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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9화 (29/139)



〈 2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29화

나는 레리아나의 검이 희망을 품더라도, 원래의 레리아나의 검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검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이전의 검은 15층까지 통할 검이었다. 희망을 품도록 수작을 부렸기에 12층 정도 성능을 낼 거라고 예상했다.
수작을 부리지 않았으면, 영혼이 그저 독단검에 맺혔을 테니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이 틀렸다.
레리아나의 검은 15층 너머에서도 통할 검이 되었다.
굳이 왜 틀렸는지 변명하자면, 나는 죽음과 고통과 절망엔 익숙하고 그와 관련된 이적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희망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희망을 품은 존재가 이뤄내는 변화는 예측할  없다.

키메라를 상대할 때 일어난다고 알려졌던 푸른 검기와 절삭력은 아예 사라졌다.
하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검 자체의 성능이 더 올라갔다. 수준이 높은 전사나 나 같은 경우에는 특수 효과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의 기운을 제대로 투영해주는 검이 최고의 검이었다.
특수 효과는 15층 이전에 효율적이지만, 15층 이후에서는 검과 전사의 일체감이 가장 중요했다.
또한, 더욱 에고 소드다워졌다. 한 맺힌 울림을 이어가던 것과 달리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

좋은 무기를 구했기에 무기에 기운을 투사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도구로 생각하고 도구로 다뤘다.

좀  깊게 생각했어야 했다.
지금 함께하는 레리아나의 검이 한이 맺혀 울기만 하던 레리아나의 흔적이 아니라, 감정 변화를 표현할 정도로 온전한 에고 소드임을 생각했어야 했다.

단순히 검으로 대하고 나의 기운을 검에 밀어 넣었다.
처음에는 레리아나의 검이 거절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머뭇거렸다.

하지만, 끈기 있게 이어나가자 레리아나는 주저하면서 망설였다.
나는 안달하지 않았다. 마치 지친 짐승을 쫓는 사냥꾼처럼 느리면서도 조금씩,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정복해나갔다.
저항을 느끼면 물러나고 물러난 후에는 다시 밀어 넣었다.
결국, 나의 끈기에 레리아나의 검은 나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나의 기운을 받아들여 공명하며 증폭했다.

*

기대했던 이상의 성능.
나는 만족하며, 바리스에게 검을 건넸다.

바리스가 검을 휘둘렀다.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서 여러 무기에 익숙해져야 했다.
특수한 등급의 무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레리아나의 검은 일행에게 에고 소드를 경험할 기회였다.

“아앗.”

바리스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감각이 뛰어난 만큼 넘어지지 않았지만, 원하는 획을 긋지 못했다.

"흐, 이거 참···."

바리스는 곤란하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아직 기운을 운용하기 전인데도, 레리아나의 검이 바리스의 흐름을 방해했다.

“아무래도, 레리아나는 내가 몸에 손대는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몸?”
“네, 몸요.”

당연하다는 듯이 포기하고 내게 레리아나의 검을 건넸다. 그리고는 조금 떨어진 곳에 놓아두었던 자신의 양손검을 들더니 나의 가르침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아.”

나는 그제서야 침음을 흘렸다.
천천히 손을 뻗어 검신을 부드럽게 훑었다. 검신이 수줍은 아가씨처럼 파르르 떨었다.
마치 현관에서 돌아온 남편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기쁘게 맞이하는 새신부처럼.

나는 나의 기운으로 레리아나의 검 전체를 관통하고, 완전히 물들였었다. 이를 레리아나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레리아나의 바뀐 분위기가 설명했다.

“하아….”

레리아나의 검이 바뀌었다.
내게는  순종적인 반면, 바리스나 에리를 거부했다. 나의 기운을 받아들인 것이 자신을 허락한 것과 같다는 듯이.
내가 에리와 헤스티, 바리스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마사지지만 온기를 나누는 의미가 깃든 접촉을 보고 난 뒤에는 냉기를 뿜어내기까지 했다.

"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리아나는 순수했다. 순수했기에 현실이라는 이름 아래, 성교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번갈아 가며 꼭 껴안아 체온을 나누고 온기를 유지하는 관계도 있음을 용납하지 못했다.

“남자는 말이야, 밖에서 일하다 보면 말이지…. 꼭 필요할 때가 있거든? …. 아니, 욕망이 아니라,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금은 허탈했다.
미궁에 얽매인 내가 바람피우고 돌아온 불륜남의 변명을 주워섬길지 몰랐다.

입으로는 허하고 실속 없는 이야기를 하면서, 정성을 다해 검신을 잔잔히 쓰다듬었다.
보스전 이상의 세밀하고 집중된 기운을 이어나갔다. 수없이 반복한 회귀 동안 쌓은 기운 운용의 정수를 최대한 발휘했다.
부드럽고 원활한 기운 흐름은 그 자체가 쾌감이기에, 그녀에게도 통하기를 기대하면서.

길고 오래오래 설득했다.
지하 미궁 7층을 정복하는 동안 지치지 않았던 내가 지칠 정도로.

변주를 가미했다. 좋은 말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행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더했다.
네가 나중에 인간이 되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내가 아닌 뒤프레 가문의 대를 이으려면 서로가 종속된 관계가 되면 안 된다는 궤변까지 펼쳤다.

“으그그.”

나는 기지개를 켰다.
끝내 설득은 해냈다.

또한, 사라진 줄 알았던 특수 효과가 다른 형태로 존재함을 알았다.
내가 레리아나의 검을 들고 여성체 적을 상대하면, 추가 효과와 데미지가 부과된다.

* * *
* *
* * *

일행에게 자신감이 붙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성벽 아래에서 휘몰아치며 몰려드는 키메라와의 전투나 성안에서 탈출하며 치른 전투는 지하 7층 평균을 웃돌았다. 내가 전략적으로 통제해내긴 했지만, 분명 8층의 난이도에 버금가는 순간이 있었다.
7층 수준을 넘는 경험치가 이 추측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지하 10층에는 상점이 있다고 하셨죠? 돼지고기 사준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래, 상인의 요새가 있지. 물론 그 약속은 지킬 거야."

헤스티가 대놓고 자신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아래층에 관심을 보였다.
생필품은 부족하지 않았다. 카이바린 교단에서 약탈한 양이 많았고, 지하 6층에서 사냥하며 얻은 보상품이 쌓였다.
거기에 수희에게 보상으로 나온 귀중품을 건네 헤스티가 익힐 마법 스크롤을 사와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인간관계의 욕구는 충족되지 못했다. 반복 회귀 동안 사람에 실망한 적 많았던 나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쇼핑은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자극이었다.
지금 수준에서 8층은 몰라도 9층은 정말로 쉽지 않고, 상인의 요새 또한 헤스티가 상상하는 것처럼 친절한 공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차피, 아니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굳이 헤스티의 열의를 꺾을 이유가 없었다.

“오늘 밤은 헤스티인가.”
“으으…. 색골.”

우아하게 롤한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머뭇거리듯이 다가왔다.

“싫어?”
“치, 심술쟁이.”

나는 상의를 벗은 채로 헤스티를 이끌었다.헤스티는 붉어진 얼굴로 어쩔  없다는 듯이 이끌려왔다.

일행과의 신체 접촉을 조금 더 강화했다.
섹스까지 가지 않고, 잘 때  명씩 안고 잤다.
하루는 바리스를, 다음은 헤스티를 껴안고, 그다음은 에리와 에리와 함께 하려는 에드샤를 에리 너머에 두고서.
다른 곳에서는 잘 때라도 갑옷 역할을 하는 가죽옷을 벗을  없지만, 5층 거점은 그나마 안전해 속옷만 입고 피부를 맞대고 잤다.

나는 헤스티를 눕히고 등을 내게 향하게 했다.
헤스티는  뒤에서 알을 품듯이 꼭 안기는 것을 좋아했다.
 역시 뒤에서 껴안을 때, 따뜻한 헤스티의 체온이 껴안은  안쪽에서 느껴지고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헤스티 가슴의 말랑말랑하면서도 촉촉하게 빠져드는 부드러움이 좋았다.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접촉면을 늘려 체온을 느끼기도 하고, 끝을 놀리듯이 간지럽혔다.

헤스티를 안고 있으면서 바리스를 생각했다.
바리스는 묘하게도 편하게 받아들였다. 어떨 때는 자신의 손으로  손을 잡아 젖가슴을 감싸 쥐게 만든 후 그대로 편한 호흡을 하며 숙면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헤스티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내게 안겨 잠들었나 싶어도 손을 살짝 움직이면 조마조마해 하며 자극이 더해질지 멈출지 마음 졸이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에리는 야한 자극을 건네면 야한 자극 그대로, 편안함을 주면 편안함 그대로 받아들였다.

에드샤의 반응은 또 달랐다.
에리를 두고 반대편에 누운 에드샤는 혹 손이라도 스치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예민하게 자극을 되새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풍파가 일어나도 감당할 수 있지만. 잃는 게 커.'

바리스와 헤스티는 정상적인 성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질투보다 착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예전 헤스티와 연인이 되었을 때, 연인 선언을 하자마자 바리스는 내게 까탈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몸조심했다.
조금이나마 내게 있던 남녀 간의 호감을 삭제하고 그 호감이 연심으로 커질 계기를 아예 차단했다.
나를 향해 품은, 숨어있던 성욕을 완전히 차단하고, 나를 향한 호감을 동료애로 치환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이성 관계였고 그녀의 몸과 마음도 그렇게 반응했다.

물론, 바리스도 인간이기에 사랑에 빠지면질투하고 애정을 얻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하지만, 헤스티가 연관되면 달랐다.
바리스, 헤스티  다 내게 품은 감정은 동료 이상의 감정이었다. 연인의 애무는 아니더라도, 하찮고 엉성한 이유라도 붙이면 몸을 맞대는 걸 아닌 척 허용해줄 정도로.

하지만 섹스는 달랐다. 자극 크기의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둘이 서로에게 질투하면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관리라도 가능한데, 헤스티와 섹스를 바리스가 아는 순간 바리스는 나에게 마음을 닫을 것이고, 헤스티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내게 호감을 품고 있지만, 포기하느니 질투할 정도로 깊은 사랑을 하고 있지 않았다.

‘미궁에서 나가지 못하는 상황인 만큼 체온이 중요해. 이것이 상실감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나는 헤스티의 가슴을 즐기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헤스티가 흡하며 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헤스티의 연인이 되면 바리스는 상실감을 느낄 것이다. 내가 바리스의 연인이 되면 헤스티는 무너질 것이다.
모순이지만, 둘을 위해서 둘을 함께 가져야 한다.

멀지 않았다. 둘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
함께 나누는 따뜻한 체온이, 포근함이 경계를 흩트리고 있다.

*

'회귀가 반복되는 동안 성욕이 쌓였다면 아마도 이성을 잃었겠지.'

회귀하자마자 바리스, 헤스티를 제압하고 강간했을지도 몰랐다. 심층의 스트레스는 간단하게 인간을 한계 너머까지 몰아붙였다.

'몬스터 메므모. 오나홀 몬스터라고 메나홀이라고 부르지.'

이 미궁은 묘했다. 인간을 격퇴하면서도 인간의 도전을 이어가게 하는 구조가 시스템에 깔려있다.

남녀가 함께 모인 단체는 단일 구성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컸다.
인간은 이성에게  보이기 위해 현재 상황을 속여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동성을 배제하기 위해 동성을 비하하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이는 전체적인 전력 감소로 이어졌다.

동성으로만구성된 파티도 문제가 없진 않았다.
극단적인 선택을  때까지 버티는 내구도가 높을 뿐이지, 한계를 오가는 스트레스와 외부와 독립된 고립감은 인간의 마음을 쉽게 짓이겼다.
남자뿐인 무리에서 여자 역할을 스스로 하는 이가 생기거나, 다른 남자에게 여자 역할을 강요하는 이가 생겼다.
성노예 역시 답이 아니었다. 미궁은 비전투 인력을 지켜주며 진행할  있을 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또한, 성노예가 들어서는 순간 소유욕과 독점욕이 발동해 정치가 시작되었다.

'미궁이 내놓은 답은 오나홀 몬스터 메므모, 메나홀이지.'

이 몬스터는 미궁 8층 이후로 심층까지 끊어지지 않고 등장했다. 마치 미궁이 성욕 때문에 파탄이 나, 공략을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듯이.
표면은 성게와 비슷했다. 뾰쪽하고 많은 침이, 조개와 비슷한 딱딱한 껍질 위로 둘러싸듯 박혀 있었다.
크기와 형태는 인간 여성을 허리 아래로부터 무릎 위까지 잘라놓은 것과 비슷했다.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축으로 잘린 무릎을 이용해 달려든 후, 껍질에 붙은 수많은 침으로 찌르는 공격을 했다.

약점은 둔기를 이용한 타격. 치명적인 약점은 둔기로 타격한 후, 껍질을 벗겨내는 것.
껍질을 벗겨내면 극단적으로 약해졌다. 전문적인 병사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몬스터에서 인간 여성의  이하로 꿈틀거리는 덩어리로 변했다.

문제는 드러난 속살이 여성의 남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시기의 하체와 똑같았다. 오히려 더 매끄럽고 부드럽고 촉촉했다.
숨겨진 반격 기능도 없었다. 껍질을 벗기면 그저 남자의 욕망을 받아들이고 천천히 죽어갔다.

미궁의 의도가 명백한 것이 이 몬스터는 고레벨의 독을 품었다. 그래서 부드럽고 여린 살임에도 먹을  없었다.
독을 품고 있지만, 접촉으로는 중독되지 않았다. 단순 접촉이 아니라 실핏줄이 터진 상태에서 접촉해도 중독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용하지 못하겠지.'

매번 회귀 때, 성욕은 메나홀로 풀었기에 육체적 자극에 대한 갈구는 적었다.
물론 그것을 이용하는 나와 남자 동료를 여자들은 경멸의눈초리로 보긴 했지만, 변이 더럽다고 배변을 하지 않을  없었다.
다들 그렇게 인식했다.

나는 살짝 웃었다.
메나홀을 이용하지 못해도 메나홀을 설명할 시간은 올 것이고, 일반적인 파티에서 남자 성욕 관리 사례에 대해 늘어놓을  있을 것이다.
메나홀을 설명하면, 성적인 접촉은 파티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길 수 있다.

바리스와 헤스티는 나를 깊게 사랑하지 않았다. 그  사이의 인연은 나에 대한 호감보다 컸다.
그래서, 깊은 육체관계를 나누면 나머지 한 명은 나와의 인연을 포기할 것이다.
하지만, 얇은 애정, 그것도 변명을 곁들인 얇은 성적 접촉은 약간의 경멸과 자그마한 성욕, 미세한 호기심이 엉켜져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다.
메나홀은 '살짝 혹해버렸어'라는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변명거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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