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21/29)

[22부]

"오늘까지 안오시면 반송 처리하려고 했는데 다행이시네요! 여기 있습니다"

"네!"

"여기에 성함 쓰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리사에게는 잠시 r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날이 밝자 마자 우체국부터 찾은 것이었다.

받아든 서류 봉투엔 발신인이 서초동의 한 로펌으로 되어 있었다.

법원 서류라는 메모를 본 순간부터,

이 서류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로펌을 가보는 것이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대전으로 내려 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주소지에 전화를 한 후 그 곳을 찾아갔다.

"김선화씨 배우자 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박영식입니다"

넥타이를 하진 않았지만 말끔한 양복 차림의 30대 초중반쯤의 젊은 변호사였다.

사무실은 모던하다고 할 만큼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또한 커다랗고 짙은 녹색의 화초가 심어진 화분이 단순해 보일만한 사무실의 곳곳에 놓여있어,

한겨울임에도 계절을 느끼지 못할만큼 조화롭고 정갈해 보이기 까지 한 것이었다.

"소송 의뢰는 아니고요. 합의 이혼에 대한 대리인 의뢰건입니다"

"집사람이 직접 의뢰를 한 건가요?"

"네! 그러니까...여기 있네요! 2주전에 전화로 먼저 상담하셨고...

그래서 저희가 서류 만들어서 보내 드린거네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합의 이혼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시면요!위자료 포기와 양육권 포기에 대한 각서도 있으니까,

남편분 서류만 작성하셔서 법원에 접수하시면 곧바로 처리 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건 배우자 서류입니다. 가지고 가셔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아내와의 일은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내는 이혼과 관련된 일체의 내용을 이 로펌에 의뢰해 놓은 것이었다.

당연히 이혼이라는 절차로 갈 것이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다소 막연하게만 생각되어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막상 아내의 글씨로된 서류를 접하자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혼이니 돌싱이니 하는 말이 너무 남발 되어서인지,

나 역시도 이혼에 대해선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이가 젊고 늙음을 떠나서 이혼은,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가는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져 들게 된다.

하지만 막상 서류를 받고나니 후련하다거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아니라,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해 질 뿐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아내분께서 부정을 저지르신 상황이라면 어차피 소송은 의미가 없거든요. 더구나..."

"됐습니다! 그 얘기는..."

"흠! 그리고 자녀분에 분해선 전적으로 자녀분의 의견에 따르신다는 말씀도..."

"알겠습니다"

나에게 도움이 되라고 하는 말인거 같긴 했지만, 

조금전부터 그의 목소리는 나에게 와 닿지 않고 있었다.

내 인생의 전부이자 목표였던 가족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과 중심엔 언제나 아내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것이 뿌리채 흔들리며 무너져 버리고 만 것이다.

엉뚱한 곳에서 멈춰버리고 말거라고 분명 예상하고 있었건만,

막상 종착역이 표시되지 않은 차표를 받아든 채로,

낯선 곳에 멈춰버린 기차안에 있는 것 같은 막연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건 혹시 만나뵙게 되면 전해 드리라고...따로 보내신 거라 함께 보내드리지 못했네요!"

멍하니 앉아있는 나에게 변호사가 내민건 작은 서류 봉투였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이동하면서도 시공간이 멈춘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주변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고, 보여지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듯이,

그저 터덜거리듯 그렇게 발길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봉투를 뜯어 그 안에 있던 편지부터 꺼내 읽어 보았다.

"휴~~우"

편지의 내용은 간결했다.

나와 은지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그 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고 동봉한 통장과 카드는 은지 대학갈때 쓰라고 모아둔 적금이예요.

다 당신이 벌어다 준 돈으로 모은거니까 나중에 은지 대학갈때 보탰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당신하고 은지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당신도 나 같은년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여자 만나서 남은 여생이나마 즐겁게 보내길 바래요.

미안해요..."

편지의 마무리는 이렇게 되어 있었다.

잊고 있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설레임에 시작되었던 아내와의 첫 데이트, 수십번을 망설이다 결국은 아내의 주도로 하게된 첫 키스

그리고 가난하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 은지의 탄생 등등이 편집된 영상처럼 머릿속을 스쳐가며 있었다.

불과 일년이 채 되지 않은 마지막 영상통화 장면까지 이어 질때까지 난 그렇게 눈을 감은채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아내에 대한 미움보다는 아쉬움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오게 된다.

나 역시도,

아내에게는 특별히 잘 해 준 것이 없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그 어떤 궁금증도 없었고,

애 엄마이자 내 아내라는 이름으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그저 당연한 존재라고만 여겼던 것이다.

아니 굳이 내가 신경쓰지 않아도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것이라고 확신 하고 있을 것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제는 나와의 그 오래된 인연의 끈을 놓아 버린 것이다.

"흐~음"

만감이 교차해 오며,

처음으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라도 하고픈거 하면서 잘 살게~~ 미안하네 그려~~'

쉽게 차를 출발하지 못한채로 눈물이 마르기만을 기다리고 난 후,

한참 만에야 난 그 곳을 나올 수 있었다.

"선배님!"

"어! 그래!"

집에 돌아와서도 서류 봉투를 든 채로 쇼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던 나였다.

강수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약속이 잡혔는데요... 느낌이 별로 안좋아서요!"

"그래? 언젠데?"

"이번주 토요일입니다! 시간은 22시이구요"

"장소는?"

"경기도 광주입니다!"

불확실한 이야기를 하는 성격이 아닌 강수의 육감이라면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었다.

"광주라..."

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난 서류 봉투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는,

작은방 옷장위에 올려 놓은 먼지가 가득한 검정색 봉투를 통째로 꺼내 들고는 거실로 들고 나왔다.

먼지 가득한 비닐 봉투를 걷어내자 은빛으로 번쩍이는 휘장이 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음~~"

이 가방은 007가방이라고 불리우는 가방의 형태와 동일한 모양이지만,

그보다는 조금 작고, 가방 자체가 특수알미늄으로 제작되어 있는 가방이다.

특히 가방을 닫으면 내부가 완벽한 진공상태로 유지되므로,

장기간 보관시에도 내부에 습기가 스며들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이다.

가방안의 내용물을 만져본건 딱 두 번 뿐이었다.

20여년전 선물을 받았을 때와 10년전 가방을 교체할 때가 전부였다.

선물로 받은 것이니 만큼,

이것을 사용한다거나 할 일은 평생 없을 거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흐~음...이걸 굳이..."

손가락으로 가방을 툭툭 튕기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쯤,

출입문이 덜컥 거리며 흔들림과 동시에 리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다행히 전화는 진동상태라 테이블 위의 전화를 집어 듬과 동시에 가방을 들고,

작은 방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서는 통화 버튼 부터 눌렀다.

"상무님?"

"리사 잠깐만..."

전화기 스피커를 엉덩이에 밀착한채로 살며시 나와서는 인터폰 버튼을 눌러 영상을 띄웠다.

카메라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문은 여전히 덜컹거리고 있었다.

분명 카메라를 피해서 서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작은방 반대편의 주방 안쪽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상무님?"

"어! 어...왜~?"

"저 지금 마담언니랑 집에 가고 있는데, 집에 계신거예요?"

"뭐? 리사! 내 말 잘들어 어?"

"네?"

"지금 뭐 타고 오고 있어?"

"마담 언니 차요"

"그럼 지금 빨리 세워! 그 자리에 대충 세우라구"

"지금 세우고 있어요! 다 왔거든요!"

불안한 생각에 머리가 쭈뼜거린다.

"리사 내리지 말고! 마담 바꿔! 빨리!"

"왜요?"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못한채 난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리사! 마담 바.꾸.라.구! 얼른!"

"잠시만요~"

"상무님? 안녕하..."

"송마담! 내 말 잘들어! 지금 여기 누가 와 있는거 같거든...

그러니까 차에서 절대 내리지 말고 있어"

"......"

송마담도 순간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송마담?"

"......"

"전화 끊지 말고 잠시 있어봐!"

사람이 없는 걸 알면 문이라도 따고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난 전화기를 든 채로 출입문 앞으로 이동해서 일부러 큰소리로 소리쳤다.

"누구세요?"

그리곤 일부러 큰소리로 발자국 소리를 내며 문을 향해 다가가서는 문 손잡이를 거칠게 잡는 시늉을 했다.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서너명의 발자국 소리가 문에서 멀어지고 있슴을 느끼게 된다.

"송마담? 듣고 있지?"

"네..."

"지금 집 앞 주차장야?"

"네!"

"머리 숙이고 지금 계단으로 내려가는 놈들 누군지 봐봐! 자네라면 알 수도 있으니까!"

"네!"

전화기를 든 채로 안방 창문을 향해 뛰어가서는 곧바로 창문을 열어 제꼈다.

아래를 내려다 보는 순간,

모자를 눌러쓴 세 명의 사내가 현관을 벗어나 송마담의 차를 지나친 채로,

아래쪽 도로를 향해 뛰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다..."

내가 송마담의 차량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송마담과 리사는 겁에 질린채 몸을 숙인채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송마담? 나야!"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움찔 하며 놀라던 송마담이 내 얼굴을 보고서야,

커다란 한숨을 쉬며 문을 여는 것이었다.

"다들 놀랐지? 이제 내려도 돼!"

"후~~우~"

두 사람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군지 봤어?"

"네..."

"일단 올라가지!"

송마담의 눈동자가 자리를 잡지 못한채 휘청이고 있었다.

"쌍도!...쌍도야..."

"누구? 송마담? 송마담?"

송마담은 쇼파에 앉아서도 몸을 늘어 뜨린채로 혼자 몇 번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리사가 물을 한 컵 가져다 주고 나서야 비로서 눈동자가 촛점을 찾아가고 있었다.

"쌍도가 누군데?"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아냐 아냐!"

"송마담 여기 봐봐! 어? 나를 보라구!"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송마담의 얼굴을 잡고는 강제로 눈을 맞추었다.

"여기 보라구! 어이? 정신 좀 차려봐?"

"네..."

흩어졌던 눈동자가 비로서 내 눈을 마주하게 된다.

"쌍도가 누구냐니까?"

"방회장 사람이예요. 근데 예전에 죽었다고 얘기를 들었었는데..."

"방회장?"

"리사의 실 소유주요! 뭐 리사 뿐이 아니긴 하지만...휴우~"

"아? 그럼 그 놈의 수하야?"

"잔인한 사람이거든요! 저는 그 사람을 잘 알아요"

기억을 떠올릴때 마다 송마담의 얼굴은 굳어갔고,

꽉 쥔 두 손이 간헐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강수도 이 친구를 알겠네?"

"그럴 거예요! 서로 만난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서로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만큼 위험한 녀석이란 얘기야?"

"네! 아주 많이..."

"음..."

이번일을 통해 나도 조직세계에 대해 대충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족보가 있는 거대 계파와는 달리 방회장의 세력에 대해선 드러나 있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방회장은 경찰이나 검찰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쪽 세계도 이쪽대로 룰이 있는 거 아니었어?"

"그렇죠! 방회장은 기존 조직들과는 영업 형태 자체가 다르거든요.

일종의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뭐가 두렵다는 거지?"

송마담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모조리 풀어냈다.

사실 송마담도 오늘 쌍도를 직접 보고서야,

리사의 일이 방회장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거라는 것을 짐작하게 됐다고 한다.

방회장의 조직들은 점조직화 되서 그 뿌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결코 자신들을 드러내는 일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의 친위대의 우두머리 꼴인 쌍도가 직접 이 곳에 왔다는 것은,

방회장 역시 이 일을 그냥 덮어둘 생각이 없슴을 보여준 것이라는 것이다.

송마담과의 이야기를 토대로 강수와 통화를 했는데,

강수 역시 이번 만남이 방회장이 아니라,

실제로 리사를 관리했던 우사장이라는 사람과의 약속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함정이 분명했다.

"쌍도란 녀석은 만나본 적은 있어?"

"예전에 한 번 본 적은 있습니다!"

"어떤 녀석야?"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 있구요. 어려서 부터 쌈꾼으로 통했던 모양입니다.

송마담 말대로 방회장의 친위대장 격으로 방회장의 그림자처럼 활동을 했었다는데,

5년전에 인천 카지노 사건 이후로는 보이지 않았었거든요"

"그 사건은 뭔데?"

"한 이십여명 죽어 나간 사건이 있었어요. 카지노 운영권 때문에...

그때 주동자가 쌍도였거든요. 저 역시도 죽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강수도 방회장의 주변에 대해선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만큼 베일에 가려져 있는 숨은 실력자임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하여간 강수야! 이번일은 아무래도 함께 해야할거 같다! 명심해라! 절대 혼자 움직이지 말도록! 알았지?"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나는 걱정말고...일단 내일 보자꾸나!"

조용히 넘어가길 바랬는데, 생각보다 일이 커진것이 분명했다.

그 쪽 세계에서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 일을 섣불리 건드린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정보가 필요했다.

얼마만이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난 휴대폰을 꺼내 문자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23[SF]A1

방도식 회장"

문자는 강수를 제외한 총 8명에게 발송했다.

그리고 이 문자는 수 분 이내에 다시 수십명에서 발송될 것이었다.

"상무님? 저희 다른데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오늘 줄행랑을 친 걸 보면 한 이틀은 이 곳에 오지 않을테니까..."

"그걸 어떻게...?"

"사람이 원래 그렇거든...물론 조만간 다시 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는 문제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두 사람 모두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초청장을 보여주고 곧바로 사령부 연병장 한켠에 차량을 주차하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가득차 버린 차량 때문에 안내를 받아 주차하는데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했다.

"여기다 여기!"

잘 다려진 군복에 베레모를 눌러쓴 철완이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고 야! 오랜만이다 진짜! 잘 지냈냐?"

"얼마만이야 이게? 하하! 반갑다 영식아~~"

"여전히 군복은 잘 어울리는 구만...하하"

철완이의 모습은 한때 내가 꿈꾸었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건 그렇고 내가 깜짝 놀랄 일 있다고 했지? 이리 와봐라!"

철완인 내 팔을 이끌고는 건물 1층 복도 끝에 귀빈실이라 붙어놓은 사무실을 향해 앞서가고 있었다.

"도대체 뭔데 그래?"

"와보면 안다니까...후후!"

회의실로 사용되는 곳인지 제법 넓은 공간이었다.

사무실 벽을 따라 흰색 천을 덮어 놓은 다과 테이블이 둘러져 있고,

내외빈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무실 한 가운데에 선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선배님! 전역 축하드립니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오~~ 이 누꼬? 영식이 아이가? 반갑다 임마야!"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한데다, 전체적으로 통통해 지긴 했지만,

오늘 면역식의 주인공인 이석진원사였다.

"그래도 기억 하시네요?"

"우리 부대에서 니를 기억 못하믄 간첩 아이가?"

"하하! 무슨...그게 언제적 얘긴데...하하하"

"아이고 임마 봐라! 철완아? 내 말이 틀맀나?"

철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건강 하신거죠?"

"그럼! 한 십년은 더 해도 되겠더구만...쯧...뭐 어쩔 수 있겠나?"

"선배님은 할 만큼 하신거예요! 이젠 후배들한테 맡기시고 편안히 쉬셔도 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래! 할 만큼 하긴 했다! 그래도 옛날엔 재미라도 있었는데 말이야...하하"

새파랗게 젊은 시절 함께 군복을 입고 뺑뺑이를 돌던 시절이 엊그제 같았는데,

이제는 모두가 중년의 모습으로 다시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이었다.

"영식이 니도 잘 살제?"

"그럼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하하!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니랑 철완이랑 같이 특임대 있을때가 젤로 그립더구마!"

"그때 힘들긴 했어도, 꽤 재미도 있었는데 그쵸?"

"그랬지! 그 때 임마들도 잘들 지내나 모르겠다!"

"잘들 지내고 있을겁니다!"

"아? 그리고 금마 이름이 뭐였더라? 그 왜 키 크고 호리호리 하니 그..."

"누구...?"

그 때 누군가 미끄러지듯 선배님 뒤로 움직이더니 뒤에서 덥석 안으며 콧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저 말씀이신거죠? 선배님!"

"으? 누고?"

그제야 팔을 풀고는 앞으로 나서며 정중히 인사를 하는 것이다.

"오~~ 그래 임마다!"

"임마가 아니라 강수닙다 선배님!"

"아~~ 그래 그래 강수 맞다 그래!"

모임을 하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동료들은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랫만이었던 것이다.

너나 할거 없이 군대 이야기로 한참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행사 10분전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선배님 잠시만..."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고 온 윤석이 모두가 빠져나가는 사이 내 팔을 잡아 끌고 있었다.

"어제 문자 받았습니다"

1층 건물옆 임시로 마련된 흡연구역으로 자리를 옮기자 마자 윤석이 말을 꺼낸다.

"그리고 이거..."

윤석이 내 민것은 서류 봉투였다.

"근데 이유를 여쭤봐도 되나요?"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윤석은 나와는 입대와 나이 모두 2년 후배인 동료였다.

장기 복무 중 현재의 국정원으로 차출된 케이스로,

대공업무 파트에서 대 테러 파트로 그러다가 10년전부터는 국제범죄부서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방회장의 자료역시 국제범죄 부서에서도 눈여겨 보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건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었던 방회장이,

국정원장이 교체된 3년 전부터 주의인물로 다시 분류되더니,

올 초 부터는 주의 대상에서도 제외가 됐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담당 책임자였던 윤석이 자료의 복사본을 저장해둔 덕에 내 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알려지면 곤란해 집니다!"

"걱정마라! 이번주면 끝나니까"

"그게 무슨?"

"D-day가 이번주 토요일이거든"

"그럼 소집이라도?"

"아마도..."

"알겠습니다! 따로 필요하신거라도..."

"됐어! 그러다 너 짤려 마! 하하"

"하하! 그럼 저도 좀 쉬죠 뭐...하하"

"고맙다!"

문자를 보낸 8명중 오늘 이 자리를 빌어 5명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면역식후 간단하게 나마 그간의 정황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윤석이 말고도 경찰특공대 팀장으로 있는 경렬이의 자료까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철완이가 얘기한 깜짝 놀랄 사람에게서는 뜻밖의 결과물을 얻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었다.

"상무님 식사하세요~"

"네~~"

지난번 문이사와 서이사 아내가 내려와서 사 놓고 간 앞치마를 두르곤,

제법 그럴듯한 밥상을 차려 놓은 것이다.

"잘 어울리네...후후"

"그래요? 앞치마는 처음 해 본거 같아요"

"음식 만들때 하지 않어?"

"밥야 뭐...거의 사 먹으니까요"

"아~~"

송마담이 끊여놓은 김치찌게는 제법 맛이 좋았다.

"오 맛있는데? 아주 잘 끊였어!"

"진짜요?"

"언니 정말 맛있어요!"

"리사도?"

"이제 송마담도 시집가도 되겠는걸? 하하"

"상무님도..."

아무래도 서울집에 머무는것이 불안해 보여 어제 곧바로 이쪽으로 내려가 있게 한 것이었다.

그나마 안정이 되었는지 두 사람 모두 밝은 표정이었던 것이다.

"아...이런..."

나 역시 대충 중요하다 생각되는 물건들을 챙겨서 면역식을 마치자 마자 내려온 것이었는데,

하필 테이블에 올려놓은 아내의 서류봉투를 놓고온 것이 생각난 것이다.

"왜 그러세요?"

"어? 아니야...뭘 좀 놓고 와서...음...."

소집 문자를 보내고 나서 자리에 누웠는데,

마음이 뒤숭숭해서인지 도통 잠이 오질 않는것이다.

"에이 이런..."

맥주라도 하나 가져다 먹을 요량으로 츄리닝을 입고는 문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누군가 문 앞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구?"

"저예요 상무님!"

"아니 아직 안 잤어?"

"잠이 안 와서요. 상무님은?"

"나도...잠이 안와서 맥주라도 한 잔 할까 하고..."

"그럼 잘 됐네요...훗! 짜잔!"

작은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의 손에는 양주 한병과 과자가 올려진 작은 쟁반이 들려 있었다.

"하여간...후후 들어와! 리사는 자고?"

"네..."

송마담과 한 두잔 마시려고 했던 것인데,

그녀의 살아온 얘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한 병을 다 마셔 버린 것이다.

희석도 하지 않은채 과자를 안주삼아 먹다보니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피곤이 몰려오며 졸립기 시작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술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녀 역시 이마까지 빨개져서는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었다.

"슬픈 이야기를 듣는 데도 주책맞게 자꾸 졸립기만 하네 이거...허허"

"아니에요 들어 주신것만 해도 고맙죠 저는..."

"고맙기는...하여간 그 녀석 정말 가만두면 안 될 녀석이구먼...나쁜자식 같으니라구!"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인걸요 뭐..."

"하여간 고맙네...날 믿고 힘든 얘기를 해줘서...다른건 몰라도 녀석은 내가 꼭 혼내줄테니까 걱정말고..."

"후후 말씀 만이라도 고마운걸요! 그리고 상무님은 참 좋은 분이신거 같아요~"

"이그...좋은 분은 무슨! 하여간 송마담도 피곤할테니 이제 좀 쉬지?"

"이런 내 정신 좀 봐! 상무님 그럼 쉬세요!"

"그래 나 좀 씻을테니까 올라가서 쉬어~"

"네~"

송마담이 먹던 걸을 정리하는 것을 보며 난 욕실로 향했다.

욕실 거울에 비춰지는 내 모습이 흐릿해 보이기만 하다.

샤워를 하고 나서야 눈도 좀 크게 떠지는 것이 정신이 좀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온 몸이 무거운 것이 머리만 기대면 그대로 잠들 기세였던 것이다.

"후~~우 얼마나 움직였다고 이렇게 해롱되는지 원..."

알몸인 채로 머리의 물기를 말리며 방으로 들어오는데,

한 손으로 쟁반을 움켜쥔채로 송마담이 침대에 걸치듯 그렇게 잠이 들어 있는 것이다.

"에이구 이 친구도 많이 취했구만..."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녀를 안고 2층으로 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나 역시도 다시금 잠이 쏟아지며 내 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들 정도였다.

"음..."

난 잠시 망설이듯 서있다가는 쟁반 부터 치워놓고는,

그녀의 다리를 들어 침대에 바로 뉘우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는 츄리닝을 다시 걸치자 마자 아무 스럽지 않게 침대 한 켠으로 올라가서는,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얼마나 잤을까? 소변이 마려와 눈을 뜨고서는 다시금 멍하니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송마담은 내 팔을 베고는 품에 꼬옥 안긴채로 쌔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기겁을 하고 일어 났을 것이었는데,

이것도 익숙해 져서인지 놀라지 않는 내 자신이 더욱 놀라울 뿐이었다.

"흐~~음"

송마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머리를 귓가로 넘기고는 천천히 팔부터 빼서는 조용히 일어나 앉았다.

협탁위의 휴대폰을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상무님!"

"음..."

"상무님? 들어가 주무세요. 감기 드시겠어요"

"어? 어...한시간만 더 잘께..."

거실 욕실에서 소변을 보고 물을 마시곤 그대로 쇼파에 드러누운 모양이었다.

손에 이끌려 다시 안방 침대로 가서는 나도 모르게 송마담을 꼭 안은채 다시 잠이 들어 버린 것이다.

"어때 좋아?"

"어! 자기꺼 부드러워~"

"후후 내께 부드러운게 아니라 당신께 부드러운거야?"

"그런가? 하여간...훗!"

"어후~ 나도 느낌 좋다...후~"

"어~~하아~~ 자기야~~ 아하~~ 아~"

아내는 돌아누운채 밀착하고는 흥분에 겨운지 손을 뒤로 뻣어 내 엉덩이를 꼬집듯 움켜쥐고 있었고,

나는 아내의 목베게를 한 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부드럽게 매만지고 있었고,

오른 손으론 엉덩이를 쓰다듬듯 하며 주물러 주듯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호 자기야! 너무 깊어~ 아하~~"

"미끄러운데도 왜 이렇게 자극적이지? 오늘! 우~~"

"자기야 좀 더 깊이...하아~ 깊이~~"

아내의 머리카락에 코를 묻고 있던 나는,

흥분에 고개를 젖히는 아내의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눈을 뜨게 된다.

"앗!"

어느틈에 츄리닝은 온데 간데 없고, 알몸인 송마담을 뒤에서 끌어 안고 있었다.

더구나 이미 성이 날 대로 난 녀석은 그녀의 따뜻한 몸 속 깊이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송마담의 몸이 앞 뒤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깨셨어요? 죄송해요~ 상무님!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

그녀는 허공에 멈춰선 내 손을 이끌어서는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주고는,

조금전보다 더 빠르게 엉덩이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순간 소영이와의 첫 잠자리에 대한 기억이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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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류향입니다.

덧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순간 소영이와의 첫 잠자리에 대한 기억이 스치듯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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