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회: 진태의 연애 -->
“뭘 그렇게 봐? 빨리 먹어. 내가 데려다 줄게. 아줌마, 여기 일인 분 하나하고 사인분 포장 되죠? 포장 해 주시겠어요?”
선애를 돌아보며 진태가 말했다.
“집에 가서 준비하려면 몸이 성해도 어려우니 이걸로 밥만 해서 먹여. 나도 이거 사 가서 애들이나 먹일 테니.”
“고마워 진태야.”
“고맙긴? 천천히 먹어. 이거 좀 뜨겁다.”
“앗 뜨거! 좀 일찍 말하지! 아우 뜨거워.”
“그래, 그래. 내 잘 못이 크다. 하여간 지금이라도 천천히 먹어, 지금 가도 늦지 않아. 이거 준비 해 가면 니 아들도 별 말 없을 걸?”
선애는 진태에게 많이 기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투정도 진태에게 부리고 어리광 내지는 아양도 부리는 모습이 지금 52살의 나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진태가 선애를 아파트 입구에 내려주고 진태는 그대로 집으로 향했다.
어제 진경이 늦게 들어와서 말을 듣지도 못해서 진태는 진경을 불렀다.
“진경아! 니가 좋아하는 꼬릿 꼬릿한 찌개 사 왔다.”
진태가 들어오며 마중 나온 자연에게 입술을 가리며 조용히 하라고 하고는 이층에다가 진태가 말하니 진경이 얼른 얼굴을 드러냈다.
진경이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주 영인이까지 다 같이 내려왔다.
“아빠 이게 뭐야?”
“응, 아빠가 오늘 교통부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제법 맛있어서 사 왔어. 이거 저녁에 그 아줌마 퇴근하려는데 해 달라고 해서 사 온 거니까 밥 안 먹었으면 먹자.”
“예.”
영주 영인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데 진경이 눈이 휘둥그래지며 말했다.
“이것들아! 아까 저녁 먹었잖아!”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어쩌란 말이야? 아빠 식사 하시면서 맥주 드실 거죠?”
“응, 병맥주 시원하게 한 잔 카아~!”
진경은 무슨 바퀴벌레 보는 것처럼 진태를 보더니 빽 소리를 질렀다.
“아빠! 딸 시집, 보내실 거예요, 안 보내실 거예요?”
“솔직히 말하면 보내고 싶지 않다. 내 품에 자식이라고 넌 아직 아비 품에 있어야 될 것 같기는 한데.....하지만 보내야겠지? 병맥주 한 잔만 하면서 우리 진지하게 말을 들어 볼까?”
“그럴까......아우~! 아빠 술수에 또!”
진경이 정신을 차리려는 그 순간 자연이 진태가 들고 온 멸치 청국장을 열어 보았다.
“어머! 맛있겠다!”
온 집안에 청국장 냄새가 진동했다.
진경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연의 옆에서 냄새만 맡고 있었다.
자연이 식은 멸치 청국장을 뚝배기에 다시 끓여 식탁에 올렸다.
말이 사인분이지 거의 대자 두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았는데 참지 못한 진경이 결국 숟가락을 들더니 순식간에 없어져 버렸다.
“야! 이놈아! 아빠 안주거리는 남겨 놔야지!”
“맥주 드리시는데 무슨 안주에요? 맥주는 그냥 드시는 게 더 좋아요. 너무 맛있다. 이 집 어디에요?”
“교통부 앞에 국제호텔 앞 골목길에 있는데.....한 숟가락도 못 먹었다. 너 내일 살 쪘다느니 어쩌고 하면 아빠가 등짝을 책임지고 때려주마.”
진태가 숟가락을 들고 없어진 찌개를 보며 허탈한 얼굴로 말했다.
그걸 보고 자연과 영주, 영인은 죽겠다고 깔깔거리고 웃었다.
이제는 자연도 그렇지만 영주 영인은 진경을 꼬시는 수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진경이 저 놈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를 그대로 빼다 박았지. 우리 어머닌 손맛도 좋으셨지만 경남에서 제일 뚱뚱하다고 하실 정도로 살이 많이 찌셨지. 그것 때문에 당뇨에 고혈압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지만....”
“어머나! 그럼 진경이 살찌는 것이....”
“물만 먹어도 살찌는 것은 우리 어머니 그대로야. 한 공장 제품이니 어디 가겠어?”
“푸하핫!”
영주가 폭소를 터트렸다.
영인은 조용하게 미소를 보였다.
“그래, 그제 본 도둑놈은 괜찮아 보이디?”
“도둑놈 중에서는 그런대로 착하게 보이데요.”
진태의 말에 진경의 말투도 비슷하게 했다.
“그래? 흐흠! 니가 그런 소릴 하는 걸 보니 제법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그건 그렇고 진경이 너 내일 아침에 살 쪘니 안 쪘니 그런 소리 듣기 싫으니 운동 삼아 노래나 부르러 갈까?”
진경은 신기하게도 노래방에 가서 노래만 부르면 살이 어디로 갔는지 살이 아주 쏙 빠지는 신기한 체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긴 진경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그럴 생각을 가질 만도 했다.
있는 힘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니 노래를 하면 당연하게도 진경은 살이 빠졌다.
고기 따위를 먹으면 살찐다고 질색을 해도 나중에 노래방에 간다면 진경은 실컷 먹었다.
그리고 노래방에서 죽을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것 때문에 진경이 대학 다닐 때 집에 내려오면 제 엄마가 맛있는 것을 잔뜩 해 먹이고 노래방에 항상 데려 갔었다.
그러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문제는 진경이 노래방에 가면 마이크를 절대로 딴 사람에게는 넘기지 않는다는 것이 병폐였다.
진태는 노래방에 가자 진경에게 맥주 두 캔을 넣어주고 자연과 영주 영인을 같이 데리고 들어갔다.
“아빠! 진경이 언니랑 같이 노래 부르는 것 아니에요?”
“진경이랑 같이 노래 부를 생각이었니? 아마 포기하는 것이 빠를 거다.”
“왜요?”
“진경이 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보면 알게 될 거다.”
영주가 진경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러 갔다가 자연과 영인을 불렀다.
자연이 먼저 진태에게 오더니 물었다.
“당신 진경이 노래 부르는 것 저러는 것 알았어?”
“미친년 살풀이 하는 것 같지? 제 엄마가 붙인 말이야. 저 녀석도 나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애들 오라고 해서 우리끼리 부르자. 당신은 맥주 어지간해서는 마시지 말지?”
“헤헤헤, 한 잔만. 한 잔만 마실게.”
자연이 웃으며 진태에게 안겨오며 애교를 부렸다.
영주와 영인이 결국 진경의 방에 갔다가 별 수 없이 진태가 있는 방으로 왔다.
그런데 영인의 노래가 보통이 아니었다.
“오호! 우리 영인이 노래가 보통이 아닌데?”
“헤헤헤, 잘 부르는 것 같아요?”
“잘 부르는 정도가 아닌걸!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정말 잘 부른다라고 느낄 정도니 혹시 발성 같은 것 배웠니?”
“아뇨, 하지만 학교에서 조금 배웠어요.”
“영인아, 아빠는 잘 모르지만 넌 정말 노래 잘 부르는 구나. 일단 발성 연습 할 수 있는 학원이라도 다녀 볼래?”
“.......그래도 되요?”
“안 될건 뭐니? 너 나이 대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뭘 해야 할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아이야, 진경이 저 녀석 지금은 저렇게 개발 새발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그래도 듣기 싫지는 않은 이유가 한때 홍대 거리에서 인디 밴드에 속한 보컬이었어.”
“에에~!”
“어머, 진짜?”
“그래, 진경이 버린 그 양아치 녀석이 리드 기타였었지.”
“아!”
“어머!”
“지금 진경이 저렇게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그때 못 이룬 꿈을 향한 향수 같은 거야. 내가 진경이 찾으러 서울 올라갔을 때도 진경이 저 녀석은 제놈 살던 동내에서 노래방에 처박혀 노래만 주구장창 부르고 있었어. 아니면 집에서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에 빠져 살았지. 진경이 마음이 약해 남자 녀석에게 배신당했다고 그동안 들인 돈을 생각하면 정말......”
“......”
“.......”
“그래도 다시 마음잡아서 다행이다 싶어. 진경이에게 내가 한 일이라곤 제 녀석 발성 연습 할 수 있게 학원 다니게 한 것 밖에 없었는데 그래도 대학가더니 인디 밴드에서 나름 실력을 인정받게 된 것만 해도 어디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진경이 들어왔다.
“아빠, 시간도 다 됐고 맥주도 다 떨어졌어요.”
“시간은 한 시간이면 될 거라고 해서 그랬고 맥주는....임마! 살 쪄!”
“정말 치사하다!”
“그 정도면 된다. 더 이상 부르면 목이 무리 간다. 시집보내기 전까진 아빠 책임이잖니?”
“진경아, 엄마꺼 먹을래? 니 아빠가 엄마 당뇨 때문에 못 먹게 해서 엄마 김 셌다.”
“그래도 되요? 헤헤헤.”
진경이 자연의 옆에 찰싹 앉으며 자연의 맥주를 집어 들더니 냉큼 한 모금 했다.
“어! 엄마. 아직 식지 않았다. 먹어 봐요.”
진태가 살짝 놀라 진경을 바라보았다.
자연을 보고 엄마라니? 언제 새자가 떨어져 나갔지?
자연이 진경이 준 맥주를 한 모금했다.
“그러네?”
자연과 진경은 마치 자매처럼 같이 붙어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노래는 다 불렀어?”
“영인이 언니랑 나랑 다 불렀는데 아빠랑 엄마는 안 불렀어.”
“아빠는 됐고, 엄마 노래부터 들어보자.”
“아빠는 왜?”
“아빠는 해병대 노래부터 부르니까 별로 들을게 못 돼. 기분만 잡쳐. 길용이 아저씨랑 노래방 가면 난리 나. 거기가 해병대 병영인 줄 알아. 저번에 갔었는데 길용이 아저씨랑 두 시간 동안 해병대 노래 부르고 있으니까 주변의 해병대 출신들이 다 모여서 난 해병대 동창회 하는 줄 알았다니까?”
“아하하하하. 정말? 그러면 볼 만 하겠다?”
“엄마나 불러 봐요. 엄마 노래 좀 들어보게.”
“어디 인디밴드 보컬이 보기에 양에 차겠니?”
그러자 진경이 진태를 째려보았다.
“하여간 아빠한테는 비밀을 말 할 수가 없어.”
“그게 뭔 비밀이라고....하여간 너도 인디 밴드에서 제법 알아주는 보컬이었잖아?”
“그게 뭔 알아주는 거라고.....”
“영인이 노래나 들어 줘 봐라. 내가 보기엔 잘 부르는 것 같은데....”
“그래? 영인이 노래 잘 부르니?”
“그냥 좀....”
영인은 말없이 노래를 입력했는데 진경은 그 노래를 보더니 호기심이 만땅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원래 영인이 소극적인 성격이어서 진태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영주는 곧잘 어울렸지만 영인이는 조용조용한 성격인데다가 워낙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진태가 가장 걱정화는 딸이었다.
하지만 진태는 영인을 처음 만났을 때의 또랑또랑 하던 때를 기억했다.
자신의 엄마와 만나는 남자가 진실로 엄마를 위하는 것인지 살펴보기 위해 진태에게 물어보던 당찼던 영인이를 알기에 진태가 걱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고에서도 얌전히 지낸다고 하기에 친구인 학생 주임에게도 학교에서 뭔가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는가 노심초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