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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6화 (86/139)



〈 86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6화

우선, 미궁 지하 11층과 지하 12층을 반복해서 탐색했다.
향상된 능력을 체화해야 할 시기인 만큼, 길잡이 스킬로 고블린이나 떠돌이 오크를 연상하며 계단을 진입했다.

전면 탱킹의 중심은 바리스와 수희였다. 진영 중앙으로 넘어가면 에리가 보호의 축을 지탱했다.
그 사이에 세부 배치가 들어갔다. 우든 엘프 드리아데와 피리레를 비롯한 다크 엘프가 위치했다.

“피리레, 긴장 풀어.”
“네넷.”

이제는 완전히 표정이 살아난 에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시적으로 보호를 전담하는 에리의 부하가 올라갔다. 투입되는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의 능력이 높으면 바리스와 수희에 가깝게, 능력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에리와 가까운 위치를 잡았다.
또한, 우든 엘프들은 바리스의 뒤쪽을, 피리레를 비롯한 다크 엘프들은 수희의 뒤쪽을 맡았다.

‘수희를 칭찬해야겠지.’

수희, 자신의 위치를 견고히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다크 엘프와 교감했다. 어차피 일행은 내가 중심을 잡고 있고 내게 기울어져 있다.
다크 엘프에 대한 수희의 포용은 전체의 포용으로 이어져, 전력의 상승과 안정화에 보탬이 되었다.

*

지하 11층, 떠돌이 오크 미궁층.
약간의 습기가  흙과 돌이 바닥인 지형. 바위 아래쪽에 독이끼가 보이니 우든 엘프에게 불리한 환경은 아니었다.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긴장을 끌어올렸다. 드리아데는 바리스와 가까운 뒤쪽에서, 피리레는 수희의 뒤지만, 에리와 가까운 뒤쪽에서 무기를 꽉 잡았다.
둘은  창을 들었다.

‘둘은 활을 쓸  있지만, 생존 능력이 떨어져.’

또한, 둘의 활 실력이 특별한 진영을 유지해야 할 만큼 뛰어나지 않기도 했다.

마법사는 원거리지만, 파티의 중앙에 위치했다.
이는 보호해야 할 만큼 물리 전투력이 약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법사의 마법은 전방의 전사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표출되는 현상이 강했다.
쉽게 인지할 수 있기에 전열의 전사가 적을 상대하기 위해 불규칙한 움직임을 취하다가 아군 마법사의 마법을 등에 맞는 일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궁수의 사격은 달랐다.
화력으로 압도하는 마법과 달리 사격은 은밀이 요구되었다. 심층은 물론이고 저층과 일반적인 사냥에서조차 사격은 약점을 노렸다.
약점을 노리려면 타겟이 인지하지 못하게 날려야 했다.

그 때문에 사냥꾼이 낀 파티는 두 가지 형태의 진형으로 나누어졌다.
사냥꾼의 전방을 개방하고 전열 전사가 양쪽 끝으로 붙는 진형, 아니면 아예 진영에서 거리를 두고 홀로 움직이다가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진형 안으로 들어와 보호받는 방식.
사냥꾼의 효율이 가장 올라가는 것은 거리를 두고 홀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다만, 근접 전투력은 몰라도, 생존력이 전열 전사만큼 요구되었다. 사냥꾼의 전방을 개방하는 진형도 홀로 움직이는 진형만큼은 아니지만, 방어 능력이 필요했다.
궁수가 전방을 비우고 은밀 사격을 할 수 있도록 비우는 공간은 적도 궁수를 노리고 저격할  있는 약점이었다.

그래서, 아예 활을 장비에서 빼버렸다. 드리아데와 피리레는  없이 창을 주장비로, 그녀들에게 익숙한 단검을 보조장비로 들었다.
일행과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들은 무기 선정에 의문을 가졌지만, 별말 없이 따랐다.

“뒤로  마리.”

바리스가 익숙하게 두 마리의 떠돌이 오크를 탱킹하면서 신호했다. 바리스의 옆에서 수희도 오크 하나를 담당하고 있는 만큼 중앙 전사진을 향한 알림이었다.

“드리아데, 피리레. 차단해.”
“네.”
“넵.”

신호를 받은 에리가 내리는 연계 지시에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긴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떠돌이 오크는 지하 11층 몬스터이긴 하지만, 개별 개체의 힘이 강하고 저돌적이었다.
익숙한 전장에서 익숙한 방식이아닌 만큼,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나둘 핫.”

드리아데의 호흡에 피리레가 맞춰서 창을 내질렀다.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로 적대 종족이지만, 신체 구조와 사회 구조가 비슷했다. 거기에 협공은 엘프들의 특기였다.
장병기와 단병기의 차이가 있지만, 창은 단검보다 협공이 쉬운 무기였다.

에리가 내린 차단 지시를 제대로 수행해냈다. 상처 입고 멈칫거리는 떠돌이 오크의 목을 수희가 가볍게 잘라냈다.

훈련 목적이 강한 실전을 드리아데와 피리레는 무난하게 해냈다.

*

야영을 결정하고 식사를 했다.

“드리아데와 피리레도 수고했어.”

헤스티가 새로운 일행이 된 드리아데와 피리레를 칭찬한 후에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창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요. 오크의 약점이 창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는데.”
“오크는 덩치가 크고 힘이 강하지. 하지만, 동시에 들어오는  개의 창을 연달아 튕겨낼 정도로 움직임이 빠르지 않아.”

나는 설명을 하면서 수희를 힐끗 보았다.
수희가 허공을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피리레 정도의 전사가 내지르는 가상의 창 네 개가 팅겨나갔다.

“와.”

헤스티가 웃으면서 손뼉을 치고, 수희는 귀족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런데, 왜 미궁 탐색자들은 창을 안 써요? 저층의 고블린에게도 유용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수희가 쓴웃음을 지었다.

“창은 믿음이 요구되는 무기야.”
“미궁 탐색자는 군대만큼 일행에게 믿음을 강요할  있는 조직이 아니지.”

나는 수희의 말을 받아 설명했다.

“물론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창으로도 초근접전이나 창을 제대로 세우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도 위력을 발휘해. 하지만, 그 이하는 아니야.”
“아아.”

헤스티가 탄성을 터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궁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는 만큼 내가 말한 상황을 떠올리기 어렵지 않은 것이다.
떠돌이 오크를 상대할 때, 드리아데와 피리레의 아래쪽에서 메나홀 몬스터만 난입해도 둘은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지면을 타다가 무릎 아래를 공격하는 소형 몬스터 메나홀은 창을 내지르고 고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변수였다.
하지만, 드리아데와 피리레는 나를 믿었다.
선악의 신뢰가 아니었다. 창으로 공격하는 둘을 상하게 할 변수가 없고 일어난다고 해도 내가 제거해줄 거라는 믿음이었다.

‘종속체 배치가 있으니까.’

드리아데나 피리레는 물론 우든 엘프 30명과 다크 엘프 20명을 소모품이 아니라 일행으로 다룰 수 있다.

‘위험한 순간이 오면 미궁 밖 저택으로 보내버리면 되니.’

부상을 입더라도 저택에서 대기하고 있던 엘프들이 응급 처치할 것이다.

*
*
*

엘프들의 훈련은 점점 심화되었다.
미궁 밖 저택에서 단검 하나만 휴대하고 일상을 보내는 엘프를 급하게 소환하기도 했다. 높은 난이도 때문에 아예 엘프들 전부를 귀환시켜 훈련을 포기하는 상황도 나왔다.

거대한 원형의 건축물, 바깥쪽 둥근 테두리에는 벽과 관객을 위한 좌석.
넓은 투기장의 중앙에서 엘프들이 진영을 정비했다.
한쪽에는 이미 쓰러진 대형 도마뱀 몬스터 시체가 식어갔다.

“모두 집중해.”
“불안해하지 마. 준영님께서 지켜주신다.”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엘프들을 이끌었다.
엘프 28명과 다크 엘프 19명을 불러들인 전장, 응급 치료를 위해 저택에서 대기하는 3명 외에는 모두 미궁 지하 12층에 집결했다.

대형 도마뱀 몬스터 바리스크는 엘프보다 강한 개체였다.
개체수가 적은 대신 하나하나가 거대한 덩치와 무게를 가졌다. 덩치와 무게에도 빠른 속도와 무게를 감당하는 힘은 단순한 꼬리 휘두르기도 신도급 엘프가 즉사할 만큼 위험했다.

‘그만큼, 자부심과 단합을 올리기도 좋아.’

이미 엘프들에게 생명이 위험하지 않음은 증명했다. 아무리 난전이 펼쳐져도, 심지어 그녀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위기에서도 [종속체 배치]로 빼내고 미궁 밖 저택으로 보내 치료시켰다.

이제 다음 단계를 노릴 시간이 왔다.
엘프 중에 상위인 10명의 엘프는 다른 엘프보다 긴 창을 들었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10명의 엘프를 향한 부러움과 향상심이 다른 엘프들에게 오갔다.
능력에 따른 적절한 역할의 선정은 상위로 분류된 이에게도 하위에게도 분발할 이유가 된다.

*

커다란 바리스크, 휘두르는 꼬리를 수희가 인지했다.
수희, 자신의 키를 넘는 꼬리를 향해 뛰었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앞돌기.
다만, 얌전하게 회피만 할 기량도 성격도 아니었다. 공중에서 아래로 지나가는 꼬리를 긁어 상처를 추가했다.

근력은 압축이 필요했다. 강력한 공격은 예비 동작을 가졌다.
이는 바리스크도 마찬가지였다.
한번 휘두른 꼬리를 반대로 다시 휘두르려면, 이미 휘두른 여력을 통제해내고 다시 힘을 압축해야 했다.
압축해서 다시 터트리기 전이라면 부피와 무게가 확연하게 차이나는 바리스도 움직임을 막아버릴  있다.

바리스가 돌진해 들어갔다.
꼬리를 다시 반대 방향으로 휘두르기 위해 압축하는 순간에, 바리스크의 몸통에서 꼬리로 이어지는 부분에 양손검을 박아넣었다.
커다란 바리스크가 바리스 한 명에게 정지당했다.

“지금.”

바리스가 외쳤다.

“가자. 선두 장창 부대.”
“어서. 단창은 이어서 준비.”

바리스의 신호에, 피리레와 드리아데가 엘프들을 이끌었다.
다른 창보다  배에 가까운 창을 든 엘프들이 다른 엘프들보다 먼저 움직였다.

“하아앗.”

10명의 엘프가 자신의 몸의 두 배가 넘는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찔러야 할 점과 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만을 생각했다.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미궁에서는 가져서는  될 마음가짐. 군대에서 병사들의 희생이 있을지라도 집단의 승리를 위해 강요하는 움직임.
하지만, [종속체 배치]가 있는 지금, 희생이 없는 최고 효율의 공격이 되었다.

 개의 창이 바리스크의 몸통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어서, 어서.”

엘프들과 별도의 포지션을 취하는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재촉했다.
35명의 엘프가 단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10명의 장창 엘프가 찍어놓은 점을 참고했다.
첫열 엘프는 몸을 숙이고 아래쪽으로, 뒤의 엘프는 몸이 닿을 듯이 밀착해 창을 찔렀다.
엘프는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몸이 작았다.
무력이 부피와 질량에 절대적으로 비례한다면 약점에 불과하지만, 마력과 이력, 권능이 존재하는 세계.
집단 전술에서 밀집도를 올리는 장점이 되었다.

바리스크의 피가 튀었다. 독성이 있지만, 바리스크는 바실리스크와 달리 독에 특화된 몬스터가 아니었다.
휴식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자극.
엘프들은 피를 뒤집어쓰면서도 단창에 준 힘을 빼지 않았다.

마치, 더 거대한 몬스터에게 물어뜯긴  같았다.
바리스크의 몸통 옆면은 단창의 점이 아니라, 면이 무너졌다.

쿠오오오-.
고통의 비명과 분노의 터트림.
바리스크가 포효하며 머리를 굽혔다. 상처를 다스리기보다 몸통을 찢은 작은 것들을 씹어 삼키기 위해 몸을 틀었다.

“꼬챙이에 찍힌 벌레에 불과하지.”

벌레가 몸을 비틀수록 상처가커지는 법이다.

결의에 찬 엘프의 얼굴.
바리스크의 이빨이 엘프의 몸을 통째로 찢을 것처럼 다가왔지만,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창을 더욱 깊숙이 찔러넣었다.

바리스크의 윗이빨과 아랫이빨이 닿았다. 엘프는 사라졌다.

*

엘프는 주위를 살폈다.
미궁 밖의 저택.
저택의 어느 방인지 빠르게 판별했다.

저택에서 치료를 전담하며 대기하던 엘프가 빠르게 다가왔다. 얼굴에 묻은 독성을 가진 피를 닦아내고 식물의 부산물을 이용해 만든 액즙을 발랐다.

“휴식의 방이야.”
“아.”

아쉽지만 어깨에 힘을 뺐다.
판단은 준영님의 몫, 쉬어야 한다고 판단된 만큼 회복에 전념해야 한다.
사적인 생각을 해도 되는 시간, 엘프는 준영님에게 안겼던 순간을 떠올리며 몸을 이완했다.

*

저택 내의 다른 방, 재정비의 방으로 순간 이동된 엘프들은 먼저 준비되어있던 여분의 창을 잡고 피를 닦으며 대기했다.

*

휴식의 방으로 보내졌던 엘프도 재정비의 방을 보내졌던 엘프도 모두 재소환되었다.
정복된 미궁층을 보며 승리를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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