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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화 (9/139)



〈 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화

상대의 발소리가 바뀌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 나의 접근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다섯 발짝 더 다가간 후에야 상대를 알아차린 것처럼 퉁명스럽게 외쳤다.

"거기 뭐야? 지나가는 자야, 사냥하는 자야?"

인지의 거리는 감각의 거리다. 미궁에서는 감각이 곧 실력이다.
내가 더 늦게 외친 만큼 이쪽이 약하다고 착각하기를 바라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거칠게 말했지만, 미궁에서는 당연했다. 어느 쪽이 강도로 돌변할지 알  없기 때문이다.
강도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두 파티가 만났을 때, 한 파티라도 다른 층을 향하는 중이면 충돌하지 않겠지만, 같은 층에서 사냥하는 중이면 조율이 필요했다.
그 조율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혹은 강해 보이기 위해 거칠게 반응하는 것이다.

단검 하나와 장검 둘. 마법사는 없다. 자세와 움직임 등을 봤을 때, 마법사 계열인데 속이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우리를 확인했다. 장비 수준을 훑었다.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우리 장비는 3층 초반, 2층 완숙의 장비지만, 저 3명의 장비는 4층 이상 수준이다.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나뿐만 아닌지, 바리스도 표정이 미묘했다. 미궁은  층을더 내려갈 때마다 난이도가 급격하게 오르지만 그만큼 보상이 컸다. 성장이든 장비든 눈에 띄게 달라진다.
그래서, 자기 수준 이하에서 노는 경우가 거의 없다. 더 아래층의 보상을 맛보면 저층은 시시해지니까.
생존율이라도 크게 올라가면 모르는데, 저층에서 오래 사냥했다는 사람은 드물다. 인간은 쉬우면 방심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미궁에서 방심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바리스도 이들이 단순한 던전 탐험가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닥치고 꺼져라.  층은 코볼트 던전, 카이바린 교단 소유다."

나는 비굴하게 얼굴을 구겼다.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눈치를 보는척했다.

"아니, 그게 무슨. 에, 그냥 가라니요."
"죽고 싶나?"

상대가 들어 올리는 검에 움찔거렸다. 쪼는 연기를 해준 후 말을 이었다.

"아니요, 그건 아니지만요. 그럼, 올라가는 계단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이쪽으로 올 때까지 하나도 보지 못했습니다."

내 말에는 계단을 찾아야 하니, 수색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포함되어 있다.
들키면  되는 짓을 하고 있다면 반응을 보일 것이다.

순찰자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가 자기 동료들에게 눈짓했다. 동시에 나 또한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습을 대비하라는 신호였다.
카이바린 교단은 수상한 짓을 벌이는 중이다. 저런 순찰자에게까지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려주지 않았겠지만, 경계 수준을 최상위로 올렸을 것이다.
괜히 안쪽까지 출입시키느니 죽이라고 지시받았을 것이다.

“뭐, 까짓거, 계단까지 안내해주지.”

순찰자 파티가 고갯짓하고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가까워지는 순간 기습할 것이다.
딴마음을 품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안면에 미소를 띠고 다가갔다.

 명은 나를 신경 쓰고 있다.
상대의 타이밍은 마법사인 헤스티가 상대의 검거리 안으로 들어갈 때.
2, 3층의 마법사는 작은 상처에도 집중력을 크게 잃는다. 즉, 기습에 가장 효율적인 대상은 헤스티다.
그래서, 세 명의 주의는 헤스티에게 쏠려있다. 나를 신경 쓰는  놈도 헤스티를 기습하는 타이밍에 맞춰 시작할 것이다.

순찰자와 헤스티와의 거리 다섯 걸음,  걸음.
두 걸음 이상 가까워지면 의심할 테니 기습을 시도할 거리는 세 걸음.

세 걸음 반.
나는 가장 가까운 놈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어,어?"

전투에 익숙한 놈인데도 당황했다. 기습하려는 순간의 직전, 호흡의 중간을 정확하게 끊어버렸기에 흩어진 호흡만큼 반응이 떨어졌다.
내 단검이 순찰자의 팔을 긁었다.
단검의 궤도에 따라 흩뿌려지는 피.
나는 바로 헤스티 쪽으로 달렸다. 뒤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 단검은 고블린의 침으로 오염된 단검. 마비효과가 발휘될 것이다.

"쉽게는."

바리스가 외치며 움직였다. 항상 헤스티를 보호하기 좋은 위치를 유지하는 데다가 나의 경고에 준비하고 있어 반응마저 빨랐다.
헤스티를 노리던 순찰자를 막아섰다.
헤스티를 노리는 순찰자를 공격하면서도 자신을 노리던순찰자가 헤스티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시야를 막았다.
보호에 치중하느라고 바리스의 빈틈이 드러나는 순간,

[사이킥 쇼크]

헤스티가 마법을 시전했다.
사이킥 쇼크, 데미지는 낮지만, 빠른 발동과 정밀한 콘트롤이 가능한 마법.
새하얀 빛의 뭉치가 바리스를 노리는 순찰자의 안면을 향해 날아갔다.

순찰자는 검을 휘둘러 검면으로 튕겨냈다. 가볍게 막혔다.
하지만, 마법의 목적은 달성했다. 바리스가 순찰자 둘을 완전히 차단했다. 이어 헤스티가 지팡이를 들어 올려 마법을 쓰는 자세를 취했다.

'호오.'

나는 둘의 연결에 감탄했다. 어느 회차를 둘러봐도 초반에 저런 연결 동작을 보여준 적 없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헤스티의 주력 마법, 파이어 볼트가 난전에 적당하지 않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순찰자 둘을 급하게 만들었다는 것.
이제, 파이어 볼트일지, 다른 마법일지 모르는 순찰자는 헤스티의 마법을 차단하기 위해 무리를 해야 한다.
마법은 시전 시간이 길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법이니까.

수준 높은 전사라면 기운의 흐름으로 허실을 즉각적으로 파악했겠지만, 그럴 수준이었다면 아예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전투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저런 하급 전사에게는 헤스티의 동작이 실제 마법 캐스팅인가, 페인트인가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동작을 늦추는 틈이 된다.

나는 감탄만 하고 있지 않았다. 한달음에 바리스, 헤스티가 상대하던 순찰자의 뒤를 잡았다.
내가 상대하던 순찰자에게 뒤를 내준 셈이지만, 이미 그자는 고블린의 침을 묻힌 단검에 의해 상처를 입은 상태.

"크윽."

나는 바리스의  순찰자의 허리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이어 급하게 따라온, 나를 상대하던 순찰자의 공격을 바닥을 굴러 피했다.
역시, 고블린의 독이 작용했다. 공격이 날카롭지 못했다.

[사이킥 쇼크]
헤스티의 빠른 마법이 이어 공격하려던 순찰자에게 쏘아졌다.

'깜찍하긴.'

역시, 파이어 볼트가 아니었다. 지금 수준으로는 캐스팅 캔슬을 익혔을 리 없으니, 캐스팅 동작 자체가 속임수였다.

"쌍년이 헛지랄을."

나는 순찰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중에 칭찬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과감하게 움직였다.
전투의 흐름을 이끌었다.
내가 팔뚝에 상처를 낸 순찰자와 허리에 상처를 낸 순찰자. 밖으로만 보면 경상이었다. 나는 충분히 위험한 상황인데도 둘을 달고 둘이 아닌 나머지 하나를 공격했다.

바리스와 나 사이에 나머지 한 명의 순찰자가 끼었다.
일순간 2대1의 대치가 만들어졌다.
순찰자는 앞에 바리스가 있음에도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순간 승부는 결정되었다.

"꺼, 꺼억."

바리스의 양손검이 순찰자의 가슴을 꿰뚫었다. 나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순찰자의 움직임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일격.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를 넘어, 나와 바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살짝 떨리던 바리스의 눈빛이 굳건해졌다.

"이들은 우리가 아니더라도 죽였을 거예요. 단지 방해될 것 같다는 이유로요."

나는 적의 공격을 부드럽게 피한 후, 바리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들은 우리가 악인이라서, 우리에게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에 공격한 것이 아니었다.
알아챘다면 우리보고 꺼지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를 죽이고, 남은 자를 제압했다.

"제물의 날이 언제지?"

남은 순찰자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무슨 말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나는 고블린 독을묻히지 않은 단검을 꺼냈다. 쓰러진 놈의 상처를 천천히 긁었다.

“크아악, 끄윽, 몰라, 모른다.”
“거짓말이 아닌  같아요.”

고문이 보기 힘든지 바리스가 의견을 냈다. 남자는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스가나의 행동에 의견을 내는 것은 좋은 징조였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너희 내부에서는 다르게 부르는 건가? 아, 아니지. 너희들도 제물이었군. 제물에게 제물이라 부르지 않을 테니.
좋아, 이해할 수 있게 물어봐 주지. 너 지시를 받았을 텐데? 정해둔 시간이 되면 어떤 상황이든 간에 무시하고, 일단 복귀하라는 지시. 그 시간이 언제지?”

남자의 눈이 마구 떨렸다.

"그걸 어떻게."
“대답해주면 단숨에 죽여주지.”
“아, 안돼, 살, 살려줘.”

나는 검 끝을 흔들었다. 상처로 단검을 밀어 넣으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죽고 싶어질 정도로 고문하는 건 쉬워.”

남자의 비명이 이어졌다.

“끄 끄윽, 6시간 뒤.”

내가 손을 멈추자 남자는 급하게 토해냈다.

“좋아.”

나는 고문하던 손을 그대로 움직여 남자의 목을 잘랐다.
헤스티가 끔찍한지 눈을 감았지만, 나는 약속을 지켰다.
 경험에 의하면 목을 잘리는 죽음이 가장 고통의 시간이 짧았다.

“제물의 날이 뭔가요?”

얼굴이 잔뜩 굳어진 것은 바리스도 마찬가지였지만 물어왔다.

“미궁 안에서 벌이는 카이바린 교단의 축제일이지. 신도의 행위와 교단의 관계는 알고 있지?”
“네, 카이바린 교단은 신도가 ‘연속 사냥’을  때마다 버프를 얻게 해주죠.”
“그래, 신도는 버프를 얻고, 교단은 신성을 얻지. 카이바린 교단은 신성을 최대한으로 얻기 위해 코볼트 챔피언을 노릴 거야.
아까 죽인 놈의 말을 참고하면 6시간 뒤에 코볼트 챔피언이 리스폰 됨을  수 있어.”
“코볼트 챔피언···.”

헤스티가 중얼거렸다.

“코볼트 던전의 레어 리스폰 보스지. 카이바린 교단은 이곳을 장악한 만큼 리스폰 시간을 파악했을 거야.
다만, 코볼트 챔피언은 3층 사냥 전력으로 사냥 가능한 몬스터가 아니야. 코볼트까지 몰려나오니 우리 수준으로는 피해 없이 2층으로 도망칠  있으면 다행일까.”
“사냥 방해할 건가요?”

나는 묻는 헤스티에게 시선을 두었다. 떨리는 눈을 노려보았다.

“대충 예상하지않았나? 코볼트 챔피언을 사냥하는데 왜 어린 노예가 필요할까?”

나는 시선을 바리스에게 옮겼다.

“던전으로 끌려온 노예, 굳이 순찰자까지 복귀시켜서  일.
힌트를 주자면 카이바린 교단의 교리는 ‘연속 사냥’으로 알려졌지만, 아니야. ‘연속 사망’이다.”

나는 침묵에 잠긴 둘을 두고 죽인 순찰자들의 장비와 짐을 뒤졌다.

* * * * * * * * * * * *

은밀하게 움직였다.
대략의 시간은 알아냈지만, 정확한 리스폰 시간은 모른다.
카이바린 교단과 코볼트 챔피언이 싸우기 전에 들키면 곤란해진다.
일행을 이끌었다.
바리스와 헤스티의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해 바닥 흔적에 집중할 것을 지시했다.
나는 던전 구조와 적들-인간과 코볼트-의 기척에 집중했다.

흔적은 금방 발견되었다.
’여기 흔적이 있다.‘라는 신호를 보내는 바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추적해 입구 외 사방이 막힌 던전 방으로 들어갔다.
몬스터도 사람도 없었다. 흔적만 많았다.
추측할 수 있었다. 이번에 데리고 온 노예는 원래부터 있던 노예와 합류했다. 그리고 함께 이동했다.

“얼마 남지 않았군.”

둘은 긴장했다.

“흔적을 봐라. 이곳에는 노예가 있었어. 그들의 흔적이 이번에 데려온 노예의 흔적과 합쳐졌어. 그리고 조금 전에 함께 이동했다.
저 안쪽으로.”

둘에게 손짓하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카오오오오-

마물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여느  몬스터와 다르게 던전 전체가 동조하는 울림.
헤스티가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다.
나와 바리스는 헤스티를 살폈다. 특별한 부상은 아니었다. 단순히 압박당한 것이다.

헤스티가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헤스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깨의 근육을 꾹꾹 눌렀다.

“자책하지 마라. 보스의 포효는 처음일 테니, 놀라는 것이 당연하다.”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 헤스티를 두고 나는 몸을 곳곳이 세웠다.

“지금부터는 조용히 움직이는 것보다 빠른 이동을 우선한다.”

카이바린 교단에서 코볼트 챔피언을 잡는 방법은 대충 예상이 갔다.
코볼트 챔피언은 강한 평타를 지속적으로 때리다가 크게 상처 입으면 광폭화해방어를 무시하고 덤빈다.
공략법은 탱커를 여럿 두어 계속 버티다가, 광폭화할 타이밍에 폭딜을 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견고한 탱커진과 폭딜러가 필요했다.

나는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공략법을 알면 틈이 보이는 법이다.
바리스와 헤스티, 둘에게 지시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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