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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2화 (32/139)



〈 32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2화

포근한 햇빛, 부드러운 바람, 건물 밖은 소란스러웠다.
흥정하는 사람들의 떠들썩거림이 전해져 왔다.
가끔 언성을 높이는자도 있지만, 그저 이득을 크게 보려는 자와 그에 당한 자와 맞서는 자의 기 싸움일 뿐이었다. 먼저 무기를 꺼내는 자는 없었다.
미궁 입구 기준으로 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부 경매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
이곳에서 '상인의 요새' 교단의 권위를 무시하고 칼부림을 시작할 만큼 담이 큰 자는 적었다.

'상인' 교단이 아니라 '상인의 요새' 교단이었다.
상거래를 할 때만큼은 검날을 먼저 보이지 않는, 최소한 먼저 보이지 않는 척을 하는 교단이었지만, 교단명에 '요새'가 들어가는 만큼 먼저 내비치는 살기에는 가감 없이 대처하는 이들이었다.

페로가 먼저 앉아 기다리던 방은 좁았다.
카이바린 교단의 사제, 마법사 페로. 미궁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를 전사 데이크와 함께 공격했으나 홀로 돌아왔다.
비정한 교단 내의 권력 투쟁에서도 죽은 자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말을 골랐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똑같지만 표면적으로는 전사 계파나 마법사 계파나 애도를 표했다.
죽은 자는  이상 권력을 추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후계자등의 권력승계가 존재하지 않는 만큼 비난이 아니라 애도를 통해 죽은 자를 이용했다.

살아 돌아온 자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애초에 페로는 버리는 패로 보낸 자였다. 전사 계파의 '페로가 배신해서 데이크가 죽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에 마법사 계파는 옹호해줄 리 없었다.
마법사 계파는 전사 계파가 실패한 만큼, 다음번에는 마법사 계파가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페로는 입안에서 올라오는 쓴 물을 삼켰다.
교단 내의 입지는 외부에도 영향을 끼쳤다. 상업과 정보는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기에 페로의 처지는 '상인의 요새' 교단이 운영하는 경매장의 경매인들이 대하는 태도에도 나타났다.

카이바린 교단은 '상인의 요새' 교단이 운영하는 경매장의 큰 고객이었고 이때까지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다. 다만,  대상이 카이바린 교단의 중추에만 해당할  페로가 아닐 뿐이다.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반듯한 복장의 사내가 깍듯이 고개를 숙이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사내의 사과는 페로의 불편한 마음을 풀어주지 못했다. 정말로 급한 일이 있었고 사과할 생각이 있다면 무엇 때문에 늦었는지 밝혔을 것이다.
사과에서부터 벌써 사내는 자신이 페로가 다룰 수 있는 정보 이상을 취급한다고 우쭐대고 있다.

"어버스나이트 사제 안드레나 수희가 경매장에 들렸다면서?"

페로는 사내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공치사를 늘어놓지 않았다. 그저 작은 주머니를 건네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돈을 줘야만 했다. 페로가 가진 권위만으로는 통제되는 정보에 접근할  없었다.

"이거 안 되는데···. 원래는 안되는 거지만."

당연히 수희가 거래하는 경매대리인과 카이바린 교단의 경매를 전담하는 경매대리인은 달랐다.
만일 페로가 같은 카이바린 교단 인물의 거래내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으면, 뇌물을 더 줘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경매대리인, 자신의 신용도를 깎는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쟁자에 대해서는 달랐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의 경매인과 카이바린 교단의 경매인은 다른 자였다.
그리고 경매인의 소득은 담당하는 교단의 이득에 비례했다. 각 경매인 간의 권력 역시 담당하는 교단의 이익에 비례하기에 소소하게 담당 교단을 돕거나 방해하곤 했다.

"중력 마법을 찾았단 말이지···."

다른 담당자의 문서를 직접 훔치지 않았다. 그저 경쟁 담당자가 이번에 매입하려 했던 물품 정보에서 이전에 매입하려 했던 물품 정보를  나머지 물품 정보로, 추정 정보를 만들어 제공하는 정도는 교단에서 용납하는 소소함이었다.

페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려야  때이긴 하지만.'

페로를 싫어하는 자와 이용하려는 자는 많았다. 지금 자신에게 주머니를 받은 경매 담당자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에게 페로가 어버스나이트 수희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사실을 냉큼 팔아먹을 것이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미약한 권력과 금력으로 정보를 모았다.
카이바린 교단은 여전히 내분 중이며 미궁 3층 코볼트 던전은 다른 교단과 분쟁 상태가 되었다가 어버스나이트 교단 소유로 넘어갔다.
얕은 힘 싸움이 아니라 아예 어버스나이트 교단이 카이바린 교단을 넘본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다른 교단은  큰 힘을 가지게  어버스나이트 교단을 제재하려는 움직임보다 카이바린 교단의 축소를 반기는 분위기라는 정보가 돌았다.

'차라리 배신을 해버려?'

어버스나이트 수희는 중력 마법을 찾았다. 중력 마법은 쉽게 구할 수 없는 마법이지만, 페로는 중력 마법을 가지고 있다.

가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중력 마법은 특정 상황에서만 강력한 마법이었다. 그런 특정 상황은 함께 하는 동료와 제대로 팀워크를 이루어야만 이끌어낼  있다.

조류형 몬스터가 날아가는 높이를 낮추고, 속도를 조금 늦춘다고 해도 타이밍을 맞춰 공격해주는 전사들이 없으면, 싸고 화려한 스킬인 윈드 스피어보다 못했다.

'최소한 그쪽은 제대로  파티야.'

페로는 갈증을 느꼈다. 중력 마법을 찾는다는  자체가 제대로 된 파티라는 증거였다.
한번 생각하니 점점 생각이 기울었다.

'나의 특성은 사실 제대로 된 파티에 유용하니.'

성물 추적과 탈출, 이 탈출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까지 무사히 빠져나갈  있게 해주는 특성이었다.

'교단을 배신한다고 해서, 신성을 배신하는 게 아니니까.'

신성은 배신할 수 있었다. 믿던 신성을 버리고 다른 신성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성에게 보복받았다. 이 신벌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신성이 얼마나 분노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넘는 것은 확실했다.

'특히 우리 카이바리 신성은 신성 자체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면, 배신에 대해 관대해.'

애초에신도를 학살해 신성을 얻는 교단이었다.

페로는 조심스럽게 눈을 굴렸다.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카이바린 교단은 자신이 어버스나이트 수희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아직은 상대할 적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아무리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 * *
* * *
* * *

페로의 경계는 부족했다.

수희가 내게 얻어온 정보를 전했다.

"경매 담당자가 내가 중력 마법을 구한다는 정보를 빼내 간 자가 있다고 알려왔어요. 이를 역추적해 카이바린 마법사 페로임을 알아냈어요."
"크흠, 페로라는 자, 그렇게까지 권력이 축소되었나."

끈이 떨어지고 패배한 마법사는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정보가 사방으로 공개되는 법이었다.
악어의 눈물과 같은 약간의 동정심이 생겼다. 그 끈을 끊은 것이 나이긴 하지만.

어버스나이트 안드레나 수희는 새롭게 떠오르는 권력이었다.
단순한 업적이 아니라 3층에서 얻은 카이바린 마법사 지팡이를 어버스나이트 신성에게 바치는 공양식에도 당당하게 참가했다.
정보가 빠른 자들은 힘을 밖으로 투사하려는 어버스나이트 교단과 어버스나이트 교단 중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수희를 쉽게 보지 않았다.

이는 경매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희를 담당하는 경매대리인은 정보누출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역정보까지 파악해서 수희에게 알렸다.
아마도, 아니 확신하건대, 페로의 경매대리인은 이를 알고도 페로의 권력이나 지불이 하찮아서 못 본 척 넘어갔을 것이다.

'페로, 도구로서 나쁘지 않은 자야.'

일단 바리스와 충돌을 일으킬만한 악행을 저지른 적 없었다.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의 성격을 비춰볼 때 가능성이 작았다.
그의 탈출 권능과 성물 추적은 크게 유용했다.

'카이바린 교단 내부 상황이 엉망이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성물 추적 권능을 가진 자에 대한 대응이 엉성했다. 그런 권능을 가진 자는 우대하거나 아니면 아예 죽여버리는 것이 깔끔했다.
카이바린 교단은 권력을 나누기 싫어서 페로를 권력 안쪽으로 당기지도 않고, 페로를 죽이는 것도 경쟁하는 상대에게 빌미를 줄까  서로 미루고 있다.
나는 이를 기회로 이어낼 수 있다.
각 교단의 사제는 그 마법사의 지팡이만큼 강력하지 않더라도 성물을 하나씩 들고 있다. 페로가  손에 들어오면, 카이바린 교단을 하나씩 추적해서 각개격파할  있게 된다.

페로는 영리한 자였다. 자신의 권력이 소문을 차단할 수 없음을 알자, 소문이 행동으로 변하기 전에 움직였다.

* *
* * *
* * *

일행은 페로를 마주했다.

수희가 눈초리를 올리며 팔짱을 꼈다. 눈앞의 마법사 페로보다 더 먼 곳에 시선을 줬다가 거두고, 조금 떨어져 있던 에드샤에게 시선을 향했다.
에드샤는 수희의 시선에 고개를 저어 감지되는 적이 없다고 알렸다. 함정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무튼, 저는 반대에요."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짝 앞으로 나섰다.
마법사 페로가 거점으로 쓰는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 구역으로 찾아왔다. 그는 바로 도망칠 수 있는 특성을 발휘한 채 일행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시적인 동맹을 이야기했다. 그의 요구 조건은 사냥 중인 카이바린 사제를 같이 공격하는 것.
자신이 적당한 목표를 고르고 추적하면 일행이 그들을 꺾고, 자신이 마무리하는 것을 골자로 내세웠다.

다른 함정이 없다면 이득이 컸다.
카이바린 교단은 어차피 적이었다. 약화시켜야할 대상이었다.
페로가 내세우는 조건인 자신이 마무리하겠다는 말은, 카이바린 교단의 신성한 어구인 '연속 사망'을 이뤄서 카이바린 신성의 분노를 줄이려는 시도였다.
우리 일행을 제외한 카이바린 교단 인원만으로 같은 신도를 처리해서 ‘연속 사망’을 이루면 신성이 크게 오르지만, 우리가 주도한 전투에서 마지막 일격만 페로가 가할 경우 카이바린 신성에게 가는 신성은 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가용한 신성은 늘어날지 몰라도, 사제 하나를 키우는 수고와 시간을 생각하면 기반을 팔아서 현금을 쥐는 것과 같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성장해.’

미궁의 경험치 시스템은 전체적인 기여도로 배분되지, 마지막 타격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페로가 적의 마지막 숨을 끊는다고 해서 일행의 경험치가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수희, 너의 이름으로 어버스나이트 교단에서 네르본 크리스탈을 빌려올 수 있겠어?"
"흐-. 그것도 아는 거야?"

수희는 작은 의문만 내비치고 뒤로 물러섰다. 네르본 크리스탈은 사도가 만들어낸 신물로 총 일곱 개가 있었다.
그중 다섯 개는 사제들에게 '빌려' 준 상태였다. 가장 큰 특징은 길잡이 스킬과 연관된 이정표를 공유한다는 것.
각자 개성이 강한 어버스나이트의 수뇌부가 서로 접점을 이룰 수 있는 수단이었다.
아무리 성격과 사고방식, 생활방식이 다를지라도 미궁의 같은 곳을 통행할 수 있는 수단을 공유하기에 사도라는정점 아래 쉽게 모였다.
다섯 개는 나누었고 두 개는 예비되어 있었다. 수희는 이 다섯 개 중 하나를 빼앗을 위치도 예비된 두 개 중 하나를 얻을 위치도 아니었다.

이를 굳이 언급한 이유는 한가지였다.
일행이 얼마나 어버스나이트를 믿을 수 있는가?
수희가 네르본 크리스탈을 얻을 위치가 아닌 이상, 수희가 아무리 일행을 감싼다고 해도 어버스나이트 수뇌부가 버리기로 결정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일행의 정보가 수희를 통해 어버스나이트에게 흘러가기에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일행은 어버스나이트 교단에 종속된 파티가 아니다.

수희가 내 말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아챘는지 아닌지는   없다. 하지만, 페로와 에드샤가 있는 자리에서 네르본 크리스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수희는 ‘칫’거리면서 물러났다.

'페로와의 동맹은 과격하긴 하지만, 카이바린 교단의 영향력을 줄일  있다. 동시에 우리 파티에 대한 어버스나이트의 간섭을 줄일 기회가 된다.'

미궁 탐험가가 교단에 가지는 의존심은 절대적이었다.
심층까지 가면서 함께 한 동료 중에 교단에 가입하지 않은 동료는 바리스밖에 없었다. 헤스티도 미궁 아래로 내려가면서 마법사 관련 교단에 가입했고, 가입하지 않은 바리스도 교단을 거부하지 않았다. 용사에게 어울리는 교단을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뒤로 물러난 수희를 두고 페로와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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