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3화
“드리아데, 피리레.”
에리의 지시에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움직였다.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의 사이가 어떻든 간에 둘이 함께 하나의 적을 상대해야 한다.
드리아데의 창과 피리레의 창이 달려든 오크의 접근을 견제했다.
하나처럼 움직이는 두 개의 창, 하지만 한 번에 쳐낼 수 없는 두 창의 간격.
오크에게 머뭇거림을 일으켰고, 잠깐의 머뭇거림은 수희가 스쳐 지나갈 틈을 만들었다.
오크의 무릎이 굽혀졌다.
수희의 기습에 뒤로 도끼를 휘두르지만 이미 수희는 빠져나갔다.
“하나 둘 핫.”
드리아데의 구호에 피리레가 호응했다.
공격 타이밍을 오크에게 읽히는 것보다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동시에 공격 들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오크가 피리레의 창을 도끼로 쳐냈다.
하지만, 드리아데의 창을 쳐내지 못했다. 어깨를 꿰뚫은 창에 오크가 비틀거렸다.
스윽-.
다른 오크와 싸우다가 어느새 다시 나타난 수희가 오크의 목을 잘라 마무리했다.
“잘했어.”
지나가듯 칭찬을 내뱉고 수희가 사라졌다.
오크에게 상처를 낸 드리아데와 창격이 막힌 피리레도 표정이 풀렸다.
일행은 드리아데의 공격 성공이 피리레와 동시에 찔러 들어갔기 때문임을 알았다. 결과만 보고 차별할 만큼 전투 감각이 떨어지는 이는 일행에 없었다.
*
작은 움막. 어색했다. 원래 있던 움막에 외부만 굵은 통나무를 잘라 둘렀다.
제대로 마감이 안 되어 습기에 오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감옥이군요. 안쪽 기초는 엘프의 손길이 닿았지만, 외부는 아니에요.”
드리아데가 흥분을 다스리며 말했다. 건물형태부터 원래는 살기 위한 건축물이었지만, 현재는 안에 있는 이를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용도로 바뀌었음을 알렸다.
수희가 조용히 다가갔다.
일행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허락을 구하는 바리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바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은한 보호막이 바리스를 감쌌다.
구출 작전에 임한다는 바리스의 마음에 특성이 호응해 보호막을 일으켰다. 체력과 심력이 따로 소모되지 않았다. 적이 원거리 투사 무기를 쓰지 않더라도 유용했다.
악의를 담은 공격이 아니더라도 적이 만든 파편, 혹은 스스로 만든 자잘한 파편은 피부를 할퀴고 시야를 괴롭혔다.
눈처럼 드러난 부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접근전에서도 적은 바리스의 검에 마주치기 전에 보호막에 의해 위력이 감소당한다.
‘인기척 있음. 미약함. 중립.’
드리아데가 우리에게 배운 신호를 보내왔다. 답하지 않으면 조바심에 시야가 좁아질까 봐, ‘대기’라는 신호로 답했다.
이미 움막에 있는 자의 안전은 확보했다.
바리스가 화려하게 날뛰는 동안, 수희가 위치를 잡았다. 움막과 오크 사이를 차단한 위치에 숨었다.
‘오크들은 전투에 인질을 이용하지 않지만.’
다른 음모가 끼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수희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력이 있는 만큼, 바리스의 성장과 우든 엘프의 염원에 투자할 만했다.
*
인영을 틈으로 보고 우든 엘프임을 알았다.
오크들을 전멸시켰기에 간절한 눈빛의 드리아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리스가 함께하도록 추가로 지시 내렸다.
“저는…. 우든 엘프 드리아데예요. 들리나요? 문에서 물러나세요. 문을 부술 테니까요.”
드리아데는 세부 종족명을 밝히려다가 말았다. 자신의 소속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움막 내부에서 반응이 일었다.
문 주변에서 멀어졌다.
“물러서.”
바리스가 크게 외치고 검을 휘둘렀다.
검을 찌르면 파편이 안쪽으로 튀니 횡으로 휘둘러서 검 끝으로 긁듯 문을 부쉈다.
“아….”
삐쩍 마른 우든 엘프 아이들.
냉정한 타입인 수희가 한숨을 내쉬고는 아껴놓았던 과일을 꺼내 드리아데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음식에 대한 제한은 없었지만, 신선한 과일은 보관용 마법이 걸린 주머니가 필요했다.
감사 인사를 하려는 드리아데에게 수희가 턱짓했다.
아이들을 우선 신경 쓰라는 의미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나는 미리 알고 있었지만, 드리아데는 속상함을 숨기며 손짓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망령처럼 느껴지는 거군요.”
이질감, 마치 중간에 소리를 앗아간 듯한 감각. 우든 엘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대화하며 입술을 움직이는데 우리에게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6층까지 온 탐색자는 몬스터로 여길 수밖에 없지. 이전 층에서 우든 엘프와 싸워왔다면 더욱 그렇고.’
일행은 휴식없이 움직였다. 휴식보다 아이들을 빠르게 대피시키고자는 마음이 컸다.
나의 허락 아래 드리아데의 무기와 짐을 피리레가 대신 들었고, 드리아데는 아이 중에 약한 이들을등에 메고 팔로 들었다.
오기 전에 보아둔 계단을 향했다.
*
구출 대상들.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눈의 초점도 멍했다.
무엇보다도 계단까지 안내하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계단을 올랐다.
보이는 광경만 보면 해피엔딩 같아도 한꺼풀 벗기면 혼란스러워진다. 어떻게 엘프 아이들은 계단을 알고, 계단 너머가 평화롭다고 확신하는가?
그들이 오크에게 잡히기 전에 계단을 알고 있었을까? 그런 가정보다는 망령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게 된다.
“하아.”
계단을 넘어간 우든 엘프 아이들의 몸이 사라졌다.
바리스의 드리아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미궁 앞에서 미약한 인간과 아인족은 미궁의 이면에도 비극이 없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바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을 들어 올려 보호막을 펼쳤다. 드리아데 역시 자신의 마력을 가름했다.
“성장한 것 같아.”
“저도 그렇습니다.”
“정말?”
바리스와 드리아데의 말에 헤스티가 되물었다.
행복한 결말을 확신할 수 없는 선행보다는 아군의 성장이 더값진 법이었다.
“바리스가 성장한 것 보면, 저 우든 엘프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거야.”
나는 바리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저 위로하는 말이 아니다.
바리스의 용사 특성은 미궁 전체를 봐도 일정하게 지켜진다. 바리스의 행동이 좋은 결과를 이끌지 않으면, 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우든 엘프들을 구하고, 다크 엘프들을 구했다.
인간 아이도 있어 구했다.
바리스는 성장으로 보상을 얻었고, 피리레도 다크 엘프를 구했을 때는 마력이 증가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 착하게 살걸.”
“보상보고 말하면 뭐해요. 그리고 그전에 답답해서 날뛰었을걸요.”
수희의 농담을 헤스티가 농담으로 받았다.
창병과의 대규모 접전에 비하면 쉬운 전투에 보상까지, 임무가 선행인 만큼 스트레스도 적었다.
*
셈이라고 하기엔 크지만, 사람이 쉽게 지나갈 수 있는 물웅덩이.
에드샤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인어의 눈물’층이 떠오르는 것이다. 저 물웅덩이 주변까지 기파를 보내 탐색하고, 이질적인 반응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에드샤의 팔을 툭툭 쳤다.
“내게 맡겨둬.”
“응.”
에드샤가 진형의 뒤쪽으로 빠졌다.
잡혀서 저 웅덩이에 갇힌 존재. 강적은 아니었다. 에드샤도 그저 불쾌했을 뿐이다.
이곳을 지키는 오크는 투척 가능한 단창을 들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처리했다. 드리아데와 피리레에게 단창은 어떻게 상대하는가를 보여주는 기회가 되었을 뿐이었다.
오크를 처리하고 웅덩이를 보았다.
“나와라.”
나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대답이 없었다. 망령은 대화가 통하지 않지만, 이쪽을 보고 있을 테니 항복 권유는 전해졌다.
“헤스티, 파이어 볼.”
“네, 준영씨.”
헤스티가 천천히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열기를 집중시킨 불덩어리가 헤스티의 전면 상공에서 떠올랐다.
저 물웅덩이에 숨은 머메이드에게 굳이 맞춰줄 필요 없었다.
머메이드는 구출해서 바리스의 성장을 얻을 대상이 아니었다.
웅덩이 물결이 흔들렸다.
파문의 중심에 푸른 머리카락이 보였다. 귓가에는 머리 장식처럼 보석을 떠올리게 하는 비늘이 덮였다.
두려움에 찬 표정.
내가 다시 손가락을 까닥이자, 겁먹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더 드러냈다.
물기를 먹어 몸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머리카락으로 가려졌지만, 부드러운 곡선을 그대로 드러냈다.
헤스티가 띄워 올린 파이어볼과 헤스티, 나의 얼굴로 머메이드의 겁먹은 눈이 오갔다.
얕은 허리, 물먹은 머리카락에 가려졌지만, 머리카락과 같은 색을 띤 아래.
인어의 눈물층에서 본 머메이드는 허벅지 윗부분까진 인간의 몸이었다. 두 다리를 딱 붙인 형태의 허벅지 아래부터 물고기 비늘이 덮였다.
지상에서도 마법적 권능을 통해 물고기 하체를 움직여 헤엄을 쳤었다.
하지만, 물웅덩이에서 걸어 나오는 머메이드는 달랐다. 마법 권능으로 헤엄치지 않고 걸어 나왔다.
두 허벅지가 붙지않고 인간처럼 갈라졌다. 다리로 절반을 기준으로 바깥은 비늘로 덮여있지만, 안쪽은 인간과 같은 맨피부를 드러냈다.
은근하며 고고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레리아나의 검이 징하고 울며 방해할 정도였다.
“혼혈인가요?”
에리가 관심을 보였다. 에리 역시 혼혈이라 에드샤보다는 머메이드에 대한 적대감이 적었다.
적대감보다 혼혈이라는 공통점이 와닿는 듯했다.
“구출해줄 거죠?”
약해 보이는 모습과 공통점에 마음이 흔들리는지, 물어왔다.
“아니.”
나는 고개를 내젓고 혼혈 머메이드에게 다가갔다.
전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나 포기했는지 아니면, 미궁의 미스터리로 망령화되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혼혈 머메이드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
“종속화할 거야.”
나는 손을 뻗었다.
겁먹은 머메이드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신도급보다 높지만, 사제급은 아니었다.
헤스티가 이제는 여유롭게 유지하는 파이어 볼이 머메이드를 압박하고 있기에 혼혈 머메이드는 종속화를 피하지 못한다.
“아.”
여리고 부드러운 목소리.
“당신들은 누구? 나? 분명 오크에게 잡혀서….”
머메이드 혼혈 네리미아는 미몽에서 깨어난 것처럼물었다.
조금 전까지 우리가 압박하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고 망령화되기 전을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