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4화
에드샤의 고운 눈썹이 휘어졌다.
“들켰어요.”
에드샤는 존대와 반말을 오가곤 했다. 처음에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정체성 혼란이 아닐까 주의했지만, 아니었다.
일행에 대한 거리감의 반영에 가까웠다. 지금은 동료라고 볼 수 없는 이가 함께하고 있는 만큼 에드샤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일행은 에드샤의 목소리보다 내용에 집중했다.
드리아데도 일행도 당황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전투를 시작했다.
드리아데가 먼저 움직였다. 경쾌하게 뻗어져 나가 선을 만들었다. 이른 돌격이었지만, 맞는 대응이었다.
숲에서는 적의 감각에 따라 공격이 달라져야 했다.
날아오는 화살을 즉시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에서는 숲에서 활은 극히 강력했다. 누가 먼저 상대를 발견하냐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한계점이 존재했다. 미궁에서 전사의 능력은 끝없이 상승하지만, 투사체 사격은 활과 화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날아오는 화살에 반응할 수 있는 드리아데 급이 되면 거리를 둔 사격은 피해를 주지 못하는 낭비가 되었다.
드리아데 급부터는 특별한 활이나 능력이 있어야 사격으로 상대 가능했다.
“침입자.”
“누가 침입자야, 변절한 것들이.”
짧은 외침이 터지고 검과 검이 부딪혔다.
이어, 격돌음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휘파람 소리.
누구나 들을 수 있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는 소리는 이 지역이 다크 엘프의 영역임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다크 엘프 지원군이 가까운 곳에 있으니 숨은 신호를 보낼 필요 없는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내가 지정하는 적과 지정한 위치에서 전투할 것.’
일행은 즉시 움직였다. 바리스가 드리아데를 포위 공격하려는 다크 엘프를 차단했다. 수희가 바리스의 옆 공간을 점해 전선 형태의 대치를 만들었다.
다만, 그 대치는 숲 방향의 퇴로를 확보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바리스와의 협공만을 중시하는 형태의 배치였다.
“더 와요.”
“첫 번째 선두는 제가.”
“저는 두 번째.”
에리의 외침에 헤스티와 페로가 대답했다.
에리는 자리를 지켰다. 로브로 몸을 가려 비전투 인원 분위기를 품기는 아리나란과 아리시를 엄호하는 위치를 고수했다.
새롭게 다가오는 다크 엘프에게 헤스티와 페로의 마법이 쏘아졌다.
헤스티의 마나 스트라이크와 페로의 윈드 스트라이크가 나무를 피해 다크 엘프에게 명중했다. 헤스티와 페로의 성장은 견제 마법으로도 두 다크 엘프를 아예 무력화시켜 전력에서 제외시켰다.
“이방인, 우든 엘프의 거짓말에 넘어간 건가?”
강력한 마법만이 압박이 아니었다. 가벼운 마법으로 빠르게 정확한 효과를 거두자 다크 엘프들이 우리를 쉽게 보지 못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저들은 간사한 자들이다. 타종족을 벌레로 보는 것들이단 말이다. 꽃이 피면 웃음으로 도움을 가져가 놓고선 겨울이 오면 벌레의 사체를 양분으로 삼는다.”
“탄야, 너희들이 할 말이 아니지. 타락한 주제에.”
“타락이 아니라, 발전이다. 드리아데. 한번 주조된 검은 변하지 않는다. 부서질 때까지.”
달려든 다크 엘프 무리에 뛰어난 자가 있었다. 탄야라고 불린 자는 드리아데와 구면인 듯했다.
“순진한 건지, 뭔지. 의도는 알겠는데, 세련되지 못했어.”
수희가 다크 엘프 무리를 상대하면서 투덜거렸다.
탄야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말은 드리아데를 공격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드리아데와 함께 있는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분을 유도하는 말이었다.
드리아데가 전투 때문에 호흡이 가빠 반론하기 힘든 것을 이용해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다만, 매도로 끝날 뿐이었다. 설득의 기술도 부족하고 애초에 인간을 설득할만한 주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실력은 진짜야.”
바리스가 수희에게 주의를 줬다.
“내가 상대하겠어.”
드리아데가 나섰다. 진형을 변경하려 했다. 상대하던 다크 엘프를 밀어내고 탄야에게 향하려고 했다.
“아니, 수희 네가 상대해.”
“네넹, 소녀는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나의 지시에 수희는 운율마저 섞어가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어투는 가벼웠지만, 움직임은 세밀했다. 속도가 강점인 다크 엘프 탄야를 쌍검의 유연함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드리아데는 나의 지시에 승복하지 않았다. 밀어냈던 다크 엘프가 자세를 회복하기 전에 위치를 벗어나려고 했다.
*
나는 컨트롤러 스킬을 발동시켰다.
[강제 종속화]
대상은 드리아데도 탄야도 아니었다. 둘은 신도급 이상이기에 [강제 종속화]가 불가능했다.
신도급 이상은 심리적 타격이나 심리적 타격으로 이어지는 육체적 타격을 입혀야 [종속화]가 가능했다.
탄야와 함께 온 다크 엘프 중 일부를 [강제 종속화]했다.
“헛.”
드리아데가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수월하게 상대하고 밀어냈던 다크 엘프가 급가속해 달려들었다.
자세가 엉성했지만, 파고드는 위치가 절묘했다.
컨트롤러 클래스의 [종속화]는 단순히 대상의 힘을 발휘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조종을 넘어 추가적인 힘을 더할 수 있었다.
마치 거대한 물결에 떠밀린 듯한 엉성한 자세임에도 단검의 끝이 드리아데의 심장을 노렸다.
“이런.”
드리아데의 자세가 무너졌다. 급히 허리를 비틀어 찔러 들어오는 검에 검을 마주했다.
“클, 꼴사납게방심을. 역시 우든 엘프네요.”
수희를 상대하던 탄야가 비웃었다.
단순한 감정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라, 수희를 상대하기 위한 호흡을 나누어 적의 당황을 키우려는 시도였다.
바로 수희에게 압박당했지만 무의미한 시도는 아니었다.
심장을 노리던 검을 쳐낸 드리아데의 집중이 온전히 자세 회복에 투자되지 못했다.
내가 [종속화]해서 조종하는 다크 엘프는 드리아데가 극단적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상대할 수 없다.
‘방심을 거두기가 쉽진않지.’
한 호흡 안에 이미 판단한 인지를 리셋하고 다시 평가할 수 있으면, 수많은 전사가 전투 전에 정신을 가다듬지 않았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펼쳐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 자체가 재능이자 수준의 척도였다.
내게 종속된 다크 엘프가 드리아데의 허벅지에 긴 상처를 만들었다.
뼈가 아니라 목숨을 내주고 살을 받는 방식. 종속된 다크 엘프의 목은 드리아데의 검에 관통되었지만, 드리아데는 이동력을 잃었다.
비명은 딴 곳에서도 튀어나왔다.
“다데, 다데, 왜, 무리해. 왜.”
탄야는 상대하고 있는수희 때문에 내게 종속된 다크 엘프의 움직임을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관통당한 목을 보았다.
다크 엘프 탄야는 동족을 잃은 슬픔보다 지휘관의 책임을 상기했다.
“멜라니, 위본 침착해. 흥분하지 마라. 마음을 다스리기 어려우면 수비적으로 움직여.”
다크 엘프 멜라니, 위본은 이미 내게 종속당한 상태였다.
다크 엘프 탄야가 펼치는 지휘와 나의 조종은 목적이 달랐다.
탄야는 멜라니, 위본의 그녀의 지휘에 어긋나는 움직임이 다데의 죽음에 흥분했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나의 의도대로 한 번 더 몰아쳐도 탄야는 물론 드리아데도 속는다는 의미였다.
휘리릭- 휫 휫
탄야가 급히 틈을 만들고 휘파람을 불었다. 수희는 나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바로 파고들지 않았다.
드리아데의 얼굴이 참혹해졌다.
“다크 엘프들이 긴급 지원을 요청했어. 빠져야 해.”
처음의 신호가 선발대 접전의 알림이라면, 방금의 신호는 구조 요청이었다.
드라이데가 한쪽을 가리켰다. 왔던 숲을 향한 퇴로, 하지만, 내가 종속시킨 다크 엘프가 막아서는 방향이었다.
“아니, 힘들어. 저기 다크 엘프들은 목숨 걸고 우리를 찌를 거야.”
드리아데는 물론 적인 다크 엘프 탄야도 내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드리아데의 다리 상처가 근거가 되었다.
탄야가 입술을 깨물었다. 목숨을 걸고 지원군이 올 때까지 퇴로를막으려는 다크 엘프 부하에물러서라고 명령내리지 못했다.
이대로 드리아데를 고이 보내준다면 죽어버린 다데의 희생이 무의미해져 버렸다.
“반대쪽으로 가자.”
“안돼. 탄야가 주력을 불렀어. 암석지대에서는 그들의 추격술을 벗어날 수 없어.”
나는 드리아데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드리아데는 내가 순간적으로 움직였기에 잡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사 능력의 차이다.
“나의 동료가 희생하고? 여기서 저 다크 엘프들을 억지로 뚫으면 누군가가 다친다.
여기서 동료가 상처를 입으면 숲에 들어가도 우리는 벗어나지 못해. 너는 숲으로 돌아간 만큼 부상에도 도망칠 수 있겠지만.”
드리아데는 갑자기 들켜버린 속마음에 반박하지 못했다.
나는 드리아데의 무릎에 손을 넣었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웠다.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렸다.
“우린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어스 계열 특기를 가진 이가 있어. 직접 전투는 몰라도 암석지대에서 숨을 수 있어.”
내가 먼저 뒤로 빠졌다. 숲 방향이 아닌 반대쪽으로.
암석지대 중심부와는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수직에 가까운 방향으로 달렸다.
바리스가 나의 말을 곱씹는 표정으로, 헤스티는 조금 남사스럽다는 듯이, 수희는 휘익하고 놀리는 휘파람을 불며 나의 뒤를 따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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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지났다.
드리아데의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악화했다. 드리아데는 숲과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테지만, 암석지대라고 해서 나무가 아예 없지 않았다.
내가 나무와 흐름 연결을 막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추적자와 접전을 벌인 후에 더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이동 위치를 섬세하게 조율했다. 암석지대 중심부와는 가까워지지 않지만, 숲에서도 멀어졌다.
“에리, 에드샤 부탁해.”
호위를 전담하던 에리와 에드샤에게 대지 마법을 지시했다.
굳이 말로 한 것은 드리아데를 의식해서였다.
우든 엘프는 화염 계열 마법사를 싫어하지만, 대지 마법 역시 꺼렸다. 다만, 이는 종족 특성에 따른 본능적인 혐오감이 아니었다. 식물은 땅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경험적인 요인이었다. 다크 엘프들이 금속을 추종함에 따라 반발로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무런 친분이 없을 때 어스 마법을 보여주면 우든 엘프의 환심을 쌓는 데 방해가 된다.
“네, 휴식처를 찾겠어요.”
에드샤가 발끝으로 땅을 툭툭 두드렸다. 평상시보다 예민하게집중했다.
*
비어있는 동굴에 도착하자, 드리아데는 쓰러지듯 잠에 빠졌다.
숲의 우든 엘프에게 수호자가 있듯이, 다크 엘프에게도 수호자가 있다. 쓰는 힘은 다르지만, 무력과 역할은 비슷했다.
전쟁을 좌우하는 주된 전력이었다.
‘우리는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 전쟁의 변수지.’
다크 엘프들은 사제급인 다크 엘프 탄야가 감당하지 못할 적이라도, 수호자가 움직이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수호자는 쉽게 움직일 수 없다.
다크 엘프들은 우리 일행의 움직임이 우든 엘프와 연계되어있는지 아닌지를 몰랐다.
다크 엘프 수호자를 일행을 잡기 위해 보냈을 때, 본진에 우든 엘프 수호자가 들이닥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일행이 우든 엘프의 양동 작전, 주력을 빼내기 위한 미끼라면 그에 당하는 셈이 되기에 일정 수준 이상을 보내지 못했다.
‘에리, 에드샤의 능력을 안다면, 위험을 각오하고 수호자를 이쪽으로 보냈을 테지만.’
광산과제련을 위한 건물.
안정된 자연 상태라면 에리, 에드샤라고 해도 한계가 있다. 변화를 가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들이는 마법진이 필요했다.
하지만, 광산과 제련을 위한 건물은 자연에 변화를 가한 것이다.
한번 흔든 곳은 다시 비틀기가 수월한 법이다. 우든 엘프들은 보지 못하고, 노릴 수 없는 빈틈을 에리, 에드샤는 건드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