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4화
미궁 7층 헤스토의 무기고, 꺾어지는 통로.
수희는 구한 방패를 에리에게 맡겼다. 일행과 멀어지며 은신 능력을 발동해 꺾어진 안쪽을 엿봤다.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소리도 흔적도 없이 대기하던 일행에게 돌아왔다.
"올라가는 계단이 보여. 그 뒤는 막혀있고."
"벌써, 끝인가요? 그렇게 오래 싸운 것 같진 않은데···."
수희의 말에 에리가 고개를 기웃거렸다. 개방형 미궁층이었던 5층을 제외하고, 지하 6층과 비교해도 너무 짧았다.
나는 턱 끝으로 벽을 가리켰다.
"7층 무기고에서 탐험 가능한 곳은 일부야. 저 벽이 없다면 더 넓은 지역을 탐험할 수 있겠지."
"벽을 뚫으려고 시도한 모험가도 있었어. 성공했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수희가 나의 말에 자신의 의견을 더했다. 이어서 에리에게 맡겨두었던 방패를 받았다.
나와 바리스는 물론 헤스티도 챙겨두었던 방패를 팔에 걸고 들어 올렸다.
일종의 공식화가 된 몬스터 배치 패턴이었다. 집중 석궁이 나오기 전에 밀집 방패병이 나오고, 밀집 방패병이 나오면 머지않아 석궁 집중 공격 영역이 나온다.
나는 헤스티의 자세를 다시 한번 봐주고 일행에게 전진 신호를 내렸다.
*
"조심."
쓰쓰쓰- 웅.
진입하자마자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휘파람 소리와 비슷하면서도 끝이 뭉퉁한 소리가 연이어졌다.
나와 수희, 바리스는 방패를 들어 올리고, 에리와 헤스티는 아예 방패 끝을 바닥에 닿게 하고 몸을 숨겼다.
나와 수희, 바리스가 쏟아지는 사격을 빗겨내며 조금씩 전진하면, 사격이 끊어진 틈을 타 에리와 헤스티가 확보한 공간으로 들어왔다.
"확인했어?"
내 말에 에리는 고개를 옆으로 젖고, 바리스와 수희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나타냈다.
방패술과 능력 차이가 시야 확보에서 드러났다. 나, 바리스, 수희가 사격자의 위치를 추정해낸 것에 비해 에리와 헤스티는몸을 숨기느라고 적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탓할 끈덕지가 아니었다. 능력이 안되는 데, 적 위치를 파악하려다가 화살에 맞아버리면 그보다 바보같은 일이 없다.
무엇보다 내게 그 틈을 메꿀 능력이 있다.
"좋아, 그럼, 에리는 대지 마법을 써서 헤스티를 보조해. 헤스티는 마법으로 우리를 보조하고. 신호와 좌표는 에리를 통해 알릴게."
궁수와 석궁 기계 장치를 제압해야 사격이 끝난다.
지하 7층 무기고. 어떻게 보면 친절한 구석이 있다. 방패가 나오고 나서 석궁공격이 있으니.
물론 그 친절은 밀집 방패 진형을 파훼할 능력이 있는 자에게만 베풀어지는 친절이었다.
그리고 방패가 있다고 해도 평범한 방패술로는 걷어낼 사격이 아니었다.
에리를 헤스티의 보조로 돌린 이유였다.
'튜토리얼 같군. 다만 조금만 삐끗해도 죽는···. 그래도 정답이 있기에 정답을 택할 수 있는···.'
상념은 길지 않았다. 나와 수희와 바리스는 가까이 갈수록 거세지는 사격을 막아내며 접근했다.
가슴높이의 담 뒤에서 사격하는적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푸쉬 핑거를 통해 에리에게 알렸다.
나와 에리의 푸쉬 핑거를 통한 통신은 정확한 좌표를 전송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어스 페로우]
에리의 대지 마법, 마치 쟁기가 땅을 파고 지나가는 것처럼 바닥에 고랑을 만들었다.
어스 스템프와 마찬가지로 잠재력은 높을지언정 현재의 위력은 약했다.
궁수와 석궁수가 숨은 담에 부딪히자 그 힘이 와해되었다. 애초에 에드샤 정도가 아니면 살상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충분했다. 에리의 어스 페로우는 유도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파이어 볼]
검붉은 덩어리가 떠올랐다. 헤스티는 석궁의 견제에 정확한 타격 포인트를 파악하지 못했었다.
거기다가 담이 있기에 곡사로 쏘아내야 했다.
이 모든 난점은 에리의 어스 마법이 유도선을 만들어낸 순간 사라졌다.
파이어볼이 폭발하는 순간 나와 바리스 수희는 돌진해 담을 넘었다.
일단 진입하고 나자 허무할 정도로 쉽게 풀렸다.
반투명으로 된 궁수와 석궁수를 쓰러트렸다. 근접 무기를 든반투명체를 제압할 수 있는 나, 바리스, 수희에게 원거리 무기만 든 반투명체는 접근을 허용한 순간 이미 끝난 전투였다.
*
전투가 끝났다.
나는 궁은 버리고 기계식 석궁을 모았다. 제압하는 도중에 손잡이는 파손되었지만 기계 장치는 양호한 것이 많았다.
"여기서 불침번을 세우고 쉬자. 난 작업을 해야 하니까 빼고."
일행은 내게 호기심을 보이면서도 해야 할 일에 우선했다.
나의 클래스는 컨트롤러다. 내게 종속된 에리뿐만 아니라 종속화 작업을 거치면 미궁층 내의 함정을 통제할 수 있다.
미궁에서 함정은 강력했다. 초보자뿐만 아니라 숙련자도 방심이 깃들면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때까지 나는 함정을 이용하지 못했다. 함정은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궁의 중요 부위를 떼어내니 50cm 정도가 되었다.
연장이 부족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예전 회귀에서 더 깊은 층에서 한 지점을 방어해야 하는 전투도 치러보았다.
몰려오는 적을 사격으로 기세를 꺾고 근접전을 치르는 복합 전투에도 익숙했기에 사격술과 정비술 역시 웬만한 궁수 못지않았다.
"그거 공 같아요."
"공 맞아. 석궁구라고 부르면 돼."
완성품을 본 에리의 감상에 긍정했다. 탄력이 있는 나무와 금속으로 바깥 지지면을 만들고 천으로 남은 면을 메꾸어 지름 60cm의 구로 만들었다.
앞으로 굴리면 떼굴떼굴 굴려 갈 구였다.
아무런 동력이 없지만 내게는 원거리에서 움직일 수단이 있다.
컨트롤러 클래스이기에 석궁구 주변 시야를 직접 보는 것처럼 확보할수 있다. [그랩 핸드]가 있기에 손을 대지 않고도 공중으로 띄우고 이동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격발 및 충전을 할 수 있다.
작업을 끝내고 짧은 휴식마저 취했다. 바리스가 다가왔다.
"저 준영씨 아무래도 저곳 이상해요. 미세한 느낌뿐이지만."
나는 에리와 함께 바리스가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석궁을 쏘던 반투명체가 있던 뒤쪽. 에리의 어스 페로우와 헤스티의 파이어볼이 떨어졌던 곳과 멀지 않는 곳.
"여기···. 전에 5층 굳은 땅의 은신처에서 준영씨가 말했었잖아요. 제가 불안한 건, 발아래 단층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라고. 여기가 그래요. 이곳에 여기만 감각이 묘해요."
”좋아.“
바리스는 감각이 뛰어났다. 전투 능력이 나나 수희보다 떨어진다고 해도 감각은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바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에리를 시켜 아래로 대지 마법을 투사시켰다.
에리의 대지 마법은 파괴력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측정할 수단으로는 충분했다. 아래의 지질이 조밀하게 꽉 물려 있다면 적게 흔들릴 것이고, 아니라면 크게 흔들릴 것이다.
"아."
바리스가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바리스는 물론 모두가 알아차렸다.
이 아래에 뭔가 묻혀있는 공간이 있다.
"와. 역시 함께하길 잘했다니까. 어쩐지 미궁층이 짧더니 비밀통로가 있었어."
수희가 입술을 핥았다.
나는 힘을 부린다고기진맥진한 에리에게 다가갔다. 격려의 의미로 에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약간 시간의 후에 바리스에게도 다가갔다. 칭찬의 말을 하려는데 바리스의 자세가 묘했다.
얼굴을 바로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다가왔다. 마치 머리를 쓰다듬어달라는 것처럼.
나는 조심스럽게 반응했다. 굳이 타박하지 않았다.
그저 자상하게 바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바리스.
평범한 상황이라면,주기적으로 미궁 밖으로 나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다면, 불안한 심리를 비추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뛰어난 리더쉽로 이끈다고 해도 의존적인 면이 커질 리 없었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이 연속되고, 에리가 나를 의지하기에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없이 주장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부러워했던 것이다. 반사적으로 의지하는 태도가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부드럽게 바리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참을 쓰다듬다가 친애의 범위를 넘어 귓가를 애무하듯 만졌다.
거부의 흠칫거림은 없었다. 오히려, 두 눈을 감고, 입술을 입 안쪽으로 말면서 주어지는 자극을 음미하는 모습을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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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좁은 폭으로 깊게 파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벽이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이는 일행에게 해당하지 않았다. 에리는 당장은 구현하지 못해도 지면 아래에서 흙을 파고 이동하는 방법까지에드샤에게 배웠다. 붕괴를 막는 정도는 쉽게 해냈다.
에리가 힘을 발휘하는 상태에서 천천히 파고 들어가자, 넓적한 바위면이 나왔다. 그 아래로 약간의 공간과 금속으로 된 문이 나왔다.
"내가 앞장설게."
수희는 탱커로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았다.
무기고의 지하 통로는 나 역시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정보가 없는 만큼, 기민한 반응을 할 수 있는 수희가 앞장서는 것이 맞았다.
내가 선두에 서는 것도 방법이지만, 일행 전체 조율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은밀한 발걸음 뒤로 조심스러운 걸음이 이어졌다.
비밀통로는 길었다. 특이한 점은 어떤 함정도 몬스터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야가 점점 밝아졌다. 미궁 특유의, 근본을 알 수 없는 자체 발광 조명이 아니었다. 멀리에 선명한 조명원이 있어 근처도 밝아지는 현상.
학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알 수 있는 현상이었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동요했다. 멀리에 태양 빛이 비쳐 그 반사광이 이곳까지 닿았다.
"준영씨···. 이거 햇빛인가요?"
사방을 경계하는 가운데에서도 내게 물어왔다.
"햇빛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하지. 태양 빛이 존재하는 미궁층일 거야."
"아."
나는 긴장했다.
미궁에는 천장에서 햇빛을 방사하는 구조를 가지는 미궁층도 있다. 하지만, 지하 15층이 넘는 고난이도 미궁층에서만 경험했었다. 7층에서 나올 현상이 아니었다.
나는 주변을 경계하는 이상으로 바리스와 헤스티를 살폈다. 일단 신호를 보내 일행을 멈추고 휴식을 선언했다.
적의 습격이 없는 단순한 진행인데도 둘의 호흡이 나빴다.
비밀통로에 들어오기 전에 휴식을 가졌지만,마음을 다독일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지하 15층 너머에서 햇빛이 비치는 미궁층을 경험해보았기에 심리적 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바리스와 헤스티는 달랐다. 햇빛은 둘에게 미궁 밖을 떠올리게 하고 탈출을 향해 몸부림치게 하는 기폭제였다.
"이거 적 패턴이 달라질 것 같아."
수희의 말에 동의했다. 환경이 달라지면 적도 달라진다고 보는 게 옳다.
이때까지 적으로 나타났던 무기를 든 반투명체, 물리력이 통한다고 해도 고스트나 사령 계열로 느껴졌다.
그것들이 햇빛 아래에서도 같은 형태로 나타날 것 같지 않았다.
"긴장해. 미궁 심층에는 별의별 가짜가 다 있어. 매번 흔들리다가는 살아남지 못한다."
바리스와 헤스티에게 말했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가짜라고,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아니, 진짜로 가짜일 수도 있다.
나도 미궁의 진실을 모른다. 꾸며진 가짜인지 어딘가에서 떼어온 일부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