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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2화 (12/139)



〈 1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12화

나는 몸을 일으켰다.
두 손을 쭉 뻗어 스트레칭하며 주변을 살폈다.

‘오래간만에 푹 잤어.’

이제 바리스와 헤스티를 경계하며, 선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잠들기 전의 바리스와 헤스티의 얼굴을 떠올렸다.

‘부드러워졌지. 거기에 나를 동경하는 기색이 생겼어.’

둘은 나와 다르게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꼈다. 그리고 미궁에서 마음의 병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제 일단 한시름 덜었다.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이는 내가 둘에게서 시킨 강도짓의 죄책감을 모두 덜어내고도 남았다. 바리스와 헤스티 둘은 자신이 악이 아니라고 외칠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사회 욕구와 발전 욕구까지채워줬으니.’

미궁 밖으로 나가지 못해 말라붙은, 사회적인 친밀감은 아이들을 돌보면서 채워질 것이다.
발전 욕구는 더할 나위 없었다.
 다 전투를 하고 크게 성장했다. 신체뿐만 아니라, 장비도 시작할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은 장비를 얻었다.

이제 가끔 치밀어오를, 미궁이기에 생길 수밖에 없는 우울만 관리해주면 된다.

*

내적인 위험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도 위험이 적었다.

최소로 잡아도 사흘 정도는 안전했다.
미궁 밖에 있는 카이바린 교단 본진에서는 삼일 이상 지나야 변고를 의심할 것이다.
노예뿐만 아니라 신도까지 죽이는 일이니, 비밀이새나갈 위험이 있는 전령을 운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법사가 마무리하고 직접 올라올 시간, 사흘이 지나도 오지 않으면 그제야 움직이기시작할 것이다.
몬스터의 리젠 역시 문제가 없었다. 먼 곳에 있던 코볼트가 올 수 있긴 한데, 바리스와 헤스티의 불침번으로 충분했다.

나는 이상 징후가 없음을 확인하면서 옆에 두었던 검을 잡았다.

검은색의 검신이 날렵한 숏소드.
단검보다 길지만, 양손검보다 짧았다.
보스방 안쪽 보상방의 제단에 있었다.코볼트 챔피언이 죽는 순간 미궁의 불가사의에 의해 생성된 것이다.
코볼트 챔피언을 죽인마법사를 죽인 이상, 내 것이 되었다.

'슬슬, 전직을 생각해야 할 시점이야.'

범용적으로 쓸  있는 스킬은 대부분 올렸다. 특화를 생각해야 했다.

나와 바리스, 헤스티는 대량의 경험치를 얻었다.
헤스티는 파이어 볼트 상위 마법인파이어볼을 익힐 수 있는 토대를 얻었고, 바리스는 용사 전용 능력과 방어력이 성장했다.
내게 분배된 경험치만 해도 4300 정도였다. 단순히 마법사 하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신성으로 폭주한 사제를 잡았기에, 보너스가 적용되었다.

지금 파티가 일반적인 파티라면, 도적으로 전직이 제일 무난했다.
다만, 나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기 어려웠다.

나는 회귀를 거듭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일반적인 도적 이상의 데미지를 낼 수 있다.
하지만, 도적의 폭딜은 탱커의 능력에 영향받았다. 탱커가 대상 몬스터의 어그로를 얼마나 잡아주느냐에 따라 딜이 완전히 달라졌다.
바리스가 탱킹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용사의 능력은 탱킹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또 다른 가능성은···.'

나의 현재 [미궁 이해] 스킬은 3레벨.
길잡이 스킬을 얻기 위해 계단을 통하면서 스킬을 얻었고, 카이바린 교단의 목걸이를 들고 계단을 이동, 코볼트 던전으로 전이 성공하면서 스킬 2레벨이 되었다.

특이한 점은 내가 에리의 정체를 알아내기위해 에리의 손목, 팔목을 주무르며 조사했을  스킬 3레벨이 되기 위한 조건이 충족되었다.
힘 강화나 민첩 강화 같은 스킬은 경험치만 있으면 올릴 수 있지만, 미궁 이해 같은 고급 스킬은 경험치뿐만 아니라, 특정 조건을 완수해야 했다.

'에리가 미궁과 연관된 존재라는 거지.'

이전 회귀 때는 [미궁 이해] 3레벨을 훨씬 늦게 이루었다. 길잡이 스킬의 반복사용으로 올렸었다.
이는 [미궁 이해] 스킬 레벨업 조건이 하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에리를 만진 나의 행동이 조건을 만족시켰다는 뜻이었다.
더 나아가 [미궁 이해]가 [길잡이]에만 연관된 스킬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

“일어나셨네요”
“더 쉬셔도 되는데, 둘이서 불침번을 설 수 있어요.”

둘의 성장은 여유를 만들었다. 둘의 여유는 나를 향한 배려로 나타났다.
나는 둘보다 강했다.둘보다 더 짧은 휴식으로도 피로를 해소할 있다.
하지만, 둘은 나를 의지하고, 또한 둘이기에 서로를 믿으면서 쉴 때 푹 쉬었다. 선잠을 들면서도 둘을 감시해야 하는 나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러니 내게 휴식을 권할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쉬었다. 그보다 바리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무슨 일인데요?”
“….”
“네, 알았어요.”

내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할 때 설명해줄 거라고, 알아서 납득하는 것이다.

*

횡령한 석실에 나와 헤스티, 에리가 함께 했다.

'에리에 대한 정보를 밖으로 유출할 필요 없어.'

바리스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라고 지시한 이유였다.

“에리.”

나의 부름에 에리가 깊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옆에 선 헤스티가 에리를 부르는 나를, 나와 키스한 경험 때문인지 경멸도 아니고 질투도 아닌 묘한 눈빛을 보냈다.
나는 헤스티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에리는 아인족이야. 키벨레 종족이지."
"네?"

에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무런 가치 없는 옛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무심했다.
오히려, 헤스티가 깜짝 놀랐다.

"으으, 전 어린 소녀가 취향인  알고···. 으, 미안해요."

나는 헤스티를 노려보았다.
혀를 삐쭉 내미는 헤스티에 고개를 흔들고 에리를 바닥에 눕혔다. 그대로, 눕힌에리에게 손대려고 하자 헤스티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그래도 계속 함께 다닐 아이인데. 에리, 이 위에 누워."

잠자리로 쓰곤 하는 망토를 가져와 바닥에 깔았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반복적으로 해야 하니 헤스티에게도 설명해두는 것이 좋았다.

"키벨레 종족의 혼혈은 인간과 거의 비슷해. 특히 어린 개체는 더하지. 골격의 차이가 있지만,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아."

나는 에리의 발목에 손을 대고 꾹 눌렀다. 헤스티 역시 나를 따라 에리의 다른 쪽 발목에 손을 댔다.

"좀  세게 눌러. 강하게 뼈를 압박했을 때, 저항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있을 거야."
"하지만,"

헤스티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렇게 하면 아프잖아요."
"저···. 괜찮아요. 아니, 오히려 편해졌어요."

조용히 명령에 따르던 에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 에리의 말에 설명을 더했다.

"고통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도움이 된다. 키벨레 종족의 성체는 싸울  신체의 일부를 튼튼하게 할 수 있어.
에리 역시 혼혈이니 그 특성을 가질 테지. 다만, 미성숙한 상태에서는 그 특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나는 에리의 발목을 인간이라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세게 꾹꾹 눌렀다.
헤스티가 나의 손과 에리의 발목을 번갈아 가면서 봤다. 살짝 눈을 감으며눈초리를 늘어트리는 에리를 보고는 감탄했다.

"그렇군요. 준영씨는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아시는 건지···."
"책에서 봤다. 키벨레 종족을 접해보기도 했고."

나는  설명하지 않고 에리의 발목에 이어 손목과 어깨, 엉덩이뼈 쪽을 주물렀다.
책에서 보긴 했지만, 서점이나 상인을 통해 구해서 보지 않았다.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의 거처에서 보았다.

나와 헤스티는 말없이 에리의 몸을 주물렀다. 대화는 사라졌지만, 가르침은 이어졌다.
헤스티는 내가 주무르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인간과의 차이점을 직접 느끼면서 배워갔다.

단순히 에리를 위한 봉사가 아니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종족을 마사지하는 행위는 무력에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약점 파악] 계열의 스킬을 익히기 위해서 여러 종족의 신체를 제대로 살필 필요가 있었다.
해부 행위로 대신할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은 약점 파악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성공한다면 키벨레 혼혈인 에리뿐만 아니라 키벨레 종족과도 교섭할 수 있게 된다.

'은둔자의 거처에 있던 책에서 본 방법.'

기본적인 형식은 마사지와 같다.

생물이 성장할 때나 신체를 과도하게 사용할 때, 생겨나는 독소는 그만큼 격렬한 운동을 했기에 빠른 혈액 순환으로 제거된다.
에리에 잠들어있는 키벨레 종족의 특성, 아직 활용하지 못하는 특성은  독소와 비슷했다. 인간과 다른 점은 혈액 순환으로 배출해내지 못했다.

키벨레 종족은 성장기에 타인의 도움, 특히 특성을 아는 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도움이 없으면, 신체의 기운이 건강하게 흐르지 못했다. 독소가 퇴적되고 굳어져 성장을 방해하고 종극에는 근육뿐만 아니라 뼈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결과로 에리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퇴적화 현상.'

인간보다 강력한 종족과의 혼혈인데도, 성인이 되고 남을 시간인데도, 신체 수준이 키만 큰 어린 소녀로 보일 정도로 정체되어 버렸다.

나는 책에서 본 방법을 떠올렸다.

'손바닥에 의지를 담고.'

의지는 그 개인이 경험하고 담아왔던 흐름을 힘이라는 형태로 드러낸다.
 세상에 구현되는 스킬이 이러한 기초가 발현된 이적이지만, 거꾸로 최상급 전사나 고위급 마법사가 된 후에야 이를 인지하고 운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지.'

나는 이때까지 흐름을 하나씩 조율해서 스킬 하나의 효과를 내지 않았다. 이는 효율이 극히 떨어져서 하지 않는 거지,  수 없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강력한 결과를 내려면 강한 육체가 필요하지만,   안과 내 몸과 닿은 타인의 몸에 흐름을 투사하는 정도는지금 육체로도 충분했다.

"아."

이때까지의 마사지와는 다르다고 느꼈는지, 에리가 얕은 숨을 터트렸다.
단순한 신체의 독소가 아니라, 성장을 방해하고 있던, 키벨레 특성의 퇴적물을 건드렸다.

어느새 헤스티가 에리의 몸에서 손을 뗐다. 눈치가 나쁘지 않았다.
헤스티도 흐름을 만들 수 있다. 생명을 가지고 에리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이상, 미세하게나마 흐름을 일으키고, 무의식적으로 의지를 투영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의가 없더라도, 방해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손을 떼는 것이 맞았다.

헤스티는 질문하지 않고, 조용히 관찰에 집중했다.
나의 심상찮은 분위기에 질문할 때가 아님을 깨달은 것이다.

기운의 흐름을 이용해, 치료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내 손은 느려졌다.
마사지는 무술적인 분류로 외공이지만, 흐름의 투영은 외공이 부가적인 요소, 내공이 주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움직임을 멈추지도 않았다.
현재 나는 전사에 가까웠다. 흐름의 정체성도 정공이 아닌 동공에 가까웠다.

손을 내밀면서 기운을 앞으로 향하게 하고, 손을 당기면서 흐름을 거두는 방식이 수월했다.

'단단하군.'

에리의 퇴적 경화는 일이 년 동안 쌓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뼈에 닿지도 못하고 근육의 연결 부위를 다스리는 데도 큰 자극으로 느껴지는 듯 에리가 흑흑 거렸다.
에리에게는 물론 내 이마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내 줄기가 되어 흘러내렸다.

[운공의 기초 습득 가능.]

'역시 시스템이.'

하지만, 익히지 않았다. 에리의 전투력 향상은 필요하지만, 제한된 경험치를 투자할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가, 운공의 기초는 스킬을 쓰지 않고 직접 탄탄하게 다지는 것이 나았다.

*
*
*

[카니마타르 에리가 당신에게 순종.]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 감각이 흐트러질 만큼 집중하니 이때까지 보지 못한 메시지가 떴다.
메시지창은 친절하지 않았다. 스킬에 연관된 정보를 주거나. 경험치를 투자했을 때 확인해주는 정도였다.

"흠."

나의 짧은 헛기침에 에리가 어깨를 살짝 떨었다. 이제 보니 뺨도 붉어졌다.

"으, 준영씨는 마사지도 잘하시는군요."

헤스티의 목소리도 살짝 젖은 것 같다고 느낀 것은 착각일까.

"그럼, 너도 누워봐. 마사지를 해주지."
"네에?"

헤스티의 얼굴이 확연하게 붉어졌다.
헤스티는 그렇게 의심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성적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도가 아니었다. 에리와 비교해볼 필요가 있었다.

격렬한 전투 후의 마사지는 효과가 컸다.
다만 강자가 약자에게 해줄 이유는 없었다. 같은 파티라도 틈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역시 이유가 되었다.

나는 에리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하고, 헤스티에게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우우···."

헤스티가 애달픈 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는 굽히지 않았다.
[순종]한다는 메시지가 에리에게만 한정된 일인지, 인간인 헤스티에게도 해당되는 일인지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예전에 헤스티의 몸을 샅샅이 만져봤었다. 헤스티와 사귀면서 마사지를 제대로 해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는 특별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었다.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지금은 초반이고, 그때는 중반이었다는 것. 그때는 클래스를 선택한 후였다는 것.
무엇보다 [순종]이라는 단어를 쓸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였다는 것.
다만, [미궁 이해] 스킬 레벨은 그때가  높았다.

다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헤스티가 완전히 붉어진 얼굴로 몸을 숨기듯 누웠다.

"으으-."

내 손이 움직일 때마다, 헤스티가 앓는 소리를 냈다.
묵묵히 받아들이던 에리와 달리 반응이 격렬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야릇하게 변했다.

내가 기운의 흐름을 이용해 성감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헤스티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있었고, 나는 헤스티의 성감대를 알고 있었다.

"흣."

억지로 참는소리가 짧게 짧게 토해졌다가 숨겨졌다.
묘한 눈빛으로 내려보는 에리의 시선 아래, 헤스티는꿈틀거리기를 반복했다.

“흐으, 이거, 흣, 좀 다른  같은데요.”

나는 헤스티의 의문을 무시하고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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