 근처가 오히려 예외적으로 풍족한 편이라서, 유사시에는 이 근처를 통해서 세레스타의 동부로 진군하게 된다.
지금이야 세레스타가 트롯을 전쟁으로 굴복시켰으므로 가능성이 많이 낮지만, 만약 트롯이 세레스타로 쳐들어오면, 여기를 공략하거나 아니면 험악한 산악 지대와 정글이 빽빽한 서부 지역을 넘어야만 세레스타의 중심부로 진격할 수 있고, 그 이외의 지역을 통해서 세레스타를 침공하면 곧바로 사막에 들어가 버린다. 그 정도로 무리하면서까지 트롯이 자국의 영토를 확장할 이유도 없으므로, 세레스타 서부에서 오픽 레이드까지 이어지는 가도(街道) 근처에는 세레스타의 국내 교통로를 유지시킬 수 있는 역참 역할을 하는 마을 정도만 남게 된 것이다.
그런 이유로 딱히 거대한 문화권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북부 문화권을 구별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밧슨이야 최근 들어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도 원래는 작은 마을이었으므로, 급속도로 유입된 트롯 문화와 이 지역으로 몰려든 세레스타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이다.
「문화야 동부의 영향이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술은 서부에 가깝나요?」
동부는 술맛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머무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서부에는 그야말로 세레스타답게 특징이 강한 술이 정말 많아. 그것과 비교하면 동부는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고. 그리고, 이 근처에는 특징이 강한 술이 많지. 아마, 트롯에 대한 수출-수요의 관계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 말씀은?」
「트롯에다 트롯산 술을 팔아도 이익을 많이 남기기는 어렵잖아? 자국산 술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비슷한 술을 만들어서 파는 사람이 많을 테니 말이야. 세레스타에서 트롯산 술을 좋아하는 만큼 트롯인들도 특징이 강한 세레스타산 술을 많이 수입해. 그 술을 수입하는 창구가 밧슨이라서, 최근 급속도로 발전한 거지」
「과연 그렇군요……」
술 상인은 트롯과 교역하는 김에 밧슨에도 술을 판다. 그 술들의 주요 산지가 서부라는 것이구나.
「엘프령이나 폴카의 술도 좋긴 하지만. 역시 이렇게, 느낌이 강한 술을 마시고 싶었어」
「그 기분 저도 알 것 같아요」
「맞아요 그 말씀대로입니다」
어느새인가 나리스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너, 어느 쪽이냐면 와인파 아니었어?」
「굳이 취향을 따지자면 확실히 와인쪽이긴 합니다만―. 같은 술도 100년 넘게 마시면 질려 버리니까요」
「맞아 맞아. 세계는 넓으니까. 이왕이면 여러가지를 다양하게 즐기는 쪽이 더 좋지 않겠어?」
「이거 벡카 특무백인장과는 말이 잘 통해서 좋네요」
굳게 악수하는 벡카 특무백인장과 나리스.
아니, 나도 그건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일단 술기운은 확실하게 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힐다 씨에게 요청하면 아마 약을 줄 겁니다」
「에―……그렇게 냄새나?」
「네」
나리스가 주저없이 대답하자, 벡카 특무백인장이 겸연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 조금 상처입은 것 같기도 하고.
뭐……그래. 냄새난다는 말을 들으면 여러가지로 부끄럽지. 내 암컷 노예들이야 내 술냄새가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달까 오히려 달라붙는 경우가 많지만.
그리고, 안제로스들이 호위 보병대를 훈련시키는 걸 구경하거나, 부대원에게 헌팅당하던 베아트리스(언어가 달라서 말 자체가 안 통하고, 무엇보다 칼윈에는 감히 용자를 꼬실 정도로 대담한 남자가 없었기에 상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를 구해 주거나 등등, 오전 시간을 느긋하게 보낸다.
뭐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다. 밧슨에 정착하고 싶어진 전 마약 환자가 있을 지도 모르니까.
그 때 때마침 어젯밤 들었던 에로 그림책에 대한 게 생각나서, 빌려보려고 전 부하를 찾아갔다.
「어이. 쟝 잭 있어―?」
「아, 스마이슨 십인장이다」
「여자를 산처럼 거느린 주제에 에로 그림책로 자위하는 스마이슨 십인장이야」
「우리 부대에게서 디아네 백인장과 안제로스 십인장을 동시에 빼앗아간 스마이슨 십인장이다」
「하반신만으로 독립해 버린 스마이슨 십인장이야」
「나 뭔가 너희들의 기분을 해칠 만한 일이라도 했었어!?」
변함 없이 훌륭한 연대감을 자랑하는 녀석들의 반응에 눈물이 나온다.
「어젯밤에 얘기했던 에로 그림책, 보고 싶어서 찾아왔어」
「뭐 이야기하는 건 상관없지만 빌려 주지는 않는답니다. 에로 그림책으로 자위하고 싶다면 직접 구하도록 하세요」
「뭐-, 무엇보다도 이 사람이 에로 그림책으로 자위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쟝 잭」
「들은 바에 따르면 「심심하니까 내 자지를 빨아」라고 말해도 기쁘게 따르는 여자들 뿐이라고 하던데」
「그런 짓을 하면서 에로 그림책으로 자위까지……용서 못해」
「아, 안제로스 십인장은 그런 짓 안하겠지?」
「그, 그야 안제로스 십인장이니까……아, 암컷 노예 선언도 다른 남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받은 적이 없어서 해 버린 게 아닐까나」
미안. 그런 걸 가장 기꺼이 해 주는 게 아마 안제로스일 거야.
아마 나리스와 베아트리스……그리고 그런 것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에마나 네이아 말고는 모두 기쁘게 해 줄 거라고 생각해.
……같은 말은 죽어도 못하므로, 일단 억지로 웃으면서 저자세로 굽힌다.
「그, 그런 건 일단 제쳐두고, 명작이라고 들어서 순수하게 보고 싶을 뿐이야. ……에로 그림책은 단순한 에로뿐만이 아닌, 예술적, 문학적 가치도 높잖아?」
「으음……그런 말을 들은 이상 보여 주지 않을 수도 없군요」
「장 잭, 속으면 안 돼. 저런 부르주아의 말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저 말도 맞긴 하지만, 만약 스마이슨 십인장이 그 에로 그림책을 보고 나서 「진짜 여자와 비교하면 에로 그림책 따위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같은 말을 하면 그냥 참고 넘어갈 거야?」
「감히 그런 말을 떠들어대는 놈은 당연히 말살해야지. 에로 그림책은 세레스타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문화라고」
「하지만 스마이슨 십인장이 그걸 이해하고 있고, 저런 말을 하는 데 안 보여줄 수도 없잖아」
「크읏……맞는 말이긴 하지만,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야……그게 다원화 사회라는 것이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왠지 이상하게 고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비록 동정은 잃었지만 에로 그림책의 훌륭함까지는 잊지 않은……그런 스마이슨 십인장을 거부하고 싶지 않아」
「……그래……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지만……그래도!」
「참아. 감정을 우선한 나머지 긍지를 깎아내리면 안 된다고. 우리들의……에로 그림책 애호가로서의 긍지를!」
이거 그렇게까지 진지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면서 토론할 만한 주제였었나……?
「어쨌든 그렇게 되었으니……이게 바로 그것입니다」
스윽……품에서 에로 그림책를 꺼내는 장 잭. 너 그걸 갖고 다녔냐.
「이게 바로 「음마의 무도」……」
「실은 나도 처음으로 보는 거다」
「락맨은 로리가 취향 아니었나?」
「로리 취향 같은 게 아냐. 동족을 좋아할 뿐이라고」
「이렇게 좋은 걸 지금까지 숨겨두고 있었다니, 장 잭도 구두쇠구만」
「소중히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남자 7~8명이 주저앉은 채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팔꿈치로 서로 밀어대면서 에로 그림책를 응시하는 광경을 보면, 이 사람들의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음마의 무도」는……쟝 잭이 추천할 만큼 상당히 훌륭했다.
「구도가 대담하고 육감적이군……등장 인물수가 적은 것도 화풍과 어우러져서 효과적이야」
「특수 속성으로 서투르게 얼버무리지 않은 것도 포인트가 높군요」
「보지를 이렇게까지 정밀하게 그렸는데도 천박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다니, 밸런스 감각도 정말 대단해……」
「넣고 싶어지는 구멍이란 이런 보지를 말하는 걸까」
「자랑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이걸로 몇백 번이나 뽑았답니다……눈을 감으면 티리 쨩의 주름의 감촉까지 떠오를 정도로요」
「아니 쟝 잭. 그건 너무 빠져든 것 같은데」
「하지만 이 가슴은……이렇게, 만진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지 않아?」
「락맨이 가슴에 대해 말하다니……!」
「딱히 동족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건 아니란 말이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체와 구도. 뽑아내는 것에 특화된 스토리.
이건……과연 걸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 이걸 빼놓고 걸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쟝 잭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건……확실히 갖고 싶은데. 누구에게서 산 거야?」
「세드릭이라는 행상인 아저씨였습니다만……이제 이 근처에서는 손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반년 전에 재고가 다 나갔다면서 웃고 있었으니까요」
「아―……그 아저씨 ……」
몇번인가 신세진 적이 있다. 에로 그림책은 다른 잡화들을 파는 김에 가져왔을 뿐이라서, 항상 10권 정도만 가져온 것 같다. 운이 나쁘면 어쩌다 만나도 다른 호사가들이 전부 사들여 버린 후이기도 했다.
이 책을 그에게서 사는 것은 어렵겠지. 원래 행상인이니만큼 지금 어디에 있는 지도, 지금 이 책을 갖고 있는 지도 알 수 없으니까.
「이건……대도시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겠군」
「만약 찾으면 제 몫도 좀 사다 주세요」
「제것도요!」
「아, 저도 예비로 하나 부탁 드릴게요」
모두 손을 들면서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한다.
「너희들 말야, 방금 전에는 쫓아내려고 했던 주제에 태도가 너무 쉽게 바뀌는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