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회: 중년남의 생활 -->
윤진태, 그게 남자의 이름이었다.
이제 나이가 52살.
많다면 많고 누군가에겐 아직 어린나이라면 어린 나이의 평범한 남자였다.
중견기업의 과장자리에까지 올랐다가 체질개선이란 미명하에 회사 내를 휩쓴 명퇴 바람에 속절없이 그동안 30년 이상을 근무했던 회사를 나와야 했던 남자였다.
다행히 회사 사정이 어렵다던데 퇴직금은 나왔다.
평소 근무하던 부서가 하청업체에서 납품하는 물건을 수납하는 부서였기에 그동안 회사 내를 말로만 떠돌던 명퇴바람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먼저 일차로 회사를 나갔던 선배를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선배는 할 것이 없어 통닭집을 하다가 장사가 안 되어 가게 문을 닫을 판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던 터라 일단 자기도 뭔가 미래를 준비할 생각을 했었다.
퇴직금.
그것은 최후의 보루였다.
인생의 마지막 보루.
그것마저도 날려 버린다면 앞으로의 인생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혼은 직장을 구한 해에 선을 봐 25살 너머 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맞선으로 그냥 평범해 보이는 여자와 만나 결혼을 했는데 결혼 생활 27년 동안 지닌 복도 여자들에게 치여 살라는 복인지 낳는 아이마다 딸이었다.
하긴 요즘에 와서 생각이지만 오히려 딸이 나았다.
딸만 둘을 길렀다.
딸 둘 다 공부를 제법해서 서울 소재의 대학을 나온 터라 다행히 취직은 잘했다.
큰 딸은 직장에서 만난 남자와 25살에 결혼을 해서 지금은 아이까지 하나 낳아 잘 살고 있는데 문제는 둘째 녀석이었다.
5년을 사귀던 남자 아이와 잘 되지 않았는지 얼마 전에 헤어지고 지금은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딸이라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다.
무신경하게 내버려 두는 것 같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나 직접 찾아보거나 해서 안심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놈이 워낙 꾸미길 좋아해서 카드비가 장난이 아니게 나와 가끔 카드 막으라고 다 늦은 나이의 딸에게 용돈이나 하라며 돈을 주기는 하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인지 저번에 지엄마에게 돈을 빌려 쓰는 것 같았다.
항상 걱정이었다.
진태는 자신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화물차를 사기로 결정하고 평소에 차를 잘 아는 기사를 데리고 다니며 차를 보러 다녔다.
일단 망해도 혼자 망해야지 남들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은 질색이었다.
거기다가 남의 돈까지 끌어다 쓰는 것 또한 평소 성격에 맞는 것도 아니었다.
남에게 피해 안 입히고 피해도 안 입으려고 하는, 딱 소시민이었다.
다행히 체력은 남들보다 뒤지는 것은 아니어서 힘든 일은 자신 있었다.
그리고 화물차 기사는 정년퇴직, 마음졸이는 면퇴 따위가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처음 화물차에 관심을 가지게 한, 같이 차를 보러 다니는 기사가 화물차 기사가 보기에는 좋아 보여도 힘든 일이라서 어지간한 각오로 달려들다간 모두 나가 떨어지는게 화물차 기사라고 겁부터 주었다.
하지만 전의 직장처럼 명퇴니 어쩌니 하면서 가슴 졸이며 직장을 다니느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그 기사가 컨테이너 운송은 화물을 직접 실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에 잠깐 혹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큰 차는 자신도 없고 또 면허도 트레일러 면허와 차운전, 일하는 방식, 등을 배워야 한다고 해서 지금 상황에 바로 시작 할 수 있고, 또 요즘 잘 찾는다는 4.5톤 윙탑이라는 차를 샀다.
왜 있잖은가?
적재함의 양 옆이 열리고 닫히는 거 말이다.
화물이 비에 잦는 것을 막는다고 갑빠(비닐 덮개)를 치고 벗기는 게 화물 실어 나르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바람에 차라리 그러면 처음부터 덮개가 있는 차를 사자라고 마음을 먹어 윙탑을 샀다.
사고 보니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거래처나 화물을 주선해 주는 화물알선회사를 끼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점인데 그것은 평소에 생각해 둔 바가 있어서 일단 몇군데 명함을 파서 돌렸다.
그래서 서울에서 화물을 받아 대구나 부산까지 내려가서 거기서 화물을 받아 올라 올 수 있는 거래처를 찾는 일이었다.
사무실에서 팬대나 돌리던 사람이 화물차를 몬다는 생각을 한 것은 어지간한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화물차 기사라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남의 눈 때문에 처음에는 꺼려지기는 했지만 남이 자신과 처자식 밥 먹여 주는 것이 아닌 이상, 두 눈 딱 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래도 대학 나왔고, 딴 화물차 기사보다 아는 인맥이 남들보다 많았고, 어디 누군가처럼 보험 들라는 것도 아니고 원래 자신이 하는 일에 친구인 진태에게 연락해 화물을 보내는 일이니 친구들도 제법 도와주어 처음 시작하는 첫 달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딴 기사들 보다 매출도 많아서 제법 목돈을 만졌다.
하지만 정말 힘든 일이었다.
일단 화물이 도착해야 하는 시간이 있으니 잠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고 남들보다 짐을 한번 더 실어 먹기 위해서라도 일찍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항상 잠이 모자랐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자신의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그렇게 큰돈은 되지 않아도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일, 위주로 잡았는데 첫 달보다 매출이 좀 떨어지기는 했어도 몸은 편했다.
진태는 어떤 면에선 가장 정직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일한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문제는 아내가 진태 하는 것을 보더니 가게에 보탬이 된다고 보험회사를 다니겠다고 나선 일이었다.
진태는 아내와 제법 크게 다투었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집에서 아내는 폭군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집쟁이에다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날 며칠이고 말도 하지 않고 드러누워 시위를 하니 진태도 어지간하면 아내의 말을 들어주는 편인데 원래 생각하는 것 자체가 집안의 냄비는 밖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주의인 진태도 아내의 고집은 꺾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태의 아내는 보험회사에 나가면서 진태에게 잔소리는 줄어든 것이 그나마 진태에게는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진태의 아내는 보험회사 영업은 잘 하지는 못했지만 집에만 있을 때 보다는 활발해 진 것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진태는 오늘도 아침부터 김해의 화물을 실기 위해 김해로 향했다.
김해의 김치공장은 진태가 영업한 집은 아닌데 친구의 회사에서 화물을 실어 나르다가 알게 된 회사인데 나름 정기적으로 화물을 실을 수 있는 회사였다.
전북 김제로 가는 화물이라서 나름 운송비도 제법 되는 회사였는데 사장이 여자였다.
화물기사 사이에서 과부라서 먼저 잡는 사람이 입자라고 소문이 난 곳이었다.
하지만 언감생심 먼저 찔러 보는 사람은 없는, 말만 무성한 회사였다.
진태도 얼마 전에 이 회사에서 점심을 얻어먹은 적이 있는데 회사 구내식당 치고는 맛있기도 했고 특히 김치공장이어서 그런지 김치 맛이 예술이었다.
갓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등등 김치 종류가 많이 나오는데 사장이 자신이 만든 김치가 소비자에게 가기 전에 직원들부터 맛을 보게 만들어 자신들이 만든 김치가 어떤 맛을 내는지 직원들에게 시식하게 만드는 공장이었다.
진태는 갓김치를 좋아해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는 공장이었다.
진태가 들어서자 김치공장 여사장이 공장마당에 나와 앞치마를 입고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김제가는 화물이 있다면서요?”
“예, 우리 차기사가 결근을 했어요. 또 윤사장님에게 신세 지게 되었네요?”
차기사라고 이 김치공장에 근무하는 기사인데 만약 진태가 김치공장 사장이라면 제일 먼저 자르고 싶은 인순위인 사람이 차기사라는 사람이었다.
꼭 멀리 갈 일만 있으면 결근을 하는 사람인데 근무하는 꼴을 보면 사장 입장에서 제일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뺑실거리며 일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타입인데 진태 같으면 제일 먼저 해고 하고 싶은 기사였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일을 얻으니 별로 나무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여사장이 진태를 잘 봤는지 진태의 휴대전화로 진태를 직접 불러 일을 시켜서 진태가 화물회사에 소개비를 떼지 않는 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진태는 그날 저녁이나 되어서야 출발을 했는데 김치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여사장이 진태를 불렀던 것이다.
김치라는 것이 일단 숨이 죽어야 김치를 담글 수 있는데 소금에 절여 숨도 죽지 않은 것은 김치로 담글 수 없었다.
여사장도 그런 것에는 철저해서 숨이 죽어야 김치를 담궜기 때문에 진태는 더 기다렸다.
진태는 그런 것에는 이해를 했기 때문에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여 사장은 진태를 기다리게 한 것에는 미안해 했다.
일단 여사장의 실수는 분명했지만 진태는 이해했기 때문에 여사장의 마음을 이해했다.
마음은 급해서 고용한 기사는 출근하지 않았고 마음은 급해서 일단 불러는 놨고 제일 문제인 김치는 만들어지지 않았는데 불러 놘 기사는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은 급하고 이제야 배추에 소금을 뿌려 놓은 상황이니 여사장의; 마음은 급하기 이를 데 없었다.
급하게 움직이는 여사장을 보니 진태는 마음이 안쓰럽기는 한데 더 이상 뭐라 하기는 그래서 진태는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여사장의 곁에 다가가 조용하게 말했다.
“사장님, 너무 급하게 그러지 마세요. 대기비 청구는 안 할테니 그냥 그러려니 하시고 차분하게 일처리 하세요. 문제는 제일 중요한 것이 물건이 중요하잖아요. 제가 그냥 자고 있을 테니 물건 다 되면 말해 주세요. 저도 오늘 일은 이것으로 다 끝났다고 생각할 테니 중요한 물건이 다 되면 말해 주세요.”
그때서야 여 사장은 진태를 보며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윤 사장님.”
진태는 그때부터 모자란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어떻게 되었는가 보러 일어났는데 아직 김치는 다 되어 있지 않았다.
이제 겨우 배추가 숨이 죽어 소금물을 빼고 있는 중이었다.
여 사장이 여기 뛰고 저기 뛰며 난리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진태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진태는 기다리기에 무료해서 그냥 여 사장의 일을 도와주면 조금 빨리 끝날 것 같아서 배추속이 든 다라이를 들어주거나 아직 다 빳치 못한 고추를 들고 옮겨 주기도 하면서 일을 도와주었다.
여 사장은 그런 진태를 살짝 보며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진태는 진태보다 나이가 어린 여 사장이 안 되어 보여 도와주는 것이고 그런 진태를 여 사장은 고맙게 여겼다.
진태가 알기에 여 사장은 딸만 둘인 과부인걸로 아는데 역시 딸을 둘을 키웠던 진태가 보기에 동병상린을 느꼈다.
아들이 있다면 이런 힘쓰는 일에 도움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진태 같이 아들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원하지도 않는 것도 아니라서 있다면 도움을 받고 없으면 그뿐이라는 심정의 진태의 생각이 여 사장도 같이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했다.
“윤 사장님, 식사 하시고 하세요. 도와 주셨는데 그냥 맛있는 것을 드려야 하지만 있는 것이 구내식당 밥이네요.”
“그런 소리 마세요. 제가 좋아서 도와 드리는 거니까요. 그리고 여기 구내식당 밥 아주 맛있던걸요?”
“그래요? 고마워요. 나름 구내식당 밥은 직원들 힘든 일하는데 기운나라고 맛있게 하려고 하는데 그걸 알아주시는 분이 계시는 게 아주 힘이나요.”
“여 사장님이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계시는데 누구라도 알아주는 사람 한 사람은 있을 거예요.”
“여씨가 아니라 최씨에요. 최자연.”
“알고 있어요. 사업자등록증을 전에 봤거든요. 하지만 최자연씨라고 부르려니 남들도 다 듣고 있어서 이상하게 볼까봐 그렇게 불렀던 겁니다.”
진태가 싱긋 웃었다.
“윤 사장님은 이런 일 하시는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일을 하세요?”
“이런 일이라는 것은 화물차 기사일요?”
“예. 윤 사장님은 가만히 보면 자잘한 일에도 신경을 잘 쓰시고 그러는 것을 보면 머리 쓰시는 일에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떻게 화물차 기사 일을 하시게 되었어요?”
진태는 자연의 말에 쓴 웃음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는 회사 일을 했었는데 명퇴되었어요. 제가 남들에게 피해 입히면서 딴 일 하고 싶은 성격이 아니라서 잘 못 되어도 나 한 사람으로 끝나는 일을 찾다보니 이런 일을 하게 되었죠.”
“어머!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대기업에서 물건 수불하는 일을 했었죠. 나름 거기에서 결혼 생활한 햇수와 같이 27년을 근무했었지요. 그래도 거기에서 딸 둘을 키워 큰 놈은 시집도 보냈으니 나름 성공한 삶이었죠.”
“어머! 딸만 둘이세요? 저도 그런데.....”
“딸 키우기 쉽지 않죠?”
“정말 그래요! 이제 사춘기 되었다고 어찌나 말도 안 듣는지....”
“나름 노하우가 있죠. 저 같은 경우엔 원래 서울에서 살다보니 딸들도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처음엔 서울에 자취를 시켜준다는 걸로 꼬시다가 그놈들이 서울생활에 젖을 때쯤에서 잘 못하면 부산으로 내리겠다고 협박을 자주 썼죠. 하하하.”
“어머! 폭군 아빠네!”
“그래도 할 수 없었어요. 첫째는 나름 말 잘 들었는데 둘째는 멋 부리기 좋아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라 그래야 겨우 공부나 좀 했었죠.”
“인 서울 하기는 했나 보죠?”
“예,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인 서울은 했었죠. 그런데 이제는 카드값 때문에 골치가 아파요.”
“어머! 멋을 너무 부렸나 보다!”
“예, 그 녀석이 케이블 티브이 보면서 마감시간 촉박해 지면 어쩔 줄을 모르더라고요. 완전히 쇼핑중독에 빠져서는.....”
“어머머머! 어째요?”
“한 번 날 잡아서 나무라기는 해야 하는데 제 엄마에게서도 돈을 빌려 갚는 것을 보니 나무란다고 될 일도 아닌 것 같고......휴~!”
“나이가 어떻게 되요?”
“딸들요? 큰 놈은 26살이고 연년생으로 25살이에요. 단 일년 차이지만 너무 철이 없어요.”
“시집가면 나아지겠죠.”
“그게 그럴 것 같지 않으니 문제지요. 손이나 씻고 밥이나 먹으러가죠. 자연씨는 꼭 밥을 두 그릇 드세요.”
“왜요?”
“전에 식사 하시는 걸 보니까 밥 양도 아주 조금 드시는 것 같던데 그렇게 작게 드시면 쓰러져요. 자연씨 일하는 노동량에 비하면 너무 작게 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두 그릇 정도는 드셔야 남들 한 그릇 드실 양 밖에는 안 되겠지만요.”
“저, 걱정하시는 거죠? 고마워요. 누군가 저를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오랜만이에요.”
“정말 빈말이 아니라 드시는 거라도 좀 많이 드시고 기운을 좀 차리세요. 자연씨 보면 불안하거든요, 진짜로요.”
“어떤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