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89화
미궁 지하 15층 ‘인어의 눈물’층은 벽이 없었다.
벽은 없지만, 길이 있다.
“과연 위험한 층이군요.”
전투와 휴식을 끝내고 시야를 넓게 훑으면 다른 섬이보였다. 맑고 깨끗한 물 아래로 다른 섬과 이어진 길이 보였다.
처음 길은 무릎까지 밖에 오지 않지만 중심부로 갈수록 물은 깊어지고, 잠수해서 지나야 하는 경로도 있었다.
무거운 장비 때문에 수영은 어려웠다.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만큼, 짧은 시간 잠수해서 걷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머메이드였다.
“우리에겐 아리나란이 있지.”
아리나란이 나와 바리스를 태우고 날아가면 된다.
“아리나란, 부탁해.”
“아가들은 안 태우고 가?”
“엘프들은 도착한 다음 내 권능으로 불러들일 거야.”
“으응. 알았어.”
바리스와 헤스티, 수희와 페로는 [종속체 배치]로 소환이 불가능했다. 나를 포함한 다섯을 한꺼번에 옮길 수도 있지만, 전투를 생각하면 나와 바리스가 먼저 이동하는 것이 나았다.
*
“수희야, 믿을게.”
“그럼그럼. 바리스에 가려져서 그렇지, 나 파티 리딩에 자신 있어. 탱킹도 물론이고.”
수희는 배후를 노리는 데미지 딜러를 할 때 가장 돋보이지만, 탱킹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시야가 좁다는 단점은 우리와 함께하면서 나의 조언을 받아들여 나아졌다.
우리가 다른 섬에 있는 동안, 기습이 일어나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아리나란이 기지개를 켰다.
등에서 피막이 피어올라 뻗은 두 팔을 넘어 길어졌다. 길어질 뿐만 아니라 넓어져 와이번의 날개 모양이 되었다.
허리 부근에서 흘러나온 피막이 마치 채찍처럼 나와 바리스의 허리를 감쌌다.
당기는 힘에 어울려 다가가니, 아리나란이 나와 바리스의 허리에 팔을 둘러 안는 모양새가 되었다.
바리스는 간지러운 듯 살짝 허리를 당겼다가 이내 긴장을 풀었다.
양손검이 비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앞쪽으로 두고 꽉 잡았다.
“가자.”
“가요.”
아리나란이 뺨으로 뺨을 부비듯이 나와 바리스의 뺨을 피막으로 비비더니, 날개를 펼치고 권능을 일으켰다.
“더 높이.”
인어의 눈물 미궁층의 천장은 가짜 하늘이었다. 하늘 너머는 알 수 없지만, 머메이드들이 쓰는 워러 스피어를 피할 높이를 확보할 수 있다.
*
아리나란이 나와 바리스를 붙잡고 하늘을 날았다. 물 아래 길 너머의 섬을 향했다.
나는 적을 인지했다.
챔피언급 머메이드.
“주인님 얼굴, 딱딱해. 난 기분 좋은데.”
아리나란이 피막으로 나의 뺨을 부볐다. 외형에 얽매이지 않고 직시하는 바리스와 나를 아리나란은 좋아했다.
좋아하는 이와 하늘 위로 오르니 즐거워했다.
“미안.”
과거의 과오가 나를 건드렸다. 그만큼 저 챔피언급 머메이드가 거슬렸다.
예전 회차 때도 ‘인어의 눈물’층을 돌파했었다.
돌파해야만 했다. 제대로 한번 돌파하지 않으면, 길잡이 스킬을 써도 인어의 눈물층은 반드시 돌입 당했다.
인어의 눈물층을 돌파하고, 미궁 지하 16층 ‘오크 사냥터’까지 공략한 다음, 14층에서 16층으로 길잡이 스킬을 이용해 바로 이동해야 인어의 눈물층을 피할 수 있었다.
머메이드 챔피언.
나의 죄를 만드는 년이다.
예전 회차 때는 더 많은 이들을 일행으로 받아들였다. 에리와 에드샤, 레리아나의 검이없는 만큼 동료를 추가해서 전력을 올렸다.
나름 싸울 줄 알지만, 수중 전투 경험 부족을 재능으로 극복하지 못했다.
절대라고 할 만큼 희생자가 나왔다. 회차가 반복되고 희생이 반복될수록 나는 효율을 추구했다.
여기서 죽을 것 같은 자를 구분했다. 이는 여기서 죽을 자로, 결국은 여기서 죽일 자로 구분하게 되었다.
예전 회차 때, 이곳에서 바리스의 나를 향한 환멸이 확정되었다.
이 이후로는 바리스는 나를 믿지 못했다.
따뜻한 온기.
바리스가 나의 손을 잡았다.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보다 온기로 나를 보듬기를 원했다.
나와 바리스가 잡은 손을 아리나란이 피막으로 감쌌다.
놀러 나가는 아이가 한쪽에는 아빠의 손을, 한쪽에는 엄마의 손을 잡고 매달리는 것처럼.
나는 웃었다.
“가자.”
과거의 과오를 무너트리려.
*
“급강하한다. 바리스는 보호막을 유지해줘. 그리고 격돌 전에 바리스와 아리나란은 나를 차 줘.”
공중이나 낙하하면서 기교를 부리는 훈련은 충분히 했다. [종속체 부유력 부여]을 익힌 이후로 낙하 훈련은 필수 과정이 되었다.
이에 낙하하면서 얻은 힘에 자신의 힘을 더해 창 등을 던지는 훈련도 포함되었다.
내가 창이 되고, 바리스와 아리나란이 창을 던지는 근육이 될 뿐이었다.
“조심하세요.”
나에게 평상시와는 다른 것을 느꼈는지, 바리스가 염려를 담은 눈길을 보내왔다.
나는 손에 쥔 바리스의 손을 살짝 간지럽히고 꽉 잡았다.
이어, 다른 손은 레리아나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레리아나, 도와줄 거지?”
물론이라는 것처럼 검명을 울리며, 핑크빛 검기를 뿌렸다.
나는 미소지었다. ‘인어의 눈물’층을 대비하면서 머메이드들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레리아나는 미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신도급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를 비롯하여 피리레와 드리아데까지는 높아 봐야 첩이었다.
하지만, 머메이드 챔피언은 강했다. 그녀를 꼬신다면 또 하나의 경쟁자가 추가되는 셈이었다.
‘꼬실만한 머메이드는 따로 있지. 저년이 아니야.’
이 아래층 미궁 지하 16층 ‘오크 사냥터’층에는 사냥당한 머메이드가있다.
이 층의 머메이드는 나에게 너무 많은 절망을 안겼다.
여기서 여러 동료를 반복해서 잃었고, 잃은 동료는 일행의 전의를 파괴했으며, 바리스가 동료를 위한 자기희생이지만, 자살과 닮은 선택을 하도록 이끌었다.
“간다.”
“네.”
“응, 주인님.”
아리나란의 어투는 반말과 존대가 섞여 불안정했다.
하지만, 전투는 아니었다. 나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며 먹이를 낚아채려는 매처럼, 떨어지는 유성처럼 내리쏘아졌다.
*
[워러 스네이크]
머메이드 챔피언이 위를 향해 마법을 쏘아냈다. 물뱀 형태의 물줄기가 우리를 노리고 쏘아졌다.
바리스가 양손검에 의지를 모았다.
[미사일 디펜스]
투사체 방어에 특화된 용사 전용 보호막.
경험과 노력은 헤스티의 파이어 볼과 페로의 아이스 스피어를 이름만 같을 뿐인 다른 마법으로 생각될 정도로 변화를 일으켰다.
일행의 중심이자, 재능에 있어서 최상위인 바리스가 성장하지 않을 리 없다.
‘아리나란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과 나를 향한 감정은.’
바리스는 표현이 서툴렀다. 하지만, 용사의 능력은 마음에 비례했다. 담긴 마음이 챔피언급이 쏘아내는 마법을 급강하하는 속도까지 이용해 빗겨냈다.
“한 번에 끝낸다.”
레리아나의 검에 전력을담았다.
바리스와 발과 발을 맞대었다. 아리나란이 피막을 용수철처럼 바리스의 몸을 감았다.
‘모든 기운을 한점에.’
내가 본 점을 머메이드도 노려보았다. 그녀의 창과 나의 격돌할 지점, 둘 중 하나가 부서질 점.
머메이드 챔피언이 나를 노려창을 뒤로 당겼다. 허리와 등, 팔로 이어지는 곡선이 활처럼 휘어졌다.
“지금.”
나는 맞닿은 바리스의 발바닥을 박찼다. 바리스와 아리나란이 나를 밀어 가속을 더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핑크빛 선이 그어졌다.
창을 가르고, 머메이드 챔피언을 꿰뚫었다.
*
“크윽.”
나는 피를 토했다.
만신창이가 된 몸, 나와 달리 가볍게 착륙한 바리스와 아리나란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바리스는 경계를, 아리나란, 엘프들을 부를 테니 부탁해.”
아리나란은 내게 종속되었다. 아리나란의 핏속을 향해 [종속체 배치]를 쓰면, 수속성으로 뒤덮인 이곳을 추가로 장악하지 않고도 바로 소환할 수 있다.
머메이드는 집단생활을 하는 몬스터. 머메이드 챔피언도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보다 급이 낮아 격돌에 끼어들지 못했던 머메이드들이 있다.
나와 머메이드 챔피언이 충돌한 충격파에 밀려나 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15층에 맞는 능력을 갖춘 만큼 빠르게 극복해낼 것이다.
아리나란이 피를 모아 덩어리를 만들고 피막을 형성했다.
그 속에서 여성의 외형이 맺혔다.
“주인님.”
입으로는 나를 부르고 눈으로는 나를 찾으면서도 훈련하며 준비했던 행동을 잊지 않았다.
창과 함께 가지고 왔던 한 포대의 흙을 아리나란의 앞에 쌓았다.
[글로리 어스]
강력한 마법은 아니었다. 다크 엘프가 대지의 구성물을 축복하는 마법.
하지만, 수속성으로 가득한 전장에 저항의 토대가 된다.
마법을 끝낸 피리레는 내가 아닌 바리스에게 다가가 방어진형을 갖췄다. 현재 실력은 낮지만, 정확한 상황 판단과 그에 따른 행동은그녀의 성장이 눈에보이는 듯했다.
드리아데가 피막 속에서 태어나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창과 함께 가져온 식물을 피리레가 내려놓은 흙포대 위에 내려놓았다. 흙과 식물은 어울리는 관계이지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흙과 식물의 연계는 물의 폭력에도 저항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
[디펜스 가든]
한 포기의 식물이지만, 정원이 되고 모두를 보호한다.
흙 속에서는 물론 물 위에서 자라는 생명력이 강한 잡초지만, 잡초라는 평가는 나무를 베고, 숲을 없애 밭을 만드는 인간의 평가일 뿐이었다.
수속성이 장악한 이곳에서,수속성와 충독하지 않으면서도 수속성을 밀어냈다.
50명의 엘프가 모두 소환되었다.
평상시에는 저택에서 의료를 담당하던 엘프까지 불러들여서 나를 돌보게 했다.
그 뒤에 에리와 에드샤를 소환했다.
“준영씨, 쉬어요.”
에드샤가 50명의 엘프가 가져와 만든 흙과 나무의 토대 위에서 미소지었다.
머메이드 챔피언을 죽인 이상, 가설 토대에서 에드샤가 충분히 방어해낼 수 있다.
아리나란은 헤스티와 페로, 수희를 데리고 오기 위해 날아갔다.
‘이로써 인어의 눈물층 절반은 공략 가능해졌어. 나머지 절반은 수중 호흡과 수중 버프가 없으면 불가능해.’
나는 다음 층, 미궁 지하 16층 ‘오크의 사냥터’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