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그녀는 고개를 더 들어 내손에서 벗어나곤 키스를 하려는듯 빠르게 다가온다.
"아...안돼~~~"
두 손을 허공에 뻗어둔 채로 난 눈을 떳다.
'꿈이다'
'아...나원 참! 허허~...별...희한한 꿈을 다 꾸고...아이 진짜!'
몽정이라 할 만한 이러한 꿈은 사실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만큼 너무도 오래된 일이다.
고추에 털이 삐죽삐죽 나올때 쯤이니까 지금으로 부터 얼마나 됐을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더구나 숨까지 헐떡이고 있고, 온몸이 다 땀 범벅이다.
내가 누워있던 쇼파 위 방석까지도 땀으로 젖었는지 몸을 움직이기도 쉽지 않다.
잠시나마 몽정에 대한 추억을 더듬 다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서는,한 걸음에 방문을 열고 그녀가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휴우~~~"
그녀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긴장이 풀려서 인지 멍하니 서서 침대위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옷을 입고 잠들었으니 꽤나 더웠던 모양이다.
덮어준 이불은 모두 침대 밖으로 떨어져 있고, 그 짧은 원피스 조차도 잔뜩 구겨진채 허리 위로 말려 올라가 하반신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탄력이 좋아 보이긴 한데 광택은 나지 않는 흰색계열의 밴드 스타킹이, 그녀의 곧고 긴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잠결에 모피코트는 스스로 벗었는지 침대 한켠에 어지럽게 놓여있고, 한쪽 다리를 접어 엉덩이를 드러낸채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이 다소 섹시해 보인다.
걸그룹들이 입어서 알게된 사각형의 흰색 팬티가 오히려 눈에 들어왔다.
아내에게도 저런 팬티가 있었던가? 하고는 잠깐 기억을 해 보려는데 아무래도 무리이다.
나는 장에서 여름 이불 하나를 꺼내 그녀를 덥어주는데, 나이답지 않게 자신의 왼손 엄지 손가락을 입에 문 채로 잠들어 있다.
예전에 은지가 어려서 저런 습관이 있던터라 고쳐 주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밝아지려면 아직도 한시간 정도는 있어야 할 듯 싶어, 샤워를 하곤 옷을 갈아 입었다.
언제나 처럼 컴터도 휴대폰도 조용하다.
'연락좀 하지...이거야 원 답답해서 살 수가 있나!'
'그나저나 일어나면 뭐라고 하지? 식사를 준비해야 되나 어쩌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쇼파에 기대 있다가 그만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덜거덕 거리는 소리에 놀라 깨어난건 막 해가 떠오를때 쯤이었을까.
'아이고 이런! 깜빡 졸았네...'
"일어 나셨어요? 부장님?"
"아니...지금 뭐...뭐하세요?"
그녀는 주방에서 이것 저것을 꺼내놓고는 수선을 떨고 있다.
사실 혼자 살긴 하지만, 꼭 아침밥을 먹는 습관 덕분에 간간히 장을 보는 편이다보니, 남은 식자재며 반찬이 있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니었다.
"사모님...그냥 놔두세요...제가 할께요!"
급하게 일어나며 말하곤 주방으로 가려니까 그녀가 두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오지 말라는 듯 막는 시늉을 해 보인다.
"제가 또 폐를 끼치게 됐네요...그러니까 제가 준비할께요...부장님은 그냥 쉬고 계세요"
"아니 제 살림을 어떻게 아신다고? 하더라도 제가..."
"아니라니까요...정리를 잘 해 두셔서 다 알겠는데요 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녀의 옷차림이 조금 전과 전혀 딴판이다.
'저건...'
"아...그리고 죄송해요. 제 옷이 좀 불편해서 부장님 옷을 좀 꺼내 입었네요...주무시고 계셔서...괜찮죠?"
"..."
사실 내옷이라고는 하는데 처음보는 느낌이다.
어디서 꺼냈는지 긴팔 라운드티를 입고 입는데, 원래 자기꺼인양 잘 어울린다.
목이 커서인지 쇄골이 다 드러나고 브래지어 끈이 번갈아 가며 보이는 것이,오히려 귀여워 보인다.
더구나 마트에서 쇼핑하며 가져온 노란색 노끈을 허리에 대충 묶었는데, 진녹색의 티셔츠와 대비되며 그럴듯한 원피스를 입은 모습인 것이다.
밑단이 조금 딸려올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속옷이 보일 정도는 아니다.
나는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이 쇼파에 가서 앉았다.
'하여간 이쁜것들은 뭘 해도 이쁘구나...'
이 집은 은지가 유학을 떠나자마자 전세로 구한 상가주택이다.
마흔다섯이 되어서야 대출금을 잔뜩 끼고 겨우 25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샀는데, 유학을 간다고 하니 혼자 보낼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아내와 함께 보내게 된건데,
학비며 체류비며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다.
집을 사서 이사하던날 뛸듯이 기뻐했던 가족들을 생각하니 팔 수는 없었고, 더구나 은지가 자기방이 너무 예쁘다며 절대 팔면 안된다는 말에...
전세를 주고 나와 다시 전세를 얻은 것이다.
그나마 전세금이 비싼터라 비싸게 전세를 주고, 이 곳 한남동으로 와서 방이 두개인 오래된 상가주택 하나를 전세로 얻은 것이다.
그 차액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부장님! 식사하세요~"
이곳에 누가 온것도 처음이거니와 더구나 남의 여자가 와서 아침밥을 지어 준다는 것이 가능하긴 한 일일까?
하여간 그게 지금은 현실이 됐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회사에서 누가 알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부장님 식사 스타일이 저랑 비슷하신가봐요. 어떠세요?"
"아...네...맛있네요"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었다.
된장찌게에 순두부찌게. 거기다 지난주엔가 사다 놓고는 귀찮아서 못 구워먹고 있던 생선까지, 더구나 내 입맛에 맞았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금방 차리셨어요? 맛도 좋고...하하"
"후후...제가 살림을 쫌 하거든요!"
신혼 부부의 대화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표정이며 말투가 너무 자연스럽고 애교를 부린다는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근데 사모님!"
"네?"
"제가 편하신가요?"
"부장님요? 어제도 말씀 드렸잖아요. 큰오빠 같기도 하고, 아빠 같기도 하다고..."
"아! 그런 얘기도 하셨죠 참! "
사실 어제 이런 얘기를 했는지는 나에겐 전혀 기억에 없었다.
"어제 부장님이 얼마나 부끄러워 하시지는...큭큭"
"제가요?"
"네...제가 부부관계나 여자관계에 대해 얘기하면 어쩔 줄을 몰라 하시던데요?"
"그거야 뭐...아무래도..."
"또 빨개 지셨네...큭큭큭...호호"
이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는것 자체가 처음이니 당연히 아침식사를 한 건 더더욱 처음일 수밖에...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낫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커피도 제가 탈게요!"
"저기...믹스밖에 없는데..."
"걱정마세요.저도 다방커피 스타일이 거든요...호호"
식사를 마치고 나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쇼파로 자리를 옮겼다.
허리를 꽂꽂히 세우고 다리를 모아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다시 원래의 문이사 아내로 돌아간 듯 한데,
다소곳이 모은 두 무릎과 티 하나 없이 반들거리는 다리가 눈을 사로잡는다.
'애 둘을 낳긴 낳은건가? 우리 마누라는 하나 낳고도 확 달라지더구만...'
두 손으로 머그잔을 움켜쥐곤 호 하는 소리를 내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도 참 여성스럽고 귀엽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때.
"부장님?"
"네...말씀하세요"
"남편이 잠자리를 피하는건 뭔가 문제가 있는 거겠죠?"
"..."
"그냥 편하게 남자 입장에서 말씀해 주세요!"
"아...뭐...글쎄요...부부간 이라는게 아무래도 워낙 알 수 없는 거라서..."
"그래도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언젠가 부터 자꾸 피하는건 나보다는 남편쪽에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요?"
"이유가 없다는 건 사모님 생각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이사 입장에선 다르게 볼 수도 있을거 같은데..."
"저한테요?"
다시 왼쪽 엄지 손톱을 입으로 가져가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를 생각해 내려 애쓰는 모습이다.
"없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저와 관련된 문제는 없는거 같은데요?"
"혹시 언제부터 그렇다고 느끼셨나요?"
"아마 애들 외국 보내고 한 두세달 지나서 쯤인가?? 아마 그럴거예요!"
"아이들 보내시고 나서 뭐 달라지신건 없었고요?"
"당연히 있죠! 어린 아이들 둘이 벅적거리다가 단 둘이 있게 됐으니까...저는 완전 좋았죠!"
"좋았다는것이...?"
"신혼으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죠.애들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거 빼곤 뭐...신혼 때처럼 남편 들어오기만 기다리고...정말 오랫만에 자유로운 기분이었어요!
남편과 단둘이 영화도 보고, 술도 먹고, 여행도 가고..."
"풋..."
"왜 웃으세요?"
"혹시 문이사가 집에 들어가기 겁나서거나 밤이 무서워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녀의 심각한 모습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며, 당연히 그랬을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얘기를 이어갔다.
"저도 처음엔 그런게 아닌가 생각했었어요.제가 너무 들이대나 싶었거든요. 근데 그건 아니예요"
"오히려 한동안은 남편이 더 난리였거든요. 제가 피곤할 정도로..."
"음..."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녀는 이미 쇼파에 등을 기댄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넙적다리까지 다 들어나게 앉아서는 두다리 사이에 깊숙히 두 손을 모아 속옷이 보이지 않을만큼 누르고 앉아 있는데,
커피잔을 들때마다 그 곳을 가리고 있는 내 셔츠 밑단이 잠깐씩 들어 올려져서는 보일듯 말듯한 모습에 도통 얘기에 집중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아니야...아무리...아냐 아냐!"
뭔가 생각이 난듯 손까지 들어올리며 뭐라 하는듯 싶더니 고개를 좌우로 마구 흔들기 까지 한다.
"왜요? 혹시 다른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녜요...아닐 거예요..."
"무슨일인데요? 네?"
"아뇨...음...그때쯤에 제 친구 하나가 외국에서 들어왔거든요. 일때문에 들어온건데...가족이 다 함께 이민간 친구라서...며칠 머물거면 우리집에서 머물라고..."
"여자친구분요?"
"네..."
"그래서요?"
"일주일을 함께 지냈어요! 보통은 남편과 같이 출근하고...또 퇴근도...아닐거예요! 저랑 젤로 친한 친구거든요!"
그녀는 애써 부정을 하지만 또다시 자신의 손톱을 물고 있는걸로 봐서는 의심의 구석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아닐거예요! 더구나 친한 친구분인데 아무렴..."
"그러겠죠? 이이랑 만날때부터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친군데...설마...아니 설마는 취소요"
이야기의 심각성보다 문이사의 아내...섹시한듯 하면서도 귀엽고 순수한 면이 있다.
별안간 어제 꿈의 한 장면이 스치듯 지나가는 통에 얼굴이 잠깐 화끈거린다.
"너무 집착하면 모든게 다 그렇게 보이는 법예요. 스트레스나 일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니까..."
"근데 벌써 반년이 넘었어요. 부장님! 요즘은 남편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힘내세요! 아직 살 날들도 많은걸요 뭘...나 같은 사람도 있다 생각하고, 좋은 일만 생각하세요!"
"하여간 뭐...네~~ 역시 부장님하고 얘기하길 잘 한거 같아요...다른 사람들은 나쁜쪽으로만 얘기하던데...훗"
"요즘말로 쿨 하시네요. 사모님은...하하..."
"풉!!!"
"어머...괜찮으세요?"
"아...예...죄송합니다~~"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려다가, 그만 앞으로 재채기를 하듯 뱉어버린 것이다.
이야기가 만족스러웠는지 기댔던 허리를 다시 세우곤 셔츠를 누르던 두 손을 들어 자신의 무릎을 집는 순간,
용수철 처럼 팽팽했던 셔츠가 순식간에 올라가 버린 탓에 감춰줘 있던 그녀의 음부가 적나라 하게 노출이 됐던 것이다.
더구나 그 속엔 속옷도, 털도 없는게 아닌가...
커피를 입에 가져가면서 자연스레 눈높이가 맞춰 지는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삼켜야 할 커피를 뱉어내게 된 것이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벌떡 일어서서 휴지를 들고 와서 건네주고는, 여기저기 떨어진 커피를 열심히 닦아낸다.
눈치 못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는 일어서려는데, 등을 보인채로 바닥을 닦는가 싶더니,
"못 본걸로 해주세요! 알았죠?"
"......"
얼굴은 안보여 모르겠지만, 귀가 빨개져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얘기하는데, 나야말로 할 말이 없었다.
"근데 사모님이랑 따님 옷은 하나도 없나요?"
"네? 아니 저쪽 방에..."
"아~ 그래서 없었구나!...부장님 저 속옷 하나만 빌릴께요...다음에 꼭 갖다 드릴께요!"
"아~네......."
점심까지 해 먹고는 바라다 준다는 것도 거절한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그녀는 돌아갔다.
그녀가 가고나자 횅하니 텅빈 느낌이 났지만, 한동안 그녀의 체취는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특히 그녀가 입고 있던 셔츠는 빨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하는 나였다.
그 셔츠에서 나는 그녀의 체취를 차마 없앨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날이후 소영에게 연락을 하려고 몇 번을 번호를 누르려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했다.
왠지 받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통화 버튼 만큼은 차마 누르지 못한 것이다.
'아마 나 같은건 벌써 잊었겠지 뭐...'
[사랑하는 내딸!^^]
아빠!
연락 못 해 미안...
내가 어떻게 해보려구 했는데 ㅠㅠ
미안해 아빠! 정말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어...
근데 아빠 힘내야돼! 꼭 꼭 아랐찌!
내가 얘기하기 전까진 돈도 보내지 마!
보내면 안돼! 절대로!
다시 연락할께 아빠!
건강 잘 챙기고...사랑해!!!
크리스마스 이브에서야 눈을 뜨자마자 온 은지의 톡 내용이다.
무슨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은지뿐 아니라 애엄마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출근을 해야하는데, 휴가를 쓰겠노라고 전화를 해 놓고는 좁은 집안을 셀 수 없을 만큼 왔다갔다만 하고 있었다.
현지 지인들의 연락처를 알아두지 않은걸 후회하며 아침도 거른체 오전 내내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은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건 정오가 막 넘어서였다.
"은지야!"
"아빠~"
은지는 울고 있었다.
"무슨일이야? 어? 왜그래?"
"아빠~흑 흑"
"은지야 울지 말고! 어? 무슨일인지 얘기해봐...무슨일 있었니?"
"흑...흑..."
"은지야 전화 끊어! 아빠가 할께...꼭 받어? 알았지?"
"흑...네...아빠..."
난 전화기를 떨어뜨릴뻔 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을 만큼, 난 앞이 캄캄한 것이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겨우 은지를 진정시키고 다시 통화하기로 한채로 전화를 끊은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난 한참 동안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가 날 줄 았았는데, 화도 나지 않는다. 단지 머리속에서 "삐"하는 낮은 전파음 같은것이 멈추지 않고 들리기만 할 뿐.
엉켜버린 뇌세포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까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가슴은 먹먹하기만 할 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사실인지 아닌지? 그럼 내가 뭘 해야 하는건지?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그냥 백지 상태로 눈만 깜빡 거리고 있을 뿐이다.
'아니지! 우린 은지!...우리 은지 어떡하지?'
전화로 감정의 표현을 보일 바엔 아예 톡이 났겠다 싶어 전화기의 톡을 실행한다.
[바보아빠] 은지야!
[사랑하는 내딸!^^] 어 아빠!
[바보아빠] 은지야! 그럼 넌 어떻게 하려구?
[사랑하는 내딸!^^] 올겨울은 친구네 집에서 있을거예요! 셜리라고 하는 친군데 좋은 아이예요! 부모님들도 좋으시고...
[바보아빠] 그래? 다행이다. 그럼 내년엔?
[사랑하는 내딸!^^] 기숙사 신청해 놨어요. 교무선생님 말로는 될 수 있을 거래요
[바보아빠] 한국에 안들어올래?
[사랑하는 내딸!^^] 아빠! 칼을 빼면 무라도 베라며...ㅎㅎ
[바보아빠] 그거야...
[사랑하는 내딸!^^] 걱정마 아빠...나 잘해! 걱정 안해도 돼!
[바보아빠] 우리딸 얼마나 힘들었을까ㅠㅠ
톡을 하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가뜩이나 노안이라 글자를 크게하고 입력하는데, 눈물 때문에 어른거래 화면이 잘 안보인다.
[사랑하는 내딸!^^] 걱정마요 아빠! 난 괜찮아...아빠야 말로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힘 내야돼!
[바보아빠] 어...^^ 그래야지...
[사랑하는 내딸!^^] 내년엔 장학금도 탈 수 있을거 같고, 알바도 해 보려구...
[바보아빠] 은지야! 알바는 하지마! 아빠가 돈은 보내줄께...
[사랑하는 내딸!^^] 아냐 아빠! 그냥 알바 아니고 자원봉사 같은 알바! 대학 갈때 가산점이 생긴다고 해서...ㅎㅎ
[바보아빠] 아~ 그런거야? 할 수 있겠어?
[사랑하는 내딸!^^] 그럼...그거보다 나 만날때까지 아빠나 몸 잘 챙기고 건강하게 지내!
[바보아빠] 은지야 아빠가 갈까?
[사랑하는 내딸!^^] 아니래두.그럴 필요 없어 아빠. 진짜야!
태연한척 하는 은지를 생각하니 폰을 내려놓고 한 참을 더 울었다.
아예 힘들다고 하면 오히려 뭔가 할 수 있는게 있을거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 달려간들...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우리 은지가 이제 다 컷구나...그래...힘 내야지~'
홀로 살아온 지난 2년이 주마등 처럼 스쳐간다.
원래 목표도 은지이긴 했지만, 나보다도 더 은지를 사랑하고 아꼈던 아내의 행동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쉬고야 비로서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만큼 을씨년 스럽게만 느껴진다.
톡을 하며 빠뜨린게 생각나 은지에게 한 문장을 더 남겼다.
[바보아빠] Merry X-mas!^^
[사랑하는 내딸!^^] Merry X-mas! I do love you! Daddy♥
뱃속에서 비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음 만이 간간히 내 지방을 흔들며 메아리처럼 들리고 서야 내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슴을 알게된다.
'그래! 은지를 위해서라도 힘 내야돼! 암!...'
다시금 가슴이 미어진다.
'후~우...'
마음을 진정시키려 하는데도 그 호흡마저 떨리며 또다시 눈물이 흘러내린다.
'하~~아! 참나...이러면 안되는데...'
"흠...흠! 하나 둘 셋! 하나 둘...흠"
잠긴목을 풀고 아무래도 집에 있는건 도움이 안된다 싶어, 대충 옷을 걸치고 나가려는데 다시 톡이 울린다.
은지이다 싶어 열어보는데...뜻밖에도...
[한소영] 잘 지내시죠?
[오라버니] 네...덕분에...
[한소영] 연락이 너무 없으셔서...지금 괜찮으세요?
[오라버니] 괜찮아요...바쁜척 하느라...
[한소영] 근데 왜 존대말 하세요? ㅠㅠ
[오라버니] ㅠㅠ
[한소영] 오라버니! 저 서울예요! 지금 막 올라왔어요
[오라버니] 그래?
[한소영] 클스마스 혼자 보내시는거 아닌가 해서요 ㅎㅎ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모양이다. 답답한 마음이었슴에도 소영의 톡만으로도 위안이 됨을 느끼는 것은...
[오라버니] 그럼 서울역?
[한소영] 아뇨!
[오라버니] 그럼???
[한소영] 이번에 용산역에 내려요
[오라버니] 엥? 여기로 오려구 했어??
어쩌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기분으로 혼자 있는 것 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소영] 네...근데 잘못 탔나?
[오라버니] 아니...갈아 타야 하는데 일단...내려요.내가 갈께
[한소영] 아...네...
사실 얼굴이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몽타주를 그리라고 해도 그릴만큼 각인돼다 시피 했던 그녀의 얼굴이 이상하리 만큼 생각이 안난다.
'이거 어떻게 알아보지? 보면 알라나? 이거야 원...'
용산역 바로 앞 광장 차도에 나와 있으라고 얘기는 했는데, 도저히 알아볼 자신이 없다.
차가 용산역 광장길로 접어들 무렵 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다! 여기까지 오는데도 생각보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데다가, 대형 쇼핑센터까지 있는 터라 사람이 너무 많다.
"저기 소영아! 소영이가 내 차를 찾는게 더 빠르겠어!"
통화를 하는 순간 길가에서 전화기를 들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택시 정차장 앞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통화를 하는 한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스키니 청바지에 다운점퍼를 입고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있긴 한데 느낌이 좀 남다르달까? 난 차를 그녀 앞에 무작정 세우곤 실내등을 켜고 조수석 유리창을 내려보았다.
"오라버니!"
"아~ 맞네...하하 어서 타요!"
"네~~"
하루종일 우울했던 마음이 밝은 모습의 소영이의 등장으로 인해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슴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먼저 알아본 것이 소영이긴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잊을 수 없는 얼굴임엔 틀림 없었다.
이래서 사람이란 참 알 수 없는 동물이다.
오랫만에 보면 처음과 같은 낯설음이 있을거라는 생각때문에 전화조차 못하다가도, 한쪽이 이렇듯 반갑게 맞이 해 주게되면 순식간에 친근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또한 사람인 것이다.
"잘 지냈...어?"
"아뇨..."
"왜? 무슨일 있었어?"
"아뇨!"
"그럼...?"
"오라버니가 연락을 안주시니깐요...그냥 전 원나잇 상대였나 했죠..."
존대를 안하긴 하지만 왠지 대화가 어색하다보니 자꾸만 말끝이 흐려지게 되는데, 소영은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양 농까지 섞어가며 얘기를 한다.
"아니...무슨 그런 말을..."
"호호 농담예요. 근데 저 안 보고 싶으셨어요?"
"안보고 싶긴...꿈에도 나오더구만..."
"헐...그럼 몽정을 하신 거예요? 큭큭큭"
"에~~? 참내 이사람...하하"
"맞죠? 몽정! 그래도 뭐 다행이네요. 몽정 상대가 나라서...좋으셨어요...큭큭큭"
"하하하"
왠만하면 밖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 날 만큼은 예약없이 밥을 먹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알고있던 음식점들 몇 군데를 방문 했는데도 사람이 너무 많은 통에, 결국은 애꿎은 시간만 길바닥에 뿌리곤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집으로 향하게 된다.
"아는데가 별로 없어서 미안하네..."
"아녜요! 저도 하도 사먹어서 밖에서 먹는거 별로 였거든요..."
"듣기 좋은 말은...하하"
"제가 맛있는거 해 드릴께요~"
조강지처는 행방이 묘하고, 사랑하는 딸내미는 저 먼 이국땅에 혼자 버려둔채 있는데...
더구나 이런 와중에 외간여자를 집에 들이는 나는,여복이 있다고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대책이 있는 넘인지 없는 넘인지...
나 스스로도 이성적인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건 지금 나에겐 누군가가 필요하단 거였고,
그것은 단지 섹스 상대가 아닌 내 마음을 토로할, 그런 대상이 필요한 순간임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한 느낌과 동시에, 어쩌면 타국에서의 아내도 이러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어머..."
"잠깐만 ! 잠깐이면 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출입문이 닫힘과 동시에 신발을 벗으려던 소영의 몸을 돌려 꼭 끌어 안았다.
소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내가 팔을 풀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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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천류향입니다.
직위가 비슷하다 보니 조금 헤깔리시는 분들이 계신것 같아 잠시 설명드리면,
서이사의 아내가 유소영입니다.
문이사의 아내 이름은 아직 나오지 않았구요...ㅎㅎ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어머..."
"잠깐만 ! 잠깐이면 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출입문이 닫힘과 동시에 신발을 벗으려던 소영의 몸을 돌려 꼭 끌어 안았다.
소영은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내가 팔을 풀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