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2. 고관의 보고서 5 (20/29)

[2-12. 고관의 보고서 5 - 인면수심(人面獸心) 색마부자(色魔父子) 이야기 다섯 번째]

그런데 치수는 보고서를 덮으면서 맨 마지막 장에 인쇄된 것이 아닌 빈 백지에 볼펜으로 깨알처럼 끄적거려 놓은 한 페이지 이상 되는 분량의 진술 기록이 눈에 확 띄는 것이었다. 

그것은 <(3) 안영감과 김소미의 딸들과의 관계에 관한 진술 내용 - 김소미 여인으로부터 들은 것임>이라는 제목이란 글로 기록된 내용이었다.

보통 보고서는 맨 뒷장을 백지 여백으로 남겨두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인쇄된 내용만 보면 맨 뒷장의 빈 여백에 끄적거려 놓은 내용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아마도 담당 형사는 이 보고서가 다 인쇄된 후 나중에 김소미 여인으로부터 진술받은 내용을 이 보고서의 말미에 직접 볼펜으로 적어 놓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는 여타의 다른 인쇄본과는 전혀 다른 유일무이한 보고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사실 고관은 후일, 참고할 일이 있어서 고란의 방에서 두었던 이 보고서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어서 포기한 바로 그 보고서였던 것이다.

그런데 형사가 볼펜으로 끄적거린 이 보고서의 진술 내용은 김 소미의 두 딸인 미영과 미소란 년의 진술이 아니라, 김 여인이 직접 형사와 대면하여 진술한 내용이었다.

그가 끄적거린 보고서의 세부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3) 안 영감과 김소미 딸들의 관계에 관한 진술 - 김소미 여인으로부터 들은 내용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날 무렵인 19살 때(만으로는 18세임) 저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당연히 안 선생님의 아기였죠.

그러나 난 그 당시 마흔 살도 훨씬 넘은 안 선생님과 결혼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 저보다 두 살인가, 세 살인가 나이가 더 많은 안 선생님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는 안 선생님이 저를 자기 아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것이었어요.

본래 안 선생은 자기 아들이 날 넘보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아들이 날 꼬시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어요.

어떤 아버지가 자기가 품에 품고 있는 여자를 친아들에게 주겠어요.

그런데 이번엔 자기 아들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을 듣고 저는 안 선생님의 꿍꿍이속을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었어요.

안 선생의 아들은 제가 평소 아버지에게 음악수업을 받기 위해 자기 집에 드나드는 것을 보면서, 저를 향해 군침을 흘려 왔다는 사실을 저는 이미 잘 알고 있었가든요.

안 선생님의 아들은 저를 처음 소개받은 날부터 절 따먹으려고 엄청 졸라대었어요.

저는 이미 안 선생님과의 관계로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못해, 하는 수 없이, 네가 너무 달라고 하니깐 한 코 주는 거다’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 뒤 안 선생 아들과 육체관계를 가졌어요.

근데, 안 선생의 아들, 즉 나중에 남편이 된 이 사람은 제 생각 밖으로 갖고 있는 물건이 훌륭했어요.

우린 처음 씹질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아랫배가 맞았던 거예요.

남편은 제가 처녀가 아니란 사실에 대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요.

그 이와 내가 씹질하던 첫날, 난 남편 위에 올라타 엉덩이를 돌리면서 말했어요.

“자기, 내가 처녀가 아니란 걸 자기도 알지?”

그러자 남편은 “야, 이 썅년아 - 요즘 고삼이 처녀가 어디 있어? 중삼도 처녀가 없이 다 걸렌데--”

이 사람은 지금도 그렇지만 욕이 안 섞이면 말을 못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전 다시 이렇게 물었어요.

“자기, 그래서 서운해?”

그러자 남편은 오히려 고맙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었어요.

“서운하긴 이년아, 나 같은 백수가 너 같은 날라리라도 있으면 감지덕지지 - ”

그날 우린 안 선생님의 건넌방에서 세 번이나 씹질을 했어요.

그런데 내가 감창소리를 얼마나 요란하게 냈는지 다음 날 아침 아들이 나간 뒤 안 선생님은 저를 보고 이렇게 나무라는 것이었어요.

“야! 이년아, 넌 씹을 보지로 하지 않고 입으로 하냐? 왜 그렇게 요란하냐?”

안 선생님은 내가 자기 아들과 씹질하는 소리를 옆방에서 다 듣고 있었던 거죠.

그 후, 안 선생님은 자기 아들이 나랑 씹질을 하고 난 뒤 사라지면 조용히 나타나 아들 정액으로 흥건한 내 보지를 꼼꼼하게 닦아주곤 했죠.

그리고 아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면 안 선생은 내 보지에 꼴린 자기 자지를 박아주었어요.

결국 난 이 두 부자(父子)의 여자였던 거예요.

즉 한편으로는 어리고 예쁜 '며느리'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어린 ‘의붓 엄마’이기도 했던 셈이지요.

그 후, 안 선생님의 아들과 전 그날부터 무려 두 주간이나 학교도 안가고 씹질에만 몰두하였어요.

이 남자가 내 보지 맛을 보더니 그만 떠날 생각을 하지 않더라구요.

2주일이 지난 다음, 나는 두 부자 앞에서 공개적으로 임신했다고 선언하였어요.

당연히 뱃속의 아기는 ‘아들의 아기’가 분명하다고 말하자, 어리숙한 남편은 고지식하게도 내가 자신을 속인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남잔 서른이 넘어야 세상물정을 아는데 그 때 겨우 스물이 넘은지 몇 년 되지 않았으니 알긴 뭘 알았겠어요.

바로 그 후, 안 선생님은 아들에게 “여자를 임신시켰으면 결혼을 해야 된다”고 결혼을 강요하였어요.

“어떻게 남자가 되어서 여자를 임신시키고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면서, 아들이 옆에 있는데도 저에게도 같은 내용의 훈계를 한참동안 지껄여 대는 것이었어요.

저는 기가 막혔지만, 앨 뱄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아들과 결혼하는 것이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죠.

실제로는 ‘의붓 엄마’였지만, 법적으로는 ‘며느리’가 된 셈이었지요.

지금은 남편이 된 당시 안 선생의 아들은 나랑 결혼할 생각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인 안 선생이 집에서 살림하는 것을 허락해 줬으니 결혼을 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던 것이었어요.

게다가 안 선생님의 처는 오래전에 죽어 이 집에는 반드시 ‘여자’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안 선생 아들과 결혼한 것은 진짜 여러 사람을 살린 거예요.

시골 화성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내가 결혼한다니깐 시큰둥했어요.

뭐 사실 저는 집안에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내놓고 살던 년이었어요.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는지 모르지만, 저희 집도 사정이 다 비슷비슷해요.

제 친엄만, 전라도 벌교 여자였는데, 아버질 서울에서 만나 여차 저차 결혼하고 저를 가졌는데, 아버지가 여기 화성으로 내려온다니깐 딴 남자를 만나 그만 도망가고 말았어요.

그 후 아버진 새엄마를 얻었는데, 새엄마도 아빠의 행패에 견디지 못하고 그만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그래서 전 시집을 가는 둥 마는 둥, 결혼을 하는 둥 마는 둥 식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결혼한 셈이 되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 집 얘기하면 뭐해요? 괜히 창피만 떨텐데 ---

하여튼 저는 시집 온지 육 개월 만에 첫아기인 미영이를 낳았어요.

그리고 다행스럽게 바로 아기가 들어서진 않았는데, 이년이 조금 지나 둘째인 미소를 낳았지요.

그 때 바로 아기가 들어서지 않은 건 남편이 교도소에 수감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먼저 제가 몸조심하여 다시는 시아버지의 앨 배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남편이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남편의 앨 가지려고 애써서 낳은 애가 바로 미소였던 거예요.

갠, 내 이름을 본 따 미소라고 지었어요.

전 미소를 낳고선 한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집안의 두 남자인 남편과 시아버지는 앨 낳은 저를 그냥 두지 않았어요.

두 남자 다 젖이 철철 흐르는 제 유방을 쥐어짜듯하며 애기들보다 더 애기같이 제 젖을 먹었어요.

그러고 보니 두 남자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더라구요.

이러한 와중에 남편은 또 어딜 가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경찰서에선 절보고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어요. 아마 제가 남편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아버지에게 먼저 연락이 갔겠지요.

제가 경찰서에 가보니 남편은 유치장에 구속이 된 채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풀어 있더라구요.

말은 안했지만, 조폭들 간에 싸움이 붙은 것 같은데, 남편이 앞에 나서서 행동대장 노릇을 하다가 그만 달려들어간 것 같아요.

난 돈이 없어서 돈으로는 꺼내 주지는 못하고 그저 쌈짓돈 몇 푼 찔러주고 나왔어요.

상대편 조폭도 몇 놈 다친 것 같다는 이야기가 경찰서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게다가 이번엔 새 정부가 들어서서 조폭 일제 소탕 명령이 내려 남편은 본보기로 적어도 삼 년은 살 거라는 이야기도 들리더라구요. 보나마나 한 삼 년 잘 살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설상가상이라고 이번엔 시아버지인 안 선생이 자기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갑자기 쫒겨 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 때는 우리 집 아이들도 제법 커서, 만으로 여덟 살인 큰애가 초등학교 2학년, 작은애가 유치원엘 다녔어요.

음악선생인 시아버지는 보나마나 ‘음악’을 한답시고 연예인이 되고 싶어 속에 바람이 든 초등학교 5,6학년 여자아이들을 건드렸나 봐요.

저도 어렸을 때 그랬지만, 연예인이 되고 싶어 환장한 여자애들은 ‘음악’하는 사람이 꼬시면 백이면 백 다 넘어가요.

그런데 시아버진, 나이가 든 여자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어요.

사춘기가 될락말락한 여자애들, 이제 겨우 보지에 짜락털이 날락말락한 여자애들 보지를 무지무지하게 좋아했어요.

저 역시 그 때 시아버지에게 띠먹혔거든요.

시아버지 지론은 여자는 이 때가 최고로 아름다울 때래요.

여자아이들의 이 때는 마치 봄날 같아서 아주 짧은 순간이 있을 뿐이래요.

꽃이 피기 직전 멍울이 질 때, 여잔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거래요.

그러나 시아버진, 먼저 건드리진 않아요.

아마 여자애들이 먼저 시아버질 유혹했을 거예요.

왜 그런 애들 있잖아요.

발랑 까져서 어려서부터 날라리 기질이 있는 애들은 자기를 좋아하는 어른이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꼬셔서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는 애들 말이에요.

시아버진 이 일로 학교를 그만두고 교사직에서 나오는 것으로 일을 매듭지었어요.

아마 학교에서 문제를 삼았으면 더 크게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 정도로 끝난 것을 보면 여자아이들이 먼저 시아버지인 안 선생을 유혹한 것으로 결론이 난 것 같아요.

학교도 소문이 시끄럽게 나면 좋을 일이 없을 것이고, 여자 아이들의 부모도 어린 여자애가 선생과 스캔달이 나면 훗날 시집가는 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덮고 넘어간 거죠.

좋은 게 좋은 거란 말이 있잖아요.

시아버지인 안 선생은 5,6학년 여자애들에게 일본 걸그룹 아이돌의 춤과 노래를 배우도록 동영상을 보여주었을 거예요.

여자애들은 그런데 되게 민감하거든요.

그리고 요즘 애들은 우리 때보다 성에 훨씬 더 개방적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5,6학년만 되어도 알 건 다 알아요.

아마 그 또래 애들과 씹질하는 애들도 엄청 많을 꺼예요.

시아버지가 근무하던 초등학교의 음악실은 각종 악기가 구비된 작은 무대도 있고, 영상시스템도 갖춰져 있어서 초등학교 5,6학년 여자애들은 일본 걸그룹 멤버들과 같은 의상을 입고 댄스 연습을 했을 거예요.

안 선생이 입으라고 한 의상을 입으면 입지 않은 것보다 더 야하게 보이는 의상이었어요. 

걔네들도 ‘다리 찢기’ 연습을 하다 보면 허벅지 안쪽을 다치고 자연히 아프게 마련인데, 거기다가 맨소래담이나 안티푸라민을 처바르면 불이 나는 것처럼 화끈해지면서 보지가 꼴리게 마련이에요.

이런 연습을 하고 난 후 그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선생에게 분명히, “선생님 - 저 보지가 무지 꼴려요. 저 좀 박아주면 안돼요?‘라고 먼저 요청했을 꺼예요.

선생들 사이에서나 학부모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잘 알려지지 않지만, 학교의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런 소문은 소리도 없이 공공연하게 쫙 퍼지고 말아요.

그런데 여자애들의 이런 소문은 무척 빠르게 퍼뜨리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걔네들은 곧 중학교엘 가버리고 다른 애들로 그 빈자리가 채워지니 안 선생은 십 수 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숱한 여자애들의 몸을 만지고, 부풀어 오르는 사춘기 여자애들 젖가슴을 주무르고, 피어나는 보지를 맛봤을 거예요. 그건 안 선생에게 있어서 천국이나 다름없는 세상이었던 거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천국, 그런 낙원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거예요.

교직을 그만 두게 된 시아버지 안 선생은 그 후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지 한동안 힘들어 했어요.

그 후, 시아버진 3개월도 지나지 않아 안산 모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취직이 된 거예요.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경력이 아파트 경비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자격조건이었다고 하더군요.

아파트 주민들의 자녀가 교사 출신 경비원 때문에 안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래요. 참 웃기는 거죠.

그 사람이 어떻게 짤렸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전직(前職)이 현직(現職)의 담보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아파트 경비원은 24시간 맞교대 근무에요.

하루 근무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무조건 쉬는 거예요.

잠은 언제 자냐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24시간 맞교대 근무는 주로 오전 8시에 근무를 교대하고 나서 다음날 오전 8시에 다른 경비원과 교대를 하는데, 밤 12시 경에 마지막 순찰을 돌고 나서 경비실 한쪽 구석에 마련된 간이침대에 누워 자게 마련이에요.

물론 충분한 잠이 부족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60대 초반의 성인 남자는 하루 6∼7시간 정도 자면 충분해요.

경비원인 시아버지가 8시에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면 약 8시 30분 정도예요.

근무하는 아파트가 멀지 않으니 자전거를 타고 오면 금방이죠.

그리고 손을 씻고 아침을 먹으면 오전 9시 경이 되는데, 이 시간엔 우리 딸들도 모두 학교에 가거나 유치원에 가 있을 시간이어서 집에 저와 시아버지 밖엔 남지 않아요.

남편이 교도소 가 있는 동안은 이 시간이 저와 시아버지가 육체의 정분을 나누는 시간인 거죠.

시아버지는 제가 설겆이를 하면 뒤에서 다가와 저의 젖무덤을 만지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에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해요.

”아가, 네 젖이 참 조쿠나!“

가끔 치마를 들추고 팬티를 내려 엉덩이 부분도 만져요.

그러면 보지에 물이 흐르게 마련인데, 어쩔 땐 똥꼬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어 보지를 빨 때도 있어요.

당연히 전 설거지를 하면서 엉덩이를 쭉 빼어 보질 빨기 좋게 만들어 줘야 해요.

미소를 낳았을 땐 설거지하는 데도 젖을 꺼내어 쭉쭉 빨아 먹었어요.

다 큰 어른이 젖을 빨면서 보질 만지니 제가 견딜 재간이 있나요.

돌아서서 엉덩이를 내밀어 떡을 치는 경우가 다반사예요.

그런데 이 때 제 나이가 아직 서른도 안 된 스물여덟이었어요.

다른 여자들은 이 나이가 되도록 연애한 번 못하고, 씹질 한 번 제대로 못한 년들이 수두룩하다잖아요.

물론 겉으로만 그런 거죠.

전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앨 배서 하는 수없이 시집이란 곳을 왔는데, 남편이란 놈은 허구헌 날 교도소 감방에 들어가 살림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어서, 하는 수 없이 제가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게 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남자에게 길들여진 무르익은 여인의 육체는 남자가 곁에 없으면 정말 참기 힘든 때였어요.

시아버진 초등학교 음악교사 생활을 하면서 옆에 졸졸 따라다니던 5,6학년 여자애들의 싱싱한 영계를 맛보지도 못하던 차에 며느리란 년이 암내를 솔솔 풍기며 곁으로 다가오자 ‘얼싸 좋다’ 하면서 그만 저와 배가 붙어 버린 거예요.

물론 저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 박아주던 익숙한 시아버지 안 선생의 품이 그의 아들인 남편보다 훨씬 좋았어요.

시아버지가 박아주면 은근히 꼴리는 맛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어느날 아침 아파트 경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시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어요.

“아버님, 초등학교 5,6학년 계집애들보다 제가 늙어서 싫은 거죠? 그런 거죠?”

그러자 시아버진 이렇게 대답했어요.

“그 대신 넌 내 딸 같은 며느리잖아. 어떤 시 애비가 며느리랑 씹을 한 대니? 어떤 애비가 지 딸하고 연앨 한 대니? 넌 그 둘을 모두 채워주잖아”

결국 시아버진 근친상간의 배덕감이 어린애들과의 섹스보다 더 꼴릿했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시아버진 미영과 미소, 제 두 딸애와의 관계에서 근친상간의 배덕감과 함께 여아성애애호의 느낌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엄청난 쾌감을 주는 사건이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첨에 저는 이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죠.

내가 두 딸 애들과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알게 된 것은 바로 얼마 전이었거든요.

이미 그 아이들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할아버지, 아버지와 근친상간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난 걔들에게 “왜 할아버지랑 그런 짓을 헸냐?”고 물었어요.

그 때 미소란 년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그럼 옴만, 왜 아버지랑 하고 할아버지랑도 했어?”

난 할 말이 없었어요. 이미 딸애들은 내가 누구랑 붙어먹고 살았는지 다 알고 있었어요.

그동안 어리석게도 나의 행동에 대해서 딸애들은 전혀 알지 못했을 거란 착각 속에 살았던 거죠.

그래서 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영이란 년과 미소란 년이 저지른 사건의 전말에 대해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물었어요.

이년은 옴마도 이젠 다 알게 된 일이니 첨부터 얘기해 주겠다고 그러드라구요.

참,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가 아녀요?

이년은 절보고 처음으로 한다는 소리가 이따위였어요.

“옴마, 난 옴마처럼 가짜 가수가 아니라 진짜 가수가 되고 시펐거든 ---그런데 할아버지가 옴마한테 말하면 절대로 가르쳐주지 않다고 했써 --- ”

알고 보니 시아버진 아파트 경비원 일이 끝나면 집에 와서 오전에는 나랑 농탕질을 하다가, 내가 노래방에 일을 나가는 오후가 되면 두 딸 아이들에게 일본 걸그룹 아이돌이 나와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음악’을 가르쳤던 것이었어요.

TV에 나오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딸애들은 할아버지의 뜻에 맞춰 철저히 길들여지기 시작한 거였죠.

시아버진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미영이를 먼저 길들이기 시작했죠.

처음으로 시아버지가 미영에게 가르친 춤의 자세가 글쎄 ‘다리 찢기’에요.

그건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시아버지가 된 안 선생에게 배웠던 댄스의 기초 자세였죠.

사실 댄스든 무용이든 그런 무리한 자세를 처음에 가르치면 절대로 안되는데, 안 선생은 댄스를 가르치는 게 목적이 아니니깐 이런 무리한 자세부터 가르쳤던 것이었어요.

책을 보면 이 자세는 “다리와 둔근 그리고 허리까지 매우 깊게 스트레칭이 되는 자세이기 때문에 충분한 워밍업이 필요하다”고 쓰여 있어요.

그러므로 충분한 ‘워밍업’이 없이 그냥 ‘다리찢기’를 시도하면 허벅지 아래의 근육이 손상될 수 있는 건데 시아버진 오로지 여자 아이들의 허벅지를 만지는 것이 목적이므로 이런 운동을 시켰던 거예요.

시아버진 미영이 년이 다리찢기를 하고 나면 의례히 허벅지 아래 맨살에 맨소×담 로션을 발라주었어요.

첨에는 아프다고 난리치던 년이 한참 지나니 할아버지가 허벅지 아래에 맨소ב담 로션을 발라주면 ’시원하다‘고 말할 정도가 되어 버렸어요.

그 당시를 생각해 보면 어쩐지 이상했던 일이 있었어요.

하루는 집에 초등학교에서 시아버지가 음악교사 시절, 초등학교 5,6학년 여학생 아이들을 꼬실 때 사용하던 음악 도구들이 집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전 무슨 일인지 물었지요.

그랬더니 시아버진 “응, 내가 학교에서 쓰던 물건을 가져가라고 해서 다 가져왔다”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알고 보니 초등학교 재직할 때 쓰던 물건들을 다 갖고 온 것이었어요.

물론 학교에서 ‘갖고 가라’고 한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가 임의로 들고 온 거였어요.

그리고 그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미영이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었어요

미영이란 년도 날 닮아 어려서부터 끼가 있었어요.

이년은 네 살, 다섯 살부터 TV에 나오는 걸그룹 댄스가수들의 춤을 곧잘 따라 했어요.

그러면 시아버진 미영이를 꼭 끌어안고 엉덩이를 톡톡치며 얼굴을 부벼주고 만원짜리 한 장을 주곤 했죠.

물론 난 미영이에게서 그 돈을 빼앗아 내 주머니에 넣었죠.

그런데 이년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다리찢기에 능숙해졌어요.

가만히 서 있다가도 다리를 짝 벌리면 허벅지와 보지가 그냥 맨 방바닥에 닿아버렸어요.

그러면 시아버지가 잽싸게 다가와 이년의 허벅다리와 보지 부근의 근육을 마사지라 하여 만져주었어요.

말만 마사지지 사실은 애무에 가까운 행동이었지요.

이러는 와중에 시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애통해 하는 사건이 미영이년 초등학교 5학년 때 벌어졌어요.

이건 순전히 미소란 년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이년은 언니가 아빠에게 처녀를 뺏긴 사건을 할아버지에게 다 일러줬던 거예요.

시아버진 저를 보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애효, 그럴 줄 알았더라면 아끼지 말고 내가 먼저 따먹었어야 했는데--- ”

미영이란 년은 처음부터 할아버지의 손으로 길들여졌는데, 막상 이년의 처녀보지를 먹은 것은 안 영감의 아들, 김 부인의 남편이자 아버지란 자식이 딸내미의 처녀를 홀딱 따먹은 거였어요.

시아버진 두고두고 이 일을 아까워하다가 미영이 동생, 미소란 년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보지가 점차 영글기 시작하자 이년의 아버지이면서 자기의 아들에게 또 빼앗기기 싫어서 어리디 어린 영계를 홀라당 잡아먹었어요.

물론 이 땐, 남편이 감방에 들어가 있을 때라서 집에 없었어요.

그러나 시아버지로서는 아들의 구치 기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니, 언제 와서 딸애를 날름 따먹을지 모르니 먼저 선수를 친 것이었어요.

시아버진 아마 미소년을 꼬시느라고 애를 많이 먹었을 거예요.

돈도 많이 들었을 거예요.

애들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구요? 정말 모르는 말씀하시네!

그년들은 첨엔 할아버지가 만원씩 주면 나에게 와서 자랑을 했어요.

그러면 전 애들의 돈을 빼앗아 챙겨두었죠.

그런데 미영이란 년은 초등학교 3학년이 지나자 할아버지가 자길 껴안을 때마다 주는 돈을 엄마인 저에게 보여주지도 않더군요.

그 담엔 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할아버지가 주지 않았다고 시침이 떼는데 제가 무슨 할 말이 있었겠어요.

미영이란 년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자기 아빠가 없으면 할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무릎에 앉고 엉덩이를 부비면서 아양을 떨었어요.

미영이란 년이 입술에 루즈를 바르기 시작한 것이 바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어요.

까질 대로 까진 년은 화장하는 것도 참 빠르더군요.

우린 초등학교 땐 화장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요즘 애들은 화장도 빨라요.

우리 땐 적어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화장을 했는데, 요즘은 중학생들도 기본적인 화장은 다하더군요.

학교 선생들은 뭐하는지 몰라요.

하긴 선생들도 여자애들 따먹을 생각만 하니 - 오히려 화장하는 걸 좋아할 꺼예요.

그건 그렇고, 미영이 년은 첨에 내 루즈를 몰래 훔쳐서 바르더니 엄마 껀 너무 진해서 마음에 안든다고 하면서 나중엔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사서 처바르더라구요.

시아버진 미영이 년이 루즈 바른 것을 엄청 좋아했어요.

미영이란 년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루즈만 바르면 할아버진 자기 입술을 ‘쪽쪽’ 빨아먹지 못해 환장한다더군요. 

사실 젖도 안 튀어나온 아주 어린 여자애들이 입술에 빨간 루즈를 바르고 볼에 색조 화장을 조금만 하면 색기가 줄줄 흘러넘치는 것이 남자들을 아주 죽여주는 효과가 있긴 해요. 게다가 마스카라까지 하면 남자들은 꼴딱 넘어가죠.

이년은 그런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예요.

초등학교 5학년 말에 남편에게 처녀 보지를 뚫린 미영이 년은 6학년 올라가고 부턴 본격적으로 시아버지에게도 보질 대주기 시작했더라구요.

그 땐 남편이 두 번째로 수감되었던 때라 집에 없었기 때문에 미영이란 년은 시아버지와 관계하기가 쉬웠던 것이었어요.

아마 집에서 이년이 입술에 루즈를 처바르는 날은 무조건 할아버지랑 하는 날이었을 꺼예요.

그래도 이 때만 해도 내가 집에 있을 땐 씹질까지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이년이 중학교 3학년이 된 올해 초 - 바로 얼마 전이죠. - 덜컥 임신을 하고 절 찾아왔어요.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요. 그리고 이렇게 묻드라구요.

“옴마 나 앨 밴 것 같아 어쩌면 좋지?”

개 같은 년 같으니라구! 공부하는 거라든가, 학교 가는 걸 물으면, 하다못해 노래 부르는 걸 물으면 용하다구나 하지. 어뜨케 겨우 중3 짜리가 앨 밴 걸 '어뜨케 하냐?'구 옴마한테 찾아와 물어보는지 기가 맥히더라구요

그래서 전 뱃속에 있는 애기가 누구 앤지 물었지요.

그런데 이년이 하는 말이 요즘 들어서 할아버지랑 가장 많이 씹을 했다는 거예요.

그 이유가 기가 막히게도 할아버지가 돈을 가장 잘 줬다는 거예요.

저도 미영이 년을 임신시킨 남자가 시아버지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해요.

남편일 가능성도 조금은 있지만, 감방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원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딴 사람은 다 보지 밖에다 싸라고 했다는 거예요.

시아버진 씹질할 때 여자 보지 안에 싸는 걸 너무 너무 좋아해요.

아마 미영이 년에게 용돈을 주면서 안에 싸는 걸 요구했을께 뻔해요.

그래서 전 대뜸 시아버질 찾아가 이렇게 따졌어요.

“아버님, 저 혼자 보질 대주면 됐지, 어뜨케 ‘우리 딸’ 보지까지 따먹어요? 거기다가 딸앨 임신까지 시키면 갠 나중에 어떻게 하라구 --- 그러케 했써요?”

제가 앙칼지게 덤벼들었죠.

왜냐하면 미영인 사실 시아버지와 저 사이에 태어난 딸이었거든요.

어뜨케 친딸 보지를 따먹고 임신까지 시키는 친아버지가 어딨어요?

남편은 미영이가 자기 딸인 줄로 굳게 믿고 있지만, 나와 시아버진 첨부터 다 알고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자 시아버진 기가 막히게도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야, 이년아 난, 니 딸하고 널 같이 먹고 시퍼 --”

이 영감이 꿈도 야무지지 이렇게 심한 말을 마구 하는 거였어요.

“아버님, 그럼 우리 모녈 덮밥으로 만들어 먹겠단 거예요?”

제 물음에 시아버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하는 거였어요.

“바로 그거야. 넌 어뜨케 생각하니?

시아버진 미영이년 임신시킨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우리 모녈 덮밥을 만들어 먹겠다는 말에 난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게다가 한수 떠 떠서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얘, 소미야, 너 나랑 너랑, 미영이랑 어디 먼 곳으로 도망가서 애길 낳고 같이 살면 어떠니? 너는 지금도 충분히 앨 낳을 수 있잖아”

이러케 은근하게 다가와 절 꼬시는 염감의 유혹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 했어요.

사실 전 이제 겨우 서른 여섯이니 앨 낳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못낳을 것은 없는 나이긴 해요..

그러나 그것은 둘째 미소란 년을 생각하면 못할 일인 거죠.

그런데 벌써 미소란 년의 처녀보질 시아버지가 벌써 일찌감치 따먹어 버리고 말았드라구요.

세상에 중학교 3학년짜리 친딸(법적으로는 첫 손녀)은 임신을 시키고, 둘째 손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녀 보질 따먹고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저를 정말 분노케 만들었어요.

사실, 제가 경찰에 고발한 이유의 80%가 미영이 년을 임신시키고도 나 몰라라 하는 뻔뻔한 시아버지의 행각에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던 거예요.

이렇게 형사의 수기 기록이 끝나고 있었다.

치수는 깨알같이 쓴 기록을 꼼꼼하게 다 읽고 나서 숨을 돌렸다. 

이 이야기는 그가 본 어떤 음란 소설보다 훨씬 더 음란한 이야기 줄거리였다.

그는 한숨을 쉰 후 그의 곁에 엎드려 누운 채 도색소설을 읽으며 색색거리는 미란이의 엉덩이를 만졌다.

“아이 씨발 오빠, 엉덩일 왜 만져 --- ”

[집안이야기 완전 새로 쓰기 2부 13편 - 어느 귀부인의 정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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