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3화
가랑트런트가 성물을 하나 꺼내 내게 던졌다.
무심하게 낚아챘다.
“늘 지니고 다니라고 하진 않겠네. 그래도, 우리가 연락할 때 받아줬으면 좋겠군.”
그 말을 뒤로 하고 떠나갔다.
수희가 입을 삐쭉 내밀었지만, 우리에게도 이득이었다.
이때까지 우리가 원할 때 어버스나이트와 연락할 수 있지만, 수희가 완전히 우리와 함께 한 이후로는 어버스나이트가 우리에게 연락하기 까다로웠다.
*
우든 엘프의 보상품을 짊어진 우든 엘프들이 지시를 기다렸다.
신도급 우든 엘프 30명과 신도급 다크 엘프 20명을 완전 종속시켰다. 미궁층을 거쳐 가야 하는 만큼, 그녀들을 다독거리고 설득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제어 수준을 낮출 것이다.
“가자.”
나의 말에 우든 엘프 드리아데가 몸을 흠칫 떨었다.
바람에 날려가는 씨앗처럼 드리아데가 미지에 대한 불안으로 우든 엘프 수호자에게 시선을 주었지만, 수호자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의 번영을 이루어주시길.”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일행과 엘프들은 미궁 지하 5층 거점으로 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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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5층 거점에서 정비의 시간을 보냈다.
엘프의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내게 종속된 순간 미궁의 얽매임에 풀려났다. 거기에 계단과 다른 미궁층을 보고 경험하니 드리아데를 통해 건네는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전부를 믿지는 않았지만, 미궁에 대한 의문과 자신들의 의무에 대해서 공감했다.
“후-.”
“왜?”
나는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에드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들, 밤에는 잠을 안 자고 땅에다가 귀를 대고 숨죽여.”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의 종속을 살인 등의 극단적인 행동 외에는 가능하도록 풀었다.
그런 만큼 통솔이 필요했다. 우든 엘프는 드리아데를 통해서 했지만, 다크 엘프를 드리아데에게 맡길 수 없었다.
그래서, 가벼운 수준의 통제를 에드샤에게 맡겼다.
나쁘지 않았다.
에드샤 역시 예전에 은광석을 보상으로 제공하곤 했다. 직접 이용과 제련이라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둘 다 대지와 금속에 대한 호감을 품은 종족이었다.
“숨죽여서 뭘 하는데?”
“준영씨와 바리스, 헤스티가 엉기는 소리를 훔쳐 듣지.”
“큼….”
나는 헛기침을 했다.
“혼내고 가둘까? 외부의 소리나 자극을 완전히 차단한 감옥으로 가둘 수 있어.”
“흐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드샤에게 있어서 다크 엘프와 우든 엘프는 아직 울타리 안으로 넘어온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아니, 보호 대상으로 삼지 못하도록 내가 조절해야 했다. 에드샤는 종족의아이처럼 느끼면 자기희생까지 각오해버린다.
“이해할 만 하긴 한 데.”
무엇보다 공격적인 탐색이 아니었다. 기파를 쏘아내 반향을 들었다면 나와 바리스도 알아차렸겠지만, 그저 땅으로 전해지는 소리에 집중했을 뿐이다.
“다크 엘프나 우든 엘프나 종족 번영이 우선이니까.”
번영을 위해서는 번식이 필요했다.
“우든 엘프야, 우든 엘프 수호자가 있었으니까,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습 정도는 볼 수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버지를 통해 남성상을 확인하는 데 불과했다. 수호자는 세계수의 일부인 과육 처녀와만 성교했다.
미궁층에 갇힌 세계가 아니라 외부와 교류가 되는 열린 세계였다면 아이를 가지기 위해외부로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다크 엘프도 남성이 있어? 보지 못했는데.”
에드샤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 다크나이트의 원래 존재가 남성이었을 거야.”
“그럼 궁금해할 만하네.”
염원이 종족의 번성인데, 번성하는 방법을 모르는 셈이었다.
관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염원을 수행하기 위한 단계였다.
“다른 미궁층에서 남자들을 잡아다 줘야 하나?”
이내 나를 흘낏 보더니 스스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강한 수컷이 있는데, 다른 수컷이 눈에 들어오지 않겠지.”
강한 수컷이기도 했지만, 다크 엘프 수호자에게 이끌어달라고 부탁받기도 했다.
“우든 엘프 쪽은 어때?”
“준영씨를 향한 호기심은 똑같지. 다만, 거점에 얼마 없는 풀을 어떻게 돌볼까도 고민하던데.”
나는 조금씩 투덜거리는 기미를 보이는 에드샤를 꼭 껴안았다.
스며드는 듯한 부드러움에 이완되고 풀어짐을 즐겼다.
*
“저택을 사들였어요. 조금 멀지만, 험하고 음산해요.”
수희가 전해온 소식에 출발을 준비했다.
거점은 많을수록 좋았다. 길이 험하고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달리는 말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다른 이는 [종속체 이동]을 써서 바로 이동시킬 수 있으니, 직접 이동은 나에게 종속되지 않은 바리스, 헤스티, 수희, 페로만 이동하면 된다.
“저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 통신 수단만 유지해주세요.”
다만, 페로는 미궁 5층 거점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그의 탈출 관련 권능은 미궁 밖에서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미궁 밖 외출보다 명상과 복기의 시간이 그에게 유리했다.
“으으, 그럼 저도….”
“무슨 말이야. 같이 가.”
“흐흐. 네. 준영씨.”
명상과 복기의시간은 헤스티에게도 필요하지만 내가 단번에 잘랐다.
미궁 밖 외출은 나와 엘프들도 이득을 보지만, 바리스와 헤스티를 위한 선물이었다.
둘의 정신 건강을 위한투자이자, 비용 지불이었다.
*
“미궁 입구로 나가서 남쪽으로 가면 경매장이 있고….”
“입구 근처에는 여러 교단의 지부가 있지요.”
“밖으로 나가는 건 어렵지 않아요.“
바리스와 헤스티, 수희가 떠들었다.
미궁 입구에는 특별히 경비를 쓰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 회차 초반에 노예로 끌려온 아이들도 무사히 빠져나갔다. 그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올 때도 권력자에게 통제를 받지 않았다.
미궁 주변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다.
‘제국과 공국, 그리고 여러 개의 왕국.’
여러 국가 형태와 권력이 난립한 상태이기에 누구도 미궁 주변을 독점하지 못했다.
”귀족은 없고 대리인만 있는 땅이니까요. 준영씨가 소유권을 제대로 알아보라고 해서 피곤했어요.“
땅과 저택을 사 온 수희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우리는 돈과 무력 둘 다 있었다. 그렇기에 수희는 미궁 입구 근처에 반듯한 건물을 매입하자고했지만, 나는 한적하고 멀지만, 소유권 이전이 확실한 곳을 요구했다.
”왜 대리인만 있어요?“
”위험한 곳이니까.“
에드샤의 머리를 빗으며 이야기를 듣던 에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족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이 있잖아요. 그런데도 위험해요?“
에리는 뒷골목에서 빈곤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가 들은 귀족 이야기는 하늘 너머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높은 담과 기사와 병사에게 보호받는 귀족이 위험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에리에게 머리카락을 맡긴 에드샤 역시, 부족 사회에다가 자신의 권력은 자신이 지키는 삶을 보아온 만큼 이해하지 못하고 호기심을 보였다.
”미궁은 강자를 탄생시켜.“
수희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막으려면 강력한 무력이 상시 필요하지. 거기에다가 은신 같은 특이 기술까지 가지면 더욱 복잡해져.
그냥 안전한 곳에서 대리인을 보내 처리하는 것이 나으니까.
특히, 미궁을 통한 이득을 교단이 장악하고 있어서, 굳이 목숨 걸고 근처에 머물 필요가 없지.
교단이 미궁에서 나온 물건을 다른 곳으로 팔아먹으려고 할 때, 거기에 끼어들고 통제하는 데에는 대리인으로 충분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계로 온 이후로 미궁 외부로 나간 적 없지만, 관련 정보는 바리스나 헤스티, 수희보다도 빠삭했다.
‘간접 경험의 한계가 있지만.’
미궁 안으로는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들어왔다.
대리인은 물론 진짜 귀족이 몰락해 들어오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들이 내뱉던 말은 걸러들어야 했다. 하지만, 죽기 전의 회한으로 남기는 말과 이전 회차와 다음 회차에서 하는 말을교차 검증하면 오류가 적은 정보를 추출할수 있다.
*
”제국이 가장 강하니까, 미궁이 있는 지역을 정복하는 거 아니에요?“
한참을 듣던 에리가 물었다.
”이득보다 손해가 크니까, 직접 통제하지 않아. 다른 공국과 왕국도 제국을 견제하기도 하고.“
에드샤는 귀족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은지, 조금 멀어져서 대지를 향해 집중을 돌렸지만, 에리는 계속 관심을 보였다.
”미궁을 장악하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니까, 버겁지.“
옛날에 제국이 미궁 주변을 장악한 후에, 미궁 입구를 막고 통행세를 받았다고 한다.
더 나아가 최상위 보상품을 압박해 싸게 매입하거나 빼앗는 일도 일어났다.
여러 교단의 반발이 있었지만, 군대의 압박에 반란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태는 탐색자들부터가 아니라 미궁에서부터 일어났다.
”몬스터 웨이브지요? 들어봤어요.“
수희가 끼어들었다.
통행세를 받으니 미궁에서 죽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통행세를 못 내는 탐색자들은 물론, 범죄를 저지르고 미궁 안으로 도망치던 사람부터 궁지에 몰려 마지막으로 미궁에서 한탕을 노리던 사람들은 미궁 입구에서 저지되었다.
미궁에 입장하는 사람이 줄었다.
그러자, 미궁은 탐색자를 환영한다는 가정을 확신하게 한 일이 벌어졌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 미궁 주변 지역이 초토화되었다.
주둔하던 기사단과 군대는 지휘하던 귀족들과 함께 전멸했다.
처음에는 모든 국가가 비상을 선언하고 군대를 일으켰다.
하지만, 양상이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다.
몬스터는 살아있는 인간을 증오했다. 엘프처럼, 미궁층에 녹아들어 인간과 관계를 맺는 특별한 몬스터들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궁 주변 지역을 초토화한 몬스터는 상업이 발달해 인구가 많은 네르달 왕국으로 몰려들 거라고 예상했고, 그곳에 집결했다.
하지만, 몬스터 웨이브는 공공연하게 제국을 향했다. 가는 길에 인가가 적어 방심했던 제국의 수도를향해 일직선으로 진격했다.
주변 국가들의 반응이 달랐다.
네르달 왕국은 용병과 타국의 병력을 들이는 대가로 높은 보상을 제시했다. 보상을 제대로 지불하지 못하더라도 타국이 빼앗아갈 만한 이득이 네르달 왕국에 있었다.
또한, 네르달이 무너지면 다른 왕국도 위험하고 거리가 있는 왕국도 손해 볼 수밖에 없었다.
네르달 왕국에 병력과 용병이 집결하고 방어선을 확립한 이유였다.
하지만, 몬스터들이 마치 군대처럼 네르달 왕국이 아니라 제국을 향하자 각 왕국은 사태를 관망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각 공국과 왕국은 제국에 감정이 있었다.
단순한 감정뿐만 아니라 위기의식에서 나오는 방어 반응이기도 했다.
통행세로 다른 왕국의 이득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미궁에서 나오는 상위 물품을 독점했다. 경매 등을 통해 차지한다면 여지라도 있지만, 강매 혹은 강탈까지 강행했다.
그리자, 정치가들은 제국이 미궁 물품으로 강해지면 침략 전쟁을 시작할 거라고 경고했다.
몬스터들이 제국을 노리자, 미궁 웨이브는 인간의 위기에서 제국의 위기로 강등되었다.
제국은 수도를 지켜냈지만, 기사단과 군대를 잃었다.
지도상 미궁 반대쪽 변방을 지키던 변경백에 의해, 쿠데타까지 일어나 현 황제는 퇴위 되고 먼 친척이 올라 가까스로 명맥만 유지했다.
그 뒤로 제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서도 미궁 주변 지역을 자국의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
종속화를 위해서는 주인과 싸워야 한다.
‘덕분에 종속화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어.’
수희를통해 사들인 저택을 종속하고 [종속체 배치] 스킬을 이용하면, 내게 종속된 에리, 에드샤와 아리나란과 아리시는 물론 엘프들을 즉시 배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