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1화 성숙기(成熟期)1 (1/22)

조원제: 59세 조영감으로 불리는 주인공, 어렸을 때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우연찮은 기회에 좋은 영약을 먹게 되어 나이답지않게 요즘 젊은이들보다 더정력이 좋음

조동주: 42세 조영감의 큰 아들, 현재는 등장하는게 별로(나중은 어쩔지 모름)

신현미: 40세 조영감의 큰며느리, 조동주의 마누라

조미애: 20세 대학 2년생, 조영감의 큰손녀

조미진: 17세 고2, 조영감의 둘째 손녀

임연화: 20세 대학 2년생, 미애와 친구

도주희: 17세 고2, 미진이와 친구

장효정: 34세 조영감 큰 아들이 사는 아파트단지의 104동 여자

신선미: 31세 조영감 큰며느리의 막내동생

명연선: 59세 일명 모돌이 할머니

백진경: 30세 모돌이엄마

일단은 여기까지 나오는 인물을 설정했습니다.

그 다음은 나도 모릅니다. 나올지....안나올지....

                         조영감 제1화 성숙기(成熟期)1

"아버지, 이제 고집 그만 부리시고 저희랑 같이 올라 가세요."

"그러셔요. 아버니~임! 저이 말대로 저희들이 잘 모실게요..... 여기는 불편 하시잖아요?.... 그러시니까 저희랑 같이 서울로 가세요."

"아니다.... 괜찮다.... 이제 질도 들었고, 또 내가 가면 여기 집은 어떻게 관리(管理) 하겠냐? 일없다."

"아버지 제발 이제는 저희들 마음도 좀 알아 주세요... 미애엄마도 이제는 아버지 모시고 살고 싶다고 그러자나요."

"그래요. 저희랑 같이 가세요.... 제가 돌아가신 어머님보다는 못해도 그래도 아버님 잘 모실게요... 미애, 미진이도 아버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어허....괜찬대두.....그래, 좀 더 있다 가마... 내가 더 늙어 힘 없을 때는 너희들이 오지 말래도 갈터이니...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팔팔하다. 애비 너 나 하구 팔 씨

 름 한번 해보자, 네가 이긴다면 생각해 보마...."

"어이구 아버지도...아무리 그러신다해도 이제는 아버지 보다는 내가 더 쎌걸요?"

"어?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좋아요."

"어마? 이이는.....아버님을 어떻게 이긴다고..."

 하며 남편을 향해 눈을 흘기며 시아버지가 모르게 눈을 끔벅거렸다.

"자~아...이리 와 봐라. 나하구 팔 씨름 해보자."

"참....아버지도.....이제는 제가 이기죠."

"허..길고 짧은건 대 봐야 알지...나도 아직은 힘이 있다고 보니까...."

잠시후에 마루에 널찍한 상이 올려지고 그 위에 아버지와 아들의 팔 씨름이 벌어졌다.

"여보, 당신이 이기셔야 해요. 그래야 서울로 아버님을 모실 수 있잖아요."

"암! 걱정마....이제는 내가 이길 수 있을거야...."

"허허허...큰 소리는... 자 잡아보자."

"네"

원제 영감과 아들인 동주가 팔을 붙들고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잠시후에 동주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하며 이마에 힘줄이 불끈불끈 나오기 시작했다. 

"어..어..애개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용을 쓰던 아들의 입에서 비명아닌 비명이 나오더니 조영감이 힘을 쓰자 슬그머니 넘어간다.

"아유~당신, 아버님보다 못해요?"

"그러게....아직도 아버지는 나보다 더 건강 하시나봐..."

"아가, 아범 나무라지 말아라...내가 지금도 팔씨름 하나만은 젊은사람 한테도 안진다."

"역시...우리 아버지는 장사셔..."

"아버님! 이제 팔씨름도 끝났으니 저희와 서울로 가셔요...."

"허....지금은 안된다니까...그런다."

"아버지, 그럼 언제 올라 오실래요? 그거라도 알려주세요."

"허~참....허...."

"그래요! 아버님, 오늘 못 가시면 날짜라도 정하세요. 저희는 진즉 아버님 방도 준비해 놓고 있어요."

"방을 준비해?

"네!"

"아니? 너희 집에 방이 세개 뿐일텐데....."

"네~아버님! 미애하구 미진이가 같이 한방 쓰겠데요. 아버님 모셔 오겠다니까 저희들이 그러네요."

"엥? 아니다. 애들이 공부하려면 책들도 많고 그러던데...따로 방을 써야 하겠던데..."

"괜찮아요. 아버님....."

"맞아요. 아버지"

"흠!.....지금 너희들 사는 아파트가 몇평이냐?"

"네?"

"34평이에요."

"지금 서울에서는 그 정도 하면 얼마나 하냐?"

"아버지 뭐가요?"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말이다."

"글쎄요......4억5천에서5억정도 할꺼에요."

"그래?..음...그럼 방 4개 있는 집은 몇평이나 하냐?"

"우리단지를 보면 52평이던가 53평인가 할꺼에요. 왜 그러세요? 아버님..."

"아니다. 아무래도 나하구 같이 살려면 집이 좀 넓어야지....참 집이 넓으면 어멈이 고생하겠구나...청소 하려면....허허허..."

"........"

"너희들 정성이 그렇다는데 내가 안 올라 갈 수도 없고.....올라가면 애들하고 집도 좁을 것 같고......."

"아니에요, 아버님....."

"그래 내가 한 4억 줄테니까 집을 방 4개있는 걸루 바꿔봐라."

"네?"

"아버님 정말요?"

"허허허....그래..."

"아버지..........죄송해요. 제가 못나서 지난번에도......."

"아니다...허허허.."

"그래요...지난번 아범일로 아버님이 힘드셨자나요."

"걱정 말거라...내가 내일부로 돈은 올려 보내마 집을 알아 보거라."

"네!"

"고마워요. 아버님!..."

아들과 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지 고개를 숙인다.

"허~~쯧쯧...그만한 일을 가지고....."

"......"

"여보, 우리 단지에 있는 56평짜리 아파트 한번 봐 봐요. 어젠가 그젠가 누가 급하게 내 놓는다는 얘기가 있던것 같은데 나하고는 관련(關聯)이 없는 얘기라서 관심없이

 들어서 확실한건 모르겠어요."

"그래 한번 알아보자구....아버지, 그럼 제가 다시 집 마련해서 이사(移徙)하구 방까지 다 준비해서 전화(電話)드릴게요."

"허허....그래 일간 내가 올라 가마....."

"정말요? 아버님?

"그래, 내가 여기에 벌여 놓은 일은 없지만, 그래도 정리(整理) 할게 꽤 되니까 그런것 저런것 정리(整理) 하고 보면 두어달 후에는 서울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여 올라 가거라 내 걱정은 말구......"

"네, 그럼 아버님......저희는 아버님 말씀만 믿구 올라갈게요."

"그래라."

아들 내외(內外)가 자가용(自家用)으로 멀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다 보던 조영감은 머리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자식들이 원하는대로 서울로 가야하는건지 아니면 여기에 더 있어야 하는건지.......

서울에 간다고해도 여기보다 더 편할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자식의 집에 얹혀사는게 어찌보면 더 불편(不便)할 거 같아 여지껏 고집(固執)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고, 또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財産)을 유산(遺産)으로 물려 받고 싶

어서 서로가 모시겠다고 하는 것을 모르는 조영감이 아닌 것이다.

여기에 있다고 해도 별 불편(不便)한 점은 없었다.

아니 더 편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살람살이야 밥과 빨래와 집안 청소(淸掃)까지 다 해주는 42살 먹은 과부(寡婦)인 공주댁이 있었으므로 걱정할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집안살림뿐 아니라 조영감의 정욕(情慾)까지 해결해 주며 자기의 성욕(性慾)도 해결(解決)하는 공주댁인 것이다.

공주댁이 조영감의 집에 파출부(派出婦)같이 드나들며 살림을 봐주게 된 동기(動機)는 조영감의 마누라가 시름시름 앓을 때 부터였다.

자식들은 전부 결혼(結婚)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어서 조영감의 아내가 아파서 들어 눕게되자 살림을 봐 줄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조영감이 아픈 마누라 수발(手發)도 들고 하였지만, 그게 하루이틀이지 조영감 혼자서 밥하는 것과 설겆이,또 빨래하는 것 등등 모든것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많이는 짓지 않았지만 농사(農事)도 지었으므로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勘當)을 하지못해 사람을 들이게 되었었다.

그래서 공주댁을 파출부(派出婦) 형식(型式)으로 들여 살림을 맡겼다.

아내는 아파 누운지 두어달만에 그만 눈을 감았다.

자기한테 엉겁결에 강간(强姦)을 당하고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만 보고 살겠다고 맹세하며 따르던 아내, 가진거 없어도 절대 포기 못한다며 자기를 따랐고 결국

 부모의 승락(承落)을 받아내 결혼(結婚)을 하게 됐을 때 환하게 웃던 아내, 자기와 살면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낳아 주었던 아내가 세상을 뜨자 조영감은 한(限) 많은

 후회(後悔)가 밀려 들었다.

무척이도 아내의 속을 썩이며 오입질을 하고 다녔던 것이 후회(後悔)가 되었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 좀 더 사랑해 줄걸 하는 후회(後悔)였다.

여기는 새로운 행정수도(行政首都)로 정해진 충청남도(忠淸南道) 00지역 부근에 있는 농촌마을이었고, 마을에서도 알부자로 소문난 조영감 집이었다.

지금 조영감 집에 서울서 사는 큰아들 내외가 내려와 5년여전에 상처(喪妻)하고 홀로 살고 있는 자기 아버지를 서울로 모셔 가겠다고 내려와 몇시간 째 조르다 조영감의

 반승락(半承落)을 얻고서야 서울로 올라 간 것이다.

조영감이 큰아들 내외의 속셈을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몇번이나 서울로 모셔 가겠다는 것을 마다하고 여태껏 버티며 있었던 것이다.

조영감은 삼남매를 두었다.

큰아들은 42, 두번째로 낳은 딸은 35, 둘째아들이자 막내는 32, 모두다 서울서 살고 있었다.

그 동안 삼남매가 번갈아 내려와서 서로 자기가 모실테니 자기들 집으로 가자는 걸 뿌리치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들 자기 아버지의 재산(財産)을 노리고 서로 모시겠다는 걸 모를 조영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큰아들인 동주는 시골에서도 공부를 꽤 한 덕분에 서울에 있는 S대를 들어 갈 수 있었고, 3학년 때 일년 후배(後輩)인 지금의 아내를 축제(祝祭) 때 후려서 보지를 개통

(開通)시키고 임신(姙娠)을 시킨 바람에 아내가 졸업(卒業)도 못하고 결혼(結婚)하므로 아내한테 졸업(卒業)도 못하고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結婚)을 하게 됐다고

두고 두고 원망(怨望)을 듣는 중이었다.

큰아들인 동주도 아내의 처녀를 가졌다는 게 뿌듯했지만, 처음 성관계(性關係)를 가진 아내가 임신(姙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버지를 닮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었다.

대학(大學)을 졸업(卒業)하고 친구들은 한참 뻗어 나가는 대기업(大企業)들에 취직(就職)을 한다고 할 때 동주는 행정고시(行政考試)를 합격(合格)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한 뒤 공무원(公務員) 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십여년이 지나고 보니 친구들은 다 대기업(大企業)에서 잘 나가는 축에 들어서 차장(次長)이니 부장(部長)이니 하며 돈을 펑펑 쓰는 것을 보니 자기가 선택한 공

무원(公務員) 생활에 회의(懷疑)를 느꼈었다.

거기다 친구들은 만날 때 마다 한 마디씩 던지는 말이 비수(匕首)처럼 가슴에 파고 들었다.

"야! 동주야 이넘아, 그 놈의 공무원(公務員) 때려 치아뿌라. 거거 애들 사탕값 밖에 안되는거 받음서 어케 일을 하노....."

대학교(大學校) 다닐 때도 저보다 학점(學點)을 못 받고 학생운동(學生運動)이다 뭐다 하고 다니던 넘들이 이제는 이사(理事)를 바라봅네 뭐하네 할 때마다 비위장이 틀

어졌던 것이다.

거기다가 도와 줄테니 사업(事業)을 해보라는 친구의 꼬드김에 과감히 사표(辭表)를 던지고 공무원(公務員) 생활를 청산(淸算)하고 한창 잘 된다는 소위 명품(名品)이라

는 사치품(奢侈品)을 수입輸入해다 파는 오퍼상을 시작하였다.

사업(事業)을 시작하면서 아버지에게 원조(援助)를 청했다.

"아버지, 정말 이 사업(事業)은 괜찮아요. 또 잘 아는 친구가 도와준다고도 했구요."

"친구 믿고는 사업(事業) 하지 말아라. 동업(同業)해가지고는 안 망하는 사업(事業) 없다더라."

"동업(同業)이 아니라 그냥 친구가 도와 주는 거라니까요."

"도와줘?...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이라고 친구라고 그냥 도와 주겠냐? 어림도 없을 것이다 어림도 없어....."

 하시며 적극적으로 말리시는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원조(援助)를 청하러 가서는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경우가 되어 돌아온 뒤 아파트를 저당(抵當)잡히고 퇴직금(退職金)

과 그 동안 모아 놓았던 돈으로 사업(事業)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처음엔 정말 잘 되었다.

물건이 없어서 팔지 못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사람은 욕심(慾心)에 눈이 어두워지면 한치 앞도 안보이는 법이다.

물건이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팔려 나가며 돈이 불어나는게 눈이 보일 정도가 되자 자기의 돈 뿐만 아니라 동생들의 돈과 친구들의 돈까지 비싼이자를 주겠다며 끌어모

아 물건을 사다 창고에 쌓았다.

더구나 경험(經驗)없는 관계로 처음 한두번은 친구가 중요한 계약(契約) 같은 것은 같이가서 봐주기도 하고 어떻게하면 된다는 코치까지 해줘서 쉽게 할 수가 있었지만,

 할 때마다 친구를 끌고 다닐수도 없고 또 자기도 이제는 어느정도 알것같아 끌어모은 돈을 가지고 한꺼번에 많은 주문(注文)을 했던 것이었다.

허나 IMF가 터지자 모든게 허사(虛事)가 됐다.

수입(輸入)해다 놓은 물건은 팔리지도 않았고, 거기다 외국 상대는 반품(返品)은 절대불가(絶對不可)라며 잔금(殘金)을 빨리 보내라는 독촉(督促)에다 보내지 않으면 가

만두지 않겠다는 위협(威脅)까지 서슴없이 해 대는 통에 결국은 돈을 보내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게 되어 송금(送金)을 하게 되니 1달러당 800원 하던 환율(換率)이 1600

대까지 올라버리니 가만히 앉아서 돈을 배로 물어줘야 하게 되었고 더구나 물건을 어떻게라도 팔기위해 보세시장에 내 놨더니 전부 모조품(模造品)이라며 심지어는 쓰레

기라는 말까지 듣고는 절망(絶望)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집은 경매(競賣)로 넘어가게 되고 수입(輸入)해다 놓은 물건은 쓰레기가 되었고, 돈을 갚지 못하면 결국은 감방(監房)으로 가게 되었으니.....

동주는 죽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서 변통(變通)한다는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길이 없었다.

고향에 사시는 아버지에게 말을 해 본들 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절대 땅은 안 파실분이었다.

또 있는 논, 밭을 판다고 해봐야 몇 푼이나 손에 쥘지 알수도 없지만, 설혹 땅을 다 판다 해도 빚을 갚기에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결국은 죽는 수 밖에 없다고 결심을 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나 뵙자는 마음으로 고향으로 내려오면서도 동네 사람들에게 창피하여 밝은 대낮에는 올 수가 없었다.

조영감 큰 아들이 쫄닥 망했다 하는 소문이 고향동네에도 쫙 돌았을 것인데, 공무원(公務員)으로 잘 나가던 때는 눈 아래로 깔보던 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혹시라도 만나

는게 동주는 두려웠다. 

"아버지...."

대문 밖에서 아버지를 부르는 동주는 아버지의 만류(挽留)를 듣지 않았던 자기의 불찰(不察)을 땅을 치고 후회(後悔)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네가 어쩐일이냐? 이 늦은 밤중에...."

조영감은 방에서 한잠을 자고 일어나 불끈 솟은 아랫도리 좆 때문에 며칠 전에 만나서 먹은 영험(靈驗)하기로 소문이 짜~하게 난 계룡산 처녀보살(處女菩薩)이라는 년의

 털 많고 좆을 쪽쪽 빨아대는 보지를 생각하는 중에 갑자기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에  뒤이어 아들 목소리에 깜짝놀라 벗었던 옷을 걸치는 둥 만둥 하며 대문간으로 나왔

다.

빗장을 빼고 대문을 열자 골목을 비추는 외등 불빛아래 깍지않은 더부룩한 수염에 후줄그래한 옷을 입은 큰아들이 서 있었과, 타고 온 승용차는 저만치 서 있었다.

방안으로 아들을 데리고 들어온 조영감은 울먹이며 자초지종을 얘기를 하는 큰아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는 쓴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을 살리자면 십억에 가까운 돈을 해 내놔야 할 수 밖에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라,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까....... 사람이 산길을 가다보면 꿩도 보고 매도 보는 법이니라. 행여라도 쓸데없는 맘은 먹지 말아라 내가

 다 알아서 처리 할테니까......."

 하며 아들을 다둑거린 조영감은 속이 애리나 쓰리나 자식일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했던 것이다.

결국은 조영감이 들어서 그 많은 빚을 해결했다.

그때까지는 자식들이나 고향마을 사람들이나 조영감이 알부자 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겨우겨우 자식들 대학보내고 밥이나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로 알고 있던 시골 사람들이 땅 한뙈기 팔지 않고도 십억에 가까운 빚을 다 해결(解決)한 것을 보고는 모두들

혀를 홰홰 내 둘렀다.

"도데체 조영감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해 왔디유..."

"글쎄 내가 아는감....하기야 돈이 많기는 많은 모양이여~어....읍내 다방에 반반한 기집애만 들왔다 하믄 가만히 안 놔둔 모양이니께..."

"어떻게유...."

"아~글씨...돈 싫다하는 년 봤던가암....돈으로 물건으로 아주 작살을 내분가비여..."

"허~이그....키도 쬐그마하구 몸땡이도 얄비얄비 한 조영감이 물건 하나는 실할가 보내유~~"

"허긴...물건 하나는 명물이여...좋더만...그게 아주 물건은 물건이여~어....거 머시냐...대가리 부분도 아주 멋들어지게 생겼어~~~"

"어케 생겼는디유~~"

"그게 어케 생겼냐면~~~"

 하며 조영감의 자지를 본 같은 친구가 질시반 부러움반이 섞인 목소리로 조영감의 좆을 설명한다.

조영감!

이름은 조 원제, 고향은 전라도(全羅道) 승주 조계산 자락이었다.

태어난 때는 1947년 해방(解放)이 된 뒤 정부가 아직 세워지기 전의 어수선 할 때였다.

그 때는 세상이 어수선하고 더구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여순반란사건(麗順叛亂事件)이 일어난 곳이라 모든게 불확실한 때였었다.

원제의 단편적(斷片的)인 기억으로는 집안이 꽤 넓었던 것으로 생각되였고, 집안에 많은 사람이 있었으며, 자기를 도련님이라 불렀던 길게 땋아 내린 머리에 빨간댕기를

 맨 예쁜 처녀가 희미(稀微)한 기억(記憶)속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6.25사변이 일어난 후 원제가 일곱살 때인지 여덟살 때인지 확실(確實)한 때는 모르지만, 부모님은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었다.

휴전협정(休戰協定)이 조인(調印)된 후 어지러운 때에 어린 원제만 남겨두고 부모님들은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은 인민군(人民軍)에게 부역(負役)한게 경찰에 탄로 나 끌려가 총살(銃殺)을 당했다는 둥, 빨치산으로 지리산(智異山) 속으로 들어 갔다는 둥, 빨치산에게 끌려가

다 사살(射殺)되었다는 둥, 여러가지 설(說)이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 빼 놓고는 아무도 몰랐다.

당사자인 원제도 부모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혀 몰랐다.

다만, 크면서 얹혀살던 오촌당숙의 말 속에서 어느정도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원제네 집은 일제치하(日帝治下)에서도 꽤나 살던 집안이었다.

순천 승주뿐 아니라 구례와 여천쪽에도 꽤나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소작농(小作農)을 거느리고 사는 부자였던 것이다.

그런 덕분에 원제 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까지 졸업하고 돌아 온 그때의 말로 소위 인텔리였던 것이다.

허나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공산주의(共産主義)에 빠져 든 원제 아버지는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산당활동(共産黨活動)을 시작하여 일본 경찰의 요주의 인물로 지목

되어 비밀경찰(秘密警察)이 항상 뒤를 따르면서 감시하는 사찰(査察) 대상이 되므로 인해 그 뒷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원제 할아버지는 혹시라도 외아들이 징용으로 끌려

 나가지 않을까 노심초사(勞心焦思) 하며 주위사람들이 친일파(親日派)라 욕하는 걸 알면서도 경찰서(警察署)와 헌병대(憲兵隊)에 많은 돈을 상납(上納)하며 친분(親分)

을 쌓았고, 아들을 하루라도 빨리 장가를 보내려고 했었다.

그러나 원제 아버지는 원제 할아버지가 일찍부터 유림(儒林)의 친구 딸과 정혼(定婚)했다며 일본에 가기전에 혼인(婚姻)을 하고 가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않아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결혼(結婚)을 하겠다는 핑계를 대고 일본으로 가 버렸던 것이다.

고향인 승주에는 조씨들이 자자일촌을 이룰정도로 많은 일가가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돌아가신 숙부의 외아들인 망나니짓을 하는 사촌형님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원제 할아버지는 죽은 동생이 남긴 일점혈육(一點血肉)이라고 조카를 무던히도 아끼고 돌봤던 것이다.

어려서 클 때부터 너무나 망나니짓을 하고 사고를 치는 통에 모든 동네 사람들이 저 놈은 사람도 못 될놈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비웃는 것을 알면서도 모든 사고의 뒷

처리를 해 왔던 것이다.

남의 처녀를 겁간(劫姦)한 통에 그 처녀의 일족이 온통 들고 일어나는 것을 소문 안나게 쉬쉬 하며 돈으로 무마를 시키고 헌병대(憲兵隊)에 끌려가게 된 것을 돈을 써서

 빼내고 하다보니 거기에 소요되는 재산도 무시 못할 정도로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한번 맛을 들인 일본 헌병대(憲兵隊)에서는 무슨일만 터지면 괜시리 잡아들이는 통에 그 조카로 인해 집안이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이다.

혹시나 결혼(結婚)을 하면 괜찮아 질까 하여 매파를 내 봤지만, 딸을 주겠다는 데가 하나도 없어 가난한 집의 딸을 돈으로 사다시피 하여 결혼(結婚)을 시켰다.

결혼(結婚)하고 두어달은 조용하던 조카가 무슨 사업(事業)을 한답시고 자본(資本)을 대 달라고 억지를 쓰며 떼를 쓰는 통에 어쩔수 없이 조카를 위해 땅을 팔아 상당히

 큰 돈을 대 주었더니 그 돈을 받은 후로 결혼(結婚)한 여자를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원제 할아버지는 조카가 없어지자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면서도 눈 앞에 보이지 않는게 시원섭섭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돌아 온 조카부부의 모습은 완전한 거지꼴이었다.

그 꼴을 보다못한 원제 할아버지가 다시 조카를 받아들여 데리고 있는데 한달여가 지난 뒤에는 전과같이 못된 버릇이 나와 그게 원제 할아버지의 심화병(心火病)이 되고

 말았던것이다.

망나니 친구들과 어울려서 남의 물건을 빼았아 술 처먹는 건 다반사요, 홀로 있는 과부들 한테 강제로 올라타서 보지에 좆물을 싸는 통에 그 중에 임신(姙娠)이 된 과부

(寡婦) 한 사람은 목메어 자살까지 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들의 원성(怨聲)을 사는 거였다.

그런 조카를 위해서 뒷 수습을 하게되니 조카가 보이면 역정을 내는 건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조카는 그게 또 못마땅하다해서 자기 뒤를 돌봐주는 백부가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촌동생은 공산당인가 뭔가에 미쳐 있을테니 백부만 죽는 다면 이 재산이 자기것이 될 거라는 야심을 품고 몰래 음모를 꾸몄다.

조카며느리라는 여자도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망나니 짓을 하는 남편의 음흉한 계획이 성공하면 이 많은 재산이 자기들 것이 되리라 믿고 백부의 약을 다리면서 농간

을 부려서 병이 갑자기 더 위중(危重)하게 된 것이었다.

아들을 보고 싶다며 전보를 치라는 백부의 명령을 거짓으로 전보를 쳤다며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그만, 그게 들통이 나서 집안에 발걸음을 하지 말라는 축객령(逐客令)까

지 받고쫒겨 날 수 밖에 없었다.

원제의 아버지는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다급한 전보에 집으로 돌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電報)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병석(病席)에 누운 아버지가 곧 돌아 가시게 될 정도로 위중(危重)하였다.

원제 아버지는 며느리라도 보고 죽겠다는 아버지의 소원을 듣고 어쩔 수 없이 어려서 정혼(定婚)했다는 처자와 황급히 결혼(結婚)을 하였다.

결혼(結婚)을 한 뒤 얼마 안돼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삼년 시묘(侍墓)살이를 하고 보니 어느덧 고향에서 정착을 하게 되고 말았다.

삼년의 시묘살이를 한 후에 집안을 살펴보니 그 많던 재산은 자기를 가르치고 징용을 가지않게 하며 하나있는 사촌형의 뒷 바라지를 하다보니 거의가 다 없어져 버렸고,

또 부자였다 하나 일제 말기의 식량공출(食糧供出)이 극심(極甚)하여 많은 식구들이 겨우 밥이나 굶지않고 지낼 정도 밖에 되지않았다.

일제말기에 하루 세끼 굶지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만해도 큰 부자들이나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구나 원제는 일본에 있을 때 부터 공산주의(共産主義) 이상(理想)에 심취(深醉)하여 재물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가난하여 굶주리는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많이 베풀

어 자기 아버지가 주위사람들에게 들었던 원성(怨聲)을 많이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에서 패배(敗北)하는게 명확(明確)해지자 일본놈들의 만행(蠻行)은 극에 달하게 됐다.

원제 아버지에게 많은 돈을 먹고 원제와 사촌형을 징용(徵用)에서 빼 주웠던 것을 패망(敗亡)하기 1년여전 쯤에 징용(徵用)에 나오라는 통첩(通牒)이 왔다.

그걸보고 원제 아버지와 망나니 사촌형은 동네 사람들 몰래 지리산(智異山)으로 숨어 들어 일본이 항복(降伏)하자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 다음해에 원제가 태어났고, 사촌형도 지리산(智異山) 들어가기전에 난 아들과 원제가 태어난 후 1년뒤에 태어난 딸 다음으로 아이들을 줄줄이 낳았다.

부자는 망해도 삼년먹을 것은 있다라는 속담처럼 원제집은 많은 재산을 없앴다고 해도 해방(解放)된 이듬해부터는 집에 머슴을 둘이나 두고 농사를 짓을 정도로 아직도

남은 재산이 있었지만, 5촌 당숙집은 본래부터 재산이 없는데다가 아이들도 줄줄이 태어나니 원제집에 늘 손을 벌리는 형편이었다.

원제 아버지도 사촌형이라 도와줬지만, 도와주는 것도 한두번이지 모든것을 대 줄 수 없는거라 나중에는 도와주지를 않았다.

원제 5촌당숙은 그것을 속으로 앙심(怏心)을 품고 있었다.

여순반란사건(麗順叛亂事件)이 일어나고 여수,순천이 그 중심지가 되자 공산주의활동(共産主義活動)을 한 원제 아버지가 그 중심에 서게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전혀들어나지 않았지만, 모든게 그와 또 그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지시에 움직여졌다.

그러다 거의 반란(叛亂)이 진압(鎭壓)되고 수사망(搜査網)이 좁혀오자 원제 아버지는 자기 사촌형에게 집안 재산과 원제어머니와 원제를 부탁하고 다시 지리산(智異山)

속으로 숨어들었다.

낮이면 숨었다가 밤이면 지서나 면사무소,군청,경찰서(警察署)등을 습격하여 군경을 괴롭히며 빨치산 활동을 하던 중 6,25가 터지고 전라도(全羅道)가 인민군(人民軍)의

 수중에 떨어지자 원제 아버지는 다시 나왔다.

공산당(共産黨)들이 자기들 세상이 왔다하고 설치며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부자라고 죽이고 경찰가족이라고 죽이고, 군인가족이라고 죽이는 것을 보고 원제 아버지는 통

탄(痛嘆)해 했다.

자기가 생각한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이런것이 아닌데 하며 사촌형이 같이 휩쓸리려하자 

"형님, 이건 아닙니다. 절대 이렇게 되서는 안되는데......형님은 여기에 참가하지 마십시오."

"아니 동상, 나도 그 뭐시냐......아...마저.... 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에 충성(忠誠)하고 싶은디 왜 안된다 항가? 자네만 출세 해뿔려고?

 너무한당께...너무해..."

"형님, 그게 아니라...."

"듣기 싫당께...남도 아닌 자네가 하나 있는 형에게 이렇게 섭섭하게 대할 줄 몰랐응께..."

"그게 아닙니다. 형님! 제가 보기엔 이 전쟁은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아니? 뭐시다구? 왜 못 이긴당가? 지금 콩알만큼 남은 부산(釜山)만 점령하면 통일(統一)이 될건디?"

"........"

"통일(統一)만 되면 자네도 못해묵어도 전라도(全羅道) 도지사(道知事)는 문제없이 해 묵을 수 있을텐디? 안그렁가?"

"형님! 제발 제 말좀 들으세요. 이건..이건..정말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미국이 참가한 전쟁은 못 이깁니다. 그 지독한 일본놈들도 미국한테 졌습니다."

"아~ 그란께 우리가 해방(解放)이 됐제"

"형님! 제발요.........사실은 지금 우리는 고립이 됐어요."

"뭐시라?..고립?...그 말이 무신 뜻이제?"

"지금 우리 인민군(人民軍)의 허리가 잘렸다는 뜻입니다. 미군이 인천에 상륙(上陸)해서 서울로 해서 평양(平壤)까지 점령(占領)했다고 하네요."

"상륙(上陸)? 점령(占領)? 난 그런 말은 잘 모릉께 쉽게 풀어서 말해보소."

"한마디로 지금 여기에 내려와 있는 우리 인민군(人民軍)의 뒤를 대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

"모든 보급품(補給品)을 자급자족(自給自足)해야...자급자족(自給自足)이라는 것은 총이나 총알이나 양식을 스스로 구해서 싸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엥?..... 뭐시라?...."

"그러니까 우리 인민군(人民軍)은 가지고 온 총알이 떨어지면 경찰(警察)이나 국방군(國防軍)한테 뺏앗아 써야 하는 어려운 형편에 처하게 됐단 말입니다."

"......."

"그러니 형님은 괜히 나서지 마시고 죽은 듯이 조용하게 계십시요. 우리 인민군(人民軍)이 전열(戰列)을 재정비(整備)해서 다시 내려와서 통일이 되면 형님이 마다해도

 내가 형님을 천거(薦擧)해서 우리 인민공화국(人民共和國)을 위해 일하게 하겠습니다."

"......"

"잠시동안 조용하게 있으면서 원제하고 원제어머니를 부탁하겠습니다."

"그랴...그랴...많이 배운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믄 그라겠제....알겄네...."

"형님! 우리는 지금 사령부(司令部)를 지리산(智異山)으로 옮길겁니다. 혹시라도 나를 만나시려면 옛날 형님하고 같이 숨어있던 곳에 오시면 연락이 될겁니다."

"알긋네...그람 먼 일이 있으면 연락하소....그라고 제수씨하고 원제는 걱정 붙들어 놓소. 내가 잘 보살필텐께....."

"예! 형님! 전 형님만 믿고 이만 갑니다."

"그러소...몸 조심허고....."

그게 원제 아버지가 자기 고향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자기 사촌형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원제는 그 때부터 아버지를 보지 못했고, 얼마 후에는 어머니까지 소리 소문없이 사라져 버리고 원제는 오촌 당숙집에서 얹혀살며 육촌형제들에게 구박을 받으며 힘들게

 생활을 했던 것이다.

원제가 얹혀살던 오촌당숙집에는 원제보다 나이가 세살 많은 육촌형과 한살어린 육촌여동생 그리고 줄줄이 있는 육촌동생들 틈에 끼어서 하루 하루를 소처럼 일을 하며

지나고 있었다.

말은 육촌 형제간이라고 했지만, 한마디로 깔담살이라 해야 맞았다.

원제는 육촌형제들과는 달리 학교 갈 나이가 넘었어도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날마다 소를 뜯기고 망태에 소 먹일 풀을 하나가득 베어와야 하거나 아니면 지게를 지

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 와야 겨우 배고픔나 해결 할 수 있는 보리밥이나 고구마 삶은 것을 먹을 수 있었다.

어린나이에 큰 망태에 어른들도 무거워 할 정도로 많은 풀을 베어넣고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히고 망태를 지고 갈 냥이면,

"쯧쯧쯧....그 많은 재산을 홀랑 묵어부렀으믄 아그라도 고생을 안시켜야재.....쯧쯧...엄니 아부지가 어디 가분지도 모른께..에린 니가 고생헌다...."

원제가 어려서는 어른들이 하는 말이 무슨뜻인지 모르고 그냥 귓등으로 지나쳤지만, 어느정도 철이 들고 부터는 동네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오촌당숙이 자기집 재산을

 차지하였다는 어렴풋한 짐작으로 알았다.

허지만, 그런걸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오촌당숙집에서 쫒겨날 판이었다.

더구나 여기서 쫒겨나며 갈곳이 없는 원제였다.

눈치는 챗지만 알고도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없었고, 설령 안다고 해도 이제는 오촌당숙 앞으로 변경이 다 되어버린 땅들을 되찿을 방법도 어린 원제에게는 없었던 것이

다.

그저 시키는 일 하면서 배고프지만 않게 먹을것을 주면 원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육촌형이라는 녀석이나 동생들.....하나 같이 원제를 육촌형제가 아닌 머슴으로 대했다.

자기들이 무슨 아쉬운 소리를 할 때는 오빠 또는 형이라 부르다가도 그런일이 없으면 바로 원제야 하고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이름만 불러줘도 다행이었다.

특히, 육촌형되는 정제는 원제를 부를 때 언제나 욕부터 나왔다.

그러다가도 원제가 조금이나 늦게 대답하면 무수한 주먹세례가 퍼부어졌다.

당숙모란 여자도 씨발놈, 잡놈이 입에 달렸고, 당숙이란 인간도 원제를 눈의 가시같이 여겼지만, 워낙 동네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겉으로는 드러내지를 못 한것 뿐이었

다.

원제는 항상 배가 고팠다.

머슴처럼 고된 일을 할 때에는 일을 시킬 욕심으로 배 부르게 먹여 일을 시켰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항상 허기를 면할 정도의 그것도 자기들이 먹다남은 식은밥이나 고

구마, 감자 등을 주었고, 잠자리도 소 외양간과 함께 붙어있는 헛간방이었다.

원제는 손에서는 언제나 일감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름철에는 동이 트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 들에 나가 소먹일 풀을 한짐 베어 온 뒤에야 밥 한술 먹으면 논이나 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 했고, 겨울철에는 일찍 일어나 쇠

죽을 써서 소에게 먹인 뒤 마당을 깨끗이 쓴 다음 아침밥을 먹은 뒤에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야했다.

물론 여름철에도 땔감마련은 원제의 고정 일감이었다.

원제는 겨울철에 산에 올라 나무를 하는 것보다 여름철이 훨씬 좋았다.

여름철이면 먹을 것을 찾을 수도 있었지만 겨울철은 춥기도 했고 더구나 먹을 것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세월이 흘러 원제가 16살이 되었다.

나이는 16이었으나 너무나 배 고프게 살아온 탓에 덩치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산에 올라가면 재 빠른 솜씨로 지게에 나무 한짐을 해 놓고 난 다음은 산을 돌아 다니며 뒤지는 게 일과였다.

산에는 여러가지 먹을게 많이 있었다.

도라지, 더덕, 산딸기, 마, 등등 캐서 먹을게 많았으므로 원제는 나무하러 산에 오르는게 좋았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그날도 원제는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었다.

평소와 달리 조계산 깊숙히 올라가 나무를 해서 지게에 받쳐놓고 이곳 저곳으로 풀숲을 뒤지며 나가다 크게 환호성(歡呼聲)을 질렀다.

처음으로 온 그곳은 아주 큰 딸기나무에 딸기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다.

더구나 얼마나 굵은지 원제 오른손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은 딸기가 있었던 것이다.

원제는 정말 배부르게 딸기를 배가 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딸기나무 가시에 손목이 찔리고 긁혔지만, 그것도 모르고 딸기를 따 먹다 어두워진 줄도 모를 정도였다.

"아! 배부르다 내일도 여기로 와야지....."

부른 배를 두두리며 나무짐을 한짐 가득지고 내려오는 원제는 정말 횡재를 만난것 같았다.

당숙집에 나뭇짐을 지고 들어서자마자 당숙모의 욕설부터 들려온다.

"저저..잡 새끼보소 나무 한짐 해오랬더니 겨우 삥아리 눈물만큼 해가지고 옴스롱 캄캄한 밤에 들어오네."

원제는 하두 듣는 소리라 그저 너는 해라 나는 들으마 하는 심정으로 나무짐을 헛간으로 들여놓고 을심이가 차려다 준 밥을 먹었다.

을심이는 원제보다 한살적은 육촌동생인데 어렸을 적엔 원제를 놀리고 때리는 자기오빠나 동생들하고 같이 원제를 대했는데, 지금은 사춘기에 접어들어서서 그런지 옛날

처럼은 안했다.

그래도 원제를 무시하고 오빠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무슨일이 있어 원제를 찾을 때는 이름을 불렀다.

오빠와 동생들은 고등학교와 중학교, 국민학교(國民學校)에 다녔지만, 을심이는 국민학교(國民學校)를 졸업(卒業)한 뒤에는 집에서 있었다.

가시나는 국민학교(國民學校)만 나와도 된다는 당숙의 말 한마디에 을심이의 상급학교(上級學校) 진학(進學)은 끝난 것이다.

을심이가 국민학교(國民學校)을 졸업(卒業)하고 집에 있으면서 부터 원제에게 조금 더 고분고분해졌으나 쌀쌀한건 마찬가지였다.

다음날도 그 장소로 나무를 하러갔다.

역시 나무한짐을 빨리 해 놓은 다음 어제 따먹던 딸기나무에 와보니 몇개 달리지 않았다.

허기진 배에 딸기 몇개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고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았다.

이리저리 헤메다 큰 소나무가 숲을 이룬곳에 이르자 원제를 발길을 돌리다 이상한 풀을 보았다.

원래 소나무숲이 우거진 곳에서 먹을 만 한것은 송이버섯뿐인데 아직은 송이철이 아니었고, 더구나 송이버섯은 나는곳이 한정돼 있는 아주 귀한 것이었기 때문에 송이밭

을 발견하면 자식에게도 안가르켜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원제가 소나무숲에서 발견한것은 빨간열매가 달려있는 여태껏 보지못한 풀이었다.

원제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생전 처음보는 것이라 자세히 살펴보니 도라지나 더덕처럼 뿌리를 있는 풀 같았다.

일단은 파보자 하는 심정에 도라지나 더덕을 파기위해 나무로 만든 꼬챙이로 파 보자 위로 나온 줄기보다 아래로 갈수록 굵은 뿌리가 들어난다.

힘들게 나무꼬챙이로 파보니 생긴게 도라지 비슷하나 도라지보다 잔뿌리가 없는 편이다.

그거 한뿌리를 캐고 소나무숲을 나오다 다시 비슷한 풀이 보여 다시 캐보니 방금 캔것보다 훨씬 크다.

원제는 두개의 뿌리를 계곡에 졸졸 흐르는 물에 씻은 다음 먹기 시작했다.

도라지보다 더 쓰다.

허나 쪼르륵 소리가 나는 허기진 배속에는 아무것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다 먹어 채워야 했다.

쌉쓰름한 두개의 뿌리를 다먹은 원제는 나무짐을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 원제는 배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너무나 배가 아파 식은 땀을 흘리며 방 안을 네발로 기다시피 하였지만, 아프다고 소리칠 수도 없었고 소리친다고 해도 누구하나 들여다 볼 사람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배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평안했다.

그 뒤부터는 밥을 먹어도 언제 밥을 먹었냐는듯 허기지던 배고픔이 거의 가시다시피 되었다.

그러나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자고 일어난 아침뿐만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서는 자지 때문이었다.

산에서 캔 약초뿌리를 먹고 난 뒤부터는 절반이나 껍질을 둘러쓰고 있던 자지가 활딱 까져 귀두(龜頭)가 들어났고 시시때때로 용틀임 하듯이 서는 바람에 떨어진 삼베바

지구멍으로 불쑥 튀어나와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나 처녀들이 보고 얼굴을 붉히게 만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게 한번 솟아 오르면 좀처럼 죽지를 않았다.

원제는 그게 힘들었고 특히나 집에서 을심이를 보면 가슴이 울렁울렁 거리기도 하였다.

원제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렴풋이 그게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는 걸 느꼈다.

아마도 동네 사랑방에서 머슴들이 하는 이야기속에 줏어 들은 걸로 남자의 자지를 좆이라 하고 여자 보지를 씹구멍이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남자 좆을 여자 보지에 집어넣고 박아대면 기분이 좋아지고 그렇게 해서 여자에게 애기를 배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원제는 성인여자 보지를 보고 싶었다.

이제껏 어린계집애의 그것은 보았으나 성인여자 보지는 털도 많이 났다는 그런 소리도 들었고 해서 보고 싶었으나 그건 꿈에서 떡 얻어먹는 것 같은 허황된 일이었다.

누가 원제에게 옷을 벗고 보지르 보여주겠는가?

혹시나 술집 작부들 것을 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돈이 어디가 있겠는가?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머슴아닌 머슴 생활을 하지만 새경한푼 주지를 않는 당숙인데 그런 생각을 언감생심(言感生心) 품어나 볼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이넘의 자지는 시도때도 없이 불쑥거리니 원제는 죽을 맛이었다.

그러다 불쑥 솟은 자지 때문에 무지막지하게 혼나는 일이 생겼다.

그날도 아침부터 동네 품앗이 일꾼들까지 전부 당숙집의 밭일을 하는 날이었다.

더운 여름날씨에 삼베 바지 하나에 베잠방이 하나 걸치고 힘든 일을 하고 있었다.

날씨는 더웁고 땀을 흐르고 하여 땀에 절은 삼베바지는 덩치는 작아도 나이를 먹은 원제의 아랫도리 검실검실하게 돋아난 자지털을 거의 다 비칠 정도였다.

밭일을 하다가 점심때가 다 되자 품앗이꾼들의 점심밥을 머리에 이고 가져오는 을심이를 도와 밭 둑 가장자리 커다랗게 솟은 나무밑에서 밥과 국을 담은 소쿠리를 내릴

때 였다.

밥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국이 쏟아질까 두손을 소쿠리 가장자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오는 을심이를 바라보니 두 손으로 소쿠리를 잡느라 잛은 저고리섶이 위로 올라

가 이제 열다섯먹은 을심이의 불룩해진 유방(乳房)이 거의 다 보인다.

짧은 몽당치마 말기로 유방(乳房)을 감아 묶었지만, 두 손을 위로 올리는 바람에 치마말기도 밑을 내려오고 내려온 치마 말기를 위로 올릴 수도 없어 그런것이다.

그것을 본 원제는 소쿠리를 받아 내리며 급속히 부풀어 오르는 자지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을심이도 소쿠리를 내리며 원제 자지가 구멍뚫린 삼베바지 사이로 나오는 것을 보고 같이 얼굴을 붉히며 욕을 했다.

"씨발놈, 니 내 젖 다 봤제?"

"아..아닌디...안 봤는디..."

"잡놈, 니는 오늘 혼좀 나 보랑께..."

을심이의 그 말에 원제는 점심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 가는지 모르겠고, 오후 일을 어떻게 했는지도 몰랐다.

당숙이 화가 나서 자기를 때리면 아주 반을 죽일 정도로 맞고 살았기 때문에 맞는데는 이골이 낮지만서도 맞는 순간이 몸서리치게 싫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을심이가 하는 말,

"엄니, 원제 저 새끼가 내 젖보고 자지를 뽈딱 세우더랑께.."

"엉?..머시라고?...어따...저것도 숫컷이라고 좆대가리를 세와야.......여보!...여보!..."

"왜 그랴?"

"아.....저 베락맞아 디질놈의 새끼가 일심이년을 겁탈(劫奪)할라 그랬다 안하요."

"머라고?

"저 싸가지 없는 새끼가 일심이 젖을 만지고 그것도 좆이라고 세우고 난리쳤다 안하요."

"저런 저런...베라먹을 새끼....너 이새끼 죽어보랑께....저것이 키워준 은공도 모르고.... 아조 좆뿌랑데이를 콱 짖이겨 뿌려야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원제에게 작대기 세례가 퍼부어졌다.

맞으면서 원제는 빌었다.

"아재..아재..나..나는...."

말도 꺼내지도 목하고 맞았다.

늘 억울할 뿐이었다.

지게 작대기로 마구 때리던 당숙이 작대기를 팽개치더니 원제의 멱살을 잡아 질질 끌고 간 곳은 헛간이었다.

헛간으로 끌고 간 당숙은 원제의 삼베바지를 벗기고는 원제 자지를 잡아 옆에 있던 디딩방아 나무에 올려놓고 나무작대기로 마구 내리쳤다.

"악!"

뼈를 으스러뜨리는 듯한 통증(痛症에 원제는 까무러치고 말았다.

몇차례 내리치던 당숙도 원제가 까무러치고 자지가 뭉개지고 피가 터지자 매질을 멈췄다.

급하고 못된 성미라 마구 닥치는 대로 때렸다가 원제 자지가 피투성이가 되고 원제가 축 늘어져 움직이지도 못하자 겁이 났는지 부산하게 마누라를 불렀다.

"이봐! 이봐!..요리 와 보랑께"

"왜 그런다요?"

"이 새끼가 죽어부렀는가 움직이지를 않네"

"워메...으짤라고 그라고 패부렀소...그라고 죽으면...경찰서에서 잡어가 콩밥 믹인다고 그라든디....근다고 이렇게 때려 부렸소...죽어불면 큰일인디....."

"허..참..얼렁 깨깟한 헝겁이나 같고 나오소. 우선 피 나온디는 묶어가꼬 빙원에 데꼬 가봐야 쓰겄네."

원제는 삼십여리길을 대절한 택시에 실려 순천병원(順天病院)에 도착 해 치료(治療)를 받았다.

그날 저녁 불덩이 같은 열꽃에 신음하며 죽음에서 오락가락하다 살아났던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병원(病院)에 입원(入院)을 해 봤고 노동(勞動)에서 해방(解放)된 십여일만에 머슴살이나 다름없는 당숙집으로 돌아왔다.

상처난 자지 전체를 귀두(龜頭)부터 붕대를 감아 오줌구멍만 내 놓았다.

자지는 탱탱하게 부었고 오줌을 쌀 때마다 고통(苦痛)스러웠고 의사의 말로는 앞으로 자지가 제대로 발기(勃起)가 안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돌아올 때 의사가 준 소독약(消毒藥)으로 자주 소독(消毒)하라는 의사(醫師)의 말을 들은 원제는 엉기적 거리는 걸음으로 삼십여리의 길을 걸어 겨우겨우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집에 와서도 자지가 낳을 동안은 일을 할 수 없어서 놀고먹는 오랫만의 휴식(休息)이었지만, 마음만은 편하지 않았다.

더구나 더운 여름날이라 상처(傷處)난 곳이 소독(消毒)을 자주 하지만 화농(化膿)을 해 고름이 나와 건들이기만 해도 아팠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일을 않고 놀고 지내자 당숙모의 눈초리가 더욱 매서워지고 겨우 하루 한끼의 밥을 주는 형편이어서 일을 안 할수 없어 일을 조금씩 하게 되었다.

어린 원제였지만, 자기를 그렇게 패고 일만 시키는 당숙네의 행위에 진저리가 났고, 특히 육촌동생인 일심이한테는 꼭 앙갚음을 해 주리라고 입을 앙 다물었다.

일심이 고년을 내가 언제 봐도 가만히 안놔둘 팅께....

그렇게 무더운 삼복 더위는 지나가고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도 불어오자 더운 여름에 화농(化膿)된 상처(傷處)도 점점 아물어져 가서 상처(傷處)는 깨끗이 나았다.

허지만, 원제의 자지는 아주 울퉁불퉁한 상처투성이의 볼품없는 자지가 되었고, 그전처럼 발기가 되지를 않았다.

다치기 전에는 잠을 자고 아침이 되면 오줌보에 가득한 오줌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탱탱하게 발기(勃起)가 되던 자지가 전혀 힘을 받지 못해 축 늘어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오줌을 싸도 전처럼 앞으로 세차게 쭉쭉 나가지는게 아니고 바로 발 앞에다 떨구는 형편이었다.

천만다행으로 생각 되는게 무시로(無時--) 나와 옷을 적시지는 않는 다는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원제가 맞은것이 한동안 이야기거리였다.

"아~그것도 그라제...그렇게 무쟉스럽게 패도 된가몰라..."

"지새끼 같으믄 그라겄어?...아조 무식한 넘이제...."

"사실 따지고 보믄 그 재산도 원제 아부지가 없어지고 전부 지것으로 만든것이라는디 그 말이 참말인가 몰러?"

"쉿!..그런 말은 하지마소...혹시라도 그 인간 들으믄 아조 죽이네 살리네 난리 날것인께..."

"왜라?"

"언젠가 조성떡(댁)이 그 말을 해가꼬 아조 집안 난리가 나 부렀네... 그 인간 말종넘이 듣고는 도끼들고 찾아가서 집 기둥을 팍팍 찍으믄서 헛소리 하는 년 집구석은

 도끼로 찍어 없에야 한다고 난리쳤재"

"그랬다요?"

"그 인간이 난리 뒤에 갱찰하고 댕기믄서 어맨(엉뚱한)사람 많이 잡았재...그 뒤부터는 그 인간하고 상종을 안했는디....할 수 있다고 목구멍이 포도청인디....동생재산

 뺏어다가 지것으로 만들고 그것으로 동네 사람 입막음도 하고 그라다 본께 지금은 밥술이나 먹은 대접을 받고 있재"

뜨거운 여름날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 그늘 밑에 모여 있던 동네 노인들의 이야기였다.

"안녕 하셨어라우!" 

"오냐!"

"오냐, 논에 가 풀매고 온다냐?"

"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동북양반이란 동네 어른들이 원제가 지나가며 인사를 하자 인사를 받은 뒤 무슨 생각이 났던지 다시 원제를 불렀다.

"아야, 원제야..."

"야~?"

"너 자지가 잘 안슨다고 그라든디.....참 말이냐?"

"........"

원제는 그 말에 창피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서 뭐라고 대답을 못했다.

"진짜로 그란거냐?

".......야~~....."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대답을 듣던 동북양반이 다시 말 한다.

"그렇게 자지가 힘이 없으믄 오짐 싸기도 심들고 그랄것인디.....너 하수오(何首烏) 알제?

"야~~"

"그라믄 산에 댕김스로 오래 된 하수오(何首烏)나 거 머시냐?...에...맞다!!...그거 쌈지 구엽초(三枝九葉草) 한번 찾아보그라...고것이 오짐 잘 안나온데는 좋다드라."

"........."

"고것이 오줌발 약한디는 즉발이단다....알아 들었냐?"

"야~~"

"쌈지 구엽초(三枝九葉草)는 어뜨케 생겼는지는 알고?"

"야~~ 그거는 약초 뜯어서 파라 봤응게 알고 있구만이라...."

"그려 그려 그거 뜯어가꼬 하수오(何首烏)는 그냥 묵어도 되고 구엽초(九葉草)는 다른 약초(藥草)랑 같이 푹 데려 묵어도 된께 그렇게 하그라.... 그라먼 오줌발이 씨어

 질텡께..."

경험(經驗)많은 마을 어른의 말을 들은 원제는 산에 올라 갈 때마다 하수오(何首烏)나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등을 찾아 다녔다.

그러나 몇년 안된 하수오(何首烏)는 많이 발견하였어도 뿌리가 크게 덩어리가 될 정도의 오래 된 하수오(何首烏)는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래도 원제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산에 갈 때마다 헤메고 다녔다.

승주의 조계산 구석구석을 헤메고 다니며 약을 찾아 부실해진 자지를 되살리려 애썼다.

그렇게 애 쓴 보람이 있었던지 몇십년이나 묵었는지 모를 오래된 하수오(何首烏)도 찾아 캐 먹었고,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도 많이 뜯어모아 혼자 다려 먹었다.

그런 보람이 있었던지 자지도 어느정도 회복이 되고 오줌발도 상당히 멀리 나갈 정도로 되었다. 

그렇게 그 해 여름이 지나고 가을철도 지나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가 찾아왔다.

아침 저녁으로 하얀 무서리가 내리는 그런 철인 것이다.

동네에서도 겨울철 먹을 김장을 하느라 들에 심어논 무 배추를 거둬드리는 그 때가 원제에게는 가장 배 부른 철이였는데, 그 이유는 밭에 심어 논 무를 뽑아 날것으로

우적우적 씹어먹을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해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여름내내 산에 다니며 하수오(何首烏)에 삼지구엽초(三枝九葉草), 도라지,마, 더덕,등등 약초(藥草)뿌리를 캐 먹은 다음 부터는 그렇게 심하게 배가 고프지 않았기 때문

이었다.

오늘도 원제는 산에 나무를 하러 가야했다.

눈이 오는 겨울이 오기전에 나무를 많이해서 쌓아놓아야 했으므로 날마다 지게를 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오랫만에 여름에 왔던 소나무 숲으로 온 원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소나무 삭정가지로 나무한짐을 일찍 해 놓고 다시 산을 이곳저곳 살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여름에 약초뿌리를 판 곳을 지나면서 혹시라도 또 있나 자세히 살펴보며 다녔다.

역시 있었다.

여름에는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잘 찾지 못할 계곡이 가파른 구석진 곳에 지난 여름에 캣던것과 비슷한 말라서 비틀어진 잎파리가 줄기와 같이 땅 위에 보였다.

겨우겨우 힘들게 파고보니 지난 여름에 캔것보다 더 크다.

원제는 파낸 약초(藥草) 뿌리를 계곡물에 씻은 뒤에 손에 들고서 생각해 봤다.

지난번에 이 약초(藥草)뿌랑구를 묵고 엄청 배가 아파부렀는디......또 묵어 불까? 또 아파불먼 으짜재....

근디 이 약초(藥草) 뿌랑구 묵고 나서부텀 자지가 엄청 잘 섯는디 지금 묵으면 또 그라고 서 불까?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던 원제는 엣다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 약초뿌리를 다 먹었다.

지난번 처럼 보다 쌉싸롬하게 쓰다.

그래도 쓴것이 약이 된다는 심정으로 먹었는데 역시 지난번과는 틀리게 뒷맛이 깨끗하고 입안이 화하다.

역시 먹은 바로 뒤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러나 그날 저녁,

원제는 배을 아리는 고통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이구석 저구석으로 네 방구석을 기어다녔다.

배속에는 불덩어리가 들어 있어 그 불덩어리가 이곳 저곳을 굴러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배가 아리도록 아파왔고 입으로 비명(悲鳴)을 지른다고 했지만, 물을 나온 붕어처럼 입만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할 뿐이었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고통(苦痛)에 헤매던 원제는 그만 기절(氣絶)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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