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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고관의 보고서 1 (16/29)

2-8. 고관의 보고서 1 - 인면수심(人面獸心) 색마부자(色魔父子) 이야기 

다음날 저녁, 치수보다 먼저 하교를 한 미란은 고혜의 집에서 슬쩍 들고 온 책들을 점검하였다.

사실 치수는 엊저녁 미란이가 가져온 책들의 내용에 대해 확인하고픈 생각이 많이 있었지만, 미란이와 육체의 즐거움을 나누느라고 그 책들을 확인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란이가 기지고 온 책들은 치수가 얼핏 보아도 단순히 여중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한 로맨스소설이나 순정 만화가 아니라 순전히 섹스에 관련된 책들이란 사실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 고혜의 아빠인 고관이 어디에선가 구해온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정도의 나이에 그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구하지 못할 책이 없겠지만, 얼핏 보아도 그 책들은 상당히 도착적(倒錯的)인 내용을 담고 있는 그런 책들로서 일반인들은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들이 분명했다.

치수는 그 책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하교를 하자마자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이미 미란이는 하교하여 방바닥에 엎드려 방방한 엉덩이를 쑥 내민채 그녀가 가지고 온 책들을 펼쳐보고 있는 것이었다.

치수는 방안으로 쑥 들어서면서 미라에게 물었다.

“야, 미란이 너 머해? --”

미란은 집에 돌아온 오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엎드려서 고혜네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말한다.

“응 -- 오빠 왔어?”

그런데 미란이가 보는 책을 치수가 얼핏 곁눈으로 살펴보니, 총천연색으로 인쇄된 여자의 나체 사진이 화려하게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확 띄는 아닌가?

집에 들어와 교복을 벗으려던 치수는 미란이 보는 책에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이었다.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면서 치수가 빤히 알면서 물었다.

“야, 너 그거 뭔 책이냐?”

엎드려 책을 보고 있던 미란인 여전히 심드렁하게 대답하였다.

“응, 이거 어제 고혜네 집에서 갖고 온 책들이야!”

그러면서 치수가 겉표지를 볼 수 있도록 책을 들어 보여주었다.

그 책의 겉표지에는 화려한 네글리제를 입은 여인의 모습과 함께 『귀부인의 정사』란 제목이 붙어 있었다.

“뭔 책들인데 그렇게 야한 그림이 나오냐? 내가 갖고 온 것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

치수는 교복도 제대로 안 벗고 미란이 곁에 철퍼덕 앉으면서 실팍하게 살이 오른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앉은 곳엔 다른 책이 깔려 있는 것이었다.

“오잉, 이건 먼 책?"하며 자신이 깔고 앉은 책을 끄집어 들었다.

치수가 든 책은 남들의 눈에 전혀 띄지 않는 회색 겉표지로서 아무런 그림이나 사진이 없어서 마치 정부나 대학의 보고서 같은 인상을 주는 딱딱한 책이었다.

치수는 자기가 깔고 앉았던 책이라 무심코 그 책의 겉표지를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一般的 家庭 性暴行犯의 倒錯的 精神狀態 硏究 報告書』란 아주 긴 제목의 책이었다.

게다가 제목이 한자로 되어 있어서 중학생인 치수의 입장에서는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제목이었다.

그러나 ‘性暴行犯’이란 제목이 그의 눈에 띄어서, 책의 내용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호기심이 일어났다.

치수가 그 책의 표지를 들추고 목차를 보니 무슨 사건의 내용들이 죽 나열되어 있는 것이었다.

치수는 목차가 기록된 페이지를 넘기고 다음 장을 보았다. 

그러자 경찰서에서 범인을 취조하는 듯한 사진과 함께 이 책의 내용이 ‘가정 성폭행범의 정신상태를 분석한 보고서’ 는 한글 설명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보고서’에는 먼저 사건의 개요가 마치 신문의 기사와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었고,

그 다음에는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정황이 이야기책처럼 서술되어 있는 것이었다. 

치수는 점차 이 ‘연구보고서’의 내용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옆에서 미란이가 무슨 책을 보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 연구보고서만 보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그 보고서엔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거의 한글로만 기록되어 있어서 치수가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도색소설과는 달리 성적인 묘사가 아주 적어 흥미가 반감되었다.

이 보고서의 첫 번째 사건 기록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첫 번째 부분은 주로 신문의 기사체로 작성되어 있었고 기사의 제목과 발문(跋文)은 다음과 같았다.

(1부) 위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 ; 기호일보 19×6년 12월 24일자(화) 제1사회면 게재됨

제목 ; 인면수심 색마부자

- 짐승도 고갤 돌릴 반 인륜적 작태

-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 할아버지 아버지가 손녀·딸을 7년간 성폭행

- 인륜의 파괴와 함께 성도덕이 땅에 떨어져

최근 안산과 의왕에서는 친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미성년자인 손녀와 딸 두 자매를 무려 7년 동안이나 상습성폭행 및 성추행 해온 혐의로 인면수심의 두 부자(父子)가 경찰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져 시민들을 당혹케하고 있다. 안산 경찰서는 지난 23일 안모씨(64·안산)와 안씨의 아들(40·폭력 등 전과 3범) 등 두 부자(父子)를 성폭행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모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할아버지 안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집에 심부름 온 둘째 손녀(12·초등6)를 안방으로 불러 강제로 성추행 하는 등 지금까지 30∼40회에 걸쳐 성추행 해온 혐의다.

안씨는 또 지난 ×3년 1월 2일 오후 4시께 당시 시흥에 살던 자신의 아들 집에 찾아가 큰 손녀(15·중3)를 성추행 하는 등 지금까지 7년 동안이나 1백여 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안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골의 모 초등학교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했는데, 당시에도 자신이 재직하고 있던 초등학교에서 어린 제자들을 성추행해 물의를 일으켰던 전력이 있으며, 두 손녀에게는 음악공부를 시켜준다는 구실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아들 안씨도 지난해 11월 중순께 자신의 집 안방에서 둘째 딸을 성폭행하는 등 총4회(성폭행 2회, 성추행 2회)에 걸쳐 성폭행 및 성추행해 왔으며, 지난 17일 오후 7시 30분께는 큰딸마저도 성추행하는 등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성추행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 부자는 피해자들이 5살과 8살이던 이들 자매를 7년 동안이나 번갈아가며 지속적으로 성폭행 및 성추행을 일삼아 온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으며, 이같은 사실은 안씨의 부인 김모 여인(36)가 최근 이혼소송을 제기하면서 밝혀진 것으로 이들 자매가 김씨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털어놓으면서 밝혀졌다.

이들 자매는 이혼 심판이 끝난 뒤 어머니와 함께 살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들의 상처를 달래기에는 너무 역부족한 것이 한결같은 주변의 이야기이다.

그 다음으로 이 보고서에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정황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 사건은 실제적으로는 상당히 오래 전에 시작된 것으로서 할아버지인 안씨가 젊은 시절 며느리인 김모 여인을 만난 것이 사건의 발단으로 보고서는 추정하고 있었다. 

제목은 <위 사건에 숨겨진 실제 정황>이라는 글이었다. 치수는 그 다음의 글들도 읽어 내려갔다.

(제2부) 위 사건에 관한 숨겨진 실제 정황

(1) 안교사와 김 여인의 관계

위 사건의 가장 중심인물인 할아버지 안씨(64)는 당시 안산의 고× 초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이 때 안 교사는 39세로서 또 다른 실제적 핵심인물인 김 여인이 안산 고× 초등학교 5학년(당시 11세)이던 시절 음악수업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김 여인과(편의상 김양으로 부름) 같은 반 아이들이 김양(실제 이름은 김소미임)이 노래(대중가요)를 기가 막히기 잘 부른다고 소문이 났으므로 음악시간에 한 번 나와 본보기로 노랠 불러서 음악선생님에게 정식으로 평가를 받기를 졸라대고 간절히 원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안교사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미가 노래를 불렀는데, 이 때 안교사가 김소미의 노래 솜씨에 홀딱 반하게 되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때 이미 김소미는 초등학생으로는 보기 힘들게 육체적으로 성숙하였고,

얼굴도 엄청 예쁜 동양적 미인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다가 성적(性的)으로도 매우 발달해 있었다.

이후 안 교사는 소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르니 자신에게 조금 더 배워 향후 연예계로 나가는 것이 어떠냐?’고 초등생인 그녀를 부추겼다.

당연하게도 안교사는 어리고 예쁜 소미에게 흑심이 있었다.

그러나 소미는 안교사의 이런 유혹적인 부추김에 그러지 않아도 ‘연예인’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춘기 초반의 어린 소미는 안교사의 제의에 솔깃하여, 그로부터 대중가요 보컬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안교사는 특히 선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대중가요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며 훈련시켰는데, 19×0년 시절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노출 심한 걸 그룹의 동영상을 보여주고 따라하도록 가르쳤다.

소미는 안교사의 가르침에 의해 부지불식간에 노래보다는 노출이 심한 무대 의상과 선정적인 춤사위에 대해 은근히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를 알아차린 안 교사는 일본 걸 그룹의 동영상 뿐 아니라 때때로 모르는 척 하면서 일본의 성인 비디오 물도 간간히 보여줌으로 일본 걸 그룹 멤버들은 모두 성적으로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미에게 각인시켰다.

또한 일본의 연예인들처럼 한국의 연예인들도 섹스는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육체의 즐거움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교육을 시켰다.

김소미는 이런 안교사의 철저하고도 계획적인 시나리오에 의해 점점 성적으로 개방된 마인드를 갖게 되어 남녀 간의 섹스에 대해서도 거리낌이 없는 태도를 갖고 성장하게 되었다.

안교사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음악수업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소음방지시설과 작은 무대가 마련된 음악실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음악실의 열쇠는 음악선생인 안교사가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안 교사의 허락이 없으면 음악실의 출입을 할 수 없었다.

음악실에서는 보컬연습은 물론 피아노를 비롯한 각종 악기가 구비되어 있어서, 소규모 브라스밴드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안 교사는 실제적으로 밴드를 가르칠 능력은 없었기 때문에 간단한 무대장치와 소품, 무대의상 정도만 마련하여 김소미에게 집중적으로 노래를 가르쳤다.

안교사는 이 음악실에서 김소미양에게 주로 대중가요를 부르게 하였고, 연습시의 의상은 쉬운 예를 들자면 야문 정보방에 『이 정도로 벗으면 스타 되니?』 또는 『강남역 허브플라자』 직캠 영상 수준의 노출이 매우 심한 의상을 입고 엉덩이를 되도록 섹시하게 흔드는 댄스 음악과 안무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특히 무대 전면을 향해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손으로 가슴과 허벅다리 안쪽을 쓰다듬는 선정적인 춤사위를 표현하도록 만들었으며, 그런 춤이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가르쳤다.

이 때 이미 육체적으로 상당히 성숙해 있던 소미는 이런 춤을 출 때마다 작은 젖가슴이 달랑달랑 흔들렸으며, 다리를 짝 벌리고 아랫도리를 내리는 안무를 하게 되면 팬티에 도끼자국이 보일 정도가 되었다.

이런 연습 결과 김소미양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안 교사와의 육체적인 접촉을 빈번하게 가질 수밖에 없었고, 안 교사는 어린 소미의 엉덩이와 허리 등에 몸에 손을 대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특히 안 교사는 무대 위에서 다리를 짝 벌리는 ‘다리 찢기’를 많이 시켰다.

이 자세는 걸 그룹의 모든 멤버들이 누구나 다 하는 필수코스였기 때문에, 소미도 이 자세를 배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안교사에게 자신의 허리는 물론 다리와 발을 잡아주도록 요청하였다.

당연히 소미는 처음 이 자세를 배울 때부터 온전한 ‘다리 찢기’는 할 수 없었기에 안교사가 그녀의 다리를 붙잡아주지 않으면 안되었는데,

그러다보니 안 교사는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와 다리와 허벅지 등을 누르며 만져대지 않고서는 그 자세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에 그는 훈련을 빙자하여 소미의 아랫도리 부분을 충분히 주물러댈 수 있었다. 

게다가 이런 안무와 훈련은 땀을 흘리게 마련이므로 소미는 이런 혹독한 댄스 연습이 끝난 후 흘린 땀을 씻기 위해 음악실 옆에 마련된 간이 욕실을 사용하였는데, 자연히 같이 땀을 흘린 안교사도 같이 샤워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소미는 ‘다리 찢기’를 하다가 허벅지 안쪽을 다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안 교사는 그럴 때마다 안티×라민이나 맨×래담과 같은 근육통 치료제를 허벅지 안쪽에 발라주어야만 했다.

이 근육통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에는 안교사는 소미가 팬티를 입은 채 허벅지 안쪽에 연고제를 바르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나중에는 마사지 수준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조금 더 지나자 팬티의 가운데 부분도 만져도 되는 정도가 되었다.

물론 이런 경우 소미는 허벅지 안쪽에 약을 바르기 위해 처음엔 털도 안 난 보지를 그대로 노출시켜 안교사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는데, 그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리니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옷을 벗게 되었고, 안교사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노상 주물러주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어린 소미도 여성인지라 남성의 손길을 느끼게 되었고, 더 시간이 지나자 은근히 안교사가 그곳을 마사지해 주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이 땐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지나고 6학년이 되었기 때문에 6개월 이상 일본의 성인 비디오를 보던 소미는 자진하여 안교사에게 자신의 처녀를 바치지 못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안교사는 진작부터 어린 소미를 따먹고 싶었지만, 그 일로 인해 불미스러운(?) 소문이 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꾹 참고 소미가 자진하여 자신에게 보지를 대줄 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미는 초등학교 6학년 초여름 날, 댄스 연습을 마친 후 샤워한 후 간이침대에서 근육통 치료 마사지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안교사와 몸을 섞게 되었다.

당연히 마사지를 받으면서 흥분한 소미가 먼저 안교사에게 “선생님 저 좀 -- 박아주세요 - ”라고 요청함으로 이들의 육체관계가 시작되었다.

나중에 김 소미가 안교사가 다른 여학생들과 관계를 갖게 된 사실을 알게 되었어도 그녀가 아뭇소리도 못한 것은 이렇게 자신이 먼저 박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초등학교 6학년부터 안교사와 성적인 육체관계를 갖기 시작한 김소미는 중학생이 된 후에도 여전히 안교사와 깊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녀는 보컬 연습을 위해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안교사의 음악실을 방문하였는데, 그녀가 방문한 날은 당연히 안교사와 김소미 간에 육체적인 교접을 갖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음악실에 가면 안교사가 다른 여자애들과 어울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선생님, 잰 나보다 이쁘지도 않은데, 왜 저런 애랑 어울려요?”라고 물으면

“야, 잰, 보컬 교습을 받으면서 돈을 내잖아. 넌 나한테 보컬 교습을 받으면서 돈 한 번 냈냐? 오히려 내가 너한테 용돈을 많이 줬잖아”라고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그래서 소미가 안교사의 말에 반박하여 “선생님, 그 대산 전 선생님에게 보질 재줬잖아요!”라고 말하면,

안교사는 “그건, 니가 박아달라고 사정 사정하니까 내가 박아준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 소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소미가 섹스에 민감하여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박아주지 않으면 참지 못할 정도로 성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었다.

소미는 고등학교 1,2,3 학년 때에도 여전히 안교사의 음악실을 출입하였는데,

이 땐 오히려 노래보다 섹스에 탐닉하여 안선생과의 육체교접에 더 관심이 깊어졌었다.

안선생은 음악계의 선후배들을 동원하여 소미를 걸 그룹의 일원으로 데뷔시키려고 엄청 노력하였으나,

음악계란 그 동네가 한결같이 걸 그룹이나 댄스 가수로 데뷔하려면 상당한 자금을 요구하였으므로

그런 돈이 없는 소미는 안교사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는 도중 소미가 고3이던 열 아흡에 그만 덜커덕 안교사와의 육체관계에 의해 그의 앨 배게 되었던 것이다.

소미는 그동안 임신을 매우 조심하여 섹스를 할 때마다 방비를 하였었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어려 피임에 소홀한 면이 많았는데,

거의 십년 가까이 섹스를 하면서도 한 번도 임신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재수가 좋았던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었다.

안 교사는 소미가 자기 앨 배자 그녀를 자신의 아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안 교사의 아들은 이 때 약 23세 정도로 평소 자기 집을 드나들던 예쁜 김소미를 보면서 침을 꿀떡꿀떡 삼키던 자였는데, 자기 아버지가 그런 애제자를 소개 시켜주며 결혼할 것을 바라자, 평소 김소미의 육체에 반해 앞 뒤 가리지 않고 그만 그의 요구를 응낙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김소미는 평상시에는 시아버지가 된 안교사에게 보지를 대주고, 밤에는 자기 남편이 된 안씨 아들에게 몸을 대주는 관계가 되고 만 것이었다.

김 소미는 결혼 6개월 만에 딸을 분만하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안교사의 딸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안교사는 여전히 며느리인 소미와 관계를 가졌지만,

피임에는 조심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시아버지의 앨 가지지는 않았지만,

남편과의 관계에서 둘째 딸을 가졌는데, 첫째 딸은 안 교사의 이름과 자기 이름을 합해 안미영이라고 지었고(안교사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함),

둘째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어 안미소로 지었는데 이 딸은 남편의 딸이 분명했다.

김소미는 결혼을 한 후 상당한 기간은 비교적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가끔 지방 축제나 아마추어 콩쿨에 나가 상을 타면서 시간을 보내었다.

그런데 문제는 김소미의 딸들이 커가면서부터 새로운 일들이 발생하였던 것이었다.

(2) 안영감과 안씨의 아들 그리고 김소미 딸들과의 관계 정황

김소미는 두 딸을 낳고 한동안은 그럭저럭 시름없이 보낼 수 있었다.

여전히 시아버지인 안교사가 자신의 육체를 원했지만, 그녀가 어린 시절처럼 매달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심심풀이로 한 번씩 보지를 대주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녀가 먼저 꼬리치며 “아버님, 저 무지 꼴려요 - ”라고 유혹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요년, 넌 시애비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냐?”라고 말하면서 그녀에게 뎀벼들어 우악스럽게 그녀를 범하곤 하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좋은 육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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