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4화
힘 강화 스킬 3레벨과 체력 강화 스킬 1레벨을 취득했다.
'여기에 재생 스킬 1레벨을 더하면···.'
힘 강화 3레벨, 체력 강화 1레벨에 재생 1레벨.
독 저항 스킬을 뚫기 위한 선행 스킬이다.
지하 2층에는 '모크라크' 독초가 나왔다. 이 풀은 다른 물약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홀로 쓰면 실제 데미지보다 고통을 더 크게 주는 독으로 작용했다.
'함정 관련과 독 관련이라, 도적이 아니면 잡캐가 되겠군.'
나는 다른 이들과 달랐다. 직업 선택이 자유로웠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직업이 정해져 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직업에 맞게 성장했다.
나처럼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다.
경험치 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주된 성장 트리와 하는 행동에 따라 성장하지, 다른 쪽을 선택해서 투자할 수 없었다.
29층까지 내려가면서 여러 동료와 함께했었다.
다만 항상 같은 자와 함께 하지 않았다. 회귀할 때마다 던전 구조가 바뀌기에 바리스와 헤스티, 티릭을 제외하면 만나는 시기도 달랐다.
어떨 때는 먼저 죽어버려 시체로 발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료가 들어오는 상황에 따라 직업을 선택했다.
도적이 없으면 도적으로, 딜러가 부족하면 딜러로, 탱커가 부족하면 탱커로 컸다.
거기에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성장 체계가 비슷한 것처럼 흉내 냈다.
묵묵히 전진하는 가운데, 나는 입을 열었다.
"운이 좋은걸."
내 말에 헤스티가 어깨를 움츠렸다. 바리스와 함께 긴장했다.
반쯤은 허세였다. 진짜 운이 좋다면 다음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만 발견했을 것이다.
계단 앞에는 고블린 워리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 고블린보다 덩치가 더 컸지만, 더 음침하면서, 눈높이가 같았다. 특유의 앞으로 숙인 자세 때문에 눈높이가 낮은 것이다.
이는 일반 고블린처럼 공격이 조잡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움츠린 몸은 최대 팔길이를 추측할 수 없게 만들었고 추측이 틀린 인간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나에 이어 바리스, 헤스티도 고블린 워리어를 발견했다. 고블린 워리어 역시 우리를 발견했다.
고블린 워리어는 음산한 소음을 만들면서 땅을 기듯 꿈틀거렸지만, 달려들지 않았다.
"저거, 달려들지 않는군요."
"수문장 몬스터다."
나는 헤스티의 중얼거림에 가르쳐줬다.
각 층에는 일반적인 몬스터보다 강한 몬스터가 있었다. 그것들은 계단이나 유적, 샘터 같은 요지를 선호했다.
사람들은 요지에 미궁의 마력이 짙게 모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곤 했지만, 이론은 어떻든 간에 강한 적임은 변하지 않았다.
강한 적이지만,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도 그나마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조우 방식이었다. 발견만 한다면, 몬스터가 이쪽을 알아차린 후에도 도망칠 수 있고, 추적해오지 않았다.
'뭐, 추적하는 특성이 있다면 편법에 당했을 테지.'
인간은 인간에게 잔인했다. 희생자를 만들어 수문장 몬스터에게 접근시킨 후, 도망치게 했을 것이다. 수문장 몬스터가 추적하면 그 틈에 계단 등을 지나갈 것이다.
몬스터가 희생자를 처치하고 돌아와도 이미 지나가버린 계단으로는 쫓아오지 못할 테니.
"달려들지 않지만 싸워야 할 상대다."
휘익-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도발하는 나의 움직임에 세 명을 똑같이 경계하던 고블린 워리어의 집중이 내게 쏠렸다.
나는 달려나갈 듯이, 몸을 앞으로 숙였다. 수문장 몬스터도 일정 거리 내에서는 당연히 반응한다.
고블린 워리어가 포효를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앞뒤가 되도록.'
바리스와 헤스티의 협공은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존재감을 이용할 수 있다.
달려나가다가 속도를 줄였다.
고블린 워리어와 가까워졌다. 나는 고블린 워리어 우측으로 크게 빠졌다.
고블린 워리어가 마음에 안 찬다는 듯, 크득거리면서 나를 향해 몸의 방향을 전환했다.
강한 몬스터를 상대할 때 행하는 진형 운영이다.
탱커가 강한 몬스터와 맞붙자마자 함께 회전하면, 뒤따르는 딜러는 몬스터의 뒤를 쉽게 노릴 수 있다.
물론, 바리스와 헤스티는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무기를 내게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상처 입고 손목을 묶였다.
하지만, 고블린 워리어는 바리스와 헤스티의 전투력이 없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나를 상대하는 도중에도 집중을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분배해야만 한다.
'할만해.'
힘과 스텟으로 압도하지 못해도, 집중력만큼은 내가 높다.
상황 변화를 대비하기 위해, 뒤를 경계하느라고 전력을 다하지 않은 고블린 워리어의 일격을 그대로 받아냈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기척을 줄였다.
수동적이었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는 알아차렸다.
'도망치려는 거군.'
하긴 2층으로 내려가면 도망치기 힘드니 지금이 승부수를 던질만한 타이밍이다.
"좋아, 바리스."
나는 외치며 연기했다.
어중간한 예비 자세를 취했다.
고블린 워리어가 이 자세를 협공을 위한 자세라고 오인하도록, 움직이는 형식을 확연하게 바꿨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밧줄에 묶인 채로 뒤로 달렸다.
그리고, 고블린 워리어가 나의 수작에 걸렸다. 바리스와 헤스티의 움직임을 도망이 아닌, 새로운 협공을 위한 예비 동작으로 받아들였다.
예상한 바리스와 헤스티의 도망.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회귀를 겪으면서 단련했기에 냉정을 유지했다.
"죽어라."
나는 고블린 워리어의 팔 안쪽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떨어트리는 고블린의 단검을 낚아챘다. 그대로 두 걸음 뒤로 빠졌다.
그리고, 매고 있던 바리스의 검을 고블린 워리어에게 던졌다.
던지는 공격이 아니었다. 마치 쓰라는 것처럼 무기를 던졌다.
고블린 워리어가 혼란스러워했다. 고블린 워리어는 내가 낚아챈 고블린 단검 대신 바리스의 양손검을 잡았다.
나는 바로 뒤로 돌아 도망쳤다.
만일 코볼트라면, 코볼트가 쓰던 무기를 빼앗고 다른 무기를 던진다면 코볼트는 던져준 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다. 고블린보다 코볼트는 장비에 대한 숙련도가 높아 석궁과 같은 복잡한 무기까지 쓸 정도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인지 새로운 무기를 고르는데 세심했다.
무기를 잃은 상황에서 다른 무기가 옆에 널려있어도 마음에 차지 않아 하면서 짧은 손톱을 세우고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고블린은 코볼트와 무기를 대하는 습성이 달랐다. 쓰던 무기를 버리지 않지만, 손이 빈 상태에서는 뾰족한 돌멩이라도 줍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를 알기에 시도했다.
단검을 들고 달리는 것과 양손검을 들고 달리는 것의 균형감은 다르다.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원래 속도를 내지 못한다. 미세하게 차이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나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장검을 버리고 맨손으로 쫓아왔다면 나를 붙잡았을지도 모르지만, 고블린은 단검을 내게 빼앗긴 상황에서 장검까지 버리고 달려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그대로, 도망친 바리스와 헤스티를 쫓았다. 수문장 몬스터의 특성상 조금만 멀어져도 돌아갈 것이기에 뒤를 걱정하지 않고 추적했다.
* * * * * * * * *
바리스와 헤스티는 나를 뿌리치지 못했다. 급하게 도망치면서도 소음과 흔적을 통제하는 것은 고난이도의 생존법이었다.
미궁 초입의 탐험가가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바리스와 헤스티가 할 수 있는 행동은 한정되어 있다.
'오던 길에 적당한 곳이 있었어.'
일직선 상의 통로.
그 끝에 헤스티가 있었다. 두 손을 들어 올려 마법을 준비했다.
초반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내가 생각했던 곳을 역습의 장소로 선정했으니 칭찬해줘야 할까?
나는 일부러 흉포한 표정을 짓고 비틀린 악당처럼 목 끓는 소리를 냈다.
"크크, 용기는 가상한데,"
헤스티의 표정이 떨렸다. 경험이 미천하고, 아직 심약한 헤스티는 나의 연기에 쉽게 흔들렸다.
거기에다가, 지팡이가 없었다. 극초반의 마법사는 스킬이 있다고 해도 제약조건에 크게 얽매였다.
실패 확률이 커진 마법 스킬이, 시전 속도마저 느려진 채 시전되기 시작했다.
"이거 가져가."
나는 헤스티에게 지팡이를 던졌다.
지팡이가 매섭게 날아갔다. 투척 스킬이 없다고 해도, 힘 3, 민첩 3을 강화시킨 육체로 던진 투척이었다.
그대로 헤스티의 스킬이 깨졌다. 자신이 귀하게 여기던 지팡이이기에 더욱 집중을 빼앗겼다.
헤스티가 마법 실패의 반작용에 비틀거렸다.
나는 그 틈을 노릴 것처럼, 전력을 다할 것처럼 몸을 앞으로 숙였다.
페인트 동작이다. 실제로는 전력으로 달려나가지 않았다.
헤스티를 향해 달려드는 길 중간에, 옆으로 빠지는 짧은 통로가 있다. 흥분하면 놓칠 정도로 어두침침했다.
내가 역습하기 좋은 장소라고 판단한 이유, 바리스와 헤스티가 이곳에서 나를 기다린 이유.
거기에 바리스가 숨어있을 것이다.
아군을 버릴 바리스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용사일지도 몰랐다.
몸을 앞으로 기울여 달리면서도 주변으로 집중력을 분배했다.
바리스가 숨었을 만한 꺾어진 곳을 지났다.
틱,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
발소리를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달리는 나를 발소리를 죽이고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헤스티가 지팡이를 주워들고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저것은 연기다.'
바로 파악했다. 마법을 대비할 필요 없었다.
내 뒤에 바리스가 있기에 쓰지 못한다. 헤스티는 아직 아군과 적을 구분하는 마법을 쓰지 못한다.
나중에는 피아 구분은 물론, 최상급 데미지를 뽑아내지만, 그것은 중반 이후의 이야기였다.
"어설프구나."
나는 몸을 순간적으로 돌렸다. 급격한 방향 전환에 몸에 부하가 그대로 걸렸다.
하지만, 그만큼 달려오던 바리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어디선가에서 주운 돌멩이를 전력을 다해 휘둘러왔다. 거침없는 일격에 그녀의 겨드랑이 상처가 터져 동작에 따라 피를 흩뿌렸다.
"새로 상처 낼 필요 없겠군."
나는 이미 이긴 것처럼 말했다. 애초에 바리스는 양손검을 썼다. 투지가 넘치는 공격이지만, 예상한 공격에다가 적당하지 않은 무기였다.
나는 한 발짝 더 깊게 파고들었다. 바리스는 내가 파고들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단검이고, 바리스는 돌멩이, 단검이라도 나의 공격반경이 더 크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내게 유리했다.
바리스도 그렇게 생각하고 급하게 거리를 좁혔기에,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드는 나를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단검을 놓았다.
바리스의 내지른 팔을 양손으로 잡아당기면서 등으로 바리스의 가슴팍을 밀었다.
쾅 하는 소리가 미궁에 울렸다. 나는 바리스를 바닥에 엎어쳤다.
"크아악-, 크 크윽, 내 팔."
이번에는 바리스도 냉정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바닥에서 고통에 발버둥치는 바리스의 목에 발을 올렸다.
압박하면서 냉정하게 살폈다. 피가 매섭게 뿜어져 나왔지만, 팔은 끊어지지 않았다.
"헤스티, 이리로 빨리 와라."
분노도 없이 무미건조하게 내뱉었다. 내 말에 계속해서 마법 시전 자세를 취하던 헤스티가 움찔거렸다.
"바리스를 죽게 내버려 둘 거냐? 당장 달려와."
"네, 넷."
나는 다가온 헤스티에게 단검을 건넸다.
"지혈할 천을 만들어라."
헤스티가 순간적으로 나를 봤다. 응급 치료용품을 다 가져가 놓고 무슨 말을 하냐는 듯 쳐다보았다.
나는 눈빛으로 헤스티의 몸 안쪽을 가리켰다.
"아."
내 눈빛을 알아차린 헤스티가 자신의 옷을 벗었다. 속옷까지 빠르게 벗었다.
여리면서도 탐스러운 살색이 드러났다.
하지만, 헤스티는 몸을 숨기기보다 속옷을 길게 잘라 바리스의 팔을 지혈했다.
바리스의 상태는 위험했다. 겨드랑이에 상처를 입은 상태에서 내가 팔을 당기면서 엎어쳤기에 상처가 크게 벌어졌다.
"바리스, 미안해. 미안해."
상처를 감싸면서 헤스티가 계속 흐느꼈다.
둘이 흩어져서 도망쳤으면, 둘 중 하나는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산 자는 바리스일 가능성이 컸다.
헤스티는 자신을 버리면 살 수 있는, 거기에다가 계속해서 상처 입는 바리스에 눈물 흘렸다.
바리스가 끄윽거렸다. 그나마 나은 왼팔을 움직였다.
바리스의 손이 울먹이는 헤스티의 다리를 토닥였다.
나는 단검을 수거했다.
응급조치를 끝낸 둘을 일으켰다. 헤스티에게서 지팡이를 다시 빼앗지 않았다.
"가자."
둘은 내 말에 힘없이 일어섰다.
둘은 알려주지 않아도, 미궁 지하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을 향해 걸었다.
"계단 근처에 고블린 워리어가 있다. 보자마자 파이어 볼트를 날려라."
"네?"
"제대로 날려라, 뭐, 바리스를 미끼로 쓰는 것도 방법이다만은."
"아니, 아니에요. 제가 제대로 할게요."
"뭐, 내키면 나를 향해 쏴도 좋아."
"아니에요. 이제 배신하지 않아요."
나는 딴지를 걸지 않았다.
헤스티는 정신적으로 몰렸다. 내가 배신자인데, 자신을 배신자로 칭할 만큼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