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42)

중독-21 

[따르르릉~~~] 

“여..여보세요! 자기야!” 

[밥 먹었어?] 

시계는 이미 오전 11시가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처럼의 평범한 월요일이었다면 무기력함을 느끼며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한 후 회사 책상에 앉아 또 다시 시작 된 지겨운 한 주에 하품부터 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 난 소파에 앉아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에 엄청난 안도를 느끼며 기뻐하고 있었다. 

어제 구의원 사무실에서 돌아온 이후로 당연히 난 단 한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내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했었고 가장 먼저 떠오른 성주학생에게까지 혹시나 전화를 걸었었지만 성주학생도 아내와 마찬가지로 통화조차 할 수 없었었다, 그리고 저녁 11시가 가까운 시간에 걸려온 성주학생의 전화에선 오히려 갑자기 사라진 아내의 행방에 대해서 내게 따져들던 성주학생이었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내게 화를 내기까지 했었는데... 단지 연기라고 하기엔 진심이 느껴졌기에 아내와 같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된 후로 무작정 전화를 끊게 만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금자씨한테 마이클이란 놈의 전화번호라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뒤늦게 금자씨에게 전화를 걸었을 땐 아직도 비행기 속인지 핸드폰이 꺼져있다는 안내음성만이 들을 수 있었다. 

“자기 어디야!?” 

[....] 

“지금 어디냐고!” 

[성주네 집..] 

“뭐? 성주학생네?” 

[응..] 

“이 새끼가.. 어제 전화했을 때 분명히.. 내 이럴 줄 알았어. 그 새끼가 거짓말을 할 줄..” 

[아니야. 여기에 12시 넘어서 왔어. 성주가 하도 전화를 해서...] 

“뭐?” 

‘내 전화는 안 받고 성주 전화는 받았냐!?’ 

라는 말이 목젖까지 튀어나오려던 걸 겨우 참았다. 

“지금 갈게. 성주네 집이 어디야?” 

[아니야. 됐어.] 

“되긴 뭐가 돼! 성주네 집 주소 불러 봐!” 

[나도 주소는 몰라.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밥이나 먹어... 속 버려.] 

“지금 속이 문제냐! 너 그렇게 가버리고 내가 어떤 심정으로.. 정말 괜찮아?” 

[.......응. 난 괜찮으니까. 밥 챙겨 먹어.] 

“괜찮긴 뭐가 괜찮다고.. 우리 우선 만나서 얘기하자. 자기가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나도 다 생각이..” 

[오해는 무슨.. 다 내 잘못인데.. 내 걱정하지 마. 나 정말 괜찮아. 성주가 맛있는 것도 직접 만들어줬고.. 마이클도 같이 있으니까.] 

“뭐? 마이클도 같이 있다고?” 

[...응. 마이클이 자기 집으로 가서 쉬자는 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성주한테 전화 했었어.] 

“성주? 성주 아버지는? 말도 없이 막 가도 괜찮아?” 

[출장 중이셔서 집에 아무도 없어. 집도 엄청 크고..] 

“출장? 집이 커? 성주 여동생은?” 

[여동생? 성주 외동아들이라고 하던데.. 아버지랑 자기만 산다고..] 

“그때 노래방에서 분명히 짱구새끼가 성주 여동..생.....” 

[응??] 

“아..아니야. 지금 갈게. 성주학생 집 주소 좀 물어봐서 문자로 보내. 안보내기만 해 봐! 나 진짜 무슨 짓을 벌일지 나도 몰라!” 

[.........] 

“그러니까. 꼭 보내라고..” 

[성주한테 주소 물어볼게.] 

“은희야 정말 괜찮아?” 

[.....내가 괜찮지 않으면 어떡하겠어.] 

“여보..” 

[어차피 겪었던 일인데... 한 번 더 당했다고.. 달라질게 없잖아...] 

“은희야!!” 

[....] 

“왜.. 얘기를 그렇게 해.. 우선 알았으니까. 지금 당장 갈게. 문자로 주소 보네.” 

[..다 끝나면.. 그때 그냥 내가 들어갈게..] 

“다 끝났는데 뭘 더 끝내! 당장 보네!” 

[......알았어.... 띡~] 

“...휴~. 역시 성주 이 새끼....” 

[후..흑..흑흑...흑... 흑..] 

아내가 종료버튼을 잘 못 눌렀는지 끊으려던 핸드폰너머에서 아내의 흐느끼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했다. 

먹먹해 쓰라리기 시작한 가슴은 아내의 흐느낌이 길어질수록 더 아려오게 내 머릿속까지 후벼 파기 시작했다. 아내의 울먹이는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기에 통화를 조용히 끊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내로부터 문자는 오지 않았다. 

전화를 끊자마자 허겁지겁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아내의 문자를 기다리는데 10분.. 20분이 지나도 문자가 오질 않았다. 초조함을 넘은 불안감이 점점 더 머릿속을 채워가기 시작했을 때 핸드폰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러보지만 역시나 받질 않는 아내였고, 급한 마음에 성주학생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성주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전화를 끊는 게 아니었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허술했는 질 다시 한 번 후회하게 된다. 

난 왜 성주학생의 집도 모르고 있는 걸까.. 

그런 일을 당하고 내 집에 들이기까지 한 성주학생이라는 존재가 내게 이렇게 작은 존재였는지... 아니! 성주학생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는지 스스로도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 이름과 다니는 학교, 핸드폰 번호. 그리고 짱구놈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피해자라는 걸 제외하고는 정말 성주학생에 대해 아는 게 없었기에 더 기가 막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아내가 했던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집이 엄청 크다는 말과 여동생이 없다는 말까지.. 거의 방임처럼 아들을 내 놓고 키운다는 느낌이 강했던 성주학생의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서 난 단순히 혼자 아들과 딸을 키우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었고 당연히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하지 않을 줄 알았었는데.. 너무나 섣불리 했던 지레짐작에 뒤늦게 후회하게 된다. 

불쌍하기만 한 청소년이라고만 생각했기에 이렇게 허술하게 받아 준 내 자신에 대해 후회하며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두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수십 분을 더 자동차 안에서 문자를 기다리다 결국 시동을 끄고 힘없이 내리게 된다. 

아내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길 반복했지만.. 내 전화가 반복되자 아내와 성주학생의 핸드폰은 아예 꺼진 상태로 변해버렸다.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 소리를 들었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던져버릴 뻔 했다. 

멍한 월요일이 지나고 하루가 더 지났다. 

수요일 아침이 밝았지만 항상 날 먼저 깨웠던 아내의 인기척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침착해지는 내 정신상태가 믿기지 않았지만 어느새 난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정신도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강간까지 당하며 그 사단을 냈던 아내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고 하면 어처구니없게 느껴지겠지만.. 그만큼 아내의 각오가 얼마나 컸는 질 나조차도 느끼기 시작했고 어느새 아내의 심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얘기조차 나눌 수 없는 아내의 부재는 점점 더 원망이란 감정으로 내 가슴을 좀먹어가며 날 더 초조하게 만들어갔는데.. 그런 내 감정과는 다르게 아내가 계획했고 실행했던 일은 내 예상과 상상보다도 훨씬 더 큰 여파로 뉴스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현 구의원의 실태!] 

[인간의 탈을 쓴 악마....] 

등등.. 

처음 인터넷에 고발 식으로 올라온 구의원에 대한 글들은 불과 이틀 만에 뉴스화 되었고 그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자칭 페미니스트라 자청하는 미국이민자인 금자씨가 존재했고 단어조차 낯선 패미의 파워는 내 상상을 초월했고 무섭기까지 했다. 이미 여론은 현 구의원의 변명이나 주장은 들을 필요도 없는 쓰레기처럼 받아들여졌으며 판결이나 사실은 필요조차 없는 듯 느껴질 정도였다. 

이미 구의원의 신상까지 인터넷에 다 올라온 상태로 직접 죽인다는 댓글부터 시작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람들의 얘기들이 기사를 도배하기 시작했었다.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증오스럽고 원수 같았던 구의원이였지만.. 뉴스와 댓글들은 나도 모르게 구의원이라는 인간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될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정말로 인터넷상에선 사실이란 건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미 낙인을 찍은 상대에겐 자비란 없었고 그 사실이란 건 관심조차 없이 마녀사냥 하듯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날 소름 돋게 만들었다. 

이미 인터넷이란 공간엔 구의원의 얼굴과 사무실, 사는 집과 구의원의 아들에 대한 신상까지도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었고 누구나 볼 수 있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저런 일을 당한다면.. 내가 다른 놈들에게 아내를 돌리려 사진을 찍었고 초대남이나 마사지를 불렀다는 게 이렇게 인터넷에 공개가 된다면 난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내 얼굴과 아내의 사진들이 불특정다수에게 아무 방어벽 없이 전부 노출 된다면.. 그리고 그 중심이 나라면.. 아내를 다른 놈에게 돌리지 못 해 환장한 놈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난 과연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바로 옆집에서 날 알아보고 경멸스런 눈빛과 저주스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면 내가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치를 떨게 되는데.. 

이상한 건 아내의 강간에 대한 기사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기사의 중심엔 이민자인 금자씨만 화제에 오를 뿐 아내의 이름이나 강간에 대한 이슈는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날 의아하게 만들었는데.. 그건 하루 더 지난 목요일에 풀리게 되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 신변인도 요청을 했다는 뉴스와 함께 미성년자포르노제작, 유포 그리고 강간현행범으로서의 증거가 추가되었다는 이슈는 일파만파로 퍼지기 시작해 다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고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던 구의원까지 모든 것이 모함이고 함정이라는 답변으로 현실 속에 등장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과 다르게 미국이라는 나라는 철저히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하는 지 역시나 어느 곳에서도 아내의 이름조차 찾아 볼 수 없었다. 

‘삐삐..삐삐삐..삐.. 띠리롱~~’ 

금요일 아침 8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센 내 앞에 열린 눔 뒤로 아내가 날 빤히 쳐다본다. 

평소처럼 쫄바지에 긴 파커를 입고 있는 영락없는 내 아내인 은희가 열린 문 앞에 서 있었다. 

“여..여보..” 

“....” 

“당신 괜찮아?” 

“...응. 안 잤어?” 

“......” 

“왜 잠을 안 자.. 몸 상하게..” 

“잠이 오겠냐!? 넌 연락도 안 되고.. 진짜 나 미치는 꼴 보려고 작정했어!?” 

“...미안. 조사받고... 정리 좀 하느라..” 

“성주새끼 집 주소 좀 보내라니까.. 그게 그렇게 힘들었니?” 

“오빠한테 더 이상 피해주기 싫어서..” 

“뭐?.. 피해???” 

“....미안.” 

“하~.. 하하.. 피해구나.. 아무리 내가 잘 못했어도 그렇지.. 그렇게 생각했구나..” 

“미안..” 

“그럼.. 지금 여긴 왜 왔냐? 피해주기 싫다면서 왜 왔냐고..” 

“옷 좀.. 가지고 가려고..” 

“........” 

“나도 미국에 다녀와야 할 거 같아서...” 

“하하하하..하..하... 그래.. 가야지.. 그 잘난 금자씨하고 제대로 복수해야지.. 그러려면 미국도 가고.. 아예 이민도 가지 그러냐..” 

“....” 

“왜? 진짜 이민이라도 가시게?” 

“다 해결되면 돌아올게.. 오빠.. 그때 우리 다시 얘기해..” 

“그럴 필요 있을까? 이번에 구의원 처리하는 거 보니까 난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아니.. 내가 방해가 될 텐데 굳이 얘기 할 필요가 있을까 모르겠네..” 

“그렇게 비아냥대면서 얘기하지 말고..” 

“비아냥.. 그렇지.. 내가 할 줄 아는 건 비아냥거리거나 헛짓거리 하는 게 다지..” 

“오빠..” 

“......” 

이렇게 얘기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내를 다시 본다면 제일 먼저 미안하다 얘기하고 아내의 얘길 듣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내 입은 내 생각이나 다짐과는 달리 혼자 나불거렸고 아내의 말대로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정말 미안해. 오빠한테 이런 고통 줄 생각.. 아니.. 정말 오빠한테 잘 하려고 수도 없이 생각했고.. 언젠가는.....” 

“알았어.. 알았으니까.. 옷 챙겨..” 

“....” 

날 가만히 쳐다보던 아내가 조심스럽게 쥔 주먹에 힘을 주며 천천히 안방으로 걸어간다. 

자신의 각오가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아내는 가방을 챙기는 동안 단 한 번도 날 뒤돌아보지 않았고 묵묵히 가방에 옷가지들만 조용히 넣을 뿐이었다. 그리고 들고 나온 가방을 두 손으로 꼭 쥔 아내가 날 다시 한 번 쳐다보며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오빠 정말 미..” 

“올 거지?” 

“....응?” 

“미국 갔다가.. 확실히 돌아 올 거지?” 

“으..응.. 꼭 올 거야.” 

“그럼 됐어..” 

“.....” 

“그거면 됐다고.. 자기가 나 싫어서 떠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놈 좋다고 가는 것도 아니잖아. 같이 못 가줘서 미안하네.. 빨리 얘기라도 해줬으면.. 아니다. 또 괜히 방해만 될지도 모르는데..” 

“오빠..” 

“가자.. 어디로 가는 진 모르지만 같이 가.” 

“...” 

아내의 대답은 필요 없었다. 

아내가 들고 있는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데.. 집 앞 골목길에 이미 마이클의 차가 서 있었다. 

“어.. 남푠분 안녕하십니까?” 

“...어디로 가는 겁니까?” 

“우선 성주학생댁으로 갑니다. 금자씨가 열쇠고 뭐고 다 가지고 가서 나 집 없습니다.” 

“...네. 같이 가시죠.” 

“오빠 진짜 괜찮아.” 

“여기서도 그냥 들어가라고 하면 나 진짜 자기 안 볼 거야.” 

“.....” 

“아니다.. 그래 마이클씨 차타고 그냥 가라. 난 집에서.. 자기 올 때까지 기다릴게.” 

“....” 

“우리 은희 좀 부탁드립니다.” 

“오브콜습니다. 당근입니다. 나 금자씨 남친 입니다. 그럼 마이클은 은희씨 남친 입니다. 여친의 여친은 저한테도 여친입니다.” 

“그건 또 무슨 헛소.. 에휴.. 하여튼 끝까지 잘 부탁드려요. 자기도 전화라도 좀 하..” 

“야!!” 

분위기 팍! 잡고 얘길 하는데 골목 끝에서 엉뚱한 목소리가 맥을 끊고 예고 없이 들어왔다. 

나와 아내 그리고 마이클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린 골목 끝엔 너무나 낯익은 얼굴의 한 남자가 우리에게로 성큼성큼 넓은 보폭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짱구였다. 

“당신 여기 있으면 안 됩니다. 지금.. 억!!” 

‘퍽!~’ 

“이 양아치 양키새끼는 또 뭐야! 아줌마! 미쳤냐? 아줌마 겁대가리 상실했어!?” 

“악!” 

‘휘익~~..툭.’ 

“이러면 니 애비만 더 불쌍..” 

‘퍽!’ 

마이클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날아든 짱구의 주먹에 만화처럼 날아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침을 한 번 뱉은 짱구는 서슴없이 아내에게로 걸어와선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고는 한손으로 아내의 목을 움켜쥐려 손을 뻗는데..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정말 멋지게 아내를 향한 짱구의 손목을 또 만화처럼 낚아채 막아섰는데.. 상황은 만화처럼 멋지지 않았다. 

내가 손목을 낚아채자마자 짱구는 반사적으로 다른 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내 얼굴을 후려갈겼고, 마이클처럼 날 바닥에 나뒹굴게 만들었다.  

“하~.. 이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아주 오냐오냐하니까 지들이 뭐라도 된 줄 알지! 아줌마는 좀 맞자.. 아니! 오늘 한 번 제대로 당해봐! 어차피 인생 조진 거... 제대로 함 따먹고..” 

‘짝!!~’ 

“네 아빠가 이러라고 시키던?!” 

“...하..하하.. 이 미친..”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 정말 네 아빠처럼 평생을 살 거야? 인간말종처럼 살아서 너한테 뭐가 남는데!? 불쌍하다.. 아니! 가치도 없는 상대.. 악!” 

“하하.. 그냥 죽자.. 아니.. 평생 얼굴에 빨랫줄 하나 긋고 살아 봐 이 싸가지 없는 년아!” 

짱구는 아내의 목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차로 밀어버린 후 뒷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온 부엌칼을 꺼내 아내의 얼굴을 향해 들이대기 시작했다. 시퍼렇게 반짝거린 칼날이 아내의 얼굴을 막 닿았을 때.. 거의 번개와도 같은 속도로 헤딩을 하며 몸을 날린 나였다. 

‘퍼억~~. 쿵!!’ 

보기 좋게 마이클의 차에 푹 파인 자국을 남기며 나가떨어진 짱구 놈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 한 채 날 올려다봤다. 

“이런 미친 새끼를 봤나.. 뭐!? 싸가지 없는 년!? 싸가지 없는 녀어언!!? 어따 대고 년이래 이 씨발새끼가! 확 대가리를 시멘트에 갈아버릴라.. 애비란 새끼한테 아무리 자식교육을 못 받았어도 그렇지 대낮에 어디서 칼부림이야! 니가 조폭이야!? 장췐이냐! 이 개 같은 새끼야!?” 

‘퍽~~’ 

너 잘 만났다! 라는 식으로 마이클의 차 앞에 주저앉아 있는 짱구 놈을 부드럽고 격렬하게 밟아 줬다. 

내 기에 압도라도 당했는지 아니면 내 기습공격에 정말 당황했는지 짱구는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놀란 표정으로 내 발길질에 ‘억’ 소리를 내며 일어나다 주저앉길 반복하더니 처음과는 정 반대로 꼬리 자른 도마뱀처럼 냅다 삼십육계로 왔던 골목으로 도망을 가버렸다. 

  

“하.. 저 새끼가 돌았나.. 자기야 괜찮아? 얼굴 봐봐.” 

“.....” 

“휴~.. 하~.. 한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어디서 칼 가지고 장난질이야. 이래서 우리나라도 법이 바뀌어야 돼! 요즘 애들이 애들이냐? 야동이나 폭력물에 전부 노출돼서 툭하면 칼 꺼내들고 협박질..에.. 왜 그래? 어디 다쳤어?”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아내를 살피던 난 아내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한 모습에 놀라 아내의 몸을 여기저기 살피게 되는데.. 

“오..오빠..” 

“어디 다쳤는데? 혹시 칼에 찔.. 아닌데..” 

“오..오빠!..1..119.. 마..마이클 119좀 부..불러요.” 

“뭐? 갑자..기.. 어라...” 

뜨끈미지근? 

내 옆구리 앞쪽에 뜨거운 액체가 옷을 적시고 있다는 걸 아내가 향한 손가락의 끝에 시선을 옮기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복부에 반쯤 들어간 부엌칼의 손잡이를 움켜쥐려던 난 극심히 느껴지는 고통.. 사실 이게 고통인지 잘 모르겠다. 

서걱한 뭔가가 내 몸속에 들어왔고 아린 듯한.. 그러나 분명 욱신거림과 함께 격통이 내 배에 전해지고 있는 건 확실했는데.. 가끔 영화에서 조면 죽을 것같이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장면과는 너무나 달랐기에 배에 꽂힌 칼이 정말 현실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하..하하.. 이..거 뭐냐.. 자기야.. 나 지금 칼침 맞은 거야?” 

“오..오빠.. 괜찮아!? 마이클!! 119!! 빨리 부르라고!!” 

“하.. 나~.. 졸라 멋..졌는데.. 그치.. 자기야.. 나 진짜 멋..”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아씨.. 진짜 멋진 모습을 보여야 되는데.. 생각보다 덜 아프니까 참으면서 아내에게 진짜 상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오를 제대로 잡아...야 되기는 개뿔.. 졸라 아프다.. 아.. 씨발!! 나 칼침 맞았다! 배때기 속에서 불나는 거 같고.. 찢어지는 거 같고.. 조금만 움직여도 진짜 오줌이 나올 정도로 아프다. 

“아..씨발.. 나 죽으면.. 안 되는데.. 울 자기.. 놔두고 죽으면.. 자기.야.. 나.. 살려..주라...” 

“주..죽긴 누가 죽어! 마이클 빨리 119 부르라고!!” 

“자..기는 괜찮지? 어디.. 안 다쳤지?” 

“난 괜찮으니까.. 오빠 가만히 있어. 마이클!!” 

“부..불렀다. 119에 전화해서 마이클이 여기로 오라고 했다. 아!.. 주..주소 안 말했다. 다시 전화한다..” 

“하~.....저.. 빙신..새끼....... 저 새끼 말투는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 

의식이 멀어져간다. 

사람이 피를 많이 흘리면 의식부터 침침해진다고 하더니.. 눈꺼풀이 이렇게 무거운 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네.. 그럼 정말 괜찮은 건가요?” 

“괜찮고 뭐고.. 2cm도 안 들어갔는데요 뭐.” 

“그래도.. 분명히 오빠 배에 칼이 박혀서..”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찔리기 전에 보니까 칼이 부러졌더라고요. 보기엔 15cm는 들어간 거 같았는데 아마 칼끝에서 13cm가 부러졌나봅니다.” 

“그래도 피가 많이...나왔었는데..” 

“칼이 복부를 관통하면 이정도로 안 끝나요. 옷이 문제가 아니고 5분도 안 되서 2/3이상 다 빠지고.. 입에서도 피를 토했을 겁니다. 보니까 복부지방 때문에 복막내 장기는 하나도 안 다쳤고.. 그냥 좌측 하복부에만 길게 꿰맨 자국만 남을 거 같네요.” 

“.....그런데 왜 안.. 일어나요?” 

“쇼크 때문일 수도 있고.. 바이탈도 정상이니까 금방 일어나실 겁니다.” 

“가..감사합니다... 휴~~.” 

눈을 못 뜨겠다. 

병원인 게 분명했는데.. 의사와 아내가 나눈 대화를 듣고 있자니 도저히 눈을 못 뜨겠다.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아내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 작정까지 했었는데.. 칼에 찔리고 질질 짜며 울었던 내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아귀를 꽉 다물며 쪽팔려서라도 도저히 감은 눈을 뜰 생각을 못 하겠다. 

분명히 진짜 아팠는데.. 

2cm라니.. 그것도 내장지방 때문에 장기에는 상처하나 없다니.. 아.. 개새끼가 찌르려면 좀 제대로 찌르던가.. 아니지.. 가지고 오려면 좀 좋은 칼로 가져왔어야지.. 그렇게 잘 부러지는 싸구려 칼을 가져와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무색하게 만..들.. 

“방금 형사한테 다 말했습니다. 짱구란 그 놈은 한국 법으로 엄중히? 엄격하게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네.” 

“남편은 괜찮습니까?” 

“..네. 그나마 다행스럽게.. 괜찮데요.” 

“휴.. 정말 놀랐습니다. 아!.. 여기 옷 빌려왔습니다. 지금 은희씨 옷 엉망입니다. 짱구놈이 은희씨 티셔츠도 다 찢어놔서 가슴 다 보입니다. 바지도 피 때문에 다 젖었습니다.” 

“..괜찮아요.” 

“파카도 놔두고 와서 은희씨 헐벗었습니다. 이걸로 갈아입습니다.” 

“.....네. 그럼 울 오빠 좀 잠깐 봐주세요.” 

좀처럼 눈 뜰 타이밍을 못 잡은 채 침대에 누워있던 난 잠시 후 돌아온 아내의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곁눈질을 하며 아내의 모습을 살피게 된다. 하늘색 반팔 블라우스에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치마.. 아내가 입고 있는 건 간호사복이었다. 그것도 사이즈가 좀 작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트한 간호복.. 블라우스는 금방이라도 단추가 떨어져나갈 듯 빵빵한 가슴틈새로 움직일 때마다 벌어지길 반복했고 그런 모습을 자각이라도 하는지 어깨를 움츠린 아내가 연신 옷깃을 여미며 마이클에게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이게 뭐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여기서 빌릴 수 있는 옷이 그게 답니다. 그것도 어렵게 빌린 겁니다.” 

“그렇다고 이런 걸 가지고 오면.. 에휴..진짜 내가 못살아..” 

“....예쁩니다.” 

“네!?” 

“꼭 코스프레 같습니다. 진짜 지립니다.” 

“뭐라고요?” 

“지립니다 모릅니까? 칭찬입니다.” 

“....지금 당장.. 다시 돌아가서 집 앞에 있는 가방하고 제 파카 가져와요.” 

“그게 아직도 있겠습니까?” 

“있을 테니까! 당장.. 가지고 오라고요.” 

“알았습니다. 마이클 금방 다녀옵니다. 어!. 성주학생!!” 

“아저씨는 괜찮으세요?” 

“응...”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응급실이라고 해서 진짜 놀랐어요.” 

“짱구가.. 칼로 찔렀어..” 

“네? 그 새끼가요?...진짜 미친 새끼네! 하.. 이 미친 새끼는...” 

“그러게..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이 사람은.. 겁도 없이 어딜 달려드냐고.. 자기가 무슨 영화 속 주인공도 아니고.. 그러다가 진짜 큰..일..” 

“그런데 누나 옷이...” 

“....” 

“누나?” 

“참나...” 

“왜요?” 

“오빠..,,일어나라..” 

“....” 

“좋은 말 할 때.. 일어나라고.” 

“..으..음~.” 

“아랫도리는 벌써 기상하셨는데.. 오빠는 정신이 없나 봐!!” 

“윽!!!아..아아아아아파!!” 

누군가가 말했듯 아무리 선비라도 아랫도리는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더니.. 

이 중요한 순간에 날 측은하게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보다 터질 듯 한 블라우스 사이로 오랜만에 보게 된 아내의 속살에 아랫도리부터 반응할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던 나였고, 그런 내 모습에 기가 차다 못 해 넘칠 듯 눈을 흘기며 텐트를 치기 시작한 내 자지를 강하게 움켜 쥔 아내였다. 

“확!! 지금 이러고 싶냐!” 

“누..누가 그런 옷 입고 있으래.. 참나.. 기껏 몸 받쳤더니..” 

“.....” 

“아무리 2cm라고 해도.. 몸 받친 건 사실이잖아. 그리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뭐...” 

“엄살은.. 그렇게 엄살이 심한 양반이 어떻게 몸을 날렸냐?” 

“...몰라. 그 새끼가 자기 얼굴에 칼을 들이미는 거 보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 

“왜? 감동 먹었냐? 내가 솔직히 왕변태에 약간 미친놈인 건 인정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지 마누라 하나 못 지키는 무능... 왜 또?” 

“오빠 말대로 감동 먹어서..” 

“....참나.” 

“오늘 진짜 멋지더라. 영화처럼 막 멋지게 발로 걷어차거나 원빈처럼 휙~하고 칼을 낚아챈 건 아니지만.. 도라에몽처럼 머리부터 날리는 거 보고.. 나 감동 먹었어.” 

“도라에몽? 그게 뭔데?” 

“있어.. 만화..” 

“성주야 그게 뭐냐?” 

“2등신 파란색 고양이 로봇 있어요.” 

“뭐? 2등신?” 

“..네,” 

“야! 내가 어딜 봐서 2등신이냐!” 

“멋있었다고..” 

“그걸 이제 알았냐.. 근데 자기야.” 

“...응?” 

“..팬티 보여.” 

“아씨! 진짜!!” 

“그런데 미국은 언제 갈 거야?” 

“..안 가려고.” 

“...가야 된다며?” 

“오빠 다쳤는데 어딜 가.. 못 간다고 얘기 했어..” 

“그래?..하긴.. 내가 좀 중상이긴 해... 아!.. 성주야.. 너 잠깐 나랑 얘기 좀 하자.” 

“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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