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부]
"오빠 나 씻어요?"
"어! 그래~"
쇼파에 걸터 앉아 담배 하나를 피워 물곤 전화번호를 검색한다.
다소 망설여 지는 내 마음과는 달리,
동일 성씨의 사람이 두 명 뿐이다 보니,
성만 입력했을 뿐인데도, 바로 목록에 나타나 버린다.
"후~~우~~"
연기와 함게 긴 한숨이 동반된다.
전화기를 든 채로 잠시 방안을 서성이며,
버튼을 누르기전 다시한번 생각을 다시 정리해 본다.
"후~~우~~ 그래! 하자!"
주저했던 시간에 비하면, 너무도 짧고 간결한 통화였다.
그래서인지 막상 통화를 마치고 나니 오히려 후련한 기분마저 들게 된다.
상대가 나를 대하는 모습은 예전과 전혀 다를게 없었건만,
나 혼자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 오랜시간 동안 이런것으로 인해 망설이고 피해왔던 내 자신이,
오히려 부끄러워지기 까지 한 것이었다.
"그렇지~ 사는게 다 그런거지 뭐...훗"
전화기를 든 채로 혼자 중얼거리듯 혼잣말을 하는데,
욕실의 불빛이 비추는가 싶더니 이내 문이 열렸고,
난 자연스레 고개를 돌려 바라보게 된다.
알몸인 채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는 리사의 모습이,
그 짧은 시간에도 한 눈에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오빠 씻어요!"
"어?...어!"
찰라의 보여진 모습이 머리속에 각인되며 순간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참! 리사?"
"네?"
"먼저 자~ 알았지?"
난 모델 방안을 둘러보듯 시선을 돌린채로, 침대를 빙 돌아 욕실로 향하고 있었다.
"먼저?... 그냥 자요?"
"어...하하...그냥 자라구!"
대화는 통하지만, 유창하게 구사하는 정도는 아니다 보니,
얘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웃음이 나오게 된다.
대충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닦는 둥 마는 둥 하고 나서려는데,
문이 열리더니, 리사가 전화기를 내민다.
웨이브진 긴 머리를 일부러 앞으로 넘겼는지,
양쪽으로 늘어진채 가슴 언저리에 머물러 있고,
하얗게 긴 팔을 뻗어 나에게 건네주고 있다.
"어! 땡큐..."
리사는 배시시 웃고는 깡총 뛰듯 다시 침대로 돌아간다.
"여보세요?"
" "
"그래? 가능하긴 하고?"
" "
"훗! 그래 고맙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
" "
"시간은?"
" "
"아~~ 그래? 그럼 그 때 연락하마!"
" "
이전의 말투 그대로 존칭을 써가며 웃고 있는 상대임에도.
여전히 너무 퉁명스럽게 대하는 내 자신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진다.
'거 참!...'
어쨌든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던 옛 말도 ,옛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머물게 된다.
불과 몇 분 사이였는데, 리사는 잠이 들어 있었다.
난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화장을 모두 지웠슴에도,아직 여린티가 나듯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된다.
'훗! 뉘집 딸인지?...이렇게 예쁜데...쯔쯔...'
은지가 타국에서 리사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과연 내 마음이 어떠했을까?...
순간 고개를 흔들게 된다.
잠버릇이 유난히 심했던 은지의 잠자리를 봐주듯,
리사의 팔을 이불안으로 넣어주고,
내가 덮을 이불을 펴다 말고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리사의 얼굴을 다시금 바라보게 된다!
'잘 한 건가? 잘 한 거겠지?...그래! 후후'
일단은 복잡할 거 같았던 일도 하나는 해결이 된데다,
나름 좋은 일도 하나 했으려니 하는 마음에,
오랫만에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게 된다.
"으음...하아...하아...하.하.하.오..오..."
몸에 묵직한 것이 올려진 것 같은데다, 흔들어 깨우듯 몸을 흔드는 통에,
간만에 깊이 잠들었슴에도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아니...리...사!...뭐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겨우 리사에게 말을 건네며 고개를 들어보니,
나 보다 먼저 깨어나 있던 녀석은,
어느새 벌써 그녀 몸 속 깊이,
숨어 든 후였다.
"오빠 깼어?"
"그래! 근데 자다 말고...뭐해?"
"오빠하고 이거 해야돼요! 안하면 리사 혼나!"
'아뿔사'
미리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피곤할 듯 싶어 먼저 재우려고 했던것이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만 것이었다.
"아이고...이거...참..."
"왜요? 콘돔 않해서? 콘돔 해야 되는데... 내가 안 했어요.
안하고 하면 안돼?"
처음엔 뭔소릴 하는지 잘 못 알아 들었지만,
이해하고 나서도 그닥 할 말이 없었다.
녀석은 새로운 세계의 여인임을 느낌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힘을 빼려 할 수록, 더욱더 단단해 지며 좀처럼 나올 기색이 없는 것이다.
난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머리색 보다 조금 진한 그녀의 음모가 나의 까만 털과 엉키듯 섞여 있을 뿐,
녀석은 그녀의 깊은 곳에 숨어, 귀두를 껄떡이며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가슴에 손을 대고 내려다 보는 리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는,
나즈막히 이야기 했다.
"리사? 난 리사랑 이거 안 할려고 했거든?"
"안 할려고? 나 싫어해요? 아니면 와이프 한테 혼나?"
"아니! 그게 아니고..."
"근데 왜?"
막상 말은 그렇게 했는데, 이어서 할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어...그게 말야..."
더구나 이미 녀석을 삼켜버린 상태에서,
뭔 얘기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것이었다.
말이 떨어지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어차피 이리 된거 그녀의 솔직한 생각이라도 알고 싶어졌다.
"리사!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이런일 말고, 회사! 컴퍼니! 알지?"
"회사 알아요!"
"그래 회사! 내가 그거 알아봐 주고 싶어서? 무슨말인지 알어?"
"네...그런데...그런 얘기 한 오빠 아주 많아요!"
표정의 변화 조차도 없이, 두 손을 벌리곤 커다란 원을 그리듯 대답하는 그녀다.
"뭐라구?"
"리사 한테...그런 얘기 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
"룸에서도 그렇고, 나랑 이거 하면서도 그런 얘기 많이 해요!"
"이런...에휴~~"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얘기였다.
리사는 단순히 잘 빠지고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누가 보더라도 어디 하나 빠질게 없어 보이는 친구이니,
그런 말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어디까지 책임지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순간적인 연민에서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아니면 진짜로 좋아서 그랬거나,
물론 더 나쁜 의도로 얘기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해준 사람이 있었어?"
"아니! 그래서 이젠 안 믿어요! 나도 이제는 다 알게 됐어요.
언니들도 믿지 말라고 했어요. 정말로 킁일? 큰...일 날 수도 있다고..."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오빠는 좋은 사람 같아요! 내 말 맞아요?"
마음이 오히려 찹찹해 짐을 느끼게 된다.
문득 내가 하려는 일이, 일방적인 동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만든다.
진실을 위장한 거짓이 판치는 세상 아닌가?
나도 마찬 가지지만,
세상사람 누구도 말 한마디에서 진실을 가늠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옳고 바른 얘기라 하더라도,
그것이 나와 대립하는 이에게서 나왔다면,
쉽게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내가 살아오며 보아왔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더구나 갈색눈의 이방인 리사에게는 이 곳은 전혀 다른 세상인 것이다.
난 씁쓸한 미소를 짓게된다.
"오빠? 이제 해도 돼요?"
"훗! 하고 싶으면 해! 하기 싫으면 정말로 안해도 되고..."
"정말? 근데요.오늘은 리사가 하고 싶어요!"
"그래 그럼..."
이젠 그녀의 행위 조차도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것으로만 보일뿐,
나 역시도 그녀의 진심이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너무 성급했나?...하아~~참...'
잠결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꽂꽂히 세웠던 녀석조차도,
심리적으로 잔뜩 다운된 상태에서 만큼은 힘을 쓰지 못하는지 스스로 뒷걸음질 치듯,
그녀의 몸에서 자연스레 빠져 나와 버린다.
"오빠꺼 왜 이래요? 하기 싫어요?"
"싫은건 아니고...안해도 돼! 이제 내려와라~"
"내가 입으로 해 줄까요?"
불안한 표정을 하고는 눈치를 살피는 리사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떠한 것도 느낄 수 없었고, 할 수도 없었다.
"리사? 괜찮아~ 엄청 잘했다고 할테니까...걱정 안해도 돼! 알았지?"
"그래도...이러면 안돼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잠시 두드려 주고는 내 옆에 눕게 했다.
"안되는데..."
"참나! 괜찮다니까?"
연한 갈색 눈동자를 불규칙하게 깜빡이며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그녀다.
어떤식으로던 함께 나간 손님과는 관계를 해야 된다는 교육이라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좋아 그럼...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할께! 그럼 됐지?"
"..."
그제서야 머리를 기대며 안겨온다.
가슴이 커서인지 폭 안기는 느낌은 덜 했지만, 그녀를 어깨에 뉘워 안고는,
자장가를 불러 주듯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하~~~~~아!"
입김을 불어내듯 입을 벌리곤 길게 숨을 뿜어낸다.
아까처럼 쉬 잠들진 못한체, 한참 동안을 뒤척이게 된다.
"사장님이? 알았어!"
출근시간이 아직 20여분이나 남았는데,
사장이 찾는다며 임실장이 전화를 한 것이다.
"어디가세요?"
"어! 잠깐 사장님 좀 뵙고 올께..."
사무실을 나서며 출근하는 김과장과 마주친 것이다.
"안녕하세요? 들어가 보세요!"
"어~ 그래!"
난 잠시 임실장의 표정을 살폈지만,
엻은 미소를 머금고 얘기하는 모습이,
평소와 다르지 않다.
"일찍 나오셨네요? 사장님!"
"훗! 됐고...앉아라~"
"어젠 집에 들어갔어?"
"어~~간만에 들어 갔더니, 좀 낯설던데..."
"며칠 이나 됐다고...큭큭...형수님은?"
"그 사람야 뭐...별 말 하겠어?"
"아니 근데, 어제는..."
임실장이 차를 들고 들어오는 바람에 잠시 말을 멈추게 된다.
"부장님은 커피 맞으시죠?"
"어? 어! 나야 뭐...항상..."
"어젠 두 분이 함께 드셨나봐요?"
잔을 내려놓으며 던지듯 한마디 하는 그녀다.
"어?..."
"그래~~ 어젠 박부장이랑 간만에 한 잔 했지 뭐..."
만났다고 해야 할지 말지를 잠시 생각 중이었는데,
사장이 끼어들듯 나서며 이야기를 해 버린 것이다.
"아...네...그럼 얘기들 나누세요~"
임실장이 나가자 마자, 고개를 조금 숙이곤 나즈막히 말을 잇는다.
"야! 이 사람아? 저 친구 눈치가 백단인데...이그..."
"그거야 나도 알긴 하지만..."
한동안 뜸하긴 했지만, 내가 사장과 술자리를 갖는 것까지 그녀한테 신경을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자 다소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건 그렇고, 다름이 아니라...오늘 인사 발령을 좀 할 까 하고..."
"오늘?"
"어! 정기발령은 아니고, 아무래도 시간 끌거 없을 거 같아서 말야"
"또 누가 들어와? 아님 진급자가 있어?"
"참내 눈치하곤...너 말야 마! 에휴~~"
"나?"
"후~~우"
사장실을 나와 곧바로 옥상으로 올라와선 담배 부터 꺼내 물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기뻐해야 할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 구석이 무거운것이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었다.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지가 올해로 13년째다.
직급이라는 것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거나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나보다 어린 윗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부터는,다소 욕심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기쁘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 한 구석이 편치 못한 것이었다.
'왜 이러냐? 거 참 기분 묘할세....'
공고가 붙은것은 정확히 오전 10시였다.
인트라넷을 통한 사내 공지와 함께 로비와 각층 게시판에 공고가 나 붙은 것이다.
"짝!짝!짝!"
"축하드려요 상무님!"
영업부 사무실은 때아닌 난리통이었다.
모두가 일어선 채로 축하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인근 부서 부서장과 부서원들까지 찾아와, 너도나도 축하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래...모두 고마워~~"
1시간 동안 꼬박, 그러니까 11시가 다 되어서야 비로서 사무실이 잠잠해 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상무님! 하하"
"그래! 고맙다 김과장!"
김과장은 다른 사람들의 인사가 끝날 때까지 박수를 치며 기다리고는,
모두가 돌아간 다음에서야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근데 서운한데요? 상무면 본사에 계셔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야 뭐...공장하고 연구소 현황부터 파악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내려가 있는게 순서긴 하겠지!"
"그럼 이쪽일은 아예 손 놓게 되시는 건가요?"
"뭐...그렇기야 하겠어? 자네 말대로 상문데...훗"
"그렇겠죠? 하여간 다시한번 축하드립니다!"
"그래~ 고맙다!"
11시엔 사장 주재로 임시 임원회의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인사발령과 관련된 임명장 수여와 함께 공식 발표가 있을 것이었다.
"와우~~ 추카추카! 오라버니 진짜 축하드려요~~"
"고마워~~"
"그래도 사장님이 모른척 하시진 않으시네요?"
임원회의가 끝나자 마자 난 소영이에게 전화를 걸어 이 소식을 전했다.
아마 아내가 있었다면 당연히 아내에게 제일 먼저 전화를 했을 터이지만...
소영이는 자신의 일인양 기뻐하며 흥분하고 있었다.
"잘~ 된거겠지?"
"그럼요~~ 잘되고 말고요...오라버닌 더 잘하실 거예요~~"
"그래도 소영이 목소리 듣고 나니깐 기분이 좀 낫긴 하다...하하"
"왜요? 오라버닌 별로예요?"
"아니 그건 아닌데...이상하게 좀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잘 모르겟어!"
"에이!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좋은날이잖아요~~ 내가 올라가서 축하해 줘야 하는데..."
"아닙니다요. 나는 당신 목소리 만으로도 충분히 좋으네요~~후후"
"하하하...오라버니가 존댓말 하니까 웃기다...하하"
"그리고 좋은 거 하나 더 있어요 오라버니!"
"어떤?"
"서울 보다 가깝잖아요...나랑! 큭큭!...우리 자주 볼 수 있겠다! 그쵸?"
"훗...대전이나 서울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아니예요~~ 완전 차이 나는데?"
"그래? 그럼 뭐...좋은거 맞네...하하"
"오라버니! 주말에 제가 예쁘게 하고 올라가서 축하 따따블로 해 드릴께요! 아셨죠?"
"훗...그래~~ 기대 되는걸? 하하하"
부서원들과의 점심식사에서도 화두는 역시 나의 진급이었다.
"이제 넌 우리 상무님한테 딱! 죽~었어...까불더니 아주 쌤통이다!"
"뭔 소리냐 또? 누구~?"
"누구긴요~? 문이사지...그냥 젤 먼저 확 밟아 버리세요! 나쁜..."
"스톱! 거기까지...그만 해라~~ 다른 사람도 있는데...이건 하여간..."
김과장은 수저도 내려 놓은채,
주먹으로 쥐어 박는 시늉까지 하며 싱글벙글이었다.
"속이 다 후련하네요...끝간데 없이 까불더니만...그냥 확! 헤헤 아이 시원해~~"
"밥이나 먹어라~"
"안 먹어도 배부를거 같아요~ 와우! 예~~"
"훗! 밥 알 튀어 나오겠다! 이젠...밥 좀 먹자...어?"
김과장 말마따나 임원회의에서의 문이사의 표정은 말그대로 똥밟은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들어가자 마자 쭈뼛거리듯 일어나서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는,
고개만 숙여 인사하는 꼴이라니...
내심 통쾌하단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서이사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 흔한 축하인사 한마디 없었고,
악수를 청했을 때도 마지못해 손만 내밀고는 고개만 까딱일 뿐이었다.
점심을 마치고는 잠깐 바람을 쏘이고 올라가겠노라 하고는,
건물 밖 벤치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다음주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상관없긴 한데,
문이사와 임실장의 관계를 파악 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아니 형? 생각해 줘서 고맙긴 한데...내가 지금 내려가면 이번일은 어떻게 하라고?"
"내가 알아보면 되지! 알아 볼 만한 사람도 있고 하니까...걱정말고..."
"정상 인사 때까지 미루면 안 돼? 뭐 그렇게 특별히 급할 것도 없잖아?"
"아냐! 예전부터 그렇게 하려고 맘먹고 있었고, 이미 결정 된거 그렇게 해라!"
"이제 꼬리가 잡힐듯 말듯 한데..."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해! 고생했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께!"
아침에 사장과 나눴던 얘기를 곱씹어 보고 있었다.
'이건~~~ 아닌데...아무리...'
그때 전화가 울린다.
"어! 나야! 어떻게 됐냐?"
" "
"그래? 그럼 어쩌나...풀 수 있겠어?"
" "
"내가 도와줄건 없고?"
" "
"음~ 괜히 미안하다! 엄한일에 신경쓰게 해서..."
" "
"그래~ 알았다! 고생해라 그럼!"
다소 일이 꼬인 모양이었다.
난 길게 한 숨을 쉬곤 벤치에서 막 일어나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였다.
"상무님? 축하 드려요~~"
"어? 사모님! 여긴 어떻게..."
뜻밖에도 서이사의 아내였다.
그녀는 남편과 점심식사를 하곤 들어가는 길에 우연히 나를 보았다고 한다.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부장...아니 상무님! 진작에 그렇게 되셨어야 했는데..."
무릎위로 오는 브라운의 트렌치 코트에 회색의 레깅스,
거기에 진갈색의 롱 부츠를 신은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은채 내 앞을 가로막듯 서 있었다.
"고맙습니다!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차 한 잔 하실래요?"
"저야 땡큐죠!"
우린 길만 건너면 바로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사모님은 오늘 원래 약속이 있으셨던 거예요?"
"아이~~ 그 놈의 사모님 소리 좀 그만 하세요!"
"네?"
"이젠 사모님도 아니잖아요. 부하 직원 와이프 한테 누가 사모님이라고 불러요?"
"아~~ 그런가? 워낙 익숙해 놔서..."
"그리고 둘이 있을때는 뭐라고 부르기로 했었죠? 잊으신건 아니시죠?"
아직도 전혀 실감이 나지는 않지만,
그녀를 대하는 느낌이 다른건 확실했다.
상사의 아내라는 것이 유독 걸려서 일상적인 대화조차도 많이 불편하다고 느꼈었는데,
오늘은 왠지 다른때와 다름을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당연히 알죠! 소영씨! 하하...좀 이상하긴 하네요~"
"뭐가요? 좋기만 하구만...그리고 이제 저도 마음이 편하네요.
어른한테 매번 사모님 사모님 소리 안 들어도 돼서...훗"
"어른? 하하!"
기지개를 펴듯 팔을 펴서 옆으로 벌리듯 하고는,
바로 턱을 괴며 바싹 다가온다.
"상무님!"
"네?"
"오늘 기념 파티 할까요? 조촐하게...어떠세요?"
"어! 오늘...부서에서 축하 회식 하기로 했는데..."
"그럼 늦으세요?"
테이블 중간쯤에 턱을 고인채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속삭이듯 얘기를 하는 그녀다.
"아니 그건...가봐야..."
"그냥 적당히 노시다 오시면 안돼요?"
"아니 뭐...글쎄..."
특별하게 뭘 생각하거나 한건 아닌데, 자꾸만 조금씩 다가오며 얘기를 하는 그녀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자꾸 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의자 뒤로 기대나 싶더니, 크게 웃기 시작하는 그녀다.
사람이 많진 않았지만 멀리까지 웃는 소리가 들렸는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보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 역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입을 가리곤 한 참을 더 깔깔 거리며 웃는다.
난 창피하기도 하고, 누가 볼 까 두려워 자연스레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이~하아~~어떻게... 죄송해요 상무님!...아이고...흠! 흠!
나중에 우리 그이도 나이들면 상무님 처럼 될까요?"
웃음이 완전히 멈추지 않았는지, 이야기 중에도 웃음 때문에 말을 끊어가며 이야기를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인지?"
"웃으면 안되는 줄 아는데...상무님 당황하시는 모습 보면 자꾸 웃음이 나요!
그래서 상무님이 좋은가봐요~"
난 이마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주위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다행히도 우리 주변 테이블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무슨..."
그녀는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고, 난 더욱더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된다.
"상무님? 우리 신입한테 별도로 한 턱 내셔야 겠는데요?"
"어? 무슨 말야?"
회사 근처 먹자 골목에 있는 갈비집 2층을 통째로 예약을 한 모양이었다.
함께 일했던 타 부서장과 일부 직원들의 참여로, 사람이 늘어나면서,
부서 회식이 아니라 회사 전체 회식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지난번 저 친구 첫 출근했던 날요!
그날 회식때 상무님 옷에 맥주를 왕창 부었잖아요?
"아? 그랬지 참!"
"그 덕분에 상무님으로 진급 하신거 아닐까요?
액땜을 아주 지대로 한 모양인데요? 하하"
"허 참! 그러고 보니 그런것도 같네? 하하하"
난 내 앞의 잔을 한 입에 털어놓고는,
잔을 들고 일어나 신입이 앉아있던 자리로 다가갔다.
그녀는 무릎위를 덮고 있던 옷을 치우고는 서둘러 일어나려 하고 있다.
"아냐 아냐! 그냥 앉아 있어! 이거 받고?"
"네"
"자네 덕분에 진급하게 됐네 그려...고마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난 소주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다 말고는,
또다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녀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하하...미안...죄송이 아니라 오늘은 축하 인사를 해야 되는데? 안그래?"
"네! 부장님! 추...축하 드립니다"
"나 이제 부장 아닌데? 하하하하"
긴장한 데다가 말실수까지 겹쳐 어쩔 줄 몰라하는 그녀 덕분에,
다소 어수선 하던 회식 자리가 한 바탕 웃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 근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네? 무슨..."
술이 몇 잔 들어가서인지 귀까지 빨개져서는,
내 잔을 돌려주겠다며,신입이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사실은 자네 이름을 기억 못하고 있었거든! 쏘리! 이름이 어떻게 되나?"
"그 친구 송미진입니다! 송미진!"
옆에 앉아 있던 김과장이 어느틈에 나서선 이름을 얘기해 준 것이다.
"이그 저걸 그냥! 니가 이 친구 매니져냐? 어휴~~"
"아~~ 그런가? 끼어들어 죄송합니다~~~아!"
김과장 저 녀석은 뭘 해도 밉지가 않은 녀석이다.
업무 처리도 능숙하고, 책임감도 있으면서,거기다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한 친구였다.
더구나 나에게 만큼은 없으면 뭔가 허전할 거 같은 그런 친구였던 것이다.
"저는 송.미.진 이라고 합니다! 상무님!"
"아? 그래? 송미진! 앞으론 다신 안 잊도록 할께~"
그리곤 술잔을 부딪혀 입안에 넣으려는데, 이름이 몹시 낯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송미진? 송.미.진 이라? 어디서 들어 봤더라? 송미진! 송...?'
"아하!"
"네?"
"아니...저기 말야?"
순간적으로 목소리를 낮추고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혹시 형제가 어떻게 돼?"
"저요? 오빠하고...고등학교 다니는 여동생이 있는데...요! 왜?..."
"아~? 아냐 아냐...난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하고..."
'그럼 그렇지! 난 또 혹시나 했네...'
오늘은 분명 내가 주인공이었다.
갈비집을 나서며 2차로 노래방을 가는데,
주는 술을 모두 받아 먹어서 인지, 몸이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상무님 벌써 취하신 거예요?"
"아우...그럼 마! 그렇게 먹었는데 안 취하면 이상한거지...안그래?"
"그래도 오늘은 절대 안됩니다! 저한테 이러시면 안되는거 아시죠?"
"그래 그래...어후..."
김과장은 나머지 일행들을 먼저 들여보내곤,
노래방 입구에 앉아서 바람을 쏘이고 있던 내 옆으로 와서 앉는다.
"어? 왠 팔짱?"
"그냥 좀 있으세요? 전 뭐 남자 좋아서 낀 줄 아세요?
우리 상무님 팔이니까 낀거지!"
"후후...그래? 그럼 짜웅이야?"
"짜웅요? 그거 하면 짤라 버리신다면서요? 그냥 애정이죠 애정! 큭큭"
앉아 있긴 했어도 여전히 몸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짜식이 눈치가 빠르긴 역시 빨랐다.
"저도 꽤 오래됐죠 상무님? 나중에 저도 상무 될려면 상무님이 오래오래 계셔야 하는데..."
"뭐야 마! 상무 되자마자 내 자리 부터 노리는 거야? 너!"
"그럼요...전 상무님 따라쟁이잖아요! 제 스승이시고, 제 멘토이시고!"
"흐음...그래! 고맙다 성민아~ 나 역시 너 때문에 버틴걸지도 몰라~"
"감사합니다!"
난 팔짱을 낀 김과장의 손등에 손을 올려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주인의식! 주인의식! 얘기는 한다만, 그게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겠냐?
나도 처음엔 동업이다 생각하고...정말 앞만 보고 달렸는데...
근데 그게 아니더라구...물론 너나 나나 운이 좋긴 한거야? 그치?
친구 녀석들 보면, 몇 년만 지나면 회사를 옮기니, 짤렸니 하면서 이력서 들고 다니는 거에 비하면,
우린 회사 잘 만나긴 한거지! 아직은 누굴 짜르거나 하진 않았으니까..."
"그쵸?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말야! 우리나라 회사원들은...아니다...이건 순전히 내 생각인데 말야...
사장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너는......"
딸국질이 나오진 않지만, 자꾸 말이 목에 걸린다.
"상무님이 한번 깨보시는건 어떠세요?"
"뭐?"
"상무님 생각이 틀린다는 걸 한번 보여주시면 어떻겠냐구요?"
"허허...이 자식 이거...그야 뭐~~ 나도 마음이야 항상 그러고 싶다만..."
"안되면 되게 하라? 이거 맨날 상무님이 하시던 얘긴데...?"
"휴~~~우...그랬냐? 나도 늙긴 늙었나 보다... 으~ 휴~"
늙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면 할 수록 자신감은 반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음을 내가 모를리 없었다.
"추우시죠? 이제 들어 갈까요?"
"아니 아니! 하나만 더! 근데 김과장! 열심히 해라~
이 회사의 오너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너...자신을 위해...어? 무슨말인지 아냐?"
"그럼요! 아니까 이렇게 열심히 일하죠! 하하...추운데 이젠 정말 들어가시죠?"
"후우~~ 그럼 한번 신나게 놀아볼까나?"
말이 끊기고 혀가 말을 안 듣고 있슴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
가급적 오버하지 말고, 분위기만 맞춰주자 하는 생각으로 김과장의 부축을 받으며,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근데 내 몸은 맘처럼 움직여 주지 못했다.
들어가서 노래 하나가 채 끝나기도 전에, 박수를 치며 의자에 앉아있던 것을 끝으로,
노래방에서의 내 기억은 멈춰버리고 만다.
"상무님? 상무님? 정신이 드세요?"
"어? 어어...그래 그래...들고 말고..."
"눈 좀 떠보세요? 네? 상무님?"
한 참 만에 겨우 눈을 떴을때, 김과장과 얘기했던 노래방 입구에 부축을 받으며 앉아 있었고,
부서원들은 우릴 중심으로 빙 둘러 서 있었던 것이다.
"아니 노래해야지! 왜 다 나와있어? 어? 자 들어가서 노래 한번 하자!"
"하하...저희 노래 다 하고 나왔습니다! 상무님!"
"그래? 나 빼고? 허허 녀석들..."
족히 두 시간은 잔 모양인데도,
몸에는 천근이하고 만근이가 올라타고 있는듯, 자꾸 눕고만 싶어진다.
"김과장?"
"넵!"
"아무래도 더는 안 될거 같다! 미안하다! 후~우"
"아닙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김과장이 부서원들에게 뭐라뭐라 하는 듯 싶더니,
곧이어 두 녀석이 날 부축해 차도쪽으로 이끌고 있다.
"후~우! 모두들 고생들 했다! 조심히들 들어가~~"
조심히 들어가라는 인사말 들이 귓전에 맴돌며, 택시의 뒷 좌석에 겨우 올라탔다.
"휴~우...한남...동으로 가주세요!"
택시는 한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뚫고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있게해준 녀석들이었다.
눈이 감겨 오는 와중에도 녀석들의 얼굴 하나 하나를 떠올려 본다.
'짜식들! 훗!'
차 안이 얼마나 따뜻하고 편한지 나도 모르게 다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에 보이는 건 외투 끝자락과 일정치 않게 내딛고 있는 내 검정 구두 뿐이고,
난 그렇게 터덜거리듯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푸~~우"
귀소 본능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걷고 있을 뿐,
내 발자국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내 왼팔을 무엇인가에 올려 놓았다는 기분과,
옆구리에서 전달되는 따스한 기운을 느낄 뿐이었다.
곧 익숙한 문앞에 도착하게 된다.
"후~우...번호가..."
번호를 누르려는데 자꾸 다른 번호가 눌러진다.
"아이...씨...뭐야 이거..."
그 때 다리가 풀리며 무릎이 접어지려는 순간,
허리가 조여지며 다시 균형을 잡게 된다.
"어우~~....어! 후~우..."
허리를 휘청하며 겨우 균형을 잡았을때,
그제서야 내 발 옆에 다른 것이 또 있었슴을 보게 된 것이다.
"어???"
내 눈에 보여지는 검정색의 긴 부츠에서 부터 천천히 위로 눈길을 옮겨 본다.
"어라? 자네 언제 왔어?"
"......"
우리 부서 막내인 송미진 이란 친구가 내 허리를 꼭 안은채로,
나를 지탱하듯 잡고는 꼭 붙어 서 있는 것이었다.
"집에 안가고...여긴 왜 온거야? 아~~~ 하여간 김과장 이녀석..."
"상무님! 일단 번호부터 알려주세요!"
"어~~~억!"
"어~~~~어마!"
쇼파에 앉는 순간,
이 친구가 균형을 잃으며 내 몸을 덮치듯 하더니 겨우 멈춘 것이었다.
앉기 전에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풀었어야 했는데, 미리 풀지 못하는 바람에,
나에게 끌려오듯 하다가는 결국 이리 된 것이었다.
뭉클한 느낌에 눈을 떠보니 이 친구의 한쪽 가슴이 내 코와 입에 와 닿아있고,
한 쪽 다리는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와 있는데다,
굽어진 무릎이 내 물건을 짓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상무님!...죄송해요~"
아픔도 아픔이지만 또 죄송하단 얘길를 듣다보니,
술기운에도 다시 웃음이 나오게 된다.
그녀는 얼른 몸을 빼선 한쪽 옆에 서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목까지 오는 흰색 목티를 입고, 짧은 치마를 겨우 덮을듯한 길이의 반코트를 입었는데,
코트는 열어진 채 였고, 나 때문인지 이마엔 땀까지 맺혀 있는 것이다.
"이런...죄송은 이 친구야! 내가 미안하고, 고맙지!"
"아닙니다! 자꾸 실수를 해서..."
"실수 아니라니까...그나저나 너무 늦었다...어서 가야지?"
"네~"
"집이 이 근처야? 하필 자네가 따라왔어 그래?"
"저도 근처라...제가 모셔다 드린다구..."
"허 참! 그거야 고맙긴 한데... 세상 참 좁긴 좁구만..."
"그럼...가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잠깐만..."
코트 단추를 채우며 급하게 나가려는 그녀를 잡아두었다.
술기운도 견딜만 했고, 무겁게 누르던 녀석들도 다 돌아갔는지,
몸도 그럭저럭 움직일 만 했던 것이다.
더구나 지금 시간이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지라,
아무래도 혼자 보내기엔 미안할 뿐더러, 얼마전 일도 생각이 난 것이었다.
"가지!"
"괜찮은데..."
"훗! 괜찮기는...?"
"고맙습니다~"
아무래도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길이라고 해봐야 좁은 골목길 뿐이었다.
"여길 혼자 가려구 했어?"
"..."
"하여간...이 동네도 밤엔 위험한 곳이야! 왠만하면 늦게 다니지 않도록 해!"
"네~"
"부모님하고 함께 지내나?"
"아뇨! 이모랑 둘이 지내요!"
"그래? 그럼 부모님은?"
"지방에 계세요! 취직 때문에 올라온거라서..."
"아? 그랬구나?"
외투를 걸치고 나왔는데도 술이 깨서 그런지,
싸늘한 것이 춥게만 느껴진다.
"전화는 드렸어?"
"네! 아까 나오면서..."
넓지 않은 골목인데다 더구나 한쪽은 주차된 차량으로 가득해서,
늘어서 있는 집들의 문 앞을 스치듯 걸어가야 하는 골목이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한 겨울 새벽녁이면 더더욱 을씨년 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여기에 한강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까지 더해져,
골목을 타고 더욱 사납게 불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유리까지 깨진채 방치된 듯한 방범초소를 지나 조금더 가다보니,
골목을 환 하게 비출만큼 밝게 불이 켜진 편의점이 보인다.
"그래도 여긴 편의점이 있어서 환해 좋으네..."
"네...얼마전에 오픈했어요"
"아~~ 그럼? 거의 다 온거야?"
"네~ 편의점 바로 근처예요."
"그렇구나?"
"이젠 가 보셔도...어? 이모~~!"
편의점 바로 앞에서 서성이던 여인이 부르는 소리에 이쪽을 바라보며 걸어온다.
"그래 그럼! 잘 들어가 쉬고! 오늘 고마웠어!"
"그럼 상무님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며, 빙긋 웃어주며 돌아서려는데,
다가오던 이모라는 여인의 얼굴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발길을 멈추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다시 살피게 된다.
"어?"
"그때..."
그녀와 난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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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류향입니다.
이번회는 마땅히 끊을 만한데가 없어서, 쓰다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그리고
한가지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한 감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을까 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께선 게시판에 들러 의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그녀와 난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