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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0화 (80/139)



〈 8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0화


“히아.”

헤스티가 작은 탄성을 흘렸다.
우리만이면 은밀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지켰겠지만, 종속화시킨 우든 엘프들을 이끌고 가는 중이었다. 소음이 안   없으니 굳이 대화를 자제할 이유가 없었다.
나만 아니라 일행도 대화를 나누면서도 주위를 경계하는 단계는 일찌감치 도달했다.

“크다.”

일행은 아리나란의 짧은 감성과 함께 우든 엘프 중심지에우뚝 선 것을 보았다.
시들어가는 커다란 나무.
드리아데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외부인에게 바라는 반응은 그게 아니라는 듯이 처연하게 침묵했다.

“우든 엘프들이 음습할 만해. 죽은 나무 아래에 모여 살잖아.”

수희가 멸시를 담아 말했다. 수희는 역할 놀이에 충실했다.
그녀에게는 별로 힘들지 않은 태도.
바리스처럼 상대에게 공감하고 부드러운 이만 있으면, 드리아데는 계속해서 틈을 엿볼것이다. 압박하는 이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도, 드리아데에게 자신의 종족과 중심지의 커다란 나무를 향한 모욕은 견디기 힘들었던  같다.

“다크 엘프들 때문이에요. 원래는 아름답고 푸르른 분이셨어요. 다크 엘프들이 만드는 매연이 위대한 나무님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었어요.”

다만, 수희에게 바로 욕하지 못했다. 변명과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수희의 태도와는 별개로 우리는 다크 엘프와 싸우고, 우든 엘프에게 유리하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헤스티가 고개를 갸우뚱 거였다.
나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우든 엘프들의 주장이지.”

헤스티가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쉬운 이야기야. 우든 엘프가 모시는 커다란 나무가 죽어가고 있지. 마침 다크 엘프와 전투 중이야. 원인을 고찰하는 것보다 분노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 더 쉽고 마음도 편하지.”
“그런 거지요? 우리가 다크 엘프 중심지를 가지 않았다면 몰라도, 가서 공기를 맡아봤잖아요. 오염되었다고 해도 미궁의 독기와 사람이 많은곳의 오염이지. 지독한 열을 다루어 나온 매연에 묻힌 곳이 아니었어요.”

헤스티가 나의 말에 근거를 추론했다.
드리아데가 반박하고 싶은 듯이 움찔거렸지만, 논거가 있는 반박이 아니라면 우리 일행의 멸시만 살 뿐이다.

“닫힌 세계니까. 다크 엘프들이 무기 등을 만들어 외부로 판매를 한다면 매연이 더 짙어지겠지만, 다크 엘프들이 직접 사용하는 것이 전부야.
다크나이트 같은 것을 만들기 위해 마법을 부과해 고제련은 하겠지만 수량 자체가 적어.”
“네, 실제로 우든 엘프 숲으로 들어와서는 매연의 독기를 못 느꼈어요. 숲의 나무들이 매연의 독기를 중화한 것이지요. 하물며 저렇게 커다란 나무라면 정화력이 더욱 강할 텐데.”

나의 말에 헤스티는 토론을 이었다. 헤스티는 마법사, 사고의 확장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가요?”

드리아데가 끝내  참고 끼어들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내린 결론의 강요가 아니라 질문이라면 응해줄 만했다.

“그걸 찾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지. 어쩌면 너희의 수호자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고.”

드리아데가 생각에 빠졌다.
드리아데와 우든 엘프 수호자의 차이, 격과 전투력의 차이가 아니라 둘은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드리아데는 지엽적인 승리와 눈에 담을 수 있는 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 되지만, 수호자는 종족 전체의 방향성을 보고 조율해야 한다.

‘우든 엘프 수호자는 전쟁이 지속되기를 바랄지도 모르지. 우든 엘프의 수호자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나무의 수호자이기도 하니까.’

나무와 열매가 동일한 개체가 아니듯이, 우든 엘프와 위대한 나무는 동일한 개체가 아니다.

*

전투의 흔적, 도망의 흔적.
드리아데가 흔적들을 외면했다.

“흐음.”

이번에는 수희가 침음을 흘렸다.
이유가 있다면 경멸하기를 꺼려하지 않는 수희도 그저 침음만을 흘렸다.
드리아데보다 무력이 낮은 우든 엘프들의 흔적이 따라오라는 듯이 남아있었다. 핏자국을보면 성하지 못한 몸으로 도망친 흔적이었다.
드리아데 이하의 우든 엘프가 남긴 흔적이기에 수희도 한눈에 흔적을 남긴 자의 의도를 파악했다.
생존을 위해 도망친 흔적이 아니었다.
다크 엘프 부대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길 바라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몸임에도 유도하는 것이다.

나는 드리아데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의 눈치를 보던드리아데는 마치 작살에 찔린 것처럼 몸을 떨었다.

“죽게 내버려 둘 거냐. 우리는 이동할 테니 하나씩 주워와라.”

드리아데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은 곧 죽을 거야. 하지만, 네가 데리고 오면 살 수 있지. 그들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다.”

나는 미궁에 종속되는 것보다 차라리 나에게 종속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무의미하게 소모하지 않고, 최소한 그들이 바라는 미래를 위해 나아갈 테니까.

“네가 데리고 오면, 저 다크 엘프들처럼 종속화할 거야. 상처를 입은 만큼 보살핌을 받아야 하니까.
나의지시에 우든 엘프들을 치료하는 다크 엘프가 다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저들처럼 인형으로 만들건 가요?”
“저들은 인형이 아니야. 지금은 통제를 위해서 제어하고 있지만,전장을 벗어나면 자신의 의지를 가질 거다.”

다만, 더 이상 미궁 12층 ‘엘프의 전장’의 다크 엘프가 아니라, 나와 인과가 연결된 다크 엘프들이 된다.
드리아데가 머뭇거렸다.

“좋아. 한가지 제약을 두지. 전투가 끝날 때쯤, 우든 엘프 수호자와 협의를하겠어. 우든 엘프 수호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이들을 다시 풀어주지.”
“정말이지요?”
“그래, 약속하지.”

드리아데는 행동의 변명이 필요해 보였다.

“나를 따르게 된다고 해도, 너에게 맡길 거다. 그들은 지금보다 나빠지지 않아.”
“으….”
“가라. 가서 선택해. 다친 우든 엘프들이 다크나이트에게 붙잡히고 혼이 뽑혀 제물이 되느냐 마느냐는 너에게 달렸으니까.”

이대로 도망친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든 엘프는 위기였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이용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
*
*

“찾았어. 그런데….”
“우리도 들켰지?”
“응.”

살짝 고개를 숙이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에드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드리아데가 떠나고 나니, 근처에는 내게 종속되어 행동이 제한된 다크 엘프뿐이었다. 에드샤는 마음이 편한지, 미궁 5층의 에드샤가 아니라 어린 에드샤의 감성을 드러냈다.

“당연한 거야. 내가 적을 놓치는 것보다 들키더라도 확실히 탐색하라고 지시했으니까.”
“그렇지만.”
“괜찮아. 에드샤.”

나뿐만 아니라 에리도 에드샤를 꼭 안았다.
바리스가 둘의 모습을 보고미소지었지만, 이내 나의 시선을 따라 멀리 바라보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탐색해줘. 다크 엘프 수호자뿐만 아니라, 가랑트런트와 우든 엘프 수호자까지 알 수 있도록.”

이미 머리싸움은 시작되었다.

‘다크 엘프 수호자에게 에드샤의 탐지 파장은 간단하게 넘길 사항이아니지.’

들키는 즉시, 대응했을 것이다.
우리는 후방에서 올라왔다. 다크 엘프 후방 부대를 지나왔다. 다크 엘프의 수호자라면 다크 엘프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옳다.

에드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시하고 있어. 혼선이 일어나는데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자.”

 가지 상황을 대비했었다. 다크 엘프 수호자가 방해 없이 바로 방향을 돌려 우리를 공격하는 상황도 가정했다.
하지만, 다크 엘프 수호자의 무반응.
무반응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몸을 뺄 수 없을 정도로 격돌 중이다.’

종속화한 다크 엘프들을 이용해 벽을 쌓아 시간을 벌고 직접 충돌을 유도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희.”
“네.”
“다크 엘프들을 이끌고 따라와 줘. 드리아데와도 합류하고. 우린 먼저 갈 테니까.”
“알았어요.”

수희가 머뭇거렸다.

“조심해요.”
“물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희도 변했다.

*

폭풍이 휩쓸고  듯한 모습.
나무가 무너지고 대지가 할퀴어졌다. 여기까지 추적하면서 본 흔적과는 수준이 달랐다.

“와, 난리가 났군요. 여기서 격돌을 시작했나 봐요.”
“이거 너무 강한 거 아닌가요?”

헤스티의 감상과 바리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자들은 특별히 강해. 미궁 12층 수준에서 건드릴 급이 아니야. 괜히 진형을 나눠 한쪽 편을 드는 것이 아니지.
특히, 초반은 그 가랑트런트라도 건드리지 못할걸.”
“약해진다는 뜻인가요? 진형 전투를 계속할수록?”
“헤스티도 많이 늘었는걸.”

헤스티가 나의 칭찬에 고개를 들고 콧대를 세우고 히히거렸다.

“이전에 브리핑해준 것 기억하지? 탐색자들이 엘프 전장에서 쓰곤 하는 편법.”
“네, 양쪽 팀에서 두 진영으로 나누어 공략하고, 보상을 얻고 난 다음 한쪽을 공격한다고 했어요.”
“전력의 변화가 생기는 거야. 처음에는 직접 잡지 못할 만큼 강해서 상대 진영 엘프와 함께 싸워야 하지만, 나중에 잡을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지.”
“보상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미묘하긴 해요. 보상이라고 해도 물건일 텐데, 보상을 지급했다고 공략 가능해질 정도로 약해진다니.”

보상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경험치 역시 포함되지만, 경험치를 포함한다고 해도 급격한 수준 저하였다.

“헤스티, 역으로 생각해봐.”
“역으로요?”
“수호자가 원래는 잡히는 수준인데, 초반에만 특별하게 강한 거야.”
“음….”
“공략이 진행되면서 뭐가 변화하지? 전쟁이 진행되면?”

가만히 듣고 있던 바리스가 입을 열었다.

“죽지요. 이쪽 진영도, 저쪽 진영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으로 돌입했다.

*

여느 다크 엘프와 비슷했다.
하지만, 가만히 서 있어도 움직여도 대지가 차갑게 굳어졌다. 대지에 서 있던 나무들이 대지에 잘렸다.
줄기는 내버려지고, 뿌리는 대지에 먹혔다.

다크 엘프 수호자가 향하는 방향에는 우든 엘프 수호자가 있었다.
우든 엘프 수호자는 위대한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굳건히 섰다. 하지만 그의 영역은 시간을 가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싹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듯이, 뿌리가 대지를 장악하듯이 푸른 생명의 변화가 만개했다.

“왔군. 흐르는 핏자국.”

가랑트런트가 우리를 보고 말했다.
피식.
오래간만에 듣는 듯한 별명에 입술 끝을 올렸다.

“어버스나이트 가랑트런트인가.”
“수희가 알려줬나? 아니, 자네가 한 일을 생각하면 당연히 나를 알아보겠지. 수희가 보이지 않는군.
뭐. 중요한 일이 아니지. 어떤가 이들이. 선물로 충분하지 않나?”

헤스티가  자리에 없는 수희를 대신해서 가랑트런트를 노려보았다.
가랑트런트는 헤스티의 시선을 무시했다. 감지할 수 있는 마력의 물결만으로는 그의 기준에 차지 않을 것이다.

“선물이라. 요즘은 키우던 가축을 훔쳐 잡아 죽이고 내미는 방식이 유행하는 건가?”
“호오.”

가랑트런트는 나의 트집에 오히려 관심을 드러냈다.
그는 내가 함께한 진영을 배신하지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물을 주는 자는 원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어버스나이트 교단은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 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일 정도로.

‘이 반응이 일어난 시점은 내가 수희에게 이중 첩자를 허락한 이후, 정보를 팔아먹으라고 허락한 이후.’

가랑트런트 정도 되는 이가 내게 선물을 주기 위해 움직였다.

‘판테온, 만신전인가.’

나는 수희를 통해 내가 얻은 정보의 윤곽을 풀었었다.

“신뢰의 가랑트런트, 같이 다크 엘프 수호자를 잡을 텐가? 아니면.”

나는 얼굴이 살벌하게 굳어지는 가랑트런트를 보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덤벼.”

가랑트런트가 검을  잡았다.

‘신뢰의 가랑트런트.’

그가 예전 회차 때, 죽으며 얻은 별명이다. 그가 품은 어버스나이트의 힘을 정의하는 별명이다.

‘그리고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될 별명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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