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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화 (5/139)



〈 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화
고블린 워리어가 보였다. 수문장 몬스터 특성으로 나를 쫓다가 놓치자 계단 쪽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는 헤스티에게 고블린 워리어를 턱으로 가리켰다.
내게는 가벼운 턱짓이었지만, 마음이 약해져 있던 헤스티는 흠짓거렸다. 나는 말을 더하진 않았다.
압박하긴 쉽지만, 정신을 북돋아 주는 건 어렵다.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묵묵히 기다렸다.
나의 눈치를 보던 시선이 바리스에 닿고 고블린 워리어에게 닿았다.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떨리던  끝을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곤 부릅떴다.
자신의 지팡이가 아닌 것처럼 어색하게 들어 올린 지팡이를 꽉 쥐었다. 공기가 요동쳤다.

"파이어 볼트."

붉은 화염 덩어리가 고블린 워리어를 향해 날아갔다. 예상보다 크기가 작았다.
하지만, 발사되는 순간 나는 작은 탄성을 흘렸다.
위력은 줄어들었지만, 궤도가 정확하고 속도가 빨랐다. 아예 스킬을 실패할 상황도 가정하고 준비했는데, 헤스티는 바리스가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을 속도와 정확성으로 이끌어냈다.

붉은빛이 엉겨들며 발사되는 순간, 바리스가 헤스티의 앞을 가렸다.
상처 입어 약해진 상태인데도, 마법사를 보호하는 전사의 역할을 자처했다.

"호오."

고블린 워리어는 파이어 볼트를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억지로 마법을 쓰는 상황이었지만, 헤스티의 전술적 판단은 옳았다. 지금 상황은 적을 제압한  마무리로 강력한 공격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공격할  있게 견제하는 상황이었다.
거기다가 내가 고블린 워리어에게 던져준, 익숙하지 못한 바리스의 양손검이 빠른 회피를 방해했다.


나는 달려나갔다. 파이어 볼트가 만들어낸 고블린 워리어의 수세를 놓치지 않았다.
공세가 중첩해서 이어졌다.
내가 가하는 공격뿐만 아니라, 바리스와 헤스티의 존재가 고블린 워리어에게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고블린 워리어 입장에서 바리스와 헤스티의 자세를 보면, 다시 한번 마법이 날아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나-고블린 워리어-헤스티가 일직선이 되도록, 고블린 워리어의 등이 헤스티를 향하도록 움직이자, 고블린 워리어도 몸을 가까이 해왔다.
나랑 거리를 띄웠다가는 마법사에게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단검 거리가 익숙하기도 했겠고.
하지만, 이것은 장검이 유리한 거리를 스스로 버리는 짓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칠 정도로 어리숙하지 않다. 고블린 워리어가 장검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만큼 과감하게 움직였다.
가슴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고블린 워리어를 처치하여 경험치 250을 배분받았습니다.]


단검에 묻은 녹색 피를 털어낼 때, 익숙해진 메시지가 인지되었다.


혼자 싸운 이때까지와는 다르게 경험치가 분배되었다.
지하 1층의 고블린 워리어는 경험치를 300 정도 줬다. 그중, 내게 250이 넘어오고 50 정도가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넘어갔다.


미궁의 파티시스템은 상당히 예민했다.
같은 장소에 있더라도 파티라고 인식하지 않으면 경험치 분배가 되지 않았다.
즉, 바리스와 헤스티가 함께 싸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경험치 50도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같이 싸울 생각을 했군.'


일단, 나쁘지 않았다.


바리스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체력이 한계에 달한 것이다.
나는 고블린 워리어가 들고 있던 바리스의 양손검을 챙기고 이마를 갈랐다. 역시 마석이 있었다.

바리스에게 그녀의 검을 건네주었다.
바리스는  얼굴을 물끄러미 보더니 받았다. 나의 시선이 멀어지자, 자신의 검을  잡았다.
배낭을 다시 챙겼다. 나는 가벼운 배낭을 메고 바리스는 배낭 없이, 헤스티에게는 무거운 배낭을 메게 시켰다.

"가자."

나는 고갯짓했다.
내 지시에 바리스가 먼저, 헤스티가 두 번째로, 마지막으로 내가 계단으로 들어섰다.
미궁 계단은 일행이 지나가고 나면 일정 시간 후에 사라질 것이다.

"끄윽."


헤스티가 걸음을 내디디며 배낭의 무게 때문에 반사적으로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내고는 아차 싶은지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가장 힘든 이는 다친 바리스였다. 하지만, 그녀는 표를 내지 않았다.
헤스티도 이를 알고 있는 만큼 이를 악물었다.

'헤스티의 성장 순서가 바뀌겠군. 체력이 먼저 오르겠어.'

나는 경험치 투자를 선택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하는 행동에 따라 성장했다. 방어를 키우기 위해서는 방어를, 마법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법을 많이 쓰는 식으로, 원하는 방향의 행동을 많이 해 성장을 유도했다.

마법사는 성장하면 할수록 파티에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회귀 전에는 헤스티의 마법적 성장을 우선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법사의 컨디션을 무시하고 무거운 짐을 맡겼다. 다음 적을 만났을 때, 마법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 * * * * * * * *

묵묵히 걸었다. 계단이 끝났다.
축축한 공기와 어스름한 조명, 지하 2층의 분위기는 지하 1층과 비슷했다.
잔뜩 긴장한 채 앞장섰던 바리스가 뒤따라오는 나를 흘낏 보고 어깨를 이완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 자신도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지, 입술 끝을 당겼다. 지금 닥친 위험은  때문이니 머리로는 나를 용서할 수 없지만, 내가 있어야  수 있으니 마음은 나를 보고 안심하는 것이다.


"1층과 비슷하군요."
"그래, 다행이지. 온도와 습도가 비슷하면 비슷한 몬스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니까, 괜히 특이한 몬스터가 나오면 너희들만 힘들어."

바리스가 마음속의 혼란을 정리하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2층 이상의 경험자는 나뿐이니 정보를 모으는 것이 현실적이다.

나는 대답을 하면서도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급하게 움직일 생각 없었다.
지하 2층부터는 나 혼자서 둘을 보호하면서 진행하기 어려웠다. 바리스, 헤스티 둘  한 명은 제대로 싸우게 만들어야 했다.


'역시, 있군.'


나는 벽과 바닥의 연결된 모퉁이로 다가갔다. 긴장하고 있던 둘의 시선이 나를 따랐다.


"그건 뭔가요?"
"이건 모크라크 풀이다. 독초지."


바리스와 헤스티가  독의 해독약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미궁의 수상한 풀을 일부러 먹는 이는 없기에, 모크라크의 해독약은 신출내기 탐험가의 필수품이 아니었다.  역시 약초학을 가진 동료가 가르쳐줘서 알았다.

나는 단검으로 줄기를 잘라 채집했다.
하나를 입안에 넣었다. 쓰디쓴 맛과 함께 가슴 속에서 쓰라린 고통이 밀려왔다.
이 모크라크 독은 다른 독과 살짝 달랐다. 몸이 상하는 것보다 고통이 더 컸다.
독 저항 스킬을 발생시키기 위한 조건인, '독 때문에 괴로워한다.'에 딱 맞는 독이었다.
미량일 경우에는 신체가 독성을 이겨내고 스스로 해독해내기에 따로 해독약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헤스티, 네가 이 독을 먹는다면 바리스를 치료해주지."

하지만, 나와 다르게 헤스티는 지친 상태이기에 스스로 해독할 수 없다. 중독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애초에 바리스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용사가 없으면, 지하에서 밀려 올라오는 '침식의 물결'에 죽는다.
그리고, 지하 2층부터는 혼자서  둘을 지키면서 싸울 수 없다.
어차피 바리스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다.


헤스티가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풀을 씹고 인상을 찌푸릴 때는 뭐 하는 짓이지라는 표정을 짓다가, 자신에게 닥친 일임을 알아차렸다.


바리스가 한 발짝 앞으로 나오려다가 멈췄다.
스스로 독을 먹는 것은 미친 짓이지만, 바리스 역시 자신의 체력이 회복되어야 지하 2층에서   있음을 아는 것이다.
헤스티의 눈이 나와 바리스를 빠르게 훑었다. 고통이 싫다기보다는 제대로  판단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네, 먹겠어요."


나는 단검으로 풀을 잘라 내밀었다.
내가 먹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양.

"크으-. 써."


초췌한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가녀린 눈썹이 휘어졌다.
분명 고통스러울 텐데, 바리스를 생각해 맛없는 음식에 투정하는 시늉을 했다.
내게는 체력 강화 1레벨과 재생 강화 1레벨이 있지만, 헤스티에게는 없었다. 나보다 적은 양을 먹었어도 고통이 작지 않을 것이다.

나는 챙겨두었던 회복약초와 붕대를 꺼내어 바리스에게 다가갔다. 손을 어깨 쪽으로 가져가자 바리스는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다가 멈췄다.
헤스티가 묶어두었던 속옷으로 만든 지혈용 천을 풀었다.
피가 흘러나왔다. 나는 능숙하게 닦아내면서 회복약초를 덧대고 붕대로 묶었다.

빠르고 정확한 나의 움직임에 바리스의 얼굴에 감탄이 서렸다.


응급 치료 스킬을 따로 익히지 않았기에 추가 재생 효과는 없지만, 회귀를 거듭하면서 붕대질한 회수 자체가 신출내기와 비교 불가였다.
이전 회귀 때는 수상한 자로 보이지 않기 위해- 실전 경험이 없는 짐꾼이 베테랑의 붕대질을 하면 무법자가 심은 첩자로 볼 테니- 적당히 연기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쉬어둬."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지시 내리고 나 역시 살짝 거리를 벌리고 벽에 기댔다.

바리스는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발견될 때까지 제대로 싸울 것이다.
나는 알지만, 바리스, 헤스티는 모르는 독.
내가 가볍게 먹어 확인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해독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고 추측할 것이다.
이제, 독 효과가 끝나기 전까지는 나를 공격하지 못한다.


나는 벽에 등을 대고 선잠에 들었다.
바리스와 헤스티는 조용히 대화를 나누더니, 휴대 식량을 먹고 바로 잠에 들었다.
나는 깊은 잠이  둘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바리스는 회복이 급하고, 헤스티는 독을 먹었다.
 다 휴식이 필요했다. 하지만, 둘 다 깊게 잠들어버리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있었다.
내가 둘을 간단하게 죽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나를 못 믿을지언정 나의 능력은 믿는 것이다.


선잠과 깨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보냈다. 헤스티는 몰라도 바리스에게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 * * * * * * * *

고블린 워리어 하나에 고블린 셋. 지하 2층에서의 세 번째 전투.
헤스티가 지팡이에 기대 몸 균형을 유지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제는 마법사 지팡이가 아닌 짐꾼의 지팡이 같았다.
바리스가 헤스티의 모습이 가리게끔 진로를 잡으면서, 고블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두 마리의 고블린이 바리스의 위협에 맞부딪혔다.
바리스가 수동적으로, 수동적이지만, 안정감 있게 방어하기 시작했다.
나는 둘의 움직임을 파악하면서 남은 고블린과 고블린 워리어를 상대했다.

부상 없이 모두 처치했다.

[경험치 310을 배분받았습니다.]

고블린 워리어가 경험치 300을 주고, 고블린은 30 정도 줬다.
고블린 워리어 하나랑 고블린  마리가 나왔으니 총 390 경험치다.
그중에서 310이 내게 들어오고, 나머지 80 정도가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갔다.


이 경험치 분배는 참가자가 의욕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판별해냈다.
헤스티가 마법을 쏘지 않더라도 쏠 생각으로 전투를 살피면, 짐꾼 역할로 먹는 경험치 이상을 먹었다.
바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짐꾼을 보호하면서 싸우는 것보다 마법사를 보호하면서 싸우면 경험치를 더 먹었다.

지하 2층에서는 경험치가 나누어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누어져야만 했다.
바리스만큼은 한 수준 더 올려야 했다.
고블린 워리어 하나가 낀 고블린 무리 정도는 지금도 감당할  있지만, 계단 등의 요지에서 강한 놈을 만나면 위험했다.


'일단, 이전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니.'


이전 회귀 때는 내가 짐꾼으로 덤이었고, 티릭, 바리스, 헤스티가 고블린을 사냥했다.
그에 비해 지금은 나를 주축으로 고블린 워리어를 사냥하고 있다.
내가 경험치의 많은 부분을 가져간다고 해도 내가 워낙 잘 싸우고, 고블린 워리어와 고블린의 경험치 차이가 커서, 고블린의 경험치 30을  명이 나누는 것보다 나았다.
그리고 경험치가 아닌 경험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고블린을  번 상대하는 것보다 내가 고블린 워리어를 상대하는 것을 보고 또 직접 상대해보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된다.


이는 바리스도 느끼는 듯했다. 바리스는 부상이 완전하게 회복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몬스터에게 당하지 않도록, 헤스티가 위험하지 않도록 안전을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회복이 되어 여력이 늘어나자 바리스는 넓게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마음을 바꿔 둘을 직접 공격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듯, 관련 검로를 경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홀린 것처럼 나를 관찰하는 집중이 늘었다. 나의 약점을 찾던 눈빛은 어느새 배우고 익히려는 제자의 눈빛으로 변해버렸다.


고급 전투를 견식하는 기회는 기연과 같았다. 그 기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하수와 고수가 같이 작전을 수행할 때, 하수는 칼받이로 소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절망에 굳어져 있던 바리스의 표정이 전투를 거듭할수록 풀어졌다. 현실을 잊고 지난 전투를 복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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