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41화
브리핑을 시작했다.
“바리스와 나는 전투를 하지 않을 거야.”
사도와 최대한 가까운 층으로 갈 것이다. 사도가 일행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일행이 사도의 이상을 알아차린 순간 바로 접근할 수 있게.
한층 차이를 유지할 생각이지만, 안전하지 않았다.
일행이 내려갈 수 있는 만큼 사도도 올라올 수 있었다.
그래서, 바리스의 감각이 필요했다. 바리스는 모든 집중을 원거리에 둘 것이다. 당장 마주쳐서 싸우는 몬스터가 아니라 몬스터 너머 먼 곳을 감지해내야 했다.
접근을 먼저 알아차려야 대응할 수 있었다. 감지가 늦어 사도가 일행을 먼저 인식한 상태에서 피해 없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전투에 빠지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였다.
종속물에서 얻는 정보로 사도의 위치를 추측하는 것 자체는 위험하지 않았다. 한순간 사도의 위치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다시 발견될 때까지 기다리면 되었다.
하지만, 단순 추측이 아니라, 순식간에 스쳐 사라지는 정보에서 적의 의중을 알아내야 했다. 의중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사도와 마주칠 수 있었다.
에리와 헤스티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페로는 언제라도 탈출할 수 있도록, 사도가 주시하는 상황에서도 쓸 수 있도록 스킬 발동을 대기해야 했기에 실질적인 전투는 수희, 에리, 헤스티만으로 4층에서 8층까지의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
“크흐-.”
눈앞의 전투에 감각을 멀리하는 수준을 넘어, 내 몸보다 여러 층에 흩트려놓은 종속물에 집중했다.
전력으로 종속물에 의지를 투영하니 내가 나 아닌 것 같았다.
뒤를 생각하지 않는 극단적인 집중력을 유지했다.
평상시와 달리 종속물과 나 사이 연결이 비쳐 보이는 듯한. 느낄 수 없던 인연의 끄나풀이 끈이 되고 그 끈이 나였던 것과 연결되는 감각.
마치 미궁의 일부가 되는, 원래부터 미궁의 일부였던 것 같은,
종속물이 여러 미궁층에 걸쳐 있기에 미궁층과 미궁층을 아우르는 인연을 인지하는 감각.
‘기이할 뿐이다.’
나를 잊고,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격은 오르나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릴 듯한.
“큭.”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바리스의 손을 깍지 잡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긴장하던 바리스를 떠올리고 내 몸을 덮던 헤스티의 온기를 기억했다.
‘난 나를 버리지 않아. 이딴 미궁 내가 박살 낸다.’
*
전투가 이어졌다.
“수희씨, 갑니다.”
헤스티의 윈드 스피어가 고블린의 몸을 꿰뚫었다. 에리가 나의 컨트롤 없이 헤스티를 엄호했다.
수희가 흔들리는 고블린의 진영을 절반으로 나누고, 갈라진 진영이 그녀를 포위하기도 전에다시 반의반으로 만들었다.
마법 어그로에 달려드는 고블린을 에리가 막아섰고, 막아선 고블린에게 사이킥 쇼크가 파고들었다.
수희가 리딩하는 감각을 경험하고 되찾았다.
현재 수준에서는 바리스가 있으면 익힐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때까지 전투에서 기량이 높은 바리스가 수희까지 배려해 전열 전투를 하니, 한 겹 보호 아래 싸우는 것과 같았고 자신이 이끄는 경험을 얻을 수 없었다.
수희는 바리스와 내가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페널티를 성장의 기회로 삼았다.
나름 의미 있는 광경이지만 명령을 내렸다.
“모두 빠른 전투. 전리품 점검 없이 빠르게 진행한다.”
상황이 바뀌었다.
나의 지시에 모두 상황을 알아차리고 결의를 다졌다. 이는 페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페로는 지하 5층 거점에 두고 움직이는 것을 고려했었다.
그러나 미궁층 내에 랜덤으로 순간이동 하는 탈출 스킬은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이었고, 이미 벌을 내린카이바린 신성이 페로에게 추가적인 징벌을 내릴 가능성이 적었다.
징벌은 내린 힘에 비례했다. 페로에게 준 힘의 많은 부분을 회수하고 징벌로 써버린 만큼, 추가 징벌에는 추가적인 힘의 소모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사도에게 큰일이 생겼다. 이미 내친 자를 응징하기 위해 힘을 소모하기보다는 사도를 축복하고 강화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지하 6층 홉고블린 미궁층으로 간다.”
일행은 빠르게 몬스터를 정리했다. 미궁층 내에 발견해두었던 계단을 향해 전진했다.
“적은 카이바린 교단 마법사 계파의 수장. 게르다르프.”
종속물을 통해서 카이바린 사도는 보지 못했다.
그를 보기 전에 종속이 와해되었다. 내가 사도를 인지하는 것보다 사도의 힘이 종속물에 내린 종속을 먼저 와해시켰다.
나는 집중해 와해의 순간에도 게르다르프를 보았다. 게르다르프가 사도를 모시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변화가 일어났다.
순간적으로만 인지되던 게르다르프가 선명히 인지되었다.
종속을 와해하던 사도가 떠났다는 뜻이었다. 사도를 수행하던 게르다르프의 바쁜 움직임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일어났음을 의미했다.
‘어버스나이트 사도가 카이바린 본단에 도착하고 충돌한 거다.’
종속물을 통해 상세정보가 밀려들었다.
게르다르프와 일당들은 이미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않고 홉고블린을 사냥하며 전진했다.
지하 6층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발견하기 위함이다.
‘기습의 타이밍까지 노린다.’
그가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하기 전에 접근할 것이다.
계단 근처에 리젠되는 그 층의 몬스터보다 강한 수문장 몬스터를 상대하는 순간을 노려 기습을 해낼 것이다.
“헤스티, 에리 호흡에 특히 신경 써. 이제부터 달린다.”
전체적인 상황이 그려졌다.
게르다르프는 카이바린 교단의 이인자였다. 이인자이기에 사도를 수행해 미궁 안으로 들어왔고, 교단 내 3번째인 전사계열 수장은 본단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할 것이다.
게르다르프는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두 가지 어드밴티지, 카이바린 신성이 본단 쪽을 주시하는 상황과 기습이라면 욕심내볼 만했다.
* * *
* * *
미궁 지하 6층, 계단 앞에서 마법사들이 걸음을 멈췄다.
“어서 처리해야 해.”
마법사 중 하나가 게르다르프의 심기에 거슬릴까 봐 낮게 움츠리며 말했다. 그의 아래에 있는 자들을 재촉했다.
사도를 수행한 게르다르프의 그룹은 마법사들이 주력이었다.
최소한의조합을 위해 전사들을 대동하긴 했지만, 전사들은 미궁 안으로 들어와서 한마디 질문조차 던질 수 없는 급이었다.
토를 달지 못하고 듣는 명령만 수행하는, 지위와 실력이 모두 낮은 자였다. 그만큼 큰 격차가 있기에 마법사 계파에서도 짐꾼처럼 부렸다.
하지만, 계단 앞 수문장 몬스터를 앞에 두고선, 마법사들은 따라오던 전사들이 앞장서기를 기다렸다.
왜르- 쿠레취-
커다란 종양이 얼굴의 반을 덮어 고약한 홉고블린의 생김새가 더 기괴해 보였다.
가래 끊는 듯한 소리를 내는 홉고블린의 더러운 몸 주위로, 그을음 섞인 연기처럼 보이는벌레떼가 앵앵거렸다.
스웜은 단순한 벌레떼가 아니었다. 특히 홉고블린 근처의 스웜은 홉고블린의 몸과 같았다.
그냥 고블린 주술사도 까다로운상대인데, 계단 수문장 몬스터인 홉고블린 주술사는 급이 떨어지는 마법사들에게 쉽지 않은 상대였다.
계단까지 오면서 행했던 전술, 번갈아 가면서 마법을 퍼부어 빠르게 이동하는 방법을 취할 수 없었다.
상성이 나빴다.
마법사의 마법이 완성되어 발사되는 것보다 주술사가 [센드 스웜]으로 벌레떼를 날리는 것이 더 빨랐다.
독과 저주를 담은 벌레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온전히 방어에 전념해야 했다. 한 마리에게 물린다고 죽진 않지만, 한 마리의 독은뒤따르는 벌레를 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술사가 마법사를 먼저 노리면, 전사가 마법사를 보호하기가 까다로웠다. 일반 투사체와 달리 벌레는 검과 방패로 차단하기 어려웠다.
전사의 수준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짐꾼처럼 따라왔던 게르다르프 일당의 전사들이 해낼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법사들은 전사들을 기다렸다.
전사들이 공격당하는 마법사를 구해주지는 못하지만, 전사가 먼저 공격당하면 구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진행 속도가 동행한 마법사 기준에서 수준이 낮은 전사 수준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
“부족한 것들, 저것 하나 처리 못 해서. 비켜라.”
얼굴을 잔뜩 찌푸린 게르다르프가 일갈했다.
주술사 계열의 스웜 마법, 그것도 수문장급은 상당히 까다롭지만 게르다르프에게는 아니었다.
[버닝 핸드]
마법은 현상의 발현 이상으로 통제가 중요했다. 통제하지 못하면 자신이 일으킨 불에 죽었다.
그래서, 통제가 완성된 후에 현상을 발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파이어 볼을 일으킬 때, 허공에 아지랑이가 먼저 서리는것은 통제가 구현되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몇몇 마법은 발현과 통제가 동시에 시도되었다.
[버닝 핸드]가 그러했다. 처음에는 작은 불꽃이, 불꽃이 앞으로 튀면서 화염이 되고, 화염이 게르다르프의 통제에 따라 전면으로 방사되었다.
불덩어리가 완성되고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면으로 뿜어져 나가면서 완성되기 시작했다.
도중에 화염이 게르다르프를 향해 낼름거렸지만, 게르다르프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방사되는 화염에 방향성을 강제해냈다.
주술사의 스웜이 마법사의 파이어 볼과 파이어 볼트를 덮는 상성이듯이, 버닝 핸드는 스웜을 덮는 상성이었다.
캐스팅이 끝나야 불덩어리를 적에게 쏘는 파이어 볼과 달리 버닝 핸드는 캐스팅 초반에 화염을 일으키고 지속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주술사의 스웜이 날라와 도착하기 전에 마법사의 앞은 화염으로 불타올랐고, 전사의 방패로 막을 수 없는 벌레떼의 유연한 이동도 화염이 스치면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거기다가 단순한 보호나 고정해야 할 상황에서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파이어 월과 달리,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이 자유로웠다.
세 호흡이 끝나기도 전에 게르다르프에게 밀려들던 벌레떼를 다 태운 화염은 홉고블린 주술사에게 폭우에 휘몰아치는 강물처럼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