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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5화 (25/139)



〈 2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5화

통로가 끝나기 전에 짙은 풀 냄새가 났고, 통로가 끝날 때쯤 내리쬐는 태양 볕이 보였다.

"하아···."

다들 인상을 쓰고 보이는 광경 자체에 침음을 흘렸다.

‘….’

미궁에서는 환경이 세밀하고 정확할수록 난이도가 높아졌다.
완전히 비례하지 않지만, 나는 풍경을 보고 쉽지 않음을 예감했다.

성벽이 보였다.
성벽 아래 지면과 닿는 부분에는 수풀이 자라났다. 미궁 벽면에 자라는 독초가 아니라 미궁 밖의 여느 식물과 같았다.
성벽에는 작은문이 있다. 군대가 오가는 정문이 아니라 일꾼들이 오가기에 적당해 보이는 문이다.
그리고 그 문 앞에 문지기가 있다.
문지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가죽 갑옷 위로 보이는 소속을 나타내는 무늬는 성내의 탑에 걸린 깃발과 같은 모양이었다.

에리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
나는 손가락을 입가로 가져가 ‘쉿’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두 문지기의 발아래에는 음영이 없었다.
반투명체가 아닌 온전한 형태, 피부와 머리카락이 인간과 같았다. 다만, 그림자가 없었다.
인간이 아니거나, 인간이 아닌 상태라는 뜻이다.

"자네들은 어디 소속인가?"

경계하며 일행을 드러냈을 때, 문지기는 기대하지 않았던 행동을 보였다. 공격하거나 침입을 알리는호각을 부는 대신 말을 걸어왔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일행에게 내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신호를 보냈다.

"굳은 땅의 은둔처요."
"그런 이름의 용병단도 있었나? 아, 이름 없는 용병단은 자격이  된다는 뜻이 아니야.  밖의 쿠르센 놈들을 뚫고 여기까지 온 거면 능력은 이미 증명된 셈이니."

일행은 입을 다물고 경계에 집중하면서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말고 도착한 용병단이 있소? 어떤 용병단이 왔소?"
"흘, 자네들이 전부야. 지원 파발을 보냈지만, 여기까지 올 정도로 용감한 자는 없던 모양이야.
어서 들어오게. 쿠르센 놈들을 뚫고 도착한 베테랑인 만큼 영주님께서 섭섭하게 대하지 않을 거야."

나는 수희와 눈빛을 교환했다. 미지의 모험을 할 거냐는 물음이었다.
수희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나타냈다.
이런 미궁층은 경험해본 적 없었다. 몬스터들이 난입한 모험가 구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는 경우는 있었다. 에리를 보고 에드샤가 다르게 반응한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이번처럼 아예 다른 존재로 착각하고 반응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 일행, 특히 수희를 보면 피부를 가린 면보다 드러낸 면이 더 많았다. 무희로 착각하면 착각할까. 평범한 용병으로   없다.
하지만, 문지기는 우리 일행을 평범한 용병으로 보았다.
뭔가가 비틀려있다는 뜻이다. 인간으로 보이는 문지기에게 그림자가 없는 것과 같은 비틀림이 있다는 뜻이다.

전진했다. 일행은 나를 따라 문지기에게 다가갔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새로운 패턴의 미궁층은 미궁을 클리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

문지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병사들을 지나쳤다.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가죽 갑옷은 격전을 증명하듯 흠이 많았고, 크게 찢어진 부분 아래로는 속옷이 아니라 붕대가 비쳤다.

이는 격전이 이어졌다는 뜻이다.
부상을 입어 붕대를 맨 후에도 다시 참전해야 할 정도로 급한 상황이 닥쳤다. 혹은, 찢어진 가죽 갑옷을 다시 입어야 할 정도로 보급 없는 전투가 이어졌음을 의미했다.
문지기가 했던 말에서도 포위당한 상태임을 추측할 수 있다.

"병사들의 무기들이 반투명체가 깃든 무기와 같아요."

바리스가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일행의 무기 출처는 다양했다. 미궁 밖의 대장간에서 산 것, 미궁층 보상으로 나온 것, 몬스터에게 빼앗은 것, 깊은 층에서 나온 물건을 경매로 산 것까지 다양했다.
반면에 병사들의 무기에는 통일성이 있었다.

"규격이 같아. 집단전을 해왔다는 뜻이야."

사방을 살피며 문지기가 가르쳐준 곳을 향해 걸었다. 가는 도중에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퇴로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

성내 건물로 들어갔다. 조금 더 걸어 홀로 들어서자 일곱의 인간이 있었다.
중앙에 테이블을 두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는 상석에, 양쪽 옆으로여섯 명의 군관이 앉아있다.
우리가 들어가는 동안에도 문서를  병사들이 오갔다.
말석에 앉아있던 자가 일어나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굳은 땅 용병단, 그대들의 명성을 익히 듣었어. 제대로 된 환영을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네.
난 십인장 페트로라네. 레오나드 영주님의 기치 아래 함께 하게 되어 기쁘네."

페트로의 말에 레오나드라는 이름이 나오자, 상석에 있던 남자가 보고 있던 문서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내게 살짝 묵례해왔다.
나는 분위기를 보고 고개를 크게 숙였다. 레오나드는 빠르게 일행의 무장을 훑고 보던 문서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일행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부상병과 치료용품, 군수품의 보급에 대해 양옆의 사람들과 의논하기 시작했다.

"일단 보상은   뒤, 1등급 용병 기준으로 지급하겠네. 헤레크레 용병단이 받곤 하는 기준이니 만족스러울 거야. 그럼, 전투 위치를 정해주지."

페트로가 먼저 문밖으로 나가며 일행에게 손짓했다.
나는 일행을 이끌고 따라가면서 물었다.

"그럼, 보급품은 어떻게 됩니까?"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무기고와 이곳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식품관리자가 순회할 거야. 그때 저녁이랑 야참을 받도록 하게. 그리고 무기는···. 지원해줄 수 없네."

굳어지는 페트로의 표정에 추가 질문을 하지 않았다.

*

"이곳일세.  부탁하네."

묘한 위치였다. 성벽 안쪽이면서, 성벽 밖이기도 했다. 일행이 위임받은 방어구역은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끝, 뚫린다고 해도 본성 쪽으로는 성벽이 하나  있다.
그래도 항의를 하지 않았다. 무기고에서 성으로 넘어온 비밀통로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후아."

페트로가 떠나자 헤스티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거 성벽 밖에서 쿠르센이라는 게 쳐들어오고 그걸 막는 거 맞죠?"
"이 성의 상황이 그런  같아. 그것도 포위되어있는 절망적인 상황이지. 나는 용병단 이름을 거짓으로 말했어.
하지만, 십인장은 이미 들어본 이름인 양 말했지. 우리가 도적떼일지도 모르는데도.  수상한 자의 힘도 빌려야 하는 상황이야."

나는 에리의 질문에 대답하며 추측을 더했다.

"대규모 공격이 예정되었다고 봐야 해. 들어본 적도 없는 5인조 용병으로는 전세에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을 정도로.
 레오나드라는 영주의 태도를 보면 그래. 이 성을 지배하는 자가 외부인에게 고개를 까닥할 정도밖에 관심이 없었어.
우리에게 배치해준 위치를 보면 버텨주면 도움이 되지만, 밀려도 본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위치야. 우리의 무력이 낮기에 통성명조차안 했다고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지금 그가 하던 일, 조직력을 정비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급하다고 판단 내린 거다.“

십인장과 영주의 반응이 달랐다.
십인장은 용병 이름을 아는 척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영주는 용병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을 큰 위험이 닥쳤다고 보고 있다.
같은 위험이지만, 미세하게 달랐다.
십인장은 이쪽 인원만 많으면 이길 수 있다고 보지만, 영주는 그것보다 조직력이 더 필요한 적이라고 판단했다.

‘단순히 몬스터가 다가와 날뛰는 웨이브가 아니야. 적은 조직력을 갖춘 적이다.’

 추론은 말하지 않았다. 적의 조직력을 감당하는 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치료용품, 전투 보급품과 인원의 재배치가 급한 상황···. 적 공격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저 해가 떨어지면 시작된다는 뜻일까요?"
"보상으로 거론한 것만 봐도 그래. 1등급 용병 대접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한 달 뒤에 크게 보상한다는 것은 그때까지 살아남을  없으니까 그냥 공수표를 날리는 거야."

수희와 바리스 역시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일행의 의견에 한가지 의견을 더했다.

"일단, 성으로 몰려오는 건 인간이 아닐 가능성이 커."

의문을 표하는 눈길에 답했다.

"아까, 홀에서 오가던 대화와 문서를 봤지? 병력 사항과 보급품 흐름이 담겨있었어. 그런 곳에서 첩자일지도 모르는 용병단을 맞이한다? 아무리 급해도 있을  없는 일이지.
적은 첩자질을  수 없는 것들이야."

일행은 눈으로는 주변 상황을 인지하면서 의견을 나누었다. 성벽으로 몬스터가 밀려오는 상황을 생각하면서도 뒤로 빠지는 퇴로를 더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 홀에영주의 오른쪽에 있던 사람 기억해요?"

헤스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지기부터 시작해서 십인장과 영주까지 위치는 다르지만, 다 똑같은 문장을 달고 있었어요. 저 성탑에서 휘날리고 있는 모루와 검이 있는 문장요.
그런데, 그 오른쪽에 있던 사람만 다른 문장이었어요."

헤스티는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천칭. 긴 횡으로 된 막대기 중앙에 위로 끈을 묶고 양쪽 끝으로 접시를 매달아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

"저런 문장이 아니지 않았나요···."

에리가 조심스럽게 반박하자, 헤스티가 손짓했다.

"거꾸로 해서 봐봐. 그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다르게 거꾸로 된 천징 문장이었어."
"리버밸런스."

나는 한 교단의 이름을 조용히 말했다.
카이바린 교단은 하는 짓이 어떻든 간의 선한 척하는 계열이었다. 위선이긴 하지만 선을 강조했다.
그리고 어버스나이트는 말 그대로 혼돈, 각자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외부에서 보기에 선악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거꾸로 된 천징, 리버밸런스는 모두가 그르다고 하는 것을 추구하는 교단이었다.

* *
* *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넓은 평지가 드러났다.

"으으···."

수희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성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를 처리하기 쉽도록 엄폐물을 제거해 사격 공간을 확보해놓은 것이지만, 공간을 보고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몬스터를 상상할  있는 나나 수희는 굳어진 표정을 펼  없었다.

"전망이 좋군요."

헤스티가 걱정 없이 말했다. 대규모 전투 경험이 없는헤스티나 바리스, 에리는 덤덤한데 수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냥 넓은 것이 좋은 건 아니야."

어차피 가르쳐야 할 일이었다. 심층으로 가면 대규모 전투를 경험하게 된다. 수희의 표정을 보면 수희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은데, 지금 시점에서는 미궁 안에서 경험했는지, 밖에서 경험했는지 알 수 없다.

"집단으로 움직이면 강해진다. 숙련된 병사 3명은 오크 하나를 견제할  있어. 하지만 하급 병사 10명과 숙련된 지휘관이 있으면 오크 하나를 아예 처치할 수 있다."

장창 밀집 대형과 오크의 공격을 받을 삼지창을 든 방어용 병사 둘이면 한 개체의 압도적인 무력을 감당할  있다. 집단전에서 삼지창은 상대보다 무력이 떨어져도 거리를 띄운 상태에서 공격을 받아낼  있다.

"하지만, 오크가 100마리 있다면?"
"으으, 그런 경우도 있어요?"
"가정이지만 말이다."

깊은 곳에서는 그런 미궁 층이 있다. 정면으로는 도저히 방법이 없기에 편법을 쓰지만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미리 말해 두렵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외적 요인이 아닌 접근전으로는 인간은 결코 이길  없어. 아무리 밀집 대형이라고 해도 오크 한 명 공간에 인간 두  이상 들어가지 못해."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 수희에게 내가 더 깊은 층까지 간 적이 있다는 정보를 주게 되지만, 그보다 바리스와 헤스티, 에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심층 오크의 집단 전술은 인간 이하가 아니야. 인간이 창병 밀집 대형으로 밀고 들어온다면 초근거리 투창으로 집중을 와해하고, 투창을 막을 방패병을 더한 창병 밀집 대형으로 나가면 똑같이 창을 구해와서 상대해."
"오크가 집단 창술까지 쓴다고요?"
"심층 오크는 달라. 처음에 오크 하나를 병사 10명이 잡는 거 말했지? 오크가 그 전법을 똑같이 써. 뛰어난 인간 전사가 적이면 창병 오크 여덟과 삼지창병 오크 둘로 상대해."
"와, 그런 곳을 어떻게 깨요?"

나는 손끝으로 헤스티를 가리켰다.

"아."

마법사. 일정 공간을 섬멸하는 마법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다.
뭔가 뿌듯한 표정을 짓는 헤스티에게 다음 말은 하지 않았다. 오크 100마리를 처리할 수 있는 마법사는 얼마나 강력해야 하는지 언급하지 않았다.

바리스, 헤스티, 에리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수희는 전투가 일어날 전장을 보고 표정을 굳혔다.
이는 추가 훈련을  수 없는 지금, 수희만이 대규모 전투에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적은 오크가 아니야."

일행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전장에 남은 흔적으로 보니 오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집단전으로 붙으면 우리가 진다."

일행을 안내했던 십인장 페트로의 움직임은 가볍지 않았다. 그를 기준으로 십인장 이하의 병사와 그보다 강한 자를 추측한 후,  정도 수준이 힘들게 상대하는 적을 추정하면, 일행이 쉽게 상대할 적이 아니었다.

"우린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전투 흐름을 타고 집단으로 싸우는 것보다 일정 공간 내의 개별 전투가 강해.
미궁 골목 안에서 집단 운용을 위한 창을 장비하지 않은, 일반 무장의 오크라면 우리가 이긴다."

일정 공간 내에서라면 미궁 탐험가의 감각 밀접도는 병사와 비교할 수 없다.
나는 내게 시선이 모인 일행에게 말했다.

"우린 병사들과 달리, 성벽 위에서 싸우지 않는다. 성벽 아래에서 싸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행에게 부여된 방어지점의 특수성에 있다.
성에서는일행을 믿지 않기에 모퉁이 끝에 배치했다. 특이한 지점으로 Y자 형태로 성벽이 있다면, 일행은 Y자의 위 중간 성벽 사이에 배치되었다.
일행이 뚫려도 성벽이 뒤에 따로 있어 전체 전황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반대로 우리가  막아내면 병력 일부를 다른 곳에 돌릴  있는 여유가 생긴다.

'버림패로 쓰는 것이지만, 우리도 쓸  있는 특징이야.'

일행이 수세에 밀렸을 때, 결사 방어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빠지면 어떻게 될까?
적은 버릴 수 없는 목표가 있다. 성을 원했다. 일단 일행과 싸우던 적은 따라와 추격 섬멸하려 하겠지만, 추가 병력은 일행이 아닌 안쪽 성벽을 공략하는데 투입될 것이다.

나는  블록을 전장으로 잡았다.
성벽 바로 아래 구역, 뒤로 빠지는 구역, 그보다 더 먼, 적이 일행이 도망치려고 한다고 오인할 만한 구역.
바리스, 헤스티, 에리, 수희에게  구역을 익히라고 지시했다.
수희의 굳었던 표정도 다른 이처럼 풀렸다. 미리 파악한 일정 구역 내라면, 해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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