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53화
나는 일행을 이끌고 지하 11층 와이번의 둥지를 벗어났다.
지하 9층에서 안전을 확보하고 짧은 휴식을 취한 다음, 지하 5층 거점으로 빠르게 복귀했다.
도착하고 나서야 경계를 늘어트렸다.
일행에게 경계를 부탁하고 사고에 몰입했다.
‘[신성의 속삭임]을 들을 줄이야.’
바바리안의 환생에 대한 정보는 이미 가지고 있던 정보와 카르미단이 한 말을 조합해서 추측했다.
하지만, ‘너의 넋은 바르하르의 신성이 거두어갈 것이다.’라고 말한 베르칸의 환생은 나의 추측이 아니었다.
신성이 직접 알려줬다. 신성 바르하르가 자신에 관한 이야기까지 묻힌 채로 내 귓가에 직접 속삭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나는 바르하르의 사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속삭임으로 의미를 전하는 것, 그것도 신성에 대한 귀한 정보를 묻혀 알리는 것은 명백한 개입이었다. 다른 신성이 했다면 인과율의 위배에 해당했다.
‘그나마 고대신에서 격하된 신성이기에 할 수 있었던 걸까.’
위대한 전사의 죽음을 참관하고, 그의 죽음을 기리며 전사의 동료를 축복하는 것은 바바리안 전사신의 본질과도 이어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마냥 감동하지 않았다.
현상이 일어났다면, 현상이 일어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성들에게 무슨 변화가 있는 거다.’
이일은 어떤 변화의 결과이거나, 아니면 변화의 전조일 것이다.
‘사도가 아쉽군.’
사도는 신탁을 받을 수 있다. 신탁을 알면 좀 더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 사도가 될 생각은 없었다. 신성은 신성을 위할 뿐이었다. 신도를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사도들의 행동을 통해 신성을 추측할 것이다.
‘어버스나이트 사도는 카이바린 사도를 노렸지. 이는 신성이 개입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내가 환경을 조성했다고 해도,예전 회차보다 진행이 급하고 과했다. 이는 어버스나이트 사도에게 특별한 신탁이 내려졌을 가능성을 의미했다.
*
신성에 대해 다시 되새긴 이유는 새로운 스킬이 생겼기 때문이다.
[신성 이해]
특이한 것은 [미궁 이해]와 연관되면서도 위아래가 특정되지 않았다. 하위로 연결되지도, 상위로 연결되지도 않았다.
스킬을 올리는 데는 경험치가 필요하고, 스킬을 올릴 수 있게 활성화해 등장시키는 데는 선행 스킬과 합당한 경험이 필요했다.
[신성 이해]의 합당한 경험은 신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인 듯했다. [신성의 속삭임]을 듣고 난 다음 올릴 수 있게 활성화되었다.
‘각 교단의 사도들이 가질만한 스킬이군.’
많은 경험치를 요구했지만, 아깝지 않았다. 사도는 사제보다 격이 높았다. 이는 신도가 아닌 이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사도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게 된다.’
전에 카이바린 사도가 미궁층에 들어왔을 때, 사도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 나의 종속물은 모두 무효화되었다.
힘도 힘이지만, 격이 차이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신성을 이해한다면, 이해해낸 상위의 격은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지 못한다. 힘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
나는 명상의 깊이를 낮췄다.
좀 더 실존하는 나에게 집중했다.
미궁 11층 와이번의둥지 경험은 컨트롤러 클래스의 성장 조건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궁 이해]가 3차례 올라가면서 원래 스킬의 효과가 더욱 강력해졌다.
또한, [인과 감지]와 [인과 장악]이 생겼다.
‘아리나란을 종속하니까, 익힐 수 있게 나타났어.’
새로운 스킬은 뜬금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전의 행동과 연관되었다. 선행 스킬이 요구되는 것도 같은 개념이었다. 스킬 역시 행동이었다.
에리를 종속화한 것에 이어, 아리나란을 종속화한 것이 스킬의 반복 수행이 되었고, 종속화와 관련된 상위 스킬이 등장한 것이다.
‘[인과 감지]는 몰라도, [인과 장악]은 사제급이 아니야. 사도급이야. 쉽게 쓸 수 없는.'
[신성 이해]와도 연관된 듯했다.
무엇보다도 ‘인과’라는 단어는 내가 경험했던 어떤 클래스의 어떤 스킬에도 붙지 않는 단어였다.
*
아리나란과 눈이 마주쳤다. 나는 명상을 마치고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려 팔을 벌렸다.
아리나란이 아이처럼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부드럽게 아리나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리나란은 지성이 퇴화했다. 완전 퇴화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것이 전투 본능은 일반인 이상이었다.
처음에는 바바리안의 특징이거나 아리나란이 원래 전사의 경험이 있지 않나 생각했지만, 싸우는 방식이 인간의 방식이 아니었다.
피막을 날개처럼 펼쳐 날아오르고 급강하해서 공격했다. 와이번의 방식이었다.
다만 어설펐다.
당연했다. 팔길이, 다리 구조, 무게 중심. 모든 것이 달랐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움직임이기에 당장 쓸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하 5층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와 함께했다.
나는 공중전 경험이 적지 않았다. 비행 경험은 없지만, 바위를 띄우고 그 위를 오가며 싸우는 능력은 와이번하고 정면으로 붙어도 밀리지 않았다.
특히 지하 11층의 경험으로 힘과 민첩마저 올라, 와이번과 1대1을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다.
‘성적으로 접근할 이유는 없어.’
굳이 성관계를 가지지 않아도 이미 내게 종속되었다.
또한, 특별히 강한 자극을 가해 관리해야 할 스트레스도 없었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성이 퇴화해버린 것은 비극이었다. 하지만, 진실을 직시하고 버티지 못할 슬픔에 무너져내는 것 역시 비극일 것이다.
아리나란은 진실에서 어긋난 대신 마음 편하게 스스로의 위안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아리나란은 안는 걸 좋아했다.
굳이 분석하자면 본능적으로 신체의 불완전성을 느끼는 듯했다.
아리나란은 인간을 벗어났다.
손목과 팔목, 옆구리와 목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피막을 이루는 핏덩어리가 상처를 메우고 상처의 양쪽을 이어 원래의 기능을 해냈다.
그래서, 목소리도 인간과 달랐다. 핏덩어리로 성대를 흉내 냈기에 둥글고 모호한 소리를 냈다.
한번은 내가 에리에게 마사지하는 걸 지긋이 보기에 해주었더니, 오히려 긴장할 뿐, 심신을 이완하지 않았다.
손을 떼자, 내 등 뒤로 가더니 꼭 달라붙었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아리나란은 힘을 잃으면, 피막을 통제해내지 못하면, 손목과 팔목, 옆구리와 목을 통해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 버릴 것이다.
마사지를 통해 상처 부위가 자극될 수 있으니 이완하지 못하고 긴장하는 것이다.
역으로 믿을 수 있는 이의 몸에 달라붙을 때가 편안한 것이다.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아리나란은 행복해 보였다.
단순한 자극에 기뻐하며 우웅거렸다. 내가 그녀를 통제하고, 그녀가 가진 피막을 통제해 날아다니며 싸우는 법을 가르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였다.
*
거점이 된, 지하 5층 '굳은 땅의 은둔자'의 거처에서 분석과 훈련에 나날을 보냈다.
나는 물론이고, 헤스티, 수희, 페로도 정리해야 할 것이 많았다.
바리스는 크게 성장했다. 성장하면서도, 안정되게 균형을 잡고 한 발 더 나간 셈이라 불안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수희, 헤스티, 페로는 달랐다.
수희와 페로는 가장 중심이 되고 축이 되어야 할 자신이 변해 버렸다.
헤스티도 타인과 마법 연계라는 면에서 부족했던 점을 살피고, 강점을 강화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 * *
* * *
모닥불의 불꽃이 사라졌다. 불꽃에 가려져 있던, 재가 되기 전의 달구어진 붉은 색이 주위를 은은하게 물들였다.
바리스가 헤스티와 함께 나의 양옆에 바싹 붙었다.
여유로웠다. 에리는 불침번으로 이곳에 있지 않았다.
일행 중에 감각이 떨어지는 에리였지만, 5층 거점에서는 달랐다. 에드샤가 불침번 시간을 함께할 테니 최상급 경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흐으.”
헤스티가 숨기듯, 참듯 작은 소리를 놓쳤다. 헤스티는 나의 팔을 향해 모로 누웠고, 나의 팔을 그녀의 촉촉한 가슴으로 감아 온기를 전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내 손은 헤스티의 아래에 닿아 있었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그곳을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이미 일행의 성적 관념은 약화되고 무너졌다.
고립되고 독립된 환경에서 생사를 함께하며 극복한 고난은, 가지고 있던 성관념을 쉽게 일그러트렸다. 이미 성적 자극의 강도는 껍질에 불과했다.
오히려, 인연이 중요했다.
인연의 배타성이 둘을 예민하게 했다. 바리스와 연인이 되면, 헤스티와 연인이 되지 못하고 헤스티와 연인이 되면 바리스와 연인이 되지 못한다.
이 둘에게 성행위는 평생 함께할 상대를 선택한다는 의미의 벽이었다.
선택하는 순간, 선택받지 못한 이는 친구의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씹어 삼킬 것이다.
이제 그 마지막 벽을 무너트릴 때가 되었다.
나는 진중하고 부드럽게움직였다.
바리스를 중앙으로 이끌었다. 고운 나신을 바닥에 깔았다. 위를 보고 눕게 만들었다.
그 위에 헤스티를 올렸다.
“아이.”
헤스티가 부끄러워하며 움츠렸다. 바리스의 가슴과 헤스티의 가슴이 닿았다. 헤스티의 키가 작기에, 바리스의 가슴을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리는 모양새가 되었고, 둘 다 서로를 느끼고 그 자극에 얼굴을 붉혔다.
그 위에 나를 겹쳤다.
“아.”
헤스티가 긴장하며 숨을 토해냈다.
내 가슴이 헤스티의 등에 닿아 눌렀다. 고개가 헤스티의 어깨를 넘었고, 헤스티 아래에 깔린 바리스의 입술에 버드 키스를, 입술과 입술을 살짝 닿았다가 떨어트리고 다시 간지럽히듯 닿고 떨어졌다.
바리스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더 강한 키스를 해달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바리스의 눈이 몽롱했다. 완전히 육체적으로 이완한 상태에서 바리스에게 맞닿은 헤스티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육체는 같은 여자에게도 짙은 유혹일 것이다.
사이에 낀 헤스티를 누르고 바리스와 깊은 키스를 시작했다.
헤스티에게서 흣, 하는 가슴이 압박되어 흘리는 소리가나왔지만, 비명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나와 바리스 사이에 낀 헤스티에게 양쪽에서 밀려드는 압착은 절대 고통이 아니었다. 마법사인 헤스티도일반인의 신체 강도를 일찌감치 넘었다.
헤스티는 바리스와 나의 키스에 흘낏거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자극에 혼미해져 늘어졌다.
바리스와 나누던 혀로부터, 헤스티에 맞닿은 피부로부터 흠칫하는 기색을 느꼈다.
둘 다 긴장했다.
내가 하체를 가까이했기 때문이었다. 두 여인의 하체가 맞닿은 사이로 남성을밀어 넣고 둘에게 남성의 뜨거움을 아랫배의 아래로 느끼기를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흐읏.”
누가 먼저라고 할 거 없이 두 명에게서 급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아니면 나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마음의 욕망이 시키는 대로, 허리 아래를 살짝 들어 올려 밀었다.
바리스와 헤스티의 치골이 닿을 듯이 가까워졌다. 그사이에 낀 나의 남성이 없었으면 치골 아래와 치골 아래의 연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이 서로 맞닿았을 것이다.
나는 허리를 움직였다.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다만, 둘 사이의 틈만을 정확하게 노려 찌르지 않았다.
나의 남성이 헤스티의 여성을 훑었다. 일자로 다문 틈 사이를 벌리며 끈적하게 스쳐지나가며 이미 촉촉해진 습기를 훔쳐 남성에 발랐다.
마치 착각인 것처럼 바리스의 여성을 쿡 찔렀다. 일자로 다문 윗부분을 괴롭히는 것으로 끝나버린 미수였지만, 바리스의 하체가 오히려 애달픔을 품고 추적하듯 따라왔다.
둘을 꽉 껴안았다.
“둘 다 내 것이야.”
두 여인이 몸을 떨었다. 두 명 사이의 틈을 오가는 뜨거운 남성에, 드디어 소유되어버린다는 환희에 둘은 죄책감에서 해방되었다.
나쁜 건 나니까.
관념을 우회했다. 둘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할 필요가 없어졌다.
내가 다 가져 버렸으므로.
“아악, 아 아아.”
“끅, 아끅. 끄흐”
내게 처음을 빼앗겨버린 둘은 신음과 닮은 비명을 내질렀다. 쾌감과 닮은 고통이, 고통과 닮은 쾌감에 손을 꼼지락거렸다.
바리스의 손이 헤스티의 손을 찾았다. 헤스티의 손이 바리스의 손을 찾았다.
둘의 손이 손깍지를 쥐었다.
둘의 손을 커다란 나의 손으로 덮었다.
*
모닥불 자리, 붉게 은은한 빛을비추던 잔재가 완전히 재가 되어 꺼졌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격랑에 휩쓸려 완전히 늘어진 채 서로를 꽉 껴안고 잠든, 헤스티와 바리스를 위해 조심스럽게 불을 되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