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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4화 (64/139)



〈 6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4화

달띤 숨, 엎드려진 채 뒤에서 박혀 들기에 어찌할 줄 모르는 손.

“으흐, 준영씨, 싫다. 으흣. 그만, 나 이상해서.”

한번 쾌감에 띄워진 수희는 내려올 줄 몰랐다.

“여왕이 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더니, 내 장난감이 되고 싶었던 건가?”
“흐으, 읏, 귓가에 흣 속삭이지 마요.”

수희는 상반된 반응을 동시에 보였다. 귓가에 속삭여지는 숨이 간지러워 어깨를 움츠리면서, 동시에 야릇한 자극으로 받아들이며 신음을 흘려냈다.

나는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집중했다. 미궁 9층 마법진의 변화와 리버밸런스의 접근을 응시하면서도, 나의 아래에 깔려 흑흑 거리는 수희에 집중했다.

외부에 강대한 두 개의 힘을 마주한 순간이지만, 수희 자체의 중요성도 결코 낮지 않았다.
어버스나이트는 모순을 품었다. 혼돈스럽기에 어버스나이트 신성에 선택되고, 어버스나이트가 되어 혼돈을 더욱 키웠다.

수희의과시욕은 강력했다. 교단 내의 강자에게 틱틱거리며 시비를  정도로 위험을 알면서도 과시를 즐겼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인간이라는 자학이 존재했다. 낮은 자존감은 과시를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면에
기이한 욕망이 있었다. 과시를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을 버거워하며 자유로워지고파 하는 욕망.
원래인간은 모순되고 감정을 의지로 조절하기 어려운 법이지만, 어버스나이트는 더했다.
어버스나이트는 감정을 절제하고 억제하는 것보다 감정을 직시하며 해방하는 것이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교단이었다.

수희는 쾌락에 몸을 떨었다.
애초에 내가 주는 성감부터 가볍지 않았다.

거기에 일행의 모든 여자에게 둘러싸였다. 보편적 감성으로는 경멸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광경.
과시를 위해 스스로 쌓아 올린 벽이 무너지고 원래의 자신을 직시 당하는 쾌락.
동시에 채워지는 과시욕.
바리스, 헤스티, 둘은 내게 안기면 기뻐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제약했다.
서로를 위해 나를 독점하지 않았다. 나를 독점하고픈 마음은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수희는 내게 짓눌렸기도 하지만, 나를 독점한 상황이었다.
저열한 과시욕이 채워졌다. 과시욕은 저열한 만큼 순수했다.
혼돈이 수희에게 머물렀다.

‘혼돈이기에 순수를 갈구한다.’

수희에게 어버스나이트 신성의 향기가 다시 머물렀다. 교단과는 별개로 스스로 이룬, 마주한 향에 수희는 몸을 떨었다.
교단에서 교단의 유도에 따라 얻었던 처음의 힘보다는 미약하더라도, 직접 뻗어 잡은 향이라는 것이 중요했다.
스스로 첫발을 내딛는 자만이 극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

나는 여운에 빠진 수희에게서 몸을 일으켰다.
옆으로 치워두었던 무장을 다시 했다.  수희의 성장을 방해할까 봐 조심스럽게 칭얼거리는 레리아나의 검신을 톡톡 건드려, 나의 소유욕에 레리아나도 포함되어있음을 알렸다.

수희가 큰 도움이 되었다.
강력한 마법진의 힘이 사방으로 펼쳐진 가운데, 마법진에 최대한 가까이 리버밸런스의 막대기를 두었다.
막대기를 중심으로 마법진과 내가 마주한 셈이었다.

리버밸런스의 막대기에 두 가지 힘이 도달했다. 봉인된 마법진의 힘과 수희가 일으킨 파장까지 닿았다.
마법진 안의 존재도 리버밸런스도 모두 나와 수희에 반응했다.
수희가 강간당할 때 고통에 공응한 적 있던 마법진 안의 존재는 수희의 감정의 변화를 자극으로 받아들였다.

‘와라, 와서 마법진을 흔들어라. 시간까지 역행시키는 너희의 능력으로 균열을 일으켜라.’

*

미궁에서 일어나는 이력의 조건은 힘과 매개물과 의지다.
리버밸런스의 막대기라는 매개물에 공간을 격하고 힘과 의지가 담겼다.
힘은 막대기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릴 정도의 힘, 의지는 알아낸 정보를 막대기의 원래 주인에게 보낼 의지.

이력이 작용했으나 완전하지 못했다. 완전하지 못했기에 다음 탐색을 불렀다.
다시 한번 이력이 일었다.
더 강한 힘, 막대기 주변을 감싼 마법진의 힘을 밀어낼 정도의 힘을 담고.

그으-.
비명과 같은 공명음.

마법진 안의 존재가 ‘움직’였다.
나와 수희의 행위에 깨어나 주시하고 있던 마법진 안의 존재가 마법진 외부에서 일어난 이력에 ‘반응’했다.

반응하고 ‘이용’했다.
두껍고 견고한 석벽을 두고 양쪽 끝에서 철침을 내지른 모양새.
미궁 지하 9층을 도전했던 수많은 모험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마법진은 시간까지 역행해내는 힘을 내포한 리버밸런스의 이력에 흔들렸다.

끼에에에-.
절규지만 환희가 담겼다.
검붉은 무언가가 마법진의 미세한 균열 사이에서 뻗어져 나왔다.
파리를 잡아먹는 개구리의 혀처럼,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찢는 번개의 섬광처럼 찰나를 장악했다.
선으로 이루어졌다. 선이 겹쳐져 마치 갈고리처럼 보였다.
갈고리를 닮은 검붉은 선이 리버밸런스의 막대기를 잡았다.
아니, 막대기 너머에서 훔쳐보던 배후자를 잡았다.

끼에-.
환희가 커졌다. 검붉은 선이 끌어당겼다. 리버밸런스 막대기 너머로 이력을 투사하던 자가 끌려 당겨졌다.

마법진이 흔들렸다. 작은 진동이 점점 커졌다.
끌려 당겨진 자와 마법진이 충돌했다.

*

“미궁 9층 마법진은 시간과 연관된 봉인이었어.”
“으으, 그런데,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헤스티가 몸서리쳤다.

“감당할 수준까지 떨어트려야지.”

나는 일행을 이끌었다.
리버밸런스의 막대기 뒤편에서 마법진을 중심으로 옆으로 돌았다.
커다란  힘의 충돌을 옆에서 받을 이유가 없다.

“마법진을 부순다.”

마법진 안의 봉인된 존재는 리버밸런스 놈을 붙잡고 끌어당기고있다. 무대로 끌어올리고 있다.
우선 이를 도와야 한다. 마법진이 부서지면 부서질수록 봉인된 존재는 강해지고, 리버밸런스는 이곳에 강제로 당겨진다.

*

동시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에리, 에드샤. 페로와 함께 도망칠 준비를 해줘. 탈출할 계단을 찾아줘.”

마법을 근본이 아닌 방식에 따라 나누면 크게  가지다.
현상을 만들고 그 만든 현상으로 대상을 공격하는 마법, 파이어 볼트나 아이스 스피어가 여기에 해당했다.
다른 가지는 영역을 장악하고 그 영역 내를 변화시키는 방식.
중력 마법이나 저주 마법 등이 이에 해당했다.

고위로 갈수록 영역 장악이 중요했다. 일으키고 발사되어 시전자의 손을 떠난 마법은 시전자의 의지가 분리되거나 끊어진 상태, 그 자체 위력이 강하더라도 대상의 영역 안에 들어가는 순간, 영역 장악한 자의 의지에 파해되기 쉽다.
영역을 장악한 자는 시전자의 절반 이하의 힘으로 방해할 수 있다.

에리, 에드샤의 어스 마법이 큰 활약을 못 하다가 골렘이나 어스 슬라임을 구축하는 순간 강력해진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초반의 어스 마법은 현상 마법이면서도 현재 영역에 큰 영향을 받았다. 공격받은 자가 자기 자신 주변을 확립하기만 해도 타격이 약해져 강자를 상대로 효과가 작았다.
그러나 골렘이나 어스 슬라임이 가능해진 순간 체감 위력이 급상승했다. 압도적인 질량으로 상대의 영역 채로 짓누르기 때문이다.

‘이들은 에리, 에드샤와 세 단계 이상 차이가 나.’

리버밸런스도 마법진 안의 존재도 내가 힘을 측정할  없는 강자였다. 에리, 에드샤가 마법진 때문에 영역이 밀린 상태에서 상대할 적이 아니었다.

“전장과 멀어져도 괜찮아. 아니 전장과 멀어져야 빠져나갈 수 있는 온전한 계단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멀어져도 내가 에리를 느낄  있으니 상관없어.”
“네. 준영씨.”
“알겠어.”
“···.”

에리와 에드샤가 대답하고 페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나란은 마법진의 압박감에 바리스 옆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남은 바리스, 헤스티, 수희의 표정이 퇴로 확보 시도에 조금 편해졌다.

*

기이한 대치가 이어졌다.
마법진 틈으로 삐져나온 검붉은 선은 리버밸런스의 막대기 공간 너머에 있던 것을 움켜잡고 당겼다.
인간의 손이지만, 인간 같지 않았다. 미이라를 연상시키는 손이 검붉은 갈고리에 찍힌 채 밀려 나왔다.

바리스가 검에 화염을 담고 마법진을 공격했다. 헤스티가 마법을 쏟아부었다. 수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전의를 다졌다.
내가 벗긴 갑옷을 다시 입지 않았다. 힘과 자신감을 일부 되찾았다는 의미였다.

나는 마법진을 공격하지 않았다. 최악을 대비했다.

미궁 9층의 ‘강림당한 마물’.
분명 마법진에 봉인된 존재는 미궁 9층 수준이 아니다. 보통 미궁층의 유일한 로밍 몬스터나 조건을 완료해야 등장하는 몬스터는 층수와 상관없었다.

‘15층 아니 그 이상의 몬스터.’

마법진으로 제약당하는 상태인데도 다른 곳에서 엿보는 리버밸런스를 잡아챌 정도다.
애초에 잡으라고 놓아둔 몬스터가 아닐 가능성도 컸다. 봉인이란 죽여도 죽지 않는 것, 죽일 수 없는 것에 가하는 대책이다.

‘리버밸런스가 붙잡힌 몸을 포기한다면.’

팔인지 다리인지 알 수 없지만, 리버밸런스가 붙잡힌 몸을 스스로 잘라버리면 강림당한 마물이라고 해도 더 이상 끌어당길  없다.
대신, 잘라낸 몸을 이용해 마법진 봉인을 풀 것이다.
그때부턴 전력으로 도망쳐야 한다. 계단까지 장악당해 퇴로가 막히기 전까지 전력으로 상대하고 도망쳐야 한다.

*

그는 스스로의 몸을 자르지 않았다.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의 색이 바랜 로브. 턱은 보이지만 후드에 가려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왼손이 마법진 안쪽에서 뻗어져 나온 검붉은 선에 엉겨있지만,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고개가 내 쪽을 향해 움직였다.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반가워. 사제. 아니 그러면 모욕인가. 사도라고 불러드릴까.”
“뒤집어진 세상에, 뒤집어질 세상에 그깟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저 신도라고 불러주면 족할 뿐이네.”

나는 긴장했다.
자신을 신도라고 불러 달라는말은 사도급임을 알리는 말이었다. 사도, 사제, 신도를 역으로 뒤집으면 신도가 가장 위가 된다.

모습을 드러낸 리버밸런스의 신도는 자신의 팔에 엉켜진 검붉은 선을 부여잡았다.

“끌끌,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이력과 이력의 충돌에 지지직거렸다.

“‘강림당한 마물’ 유적, 이곳을 알고 있지. 하지만 손에 넣지 못했어. 비틀 수는 있으나, 뚫을 수가 없었으니.
하지만, 자네가안에서부터 뚫어오게 했군.”

지직거림은 점점 더 커졌다. 귀를 거슬리게 하던 소리가 귀를 괴롭히는 소리로 변해갔다.

“쇠사슬에 꿰뚫린 소녀여, 검은 날개의 소녀여.”

마법진이 갈라지며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

나는 리버밸런스 신도의 모습에 한 가지를 추측해냈다.
리버밸런스 신도는 봉인당한 마물에 끌려 여기에 왔을지라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숨겨둔 수가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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