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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47화 (47/139)



〈 47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47화


베르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슬쩍 이쪽으로 시선을 주는 일행에게 손을 아래로 흔들었다.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를 보냈다.

“으라찻차.”

먼지가 음식을 덮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벌리고,기합을 내질렀다.
달려나가던 베르칸의 근육에 붉은빛이 떠오르더니 투창처럼 달려나갔다.

“와.”

헤스티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내 인상을 구겼다. 돌진이긴 한데, 돌진의 궤를 넘었다. 워낙 빠르다 보니 순간이동 하는 마법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헤스티와 페로는 마법사를 잡는 기술이라 적으로 상대하지 않는데도 긴장하며 눈을 못 뗐다.

도끼가 둥근 원을 그렸다.
숨어서 조금씩 다가오던 몰울프는 그대로  조각이 되었다.
베르칸은 도끼를 가볍게 털어내더니 가다듬을 필요가 없을 정도의 평안한 호흡으로 일행에게 걸어왔다.

“어떤가. 이 몸과 나의 이전 파티가 모아두었던 장비와 돈이 탐나지 않나? 나를 도와준다면, 끝난 후에 그대를 위해 일하겠네.
자네들이 리버밸런스의 메달을 사려는 것 보면 분명 그들과 적일 테지? 그들과 적이 아니라면 나를 습격하거나 습격할 준비를 위해 딴 곳으로 연락을 취했을 테니.”

역시, 베르칸이 좌판을 열었던 것은 동료를 모으거나 적을 부르기 위함이었다.

나는 씹던 고기를 삼켰다. 베르칸이 두고  술을 가득 마셨다.
보조용으로 배낭 위에 두었던 레리아나의 검을 잡아들고 검날을 보였다.

“리버밸런스와 함께할 수 없는 검이지. 그들의 과오를 기억하는 검이니.”

레리아나의 검이 파르르 떨렸다.
베르칸에게는 이정도 이유면 충분할 것이다.

*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모닥불은 조용히 타올랐다.

자그만 불을 헤스티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정된 표정.
때로는 광포하게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이지만, 불은 미궁 안에서도 언제나처럼 타올랐다.
어쩌면 미궁 밖이나 미궁 안이나 다르지 않은 유일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쪽 입술 끝을 구겼다.
아니다. 불마저도 같지 않다. 불을 상징하는 이그라굴 신성이 존재했다. 헤스티가 선택한 적도 있었다.
이그라굴 신성을 선택하면 화염 계열 마법이 탁월하게 강해졌다. 대신 선택한 순간부터 다른 마법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그라굴을 선택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그라굴을 믿은 헤스티는 피폐해져 갔다. 정확한 어구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이그라굴의 ’신성한 행위‘는 불, 물, 나무, 쇠, 땅, 오행과 연관되어 있다.
오행 중에 상성과 역상성을 가지는 두 가지, 나무를 태우고 물을 멀리했다.
강해질수록 헤스티의 눈은 죽어갔다. 과일을 먹지 못하고, 알맞게 구운 식용 고기도 아닌 까맣게 태운 몬스터 고기만 먹을  있었다.
평범한 집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했다. 조금만 집중을 잃어도 기둥이든 가구든 다 태워버렸다.
바리스는 헤스티가 돌만 가득한 동굴의 바위에서 잠을 잔다고 한탄하곤 했다.
나는 그때 바리스의 말에 귀를 닫았었다.

’차라리.‘

마녀가 나을 것이다.  잘못되어 광기에 미친년처럼 희히덕거리더라도 그녀는 행복할 테니까.
어차피 미궁 심층으로 향하는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궁 정복은 멀고도 멀고 가능한지도 의심스러웠다.
실패할 수밖에 없다면 이 길을 걷는 것이 자살과 뭐가 다를까. 미치면  어떠할까, 어차피 죽으러 가는길인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보낸, 인간의일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은 부정적인 생각을 떠오르게 했다.

오늘 밤은 헤스티를 숨쉬기 힘들 정도로 꽉 껴안고 자야겠다.
인간의 체온은 경이로워서 이런 나조차 감싸 안는다.

*

작게 타오르는 불에 상념이 일어난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베르칸이 입을 열었다.

“나는 동료들과 와이번의 알을 구하러 간 거였어. 급하게 구하는 대신 비싸게 산다는 의뢰였지.”

미궁 지하 10층에서 와이번과 연관된 물건을 들고 길잡이 스킬을 쓰면서 지하 11층으로 내려가면, 와이번 둥지가 걸릴 가능성이 컸다.
간단하게 와이번 둥지라고 부르지만, 한군데가 아니었다. 여러 파티에서 와이번 둥지를 노려도 각자 다른 와이번 둥지가 있는 미궁층이 걸렸다.

“비행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었지만 부담되진 않았어. 일행에 궁수와 마법사도 있고 나 역시 와이번을 처리할 수 있으니까.”

’궁수라···.‘

대공 전투는 일반적인 전투와 별개로 대비가 되어야 했다.
우리 일행은 마법사가 두 명에다가 중력 마법으로 적 공중 몬스터를 지상 몬스터가 되도록 강제시킬 수 있지만, 마법사는 항상 그렇듯이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는 클래스였다.
일정 강도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두드려야 되는 전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마법사가 적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급하지 않아.‘

내가 부리는 석궁구와 부유력 부여는 폭발적이라기보다 지속적이었다. 이는 일행에 궁수가 없는 단점을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함정에 빠졌지.”

베르칸은 주머니에서 메달을 꺼냈다. 메달에 묻은 오래된 핏자국이 전투가 있었음을 암시했다.

“마법을 쓰는 놈이었어.  놈이었지만, 우리도 약하지 않아. 다만 마법사라는 것이 컸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헤스티가 작게 중얼거렸다. 베르칸이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밖의 와이번까지 다시 들이닥치니 우리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감당할 수 있는 놈이었는데, 마법사가 준비된 함정을 발동시키니 그놈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메달을 빼앗아 도망치는 것이 다였다.”
“그렇다면, 너무 강한 자가 아닌가? 치명상을 입혔다고 해도 시간이 흐른 만큼 회복했을  같은데?”

나는 감정에 몰입하려는 베르칸을 멈췄다. 실질적인 전력 차이를 물었다.

“당한 짓에는 다시 당하지 않아. 함정에 당한 거다. 그것도 결국은 뚫어냈고.
이미 알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와이번만 처리해줘도 혼자서 상대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칸이 몰울프를 돌진 기술을 써가면서 잡는 모습을 일행에게 보여준 이유였다.
모험가는 자살희망자가 아니었다. 베르칸에게 결정적인 수단이 없다면 보상이 커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베르칸은 나의 상황을 모르지.‘

나에게 리버밸런스를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니, 가능한 임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피할 생각 없었다.
당장 위험해 보인다고 다 피하면 그게 눈사태가 되어 절대 피할 수 없는죽음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한 도전해야 했다. 실패는 개죽음이지만, 나에게는 아니니까.

’다만, 긍정적인 난수를 더한다.‘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차가운 검인데 잡은 손이 편안한 것이 레리아나가 자신도 따르겠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었네.”
“잘 마셨어. 그럼 8시간 뒤에 보지.”

베르칸이 짐을 들고 떠나갔다. 그는 준비를 마치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이다.
그가 멀어지자 헤스티가 내게 물어왔다.

“그런데, 와이번 알이 비싼 이유가 있나요?”

일행은 특히 헤스티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내게묻곤 했다.
나 역시 미궁에서 지식은 힘이자 생존이었기에 그녀들의 성장을 위해서 설명해주곤 했다.

“이때까지 몬스터 알을 본 적이 있나?”

헤스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탄생과 연관된 장면은?”

헤스티가 에리를 신경 쓰는 기색을 비쳤다.
일행은 에리가 미궁층에서 몬스터처럼 저절로 생성되지 않고, 미궁 안에서든 미궁 밖에서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행이 접하고 알고 있는 사실은 에리가 눈을 뜨고 세상을 인지한 이후의 일, 미궁 밖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른다.

미궁에서는 생명이 태어나지 않았다.
확언하는 자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느끼는 규칙이었다. 수많은 모험가가 미궁 안에서 절망 때문이든 성욕 때문이든 섹스를 해대지만 임신한 사례는 없었다.
모두가 그걸 알아 미궁 안에서 피임하는 자는 없었다.
단순한 경험의 모음이지만, 미궁 자체를 파악하는 첫걸음이었다. 와이번의 알은 이에서 비롯된 의문을 풀기 적당한 실험 재료였다.

계속해서 설명하자 헤스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키메라를 연구하는 이들도 구하려 하겠네요.”
“그렇지. 성체가 된 육체를 합치는  관심이 있는 자라면, 처음부터 합쳐서 키우는데도 관심을 가지는 법이지.”

나는 헤스티가 의심을 품고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다.
레리아나의 검을 구한 레오나드의 성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나타났던 키메라를 떠올렸다.

한 가지 가정이 떠올랐다.
처음에 베르칸에게 알을 구해달라고  의뢰자도 리버밸런스와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함정을 팔 때, 완벽한 함정을 위해서는 자신이 잘 아는 것으로 조합하는 법이고 리버밸런스와 키메라, 와이번의 알은 연결 선상에 있다.

’이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베르칸이 받았다는 의뢰도 살펴봐야겠군.‘

보안이 기본이기에 의뢰자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
*
*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베르칸은 가벼운 짐으로 왔다.
커다란 양손도끼는 그대로였지만, 등에는 전체가 금속인 창을 맸다. 창이지만 작살에가까웠다. 창의 끝에 줄을 다는 구멍이 있고, 구멍으로 쇠사슬이 이어졌다.

에리가  무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쇠사슬로 후려치지 않을 바에야 투사 무기에 달린 쇠사슬은 어느 정도 길이가 되어야 했다. 작살을 투척해서 목표물에 닿을 때까지 사슬이 팽팽해지면  되기 때문이다. 최소 창길이의 3배는 되어야 던지는 힘에 방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베르칸의 창에 달린 쇠사슬은 창의 길이와 비슷했다.

“마법 무기다. 저 창보다 사슬이 비쌀 거야. 걸린 마법에 따라 길이는 다르겠지만, 사슬이 늘어날 거다.”

베르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6배까지 늘어난다.”

베르칸은 무기의 제원을 숨기지 않았다.
미궁 파티라면 혹시 모를 배신을 대비해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침묵으로 숨기곤 하지만, 베르칸은 이번 임무 다음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정보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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