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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6화 (36/139)



〈 3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36화

"수희야, 내가 도저히 열 받아서 너랑은 함께  다니겠다고 하면 너희 교단에서 어떻게 응답할까?"

수희는 순식간에 변한 나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자기가 먼저 분위기를 조져놓았으면서 말이다.
나는 말하면서 신호를 보냈다. 내 신호를 받은 바리스와 헤스티, 에리가 수희를 에워쌌다.

"쉽게 얘기해줄게. 너를 죽이고, 미안하다면서 아직 풀어놓지 않은 어버스나이트 교단에 대한 정보를 던지면 어버스나이트에서 어떻게 나올까?
너의 복수를 위해 단서를 포기할까?"

수희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내가 암시했잖아. 사도에게 네르본 크리스탈을 받을 때까지, 교단의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전에는 딴 생각하지 말라고. 버림당할 수 있는 건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너도 포함이야."

흔들리는 눈을 압박했다.

"꿇어."

차갑게 내뱉었다.

"어서."

내가 미궁에서 눈치를 봐야 할 자는 오직 한 명뿐이었다. 카이바린 교단도 어버스나이트도 아닌 바리스였다.
이득을 던져 유혹해도 넘어오지 않을 이는 바리스뿐이었다.

"너 이리 멍청했었나? 어버스나이트 교단 내에 너를 싫어하는 자 없어? 네가 죽으면 슬퍼할 자뿐이야?"

힘이 빠진  수희의 무릎이 흔들렸다.

"아, 나 그냥, 조금 욕심이 나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히히 미안해."

수희의 멋쩍어하는 표정으로 넘기려는 모습에  역시 웃었다.

"저자를 봐. 너는 몰라도 나는 이미 동료로 받아들인 자야, 넌 동료를 상하게 한 자고."

페로는 죽지 않았다. 온몸을 움츠린 채 벌벌 떨면서 소리죽여 경련했다. 페로를 꺼리던 바리스 역시 동정을 품은 눈빛을 보였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내 지시가 없다면 일찌감치 도와주기위해 움직였을 것이다.
상태를 보니 교단에서 얻은 힘을 빼앗기고 저주를 받은 듯했다.
죽지 않았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었다. 카이바린 교단에서 신성에게 저주받은 자를 살려둘 리 없었고, 그에 저항할 힘을 페로는 잃었다.

"죄를 치러라. 갑옷을 벗고 엎드려. 아니면 죽던가."

바리스가 놀란 눈으로, 헤스티도 놀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잊고 나를 쳐다봤다.
바리스와 헤스티가 놀란 건 내가 심한 짓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수희를 처형한다고 해도 말리긴 하겠지만, 수긍할 것이다. 미궁에서 배신은 그만큼 심각한 죄였다.

그저 성욕이라는 면에서 저열하지 않던 내가 불한당 같은 제안을 하니 놀란 것이다.
바리스는 처녀이고, 헤스티도 무수한 회귀 중에 나와 몸을 섞어 처녀를 잃은 것이 전부였지만,둘은 처녀에 특별한 가치를 두지 않았다.
사랑하는 자가 있으면 정을 나눌 수도 있고, 목숨을 위협받을 때, 탈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소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미궁 내에서는 생명이 맺히는 숭고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에 더욱 성관념이 약했다.

"아니, 제발."

하지만 수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입으로 사과하면서도 두 다리를 떨면서도 꿇지 않던 다리를 굽히고 애원해왔다.

"약간 약해질 뿐이잖아."

그제서야 바리스와 헤스티는 납득이 된다는 눈빛을 비췄다. 수희의 처녀가 가지는 의미를 완전히 알지 못하지만, 약하게 만든다는 말에 납득했다.

바리스가 수희를 견제하는 검을 바싹 세웠다.
모험가 사이에서도 일행에게 죄를 지은 자의 손가락이나 손목을 자르고 추방하기도 했다.수희가 끝까지 거부한다면 도울 생각까지 하는것이다.

이런 바리스와 헤스티의 기색을 느낀  수희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 찼다.
나는 그냥 쐐기를 박았다.

"그럼, 죽을래?"

무릎을 꿇었던 수희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렇게 귀중하게 여기던 두 개의 검이 힘없이 떨어져 검은 흙에 박혔다.
반나신으로 돌아다니는 수희지만, 브래지어형 상위 갑옷을 풀고 아래쪽 하위 갑옷을 풀자, 깊은 색기와 함께 미려한 선이 완성되었다.

기이하고 아름다웠다.
용병들의 시체와 목을 잃은 헤크론의 시체, 격전이 치러지고 급변하는 가운데에서도 은은한 발광을 거듭하는 마법진.
그사이에 희고 깨끗한 피부가 드러났다. 이미 드러낸 얼굴과 팔에는 격전의 흔적이 묻어있을지언정 젖가슴과 아랫배에는 티끌 하나 묻지 않아 기이한 배덕감을 자아냈다.

나는 수희의 포기를 느낀 순간 성교를 예감했다. 성교를 예감한 순간부터 아래의 남성이 여느 때보다 더 크고 단단해졌다.

애무 따윈 없었다.
엎드린 수희의 허리를 짓누르면서 하체를 덮었다. 부드럽지만 꽉 다문 저항을 거칠게 뚫어냈다.
수희가 입을 크게 벌렸다.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실에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이 흘러내렸다.

‘혼돈은 순수를 갈구한다.’

어버스나이트의 신성한 어구였다. 어버스나이트 신성은 수희의 야한 비키니 갑옷과 함께 몸을 숨길 수 있는 은신 능력을 줬다.
갈구해야  순수가 나에 의해 깨졌다.
수희는 약해질 것이다. 혼돈에 가득 차더라도 혼란한 상태만으로는 힘을 얻지 못한다.
다만, 탈출구가, 발전이 있다. 처녀가 아닌 또 다른 순수를 찾을  이전과는 격이 다른 힘을 얻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처럼 되지 않도록.’

수많았던 회귀 속에서 수희는 ‘순수한 복수심’에 불타곤 했다. 적을 파멸시켰으나 그녀 역시 파멸했다.

‘최선은 나에 대한 ‘애욕’으로 물들이는 거지만.’

애욕의 끝은 순수할 수 있으나 애욕과 순수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질감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거칠게 움직였다.
욕망을 풀었다.
아래에 깔린 수희가 흔들렸다. 어느새 방울이 된 눈물이 흔들림에 흘러내렸다.

나는 끝까지 밀어 넣은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정을 풀어내며 여린 떨림을 즐겼다.
숨죽이고 울먹이는 수희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
*

나는 몸을 일으켰다. 복장을 정리하고 바리스와 헤스티, 에리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녀들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조금 전에 닥쳤던 감각을 되새겼다.
수희의 따뜻한 몸. 그녀가 느끼고 있을 절망과는 다르게, 나를 거부하려는 만큼 충족되던 야릇한 쾌감을 되새기는 것이 아니었다.
쾌감을 넘나드는 도중에 느꼈기에 환상이나 착각의 가능성도 있지만, 증거가 남아있다.

두 번의 [미궁 이해] 스킬의 레벨업 조건이 충족되었다. 나는 충족되는 즉시 스킬을 올렸다.

첫 번째는 수희의 배신으로 페로가 신의 ‘짜증’에 먹혔을 때.
조건이 충족되었고, 나는 경험치를 투자해 미궁 이해 레벨을 올렸다.
이는 그럴만한 일이었다. 신성이 사도와 사제가 아닌 외부인이 있는 곳에서 힘을 부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에 대한 여러 추측이 있지만, 심층까지 내려가는 고위 모험가들은 신성에게 인과율이 있어 과도한 개입은 신성에게 손해가 가기 때문이라고 말하곤 했다.
신성과 미궁은 깊이 연관되어 있으니, [미궁 이해]의 레벨업 조건이 풀릴 만했다.

‘하지만. 섹스 도중에 느꼈던 건.’

 번째 스킬업 조건 충족은 섹스 도중에 일어났다.
도중이 아니라, 수희의 처녀를 찢는 순간이나 처녀를 찢어버렸기에 수희에게서 어버스나이트 신성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순간에 조건이 충족되었다면 이해할  있다.

하지만,  순간에 일어나지 않았다.
수희에게 일어난 현상이 다른 무언가를 자극하고 메아리쳐 돌아오는 텀 이후에,

‘환청이 아니었어.’

깊고 처절한 언, ‘하지마. 제발, 그만.’
소리 없이 산이 무너지는 광경 같았다. 처절하고도 깊은 소리지만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기에, 감당할  없는 무거운 것으로 격리되어 있기에, 작고 허약한 것으로 착각해버릴 만한 소리.

수희가  소리일 수 없었다. 수희가 낼  없는 소리였다.
절망할만하지만 그녀가 직접 쌓아 올린 힘은 남았다. 많은 부분을 잃었으나, 그녀의 것으로 소화해낸 어버스나이트의 힘은 그녀의 것이기에 잃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전히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마법진을 보았다.

‘하지 마. 제발, 그만.’
공명만으로 [미궁 이해]의 스킬업 조건을 충족시켜버린 흐느낌.

이 미궁층은 ‘강림당한 마물’ 층이었고 사람들은 ‘마물 봉인처’라고 불렀다.

미궁에서 미궁층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미궁 밖의 세계에서 고향을 떠난방랑자가 정착한 땅에고향의 이름을 붙이는 것과 달랐다.
미궁 5층 ‘굳은 땅의 은둔자’층도 미궁 9층 ‘강림당한 마물’ 층도 인간이 오가며 부르다 보니 생겨난 이름이 아니었다.
어느 경로로 모험가에게 전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미궁층의 이름은 고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진실에 근접했다.

저 마법진 안에는 마물로 은유할 수 있는 존재가 갇혀있다. 그 존재는 저 마법진 안에 강제되어 있으며,
여성형이며 수희의 고통과 공명할 만큼 유사하나 더 깊고 오랜 절망에 물들어 있다.

‘단서를 하나 완성했나.’

한번 일어난 공명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마법진의 여덟 개 원 위에 선 여덟의 다크림 매지션은 여성체였다. 강간당할  있는 몬스터였다.

‘안과 밖이 공명하면 안과 밖을 가로막는 벽 역시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어긋나는 법이다. 어긋나면 틈이 생긴다.’

마법진의 의미 역시 추측할 수 있었다. 갇혀있는 존재에 비해 다크림이 너무도 미약하니 공명할 수 있도록 증폭하는 역할이다.

수희를 강간할 때 공명되었던 이유도 이해해냈다. 단순한 강간이 아니라 어버스나이트의 신성이 빠져나가는,  힘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 강간이기에 공명이 일어났다.

"흠···."

얼마나 깊고 오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걸까.
순간 봉인 당한 존재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가슴을 냉정으로 채우고 이용할 수 있느냐를 분석했다.

충분한 힘을 얻은 후에 ‘강림당한 마물’을 사냥하기 위해 봉인을 풀 수 있다.

‘아니면, 절망적인 상황이 온다면.’

감당할 수 없는 적에게 쫓길 때, 이곳의 봉인을 풀어 난전을 유도해 버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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