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68화
“네놈, 네놈, 네놈.”
신도가 강렬한 공격을 쏘아냈다.
다만 나를 향해 쏘았다. 다른 일행을 향하지 않았다.
집중된 공격을 한 번이라도 맞으면 치명상이 되어 육체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육체 능력이 떨어지는 순간 패배가 확정될 것이다.
하지만 맞지 않았다.
전방위 범위로 뿜어내는 공격은 레리아나의 검으로 쳐내 반발할 수 있다. 내가 막지 못할 만큼 집중된 공격은 전방위로 뿌리지 못했다.
나와 레리아나와의 동조, 모든 수단을 동원한 분투는 리버밸런스 신도와의 격차를 거기까지 끌어내렸다.
‘컨트롤러…. 모든 종속체를 내 몸처럼.’
내가 종속한 전장의 모든 사물을 한 몸처럼 움직였다. 내 몸의 근육으로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이 나를 숨기고 내 몸을 밀었다.
‘왔구나.’
에리와 에드샤는 바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와 근접 전투를 벌이는 신도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던 에리와 에드샤를 알아차렸다.
둘은 멀리서부터 전장을 보았다. 멀리서 크게 보았기에 불규칙하게 보이는 돌과 흙덩이가 마법진임을 파악했다.
둘이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바깥쪽으로 돌았다.
마법진의 양쪽 끝에서 힘을 투사하기 위함이다.
이리로 접근하면서 에리와 에드샤가 만들 길은 마치 화살표의 꼬리 부분 같았다.
대지력은 덩어리로 발휘하는 힘이다. 잘게 흩어질수록 약해지고 함께 할수록 강해졌다. 그렇기에 에리와 에드샤가 만든 길은 증폭 매개물이 되었다.
마법진과 이어진 길은 대지의 정체성을 더욱 선명히 함으로써 대지력을 증폭시켰다.
“산채로 매몰될 것이다. 흙 속에 묻혀 존재가 흩어질 것이다. 죽은 것이 흙 속에 묻힘은 순리이고, 흙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 역시 대지가품은 순리이다.
순리는 거꾸로 매달지 못하기에 순리이다.”
“내추럴 어스”
[내추럴 어스]
[내추럴 어스]
나의 선언에 에리와 에드샤가 흙과 돌로 이루어진 마법진의 끝에서 대지력을 투사했다. 마법진 전체의 광범위한 흙과 돌이 끼릭거렸다.
바리스, 헤스티, 수희, 아리나란은 급히 밖을 향해 달렸다. 아직 마법진 안이었지만, 문제없었다. 그 정도는 수월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
나는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리버밸런스 신도에게 달려들었다.
같이 산채로 매몰되지 않으면 신도는 빠져나갈 것이다.
재난이라 일컬을 만했다. 마법진 반경의 모든 흙과 돌이 한점을 덮고 눌렀다.
무게 그 자체가 힘이 되어압축했다.
그 안에서 검을 휘둘렀다. 흙과 돌이었지만 내게는 물과 같았다.
깊은 물 속에서 강력한 수압의 틈에서도 부드럽게 이어내는 헤엄처럼, 나와 레리아나의 검은 리버밸런스 신도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검은 날개 소녀가 만들었던 상처.
이미 회복했지만, 원래만큼 강인하지 못했다. 그 상처 위치로 파고들었다. 시간의 단련 없이마법으로 단순히 수복한 상처가 나와 나의 검에 의해 다시 갈라졌다.
거기에 한가자 동작을 더했다. 검을 옆으로 비틀었다. 심장을 향해 그었다.
비슷한 광경. 다른 결과.
검은 날개 소녀의 머리를 잡은 것처럼 리버밸런스 신도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의 머리에 닿지 못했다.
내뻗는 손이 천천히 느려졌다.
심장이 잘려나갔기에. 사방을 메우고 압축된 흙과 돌이 그를 막았기에.
*
*
*
돌과 흙으로 만든 무덤에서 빠져나왔다.
바리스와 헤스티, 에리와 에드샤는물론 수희와 페로도 지친 몸을 이끌고 달려왔다.
나는 모두에게 웃어 보이고, 바리스에게 레리아나의 검을 넘겼다. 승리의 기쁨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헤스티에게 손을 살짝 내밀고 진정시켰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명상에 집중하자, 모두가 나를 호위했다.
컨트롤러 클래스.
그리고 법칙. 룰. 시스템.
인간은 경험치라는 이름으로 다른 존재를 처치할 때마다 그에 합당한 성장을 얻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도급을 처치하고 인지가 더욱 넓어졌다. 사도급을 잡고 늘어난 인지는 격이 달랐다.
그래서, 다시금 인지했다.
미궁과 경험치 시스템은 동일하지 않다. 동일 존재가 아니고, 동일 개념이아니다.
‘그렇다면, 일정 시간 동안 미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잠식 저항]은 어떤 의미일까? 미궁과 경험치 시스템은 적인가?’
적이라고 단정해버리면 이해하기도 앞으로의 판단도 쉬워진다. 시스템을 이용하여 미궁을 막으면 된다.
하지만, 섣부른 단정은 법칙에 가까운 두 거대의 빈틈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빈틈을 찾지도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미궁과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신성을 파악해야 한다.’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헤스티와 눈이 마주쳤다.
“준영씨.”
헤스티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래. 이겼다.”
“하아. 네.”
크게 미소지었다.
“찬물을 껴안는 것 같아 미안한데, 아직 집중해야 해. 그래도 자유행동은 괜찮아.”
“아, 넵.”
헤스티가 눈을 똑바로 떴다. 바리스가 일행을 모았다. 경계를 풀지 않고 일행의 상처를 돌보고 휴식을 가졌다.
*
끼-에.
작은 소음.
아리나란이 귀를 쫑긋거렸다. 마법진 바깥쪽을 향해 고개 돌렸다.
나는 이미 확장된 인지로 알고 있었다.
검은 날개 소녀는 리버밸런스 신도의 손가락으로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나의 공격에 속이 터져나간 껍데기가 되어버렸다.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녀를 괴롭혔던 악의는 물론 원래 그녀의 의식까지 절반 이상 날아가 버렸다.
그녀의 존재를 마무리하지 않는 것은 리버밸런스 신도의 소멸이 우선이기 때문이었다. 신도가 행여나 돌과 흙을 압축해 만든 무덤속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게 집중하기 위함이었다.
검은 날개 소녀, 그녀 역시 상위의 존재로 변해버린 존재, 존재를 끊어내는 순간 거대한 경험치가 산출될 것이다.
그렇기에 바로 죽이지 않았다. 검은 날개 소녀를 공격한 것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리버밸런스 신도가 먼저 공격했다. 내가 소녀의 존재를 끊으면 신도가 공격한 경험치 분을 뺀 내가 공격한 몫의 경험치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리나란이 피막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펼쳤다.
꾸르- 끄- 끅끅.
피막으로 만든 성대가 주기적으로 울렸다.
질척거리는 소리의 이어짐이었지만, 바리스가 미소지었다.
바리스가 가르쳐준동요였다. 친구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걷는다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속이는 노래였다.
‘아리나란은 저 소녀의 일부에 동질감을 느끼는 건가.’
지금 당장은 경험치가 급하지 않았다. 경험치보다 전투를 되새겨 경험을 실력으로 녹이기 위한 되새길 시간이 필요했다.
‘반응을 유도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아.’
공중전을 생각하면 아리나란은 함께해야 할 일행이었다. 지금 검은 날개 소녀를 완전히 파괴하면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토라질 것이다.
‘아리나란의 퇴행을 극복할 계기가 될지도 모르지.’
경험치는 잠시 유보했다. 아리나란의 성장을 위한 투자가 될 수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
퇴행 이후로 아리나란은 외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나나 바리스와 접촉해 자신의 불안정한 몸이 감싸지는 느낌을 바라는 정도였다.
아리나란이 검은 날개 소녀의 남은 일부에 다가갔다. 꿈틀거리는 일부를 살피는 모습이 마치 집 마당에서 벌레를 살피는 아이 같았다.
‘여기서 벗어나려는 건가.’
소녀의 남은 일부의 꿈틀거림은 규칙성이 있었다. 신체가 온전했다면 바닥을 기어 전진했을 것이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어가고자 하는 방향이 묘했다. 계단을 향했다. 우연이 아니라면 계단을 알고, 계단이 어딘지 느낀다는 의미였다.
아리나란이 피막을 퍼트렸다.
피막이 검은 날개 소녀의 거죽에 닿았다. 소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리나란 그거 먹지 마. 먹으면 안 돼.”
헤스티가 놀라 다가갔다.
광경은 헤스티가 착각할 정도로 아리나란의 식사 장면과 닮았다. 아리나란은 인간의 음식을 먹지 않고 피막을 몬스터에 박아넣어 영양을 흡수했다.
“헤스티, 침착해. 아리나란이 먹으려는 거 아니야.”
손을 옆으로 내밀어 헤스티를 진정시켰다.
“도우려는 거다.”
“도와요?”
헤스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일행들도 거리를 두고 모여 살폈다.
소녀의 일부가 아리나란의 피막과, 피막과 이어진 덩어리로 채워졌다. 속이 채워진 인형이 되었다.
소녀의 허우적거리던 움직임이 점점 더 선명한 동작을 이루었다.
“아가야, 아가야, 어디로 가려는거니? 아빠를 찾는 거야? 엄마가 여기 있잖아.”
아리나란의 피막으로 이루어진 성대가 만들어내는 질척거리는 소리. 하지만 음률은 자장가를 떠올리게 했다.
일행은 숨을 멈췄다.
“아.”
바리스의 눈가에 습기가 어렸다. 저 노래는 바리스가 가르쳐 준 동요가 아니었다.
바바리안만이 미궁 안에서 임신할 수 있다.
아리나란은 미궁에서조차 임신할 수 있는 종족으로 태어나 생명을 품지 못하는 몸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아리나란이 자신을 엄마라고 칭했다. 엄마였던 기억은 아닐 테고, 아이가 어른을 흉내 내 소꿉놀이하듯 흥얼거렸다.
“이리 온, 엄마가 안아줄게.”
아리나란의 피막이 소녀였던 것을 안아 들었다. 소녀였던 것은 피막에 들리고도 한 방향을 향해 기어가려 했다.
“아리시. 아리시. 엄마가 안아줄게. 숲에 가지 마라. 아리시. 아리시. 엄마가 안아줄게. 숲속의 곰은 아직 배가 고프단다.”
질척거리는 노래가 흘렀다.
아리나란이 기억하는 동요, 바바리안에게 전해 내려오는 노래를 불렀다.
*
나는 일행을 조용히 모았다.
이끌고 아리나란의 뒤를 따랐다.
아리나란은 아이 같았다. 어른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을 알자, 소꿉놀이에서 깨지 않고 놀이를 이어갔다.
일행이 따르자, 아리나란은 자신이 아리시라고 이름 지은 소녀의 일부가 가려는 방향을 향했다.
*
나는 숙고했다.
검은 날개 소녀가 가려고 했던 곳은 어디일까?
‘탈출? 삶에 미련이 남아서 도망치려고? 아니야.’
검은 날개 소녀가 폭주할 때 그녀의 생을 엿보았다. 삶이 아니었다. 그저 존재만을 이어갈 뿐인, 악의에 묶여 이어가는 절규의 연속.
그녀가 온전한 의식이었다면, 그녀를 베어내는 나의 검에 몸을 내밀었을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을 향한 원한이야. 마치 죽어가며 범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질처럼.’
의식의 남은 부분이 꿈틀거리는 거다.
목적지를 추측할 수 있었다.
‘범인의 흔적이 남은 곳일 테니, 유적이겠군.’
힘이 아니라, 힘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컸다. 흔적은 시간을 버티지만, 힘은 시간을 거스르지 못한다.
혹 검은 날개 소녀가 보낸 영겁의 시간 동안 버틸 힘이라면, 이미 신성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것이어야만 한다.
신성과 맞먹거나 그 이상의 것이 영겁의 시간 동안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러니 흔적이다.
*
계단이 보였다.
에리와 에드샤가 만든 길은 평안했다.
계단과 이어진 길은 착각을 만들었다. 전장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일상 사이의 느긋한 공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착각하면 안 된다.
일상이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다.
아리시라고 이름 붙인 검은 날개 소녀의 일부는 도살장에서 도살당한 여자와 같다.
아리시를 안고 아리시가 향하는 방향으로 걷는 아리나란 역시 피막으로 가려진 목과 손목의 상처는 도살 중인 여자와 같다.
나는 레리아나의 검을 허리에 차고 오른손으로 아리나란의 손을 잡았다.
아리나란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유원지에 놀러 가는 아이처럼 손을 잡고 크게 흔들었다.
나의 왼손을 바리스가 잡았다.
일행은 아리나란의 질척거리는 흥얼거림을 들으며 계단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