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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54화 (54/100)

< -- 잘 반하는 하프엘프씨 3부 54화 -- >

나는 글로리아 씨의 붓놀림을 보려고(물론 샤론들의 알몸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임시 아틀리에가 된 어느 응접실에 들어갔지만, 글로리아 씨의 작화 풍경은 매우 기묘했다.

그렇달까, 팔레트 위에 있는 물감이 한 가지 색밖에 없는데도 그림이 총천연색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응? 뭐가?」

「물감이 한 가지 색밖에 없는데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그려지는 게 신기해서요……」

「아, 이거? 간단한 마법이야」

글로리아 씨가 킥 웃고는 붓 끄트머리로 물감을 가볍게 훑자, 하얀색에 가까운 분홍색이 매우 어두운 색으로 바뀐다.

「색을 바꾸는 건 이 정도면 끝. 물론 어떤 색이든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고, 물감 하나에서 바꿀 수 있는 색은 한계가 있긴 해. 예를 들면 검은색을 금색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

「편리하네요」

「엘프라면 누구나 다룰 수 있는 마법이야. 이 정도는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지. ……물론 마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대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로리아 씨의 손에 들린 붓이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눈앞의 진짜 샤론의 알몸도 매우 음란했지만, 그것보다 더 음란하면서도 육감적인 모습이 캔버스 위에 그려져 간다.

「이 속도라면 며칠도 안 걸릴 것 같은데요」

「뭐, 그리는 속도야 자신 있지만……앞으로 하루 정도는 더 그리고 싶어. 모델이 너무 좋아. 몸도 나올 곳은 나와 있고 들어갈 곳은 들어가 있고, 피부도 잡티 하나 없는 데다가 누드에도 딱히 거부감이 없으니까. 돈을 주고 모델을 부탁한 적도 있지만, 창가에서는 벗고 싶지 않다는 여자도 많았거든」

「그것도 그렇겠네요……」

불특정 다수에게 알몸을 보이고 싶지 않거나, 강한 햇빛으로 피부가 그을리는 게 싫을 수도 있으니까.

내 여자들 중에는 엘프가 많다보니, 피부가 그을리는 게 신경쓰이면 마법으로 햇빛을 차단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신분이 높은 여자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귀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여자도 거의 없으니까. 역시, 그 의사가 비약 같은 걸로 미모를 관리해주는 것이려나?」

「힐다 씨야 뭐……그런 약도 잘 다루겠지만, 그것보다는 폴카의 영천 덕분이 더 클 겁니다」

「아……들은 적 있어. 그거, 미용에도 좋아?」

「어째 다른 사람만 칭찬하는 거 같지만, 글로리아 씨도 충분히 아름다운데요?」

「글쎄 그건 어떠려나……운동 부족이다보니 몸매도 많이 무너졌고, 나름 조심하고는 있지만 생활상 피부도 쉽게 거칠어져서 말이야」

「그런가요……?」

「매일 술을 마시고, 안주로 배를 채우다가……날마다 어둑어둑한 여관에서 섹스하는 생활만 반복해 왔거든. 사실, 이렇게 붓을 잡는 것도 꽤 오랜만이야」

스스로 열심히 관리하지 않으면,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려, 라고 자조하듯이 중얼거리는 글로리아 씨.

……관리를 소홀히 한 자신이 정말 부끄러운 듯하다.

「그야 남자들이 나 같은 여자를 줄을 서면서까지 사랑해주는 건 너무나도 고맙긴 해……뭐, 그렇게 사랑받는 동안에는 나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나름 자신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자들 사이에 서게 되면,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뼈저리게 알게 되니까」

「뭐, 나는 지금의 글로리아 씨도 좋지만요……물론 건강이 최우선이니까, 빠른 시일 안에 폴카로 가서 생활을 조금 개선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이런이런. 하렘남을 따라서 관광만 할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건강까지 관리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계기가 어떻든 건강 관리는 중요하니까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손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캔버스 위의 테테스와 나리스가 순식간에 색으로 채워져 간다.

때때로 붓을 거꾸로 잡고 캔버스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는 건 색을 미세하게 조정하거나, 아니면 물감을 말리는 마법이라도 쓰는 걸까.

「응―……그건 그렇다 쳐도, 네 포즈, 밸런스가 조금 이상한데」

갑자기 글로리아 씨가 나리스를 가리키면서 그렇게 말한다.

나리스(물론 알몸)가 깜짝 놀란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이 포즈를 취한 지 벌써 1시간이 넘었습니다만!? 그렇달까 이미 꽤 많이 그려진 거 아닌가요!?」

「응, 그야 그렇긴 하지―. 지금 갑자기 신경 쓰여서 말이야」

「갑자기라뇨!? 그럼 지금부터 다른 포즈로 새로 그리겠다는 건가요?」

「에, 아니 여기다 다시 그릴 건데? 막상 그려놓고 보니, 다른 셋과 비교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딱히 의식하지 않는 것 같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이, 이래뵈도 꽤나 기합을 넣고 포즈를 취한 겁니다만……!」

결국 참지 못한 나리스가 캔버스를 보러 온다.

글로리아 씨가 든 캔버스에는 건틀렛들의 알몸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캔버스 하나에 네 여성이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화면의 점유율을 의도적으로 바꿨으므로, 네 여성이 실제 그대로의 크기 비율로 그려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확실히 나리스는 다른 셋과는 달리 조금 촌스럽게 느껴졌다.

「크읏. 내 가난뱅이 냄새가 그림에서까지 느껴질 줄은……」

「아니 그게 아냐. 물론 당신의 몸은 다른 사람이 봐도 아름답긴 하지만, 이런 고상함은 평소부터 의식하지 않으면 몸에 배지 않아서 그래. 예를 들면 상대가 보는 얼굴의 각도라거나, 자세라거나, 허리의 각도라거나 등등, 이 아이의 포즈는 확실히 보기 좋지? 하지만 네 포즈는 과감한 걸 넘어서 너무 솔직해」

「우―……그런 말을 들어도……」

「거울 같은 건 거의 안 보지?」

「나, 나름대로 신경은 쓰고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여자는 말이지, 전신용 거울과 옷상자만 있어도 반나절은 순식간에 사라지는데?」

「……그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당신도 기사답게 몸매도 좋고 유연하니까, 이런 보기 좋은 포즈를 연구해 보는 게 어때?」

「으으음……우―, 역시 새로 그려주시면 안될까요?」

「나야 상관없지만, 나중에 따로 그려야 할 것 같아. 이 그림은 배치 구도가 이미 확실하게 잡혀 버려서, 다른 포즈로 덧씌워서 그리면 구도가 부자연스러워질 테니까」

「우우우……」

나리스가 풀죽은 채로 원래 자리에 돌아가서, 다시 포즈를 취한다.

하지만 명확한 논리와 더불어서,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다. 역시 프로는 대단해.

「우리들에게야 여자의 알몸 그림이 그저 에로하게만 보일 뿐이지만……역시 여러가지로 신경 쓸 게 많았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 버린다.

「많은 사람들이 보자마자 훌륭함을 느끼는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들 하지. 왜 훌륭한지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어도 말이야.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스스로 팬이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거야말로 화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 아닐까 생각해」

「그런가요? 뭐 확실히 그렇겠네요」

그러고보니 아까 버스터 경이 와 있었지.

「네이아에게 알현 명령?」

「명령이라기보다는, 여왕의 부탁이야.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싶다더군. 뭐 측근에게 이런 부드러운 표현은 평소에 거의 쓰지 않다 보니 명령이라는 형태가 되어 버렸지만, 굳이 가고 싶지 않다면 급한 일이 있어서 무리라고 내가 전해 두지」

소파에 앉은 버스터 경이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를 꼰다.

네 건틀렛은 아까 이후로 계속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고 있다. 나만 나와서 다른 아가씨들이 기다리는 다른 응접실로 옮겨온 것이다.

「어떻게 할래, 네이아.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으면……」

「예……뭐, 성에서 너무 호들갑스럽게 환영하지만 않는다면야,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습니다」

「실은, 하루이틀 정도 여왕의 말상대를 해줬으면 해서 말이지」

버스터 경이 목덜미를 긁적인다.

「저는 지금, 베아트리스를 돌봐줘야 해서……이대로 내버려둔 채로 가기에는 왠지 불안하네요」

「잠까……내가 왜!? 여기서는 말이 통하는데!?」

「말이 통하는 건 다행이지만, 혼자서 다시 찾아올 수 있을 만큼 여기를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 그건……굳이 네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면……」

「테테스 씨와 나리스 씨는 지금 모델 중이라 안될 텐데요?」

「…………」

베아트리스가 입을 다문다.

그래도, 뭐.

「네이아, 느긋하게 이야기하고 와도 괜찮을 것 같은데. 베아트리스라면, 에마나 마이아가 어느 정도까지는 돌봐줄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돌봐준다,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되려 사고만 더 늘어날 것 같으니까.

하지만 네이아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했다.

「베아트리스는, 드래곤들과는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래도, 사람 하나 돌보는 것 정도로 여왕님의 부탁을 거절하게 하는 건 왠지 미안해서 말이야」

그렇지? 라고 묻듯이 마이아들을 바라본다.

둘 다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네이아는 그런 내 태도가 왠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

「……저를 그렇게까지 왕성으로 보내버리고 싶으세요?」

「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옆에서 우리들의 대화를 듣던 버스터 경이, 하아 한숨을 내쉰다.

「정말이지, 그 완고한 용사님을 어떻게 이렇게까지 길들였나 신기하구만. 항상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였던 그 용사님이, 지금은 이렇게……응석을 부리고 있으니 말이야」

「뭐, 그, 그거야……그렇긴 합니다, 만」

「참 신기해. ……그렇달까 스마이슨, 너 진짜 정체가 뭐냐? 그 전신도 그렇지만 드래곤도 길들인 데다가 이번에는 용사까지……상대가 여자면 나이가 어떻든 종족이 어떻든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네 걸로 떨어뜨리잖아. 전에 테테스가 이상한 오해를 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이런 모습을 보면 그 오해가 전혀 틀리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네이아야 뭐……저도 진심으로 설득, 했으니까요」

시선을 살짝 피하면서, 일단 네이아에 대해서는 나 스스로도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하니까 확실하게 주장해 둔다.

「……하아」

버스터 경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네게 물들어 버린 네이아를 여왕에게 보여줘도 괜찮을지 고민되지만……일단 명령은, 명령이니까」

버스터 경이 그렇게 말하면서 일어선다.

「그럼 갈까, 용사님. 정말이지, 여왕에게 이상한 말을 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이상한 말이라뇨?」

「저래뵈도 아직은 사춘기 여자니까.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여자에게 자극이 강한 이야기는 피해달라는 거야. 특히 스마이슨과 관련된 건 말이지」

「그런 애매한 충고는 저 역시 애매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일단은 알겠어요. 그리고, 저는 더 이상 용사가 아닙니다」

네이아의 말을, 표표한 목소리가 잇는다.

「지금은 암컷 노예라고 한다. 만약 대명사로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부르도록」

「음!? 지금 누가 말한 거지?」

「아 그렇군, 버스터 님과는 아직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나. 나는 네이아의 애검인 섬광검. 원래는 그냥 조용히 있으려 했지만, 네이아가 그대와는 꽤나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온 것을 알다보니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버렸다」

「……이, 이게 그 말하는 검인가. 일단, 검성여단의 보고를 통해서 알고는 있었지만……부끄럽군,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

「섬광검, 계속 조용히 있다가 어째서 지금……」

「네이아가 성에 눈을 뜨고 나서……서투르게 말을 꺼냈다가는, 헝겊으로 꽁꽁 휘감기거나 헛간에 처박히거나 등등 변변찮은 취급을 받았으니까. 허나 그가 얽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끔씩은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을 꺼내도 괜찮을 것 같더군」

「……자네도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나도 꽤나 오랫만에 들은 섬광검의 목소리가, 두 명과 함께 멀어져 간다.

저녀석, 이제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뭐 검성여단 앞에서도 자신을 드러냈으니까, 보고를 받았을 터인 버스터 경에게 숨겨봐야 아무 소용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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