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75화
드리아데는 비어있는 동굴에 도착하자, 쓰러지듯 잠에 빠졌다.
꿈을 꾸었다.
그녀들을 지켜주던 커다란 나무가 검은 것에 지워지는 꿈에 눈물을 흘렸다.
* * *
나는 잠들어있는 드리아데에게 손을 뻗었다.
‘아직 부족해.’
손가락 끝으로 드리아데의 눈가를 훔쳤다. 맺혀 나온 눈물이 손가락 끝에 뭉개졌다.
예상했던 대로 드리아데의 종속화에 실패했다.
주변을 장악해 나무의 기운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심상을 흔들기 부족했다. 상처를 입은 상태임에도 버티는 것을 보면 괜히 사제급이 아니었다.
‘대신, 일행에 대한 유대감이 쌓이고 있어.’
내가 드리아데에게 쓴소리를했지만, 무대 위로 올라온 배우는 나만이 아니었다.
바리스와 헤스티. 심계가 깊지 못한 만큼, 드리아데를 지키면서 싸우라는 나의 지시에 진심을 담아 움직였다.
둘과 드리아데만 보면, 위기를 함께 겪는 전우였다.
‘친절은 독이 된다.’
드리아데에게 독이 되어 쌓여갔다. 드리아데는 이 위기를 자신이 초래했다고 내게 속아 넘어갔다.
죄책감이 커지는 만큼 나의 종속화가 먹혀들 여지가 커졌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굳건한 가치관, 우든 엘프 전체를 위한 마음이 장벽이 되어 종속화에 저항했다.
‘이대로 숲으로 돌아가도 상당한 환심을 얻겠지만.’
신도급 다크 엘프들을 죽이고, 전선을 흩트렸다. 거기다가 드리아데를 무사히 귀환시키는 전공은 적지 않았다.
단순한 전투 참가로 얻으려면 긴 시간이 필요한 전공이었다.
*
나는 언덕 위에 선 에드샤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살며시 껴안았다.
“추적자가 있지만, 행동이묘해.”
에드샤가 품속에서 속삭이듯 말했다.
“직접 느껴보겠어?”
나는 에드샤와 감각을 일치시켰다.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고 그 반향을 듣는 원리는 같지만, 예전의 탐색과는 격이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운용에 세밀함이 더해졌다.
에드샤가 변형을 일으켰다.
에드샤뿐만 아니라 상대도 파문을 감지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극히 미세하게 파장을 뿌렸다.
변형은 상대가 이쪽을 느끼지 못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이쪽 역시 변형을 역분해해야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경험과 수련을 쌓아 올린 감각이 없으면 정보는커녕 적에게 이쪽 위치만 알렸을 것이다.
안긴 에드샤의 체온처럼, 그녀가전하려는 감각을 느꼈다.
“잠깐, 조금 더 깊이 탐지해보자.”
품속에서 에드샤가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꿈틀거리는 에드샤를 즐기면서 감각에 동조했다.
일행이 다크 엘프의 영역에 파고든 만큼, 이때까지 다크 엘프의 대응은 공격적이었다.
전선의 균형을 위해 강자를 이쪽으로 보내지는 않았지만, 투입된 병력만큼은 공격적으로 운용했다.
결과적으로 일행을 잡지는 못했지만, 공격적인 운용으로 다크 엘프들의 피해도 줄어들었다.
내가 드리아데에게 압박감을 부과하기 위해 일행의 전투력을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상처를 입을지언정 과감하게 움직였고, 덕분에 치명상을 입은 동료를 진형 뒤로 뺄 수 있었다.
‘진형이 달라졌다.’
에드샤가 감지한 가장 가까운 다크 엘프는 일행이 다크 엘프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방어적인 감시였다.
일행의 이동을 빨리 감지하기 위한 공격적인 감시가 아니었다.
‘부상자들을 다크 엘프 암석지대 중심부로 보내고, 추가 인원을 기다려야 할 부대가 대기하지 않고, 더 뒤로 빠졌다. 상황이 변했다.’
“좀 더 위험한 탐지를.”
나의 말에 에드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든 엘프의 수호자에 맞먹는 다크 엘프의 수호자가 있다면, 들킬 위험을 각오하고 탐지를 쏘아냈다.
나는 에드샤를 꼭 껴안았다.
전투와 유사했다. 에드샤와 다크 엘프 수호자 누가 먼저 상대의 기파를 탐지하느냐의 승부.
“계획을 변경해야겠는걸.”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는 에드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에드샤의 기파가 암석지대의 중앙부에 닿을 정도로 접근했지만, 수호자를 탐지하지 못했다.
이는 평범한 상황이 아니었다.
일행이 에드샤의 탐지로 재미를 톡톡히 보는 만큼, 어스 계열의 성취가 높은 자라면 기본적으로 탐지를 애용했다.
그리고 탐지를 이용하면, 탐지의 감지도 예민해지는 법이다.
다크 엘프에게 큰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였다.
‘예전 회차 때 이런 일이 없었어. 이는 엘프 전장미궁층 자체의 변수가 아니라는 뜻이야.
이번 회차가 원인이야. 신성들의 개입인가.’
예전 회차와 이번 회차의 가장 큰 차이는 신성이다.
카이바린 교단, 어버스나이트 교단, 리버밸런스 신성.
리버밸런스 신성일수 없었다. 사도급을 잃은 이상, 숨어서 또 다른 사도급을 키워야 할 시기이지 수작을 부릴 시기가 아니었다.
카이바린 교단은 내게 크게 흔들린 후, 어버스나이트 교단과 다른 신성 연합에 큰 타격을 입었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이 개입했나.’
어버스나이트 교단의개입이라고 가정하고, 세부 사항을 예측했다.
‘그들이 개입했다면, 특히 다크 엘프 쪽에 붙었다면 어버스나이트 중에 강하고 행동이 빠른 자다.’
우리가 처음 드리아데와 만났을 때, 어버스나이트와 우든 엘프는 교전 중이 아니었다. 드리아데가 교전 사실을 알았다면 적진영 침투를 제시했을 리 없다.
‘투입된 어버스나이트는 수색이나 추적보다 강력한 충돌이 장기인 자.’
수색과 추적이 능하다면, 우든 엘프에 대한 정면 공격보다 우리를 수색하는 데 어버스나이트를 투입했을 것이다.
예전 회차지식과 어버스나이트에 대한 정보를 종합해 결론 내렸다.
‘다크 엘프 편에서 싸우는 자는 어버스나이트 가랑트런트다.’
*
*
*
나는 드리아데를 깨웠다.
내 손이 닿자마자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반응은 그녀의 몸이 좋지 않음을 방증했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내 손이 닿기 전에, 조용히 눈을 떴을것이다.
나쁘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으면 판단이 극단으로 향하는 법이었다.
“적이 왔나?”
“아니, 하지만, 너에게는 그보다 좋지 않지.”
나는 드리아데의 불안을 잠재우지 않았다.
“적의 병력이 빠졌어. 아직 적의 영역인데도 불구하고. 큰일이 있다는 거야.”
“잠깐, 큰일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믿지 못하는군. 당연해. 증거를 보여주지.”
드리아데에게 다가갔다. 상처를 흘깃 살피고 등을 내밀었다. 망설이는 드리아데에게 고개를 까닥여 재촉했다.
“빠르게 이동할 거야. 너 때문에 우든 엘프가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나의 격을 조금씩 풀었다. 기운의 압박은 나약함을 자극하기에 적당했다.
“그, 그보다 증거가 뭐야?”
“추적자에게 간다. 그 추적자가 지원자를 부르면 적진형에 이상이 없는 거야. 하지만, 경계 신호를 보내고 도망친다면 수동적인 태세로 접어들었다는 의미야.”
드리아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리아데는 우든 엘프를 위한 마음이 큰 만큼 내가 제공할 정보를 가볍게 볼 수 없다.
*
일행은 대놓고 위치를 드러냈다. 암석지대 중앙부를향해 다가갈수록, 드리아데의 표정이 굳어졌다.
휘파람 소리가 들리고 다크 엘프의 배치가 느껴져야 하는데, 추적자마저 뒤로 빠졌다.
“어떻게 된 거야?”
드리아데가 나의 팔을 툭툭 쳤다. 내려달라는 신호이기에 내려줬지만 비틀거렸다.
내가 드리아데 주변의 자연의 흐름을 막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드리아데, 공을 세우고 싶지 않아?”
드리아데가 사기꾼을 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사실 그리 틀린 판단도 아니었다.
“우리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해.”
“으, 그건 알아.”
“우리가 들인 노력만큼, 손해를 각오할 만큼의 가치를 네가 제시한다면, 넌 네가 할 수 있는 일 이상을 이룰 수 있지.”
“거부하겠어. 난 우리 종족을 배신하지 않아.”
“종족을 구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배신 아닐까?”
드리아데는 나를 노려보았다. 노려본다고 해서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면 세상이 참 쉬웠을 것이다.
“노예.”
내가 내뱉은 단어에 드리아데가 살기를 띄웠다.
“엘프 노예는 귀하지. 무력이 강한 것도 문제지만, 자살을 막지 못해. 입술에 자갈을 물리고, 손발을 묶어도 엘프는 절망만으로도 자살하지.
정신체가 나무에 엉켜 사정해서 엘프가 생겼다는 이야기가 사실일지도 모르지.”
“엘프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어.”
나의 모욕에 눈썹을 올리고 노려보는 드리아데를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엘프의 창조설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동족을 구했다는 자부심이 가득 찬 엘프가 자살할지 안 할지야.
동족을 위하는 엘프는 죽음을 각오하지. 비참하고 더러운 짓도 해.
그렇다면 순서를 바꾸면 어떨까? 노예가 되겠다는 약속으로 동족을 구한 엘프는 비참하고 더러운 짓도 버티지 않을까?
머릿속에는 자부심으로 가득할 테니, 인간 따위에게 봉사하는 가식을 충분히 수행해낼 테지.”
“너희들 단순히 금속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드리아데가 내뱉는 불신에 좀 더 몰아붙였다.
“아, 우리와 계약하지 않을 건가? 슬픈 일이군. 나뿐만 아니라 우든 엘프에게도 슬픈 일이 생기겠어.
드리아데, 너는 우든 엘프를 힘들게 하려는 거군.
뭐, 우리에겐 나쁜 일이 아니야. 지는 쪽에 붙으면 역전시켰을 때 이득이 더 크지만, 대신 이기는 쪽에 붙으면 안정적이지.”
“무슨···.”
“너를 다크 엘프에게 주고 화해할 거야. 너한테 속아 다크 엘프들을 죽였다고 하면서 말이야.
우리를 믿지 못하겠지만, 우든 엘프 중심부를 다른 방향에서 치겠다고 제시하고 증명하면 작은 보상 정도는 얻을 수 있겠지.”
드리아데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크 엘프는 우든 엘프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추상적인 대의보다 종족의 이득을 우선했다.
종족의 이득이 명백하다면 일행이 다크 엘프를 죽인 건, 단지 드리아데에게 속았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넘어가는 척할 수도 있다.
“너희들이 뭘 해줄 수 있는데?”
나는 거의 다 넘어왔음을 느꼈다.
“암석지대 중앙지역을 무력으로 진입 후 약탈. 이를 달성하면 너는 인간의 노예.”
“으으···.”
“조건은 정확하고 명확해야 하지. 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는 결과만을 조건으로 건 거야.
잘 생각해봐. 우든 엘프 별동대가 암석지대 중앙으로 접근하려면 얼마나 많은 우든 엘프가 희생되어야 할까. 그 희생이 단지 너의 노예 생활로 없어져.
전황이 바뀌는 거야. 우리가 암석지대 중앙지역으로 돌입하면 다크 엘프는 방어에 치중할 수밖에 없어.”
다크 엘프 병력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움직임인지, 특별한 일이 발생했는지는 ‘엘프 전장’을 회귀를 반복하면서 경험한 나만이 판단 내릴 수 있다.
정보의 부재는 약해진 몸과 마음에 불안이 자라잡게 만든다.
드리아데는 다크 엘프의 급한 병력이동은 우든 엘프의 위기일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좋아.”
계약이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