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6화 (66/139)



〈 6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6화

리버밸런스 신도의 주공격 대상은 일행보다 나와 검은 날개 소녀다.
그렇다고 해도 일행은 대비해야 한다. 신도는 가벼운 공격으로 우리 일행을 해칠 수 있다면 내게 과부하를 걸기 위해서라도 시도할 것이다.

“헤스티, 파이어 볼을 발동한 채 유지할 수 있지?”
“그런 스킬 없어요.”
“스킬에 전부를 맡기는 것이 아니야. 화염을 생성한 후 의지 아래에 두면서 통제를 유지하는 훈련, 함께 했었잖아.”
“그렇지만, 실전에서 써보지 않아서.”
“불안해하지 마. 충분히 가능해.”

스킬은 쉽게 이력을 다룰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일정 수준에 오르면 성장의 방해요소가 된다.
전사는 몸을 다스리고 기운을 이끌  있어야 하고, 마법사는 스스로 이력을 일으키고 통제해야 한다.
스킬은 이를 빠르고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하지만, 이는 토대를 모르고 쌓아 올리는 장난감과 같다.

스킬을 배제하고 기운과 이력을 다루는 훈련은 갑갑하고 지겨운 훈련이었다. 일행은 원래의 힘 이하로 발휘되는 결과에 쉽게 지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강제로 시켰다. 기운과 이력을 다루는 훈련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불안해하는 헤스티의 표정과 다르게 붉은 불덩어리는 화려하게 생성되어 당당하게 떠올랐다. 헤스티의 앞쪽 위에서 열기를 뿜어냈다.

완벽하게 보호받는 원거리 마법사가 즉시공격 가능하게 마법을 유지하는 것. 격이 낮은 마법사가 동료의 도움을 받아 블링크를 상대하는 방법이다.
마법사는 마법을 유지할 만큼 침착하면서도 블링크에 즉시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을 열어놓아야 한다.
마법 종류보다 개인 역량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보호하는 자를 믿어야 한다.

“헤스티, 바리스를 믿어.”
“알겠어요. 준영씨도 조심하세요.”

뒷말은 말로 하지 않고 신호로 보냈다. ‘대기, 기회를 잡을 것. 적 스킬에 대응해서.’

*

복잡했던 수희의 표정이 점점 명쾌해졌다. 언젠가는 내가 어버스나이트의 이름을 허락한 의미를 알아차릴 것이다.
수희도 나만큼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만큼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성을 이용하는 토대를 이룩할 것이다.

“수희, 가자.”
“네, 준영씨. 낚시에 걸린 물고기에게 하늘을 보여줘야죠.”

수희의 태도가 자신감을 품으면서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름다운 나신을 그대로 드러냈다. 어버스나이트의 힘을 일부 되찾은 만큼 몸의 노출한 부분도 권능에 의해 방어력을 가졌다.

“거리에 유념해.”
“걱정하지 말아요.”

리버밸런스 신도뿐만 아니라 강림당한 마물, 검은 날개 소녀 역시 적이다.
일행이 공격반경 안으로 들어가면 일행을 공격할 것이다.
검은 날개 소녀의 파괴는 리버밸런스의 신도를 노리지만, 적대감은 세계 자체를 향해 있다.
우리가 반경 안에 들어가면 같이 쓸어버릴 것이다.

“갈게요.”

수희가 달려나갔다.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한 소녀와 신도의 뒤에서 수희가 끊임없이 이동했다.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거리를 좁히지도 않았다.
원 안쪽의 한 걸음을 따라잡으려면 바깥쪽 원에서는 달려야 하지만, 그저 신도의 등을 볼 수 있게 움직였다.
그리고 방심이 일어날 때, 정확하게는 방심보다는 등 뒤에서 얼쩡거리는 모기보다 눈앞의 적에 집중하려 할 때, 한발 간격을 좁혔다.

“감히.”

수희가 온몸을 실어 순간 돌진을 해도  끝이 닿지 않는 거리. 방어를 추구하는 전사라면 무시할 접근.
하지만, 신도는 자신의 영역을 가지는 마법사. 파고들어 좁혀드는 거리를 불쾌해했다.

“감히가 아니지. 잘못했어요 라고 말해야지.”

수희가 물러서면서 웃었다. 권력을 추구하는 만큼 힘이 돌아오자 원래 성격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힘을 가볍게 대했다.
저열한 과시욕,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훗.”

나는 웃었다.
분명 소녀도 신도도 버거운 상대였다. 하지만 일행은 주눅 들지 않았다. 담긴 힘을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로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소녀의 공격을 신도가 회피했다. 신도가 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소녀를 향해 내뿜었다.
공격을 잇는 동작으로 신도는 이동해야만 했다. 신도가 공격력을 올리기 위해 위치를 고정하는 순간, 수희가 깔짝거릴 것이다.
격이 높은 마법사는  격이 부여하는 자존심이 있다. 타격이 없어도 저열한 수희가 등 뒤를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불쾌가 된다.

“피해.”

내 말에 수희가 즉시 바깥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이킥 노바]
신도가 힘을 압축했다가 한 번에 폭발시켰다. 사방으로 파장이 살의를 담고 쏘아졌다.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는 마법. 거리가 멀수록 위력이 격감하기에 수를 믿고 달려드는 다수를 상대하는 마법이다.

나는 제자리에 멈춰 축을 고정했다. 레리아나의 검을 휘둘러 파장을 파해했다. 수희는 영리했다.
신도를 향해 돌진해 들어가도 사이킥 노바를 방해할 수 없음을 알고, 나를 향해 돌진했다.

“이것들이.”
“다음에는 좀  빨리 써봐.”

나의 등 뒤쪽을 향해 몸을 던졌기에, 나의 보호 반경 안에 들어간 수희가 혀를 삐쭉 내밀었다.

끼리-에
검은 날개 소녀가 기이한 울음을 길게 내질렀다.
[사이킥 노바]는 뒤에서 얼쩡거리는 수희를 노린 것이지, 정면에서 상대하던 소녀를 대상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소녀를 타격하기는커녕 밀어내기에도 부족했다.
그저 몸을 뒤로 한번 젖히는 것으로 힘을 와해한 소녀가 나아감과 동시에 손을 쭉 뻗었다.

깔끔한 선.
손끝이 신도의 몸통을 노렸다.
피할 각도, 막을 힘을 집중하기에도 부족한찰나.

[블링크]
리버밸런스 신도의 몸이 사라졌다.

“수희 뒤로 달려.”

가장 약하지만 가장 귀찮게 한 이는 수희였다. 거기에 수희는 나처럼 몸 주위를 장악하는 수준이 아니기에, 나타나는 즉시 반응하지 못한다.
그래서 뒤로 전력으로 달렸다. 수희 등 뒤에서 나타난다고 해도 멀어지는 상황이기에 한순간에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또한, 검은 날개 소녀 때문이었다. 신도라는 타겟을 잃은 소녀가 가까이에 있는 나와 수희 중에 수희를 공격할 가능성이 컸다.

다행히 소녀는 수희를 노리지 않았다. 싸우던 상대를 기억했다.
끼에 거리면서 날개를 펼쳐 기파를 터트렸다. 빛없는 동굴을 나는 박쥐처럼 기파가 리버밸런스 신도를 발견하기 위해 물결쳤다.

*

수희가 분전하는 옆에서 나 역시 싸웠다. 그렇다면 신도는 나를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수희가 더 주의를 끌었다. 어그로를 튀게 만들었다.
이는 하다 보니 흘러든 상황이 아니라, 의도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역시 수희가 눈치가 빨라.’

수희가 강자들 사이에서, 낙엽처럼 바스러질 위험에도 설치는 이유가 있다.
나는 공격과 동시에 발이 닿는 흙과 바위를 컨트롤러 스킬로 종속화했다. 수희는 정확하게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곳은 컨트롤러 클래스의 [종속]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종속]으로는 의지를 꺾기 전까지는 의지를 품은 존재를 품을  없다.
이는 무생물도 마찬가지다. 마법진의 영향을 받은 바닥은 의지가 반영되는 곳이기에 종속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검은 날개 소녀가 빠져나오면서 마법진이 완전히 무너졌다.
[종속]이 가능해졌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이며, 기다리는 자. 사도급인 리버밸런스의 신도, 그가 초대하는 전장에서는 고작 탈출이 한계였지만.’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판을 뒤엎은 지금은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저기다.”

나는 종속화한 돌과 흙, 파편을 통해서 이력을 감지해냈다.

[파이어 볼]
헤스티가 띄우고 유지했던 마법을 발사했다.
앞으로 내민 손.
헤스티의 파이어 볼은 도착하기도 전에 신도의 쭈글쭈글한 손가락 하나 그슬리지 못하고  힘을 잃었다.
하지만, 헤스티는 웃었다.

헤스티와 신도는 격이 다를 정도로 힘이 차이 났다. 그렇다고 해도 블링크 마법이 완료되는 시점을 노린 파이어볼은  호흡 투자하지 않고 막을  없다.
헤스티가  한 호흡은 검은 날개 소녀와 내가 다시 신도에게 달라붙게 해줬다. 블링크의 이득을 헤스티와 내가 무효화시켰다.

*

“끌끌, 불쾌하군, 불쾌해.”

화염이 사라진 자리에 리버밸런스 신도가 혀를 찼다.
바로 파고드는 검은 날개 소녀의 쇠사슬을 회피하지 않았다. 들어 올렸던 손을 열어 손바닥으로 막아내고 잡았다.
츠끅끅 거리는 불타는 소리와 비슷하고,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소리와 닮은 소리가 손안에서 일어났다.
역으로 잡고 당기자, 쇠사슬이 물결쳤다. 마치 파도처럼 힘이 역으로 검은 날개 소녀에게 쏟아졌다.

“훌륭합니다. 훌륭해요. 이대로는 제단을 쌓지 못하겠지요. 축하합니다. 저의 첫 번째 시도는 막혔습니다.”

신도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좀 더 원시적인 제례로 돌아가야겠군요. 제단을 쌓아 제물을 바치기 전에도 인간은 살아있는 것들을 잡아 직접 그 피를 사방으로 흩뿌렸지요.
끌, 취향이 아닌데, 아쉽구나. 아쉬워.”

리버밸런스 신도가 품은 힘이 느껴졌다. 그는 제단을 이루길 포기했다. 하지만, 이는 검은 날개 소녀를 더 이상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닭을 잡듯 직접 잡아버리겠다는 의미였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법이야. 지배자를 꿈꾸지만 그게 그리 쉬우면 세상에는 지배자뿐이겠지. 그리 하나하나 포기하고 포기하다가,  한 조각 사기 치고 기뻐하는 놈이 되는 거야.”

나는 그의 말은 변명일 뿐이며, 나약해지는 자의 변명이라고 비하했다.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젊어 보이는 내가 쭈글쭈글한 손을 가진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인생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래서 이는 그만큼의 모욕이 되었다.

“미비한 것이.”
“너의 뜻을 꺾은 승자지.”

말을 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리버밸런스 신도는 제례를 포기했다. 이는 품은  전부를 전투로 쏟겠다는 의미였다.
나를 잡고 검은 날개 소녀를 잡아 족친 다음에야 제례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신도가 원래 원했던 이적을 이루기에 부족할 테지만, 내가 죽고 난 다음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언제나 그릇된 꿈을 꾼다. 아래에서 위를, 현실에서 과거를, 늙음에서 젊음을.
이가 어찌 그릇된 것일까. 인류는 이미 종착점에 도달했다. 살찐 양의 종말은 도살되어 먹히는 것뿐이다.
뒤집어진, 뒤집어질 천칭이시여, 인간을 불쌍히 여기소서.”

튕겨 나갔던 검은 날개 소녀, 본능만 남은 것처럼 덤비던 검은 날개 소녀도 바로 덤벼들지 못했다.
신도의 로브 아래로 비치던 피부가 팽팽해졌다. 시간을 거슬러 젊음을 되찾았다.
머리를 가리던 후드를 뒤로 젖혔다.
조각같이 매끈한 20대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력으로 일으킨 기적, 이적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쪽에는 이적마저 비꼴  아는 이가 있다.

“에구에구, 늙은 몸이 부끄러웠어요? 젊어지자마자 얼굴을 보일 정도로 살아온 삶이 무가치했어요?”
“헛 하아-.”

나는 수희의 비꼼에 헛웃음을 흘렸다. 덕분에 바리스와 헤스티는물론 나까지 압박감을 덜어냈다.
바리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나의 한순간 한순간이 소중해. 순간을 함께 한 인연 역시, 절대 버리지 않아.”

바리스가 압박감이 사라져 비워진 마음에 전의를 채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