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0화
‘인어의 눈물’층을 다음으로 기약하며,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걸었다.
미궁 지하 16층, ‘오크의 사냥터’.
“하아.”
에드샤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신을 이완하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다가가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어주려고 하니, 몸을 확 돌려 다가왔다. 까치발을들고 나의 목에 팔을 걸고 입술을 찾았다.
살짝 당황했다.
얕게 입맞춤을 해주니, 고개를 한번 흔들고 어른의 키스를 해왔다.
역상성의 지역을 극복하는 나의 지휘가 발정을 일으킨 걸까.
“어. 어….”
헤스티가 멍하니 입을벌렸다. 거점이 안정된 이후로 공개된 장소에서 성애를 보이는 경우가 줄었다.
내가 수희의 은밀한 욕망에 호응해줄 때나, 헤스티의 실수를 가장한 수치 플레이에 어울려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에드샤는 압박받던 감각이 다시 펼쳐지는, 마치 자신의 몸보다 작은 상자 안에 갇혀 있다가 온몸을 쭉 펴는 해방감을 나와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휴식할까요?”
바리스가 웃으면서 물었다.
여유가 돌아온 것은 바리스도 마찬가지였다. 미궁 한 층 더 내려온 것이, 발밑이 언제 아래로 쑥 빠질지 모르는 물속의 흙인 전장보다 부담이 적었다.
“요새 형식 거점을 만들어줘. 사냥터에서 사냥감이 되지 않으려면 방어 구조물이 필요해.”
나의 대답에, 내게 안겨 입술을 찾는 에드샤를 제외하곤 모두 다시 긴장을 끌어올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미궁에서 방심은 죽음이었다.
품속 에드샤의 머리에서 등, 허리를 넘어 엉덩이 위쪽 등허리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어서 에드샤의 발정에 호응하는 한편, 미궁 밖 저택에서 엘프들을 소환했다.
응급 치료를 위한 엘프들을 제외하고 소환된 엘프들은 바리스의 지시에 따라 암석과 나무를 이용해 요새를 건설했다.
엘프들의 건설 훈련은 15층 ‘인어의 눈물’층에서 역상성을 극복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16층 ‘오크의 사냥터’를 대비한 훈련이기도 했다.
‘16층 이후로 마주치는 오크는 그전의 떠돌이 오크와는 달라.’
아예 다른 종족으로 봐야 할 정도다. 본능에 더해 전략을 구사하고, 집단 전술을 펼친다.
오크 개체 하나하나가 강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강력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 펼치는 전술을 그대로 펼친다.
미궁 밖에서, 인간이 소음을 만들어 짐승들을 몰아서 사냥하는 것처럼 오크들이 군세를 형성해서 침입한 탐색자를 몰아붙인다.
막다른 곳으로 유인하고 격멸한다.
악몽으로 알려진 오크 창병이 여기서 나온다.
한둘의 몬스터가 창을 쓰는 것은 까다롭지만 방법이 있다. 창은 사거리가 길지만,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내거나 막을 수 있다면, 치명적인 반격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육체 능력이 더 우월한 만큼 더 긴 창을 들고 수십의 창병 오크가 어깨를 맞대고 동시에 찔러 들어오면 인간 탐색자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오크의 덩치가 커서 창과 창 사이 거리가 넓은 문제도 더 긴 창의 길이와 집단 전술의 집중도로 타겟과 격돌 직전에 각 창간의 거리를 좁혀 해결해버린다.
말이 창병이지, 미궁 16층의 오크 능력치로 돌진해 들어오는 창은기사의 랜스 챠지와 다르지 않다.
‘엘프들이 펼치는 집단 창술도 오크 창병을 보고 응용한 것이니까.’
*
“이리로 오세요.”
살짝 심퉁거리는 목소리, 수희와 함께 천막을 세운 헤스티가 에드샤를 안고 만지작거리는 나를 향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종속체 배치]를 쓸 수 있게 되면서 휴대성보다 성능에 치중한 고급의 천막을 향해 안내했다.
다만, 천막 아래는 천이 깔리지 않았다.
잘 고른 흙이 평평하게 다져져 있었다. 천막 안에서 나에게 안길 에드샤에 대한 헤스티의 배려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삐쭉 내민 헤스티의 뺨을 살짝 아프게꼬집었다.
“아야.”
엄살을 부리며 내뱉은 목소리와는 다르게 헤스티의 눈 아래에는 홍조로 물들었다.
‘헤스티.’
예전 회차에서는 헤스티에게 극단적인 마법 신성을 따르라고 유도했었다.
수작이 치밀해서 헤스티가 강요로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마법 신성’을 강제했었다.
오크 창병은 뒤따르는 오크 주술사에게 마법 저항 버프를 받았다.
더 강한 마법만이 이를 깨트리고 오크 창병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
그래서, 헤스티는 화력을 선택하도록 강요당했고, 불행해졌다.
불을 상징하는 이그라굴 신성.
극단적인 이그라굴 신성을 따르면 화염 계열 마법이 탁월하게 강해졌다. 화염을 의지로 조종할 수 있는 대신, 다른 마법을 쓸 수 없었다.
그리고 홀로 살아가야 했다.
가구는 물론, 집과 먹는 음식까지 다 태워버리기에 아무것도 없는 바위로 이루어진 동굴에서만 쉴 수 있었다.
‘헤스티와 어울리지 않아. 헤스티는 첫인상만 까다로워 보일 뿐이지. 오히려 조화에 가까워.’
이번 회차에는 오크창병을 깨기 위해 이글라굴 신성을 따르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오크 창병을 깰 방법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
*
천막 안에 들어서자, 에드샤의 손길이 아래로 향했다.
적극적인 몸짓, 나의 옷을 벗기려고 했다.
나는 에드샤에 호응했다. 호응하면서도 에드샤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도록 깊게 입을 맞췄다.
“하아….”
얕게 토해내는 숨.
다시 키스하려는 에드샤의 목과 귀를 간지럽혔다. 애무를 이어가며 부드럽게 물었다.
“몸은 괜찮아?”
“으응…. 나 이상해 보이는 거지?”
“이상하지 않아. 내가 키벨레 종족에 대해 몰랐을 뿐이지.”
키벨레에 관한 책에는 이런 식의 발정기나 발정 조건에 대한 내용이 없었다.
“엘프보다 먼저 아이를 가지고 싶어.”
“아이?”
“응, 예전에 미궁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가 직접 종족을 번성시키는 것은 포기했었어.”
에드샤는 미궁 지하 5층 거점에서 몬스터화한 키벨레이면서, 키벨레 종족이 멸망하면서 남긴 어린 키벨레였다.
“에리를 기대했어. 에리가 아이를 여럿 낳고, 아이들끼리 이어지면 키벨레 종족의 피가 다시 진해질 거라고.”
인간이라면 에드샤의 말대로 해도 피가 얇아질 뿐이지만, 키벨레 유전 특성은 인간의 유전과는 다를 수도 있다.
에드샤가 나를 꼭 껴안고 몸을 부벼왔다.
몸 아래는 천이 아닌 다져진 흙이었지만, 대지를 완전히 제어하는 만큼, 에드샤의 여린 몸은 흙 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이를 낳을 나이에 도달한 몸이지만, 과거의 어린 에드샤와 하나가 되면서 피부는 더 여리고 부드러워졌다.
전투할 때, 의지를 투사하면 암석처럼 단단하지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미궁 탐색을 함께하기 위해 접촉한 적 있지만, 임신을 위해 안기지 않았다. 그 차이가 에드샤에게는 큰지, 서툰 몸짓을 보였다.
그저 서툰 소녀처럼 나의 등허리에 손을 대고 자신을 향해 당기기를 반복했다.
“엘프들에게 한 약속을 알아. 그리고….바리스와 헤스티…. 수희가 미궁 밖에 나갔을 때, 피임약을 먹었어. 아이가 생기는 거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감일 뿐이지만, 내가 미궁에 저항할수록, 내게 종속된 여성들과 여성들과의 인연의 결과가 미궁과 멀어질 것이다.
나 스스로 종족을 번성시켜주겠다고 한 엘프들과의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여긴 아직 미궁이지만, 지금부터는 나도….”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미궁 5층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에드샤라면, 에리를 위해 나와 부부 흉내는 냈던 에드샤만이라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어린 에드샤인 부분은 부끄러워했다.
나는 과거이자, 현재인 에드샤를 꼭 껴안았다.
“두려워하지 마. 내가 함께 할 테니까.”
에드샤의 갑작스러운 발정과 구애.
분명 종족 번성 때문이긴 했다. 하지만, 그 이면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인간과 혼혈인 에리도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는 무서워했는데, 더 순종인 에드샤는 역상성인 환경이 더 크게 와닿았을 것이다.
나는 에드샤와 몸을 포갰다. 나의 체온이 그녀를 위로하기를 바랐다.
“으… 으음.”
입에 입을 맞추고 혀와 혀를 엉겼다.
달달한 숨, 그리고 보면 에드샤가 에리와 나를 함께 보지 않고 나만을 본 적 없었다.
나는 둘만의 시간을 확정하듯 에드샤의 두 다리를 잡아당겼다.
에드샤의 아래에 깔린 흙이 마치 비단처럼 미끄러졌다. 에드샤의 하체에 남성을 마주했다.
“아… 아앗. 흑.”
아픔의 신음.
하지만 길지 않았다.
천막 밖에서 엘프들이 작업하는소리가 들렸다. 돌과 나무로 요새를 만드는 소리.
거칠지만 우리를 위한 소리에 숨은 에드샤의 흐느낌을 즐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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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곱게 감고 얕게 내쉬는 숨.
나는 가볍게 잠에 든 에드샤를 두고 천막 밖으로 나갔다.
“아빠.”
에리가 달려와 안겨들었다.
나의 가슴에 뺨을 비볐다.
“하아.”
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에리는 나의 딸일 수 없다. 내가 에드샤와 혼인을 맺는다고 해도 폐쇄적인 키벨레 부족의 특성상 친척일 수 있어도 에드샤는 에리의 어미가 아니었다.
“수희가 시장에서 사 온 책을 봤구나.”
“남자들은 아빠라고 불리며 안기는 걸 좋아한다고.”
에리가 내게 몸을 비비며 대답했다.
나는 모른 척하며 작업에 열중하는 수희를 노려보았다. 수희가 다크 엘프와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뿌린 선물은 묘한 타락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