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주인공이 용사를 숨김 99화 숲 속의 탑
미궁 밖 저택과 거리를 둔 곳.
숲이 우거지고 지세가 험해서 농부들이 질색하는 땅.
[신성 영역 창조]
붉은색의 문이 생겼다.
‘입구는 어떤 형태로?’라는 질문에 떠올린 생각 그대로.
이어서, 뇌리를 파고들며 이어지는 질문들.
하나하나씩, 떠올렸다.
미궁처럼 지하로 파고드는 형태가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 탑의 형태로.
구조는 2층 구조로.
1층은 일반 몬스터화 한 ‘리크’ 무리가 침입자와 싸우는 곳.
2층은 검은 날개 소녀 ‘아리시’가 머무는 곳.
2층 이상으로 올릴 수도 있지만, 그 여유를 2층에 부여했다. 검은 날개 소녀는 날 수 있는 만큼, 빈 공간이 주어질수록 가진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드랍 테이블?”
되묻자 머릿속에 대답이 떠올랐다.
신성 영역 안에 배치해둔 존재가 사망했을 때, 신성 영역에 침입자에게 내뱉는 물건의 준비.
참고로 준비해두는 물건의 가치에 따라 ‘배치해두는 존재’의 능력이 바뀐다.
‘지하 10층 이전의 무기와 장비를 드랍 테이블에 준비한다.’
엘프들이 미궁 지하 15층까지 나오는 무기를 쓰는 만큼, 10층 이하 수준의 무기는 남아돌았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와 함께 ‘신성 영역’ 안쪽으로 들어갔다.
바리스와 헤스티, 에드샤를 비롯하며 주력 인원뿐만 아니라, 엘프들도 함께했다.
‘신성 영역’은 평상시에는 탐색자를 유혹하는 짧은 미궁이 될 테지만, 비상시에는 적을 막아내는 방어 구역이 될 것이다.
“리크군요.”
에드샤가 조용히 말했다.
미궁 지하 5층의 리크는 에드샤의 과거에서 투르반과 투르반을 따르던 리크들이 변이한 존재.
그래서, 키벨레 종족과 키벨레 종족 혼혈인 에리를 적대하고, 에드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흙에 타격을 입었다.
더 아래 심층에서 나오는 리크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장악한 미궁 지하 5층에서 ‘나의 신성 영역 지상 1층’으로 옮겨 배치한 것은 에드샤와 악연이 있던 리크들이었다.
에드샤가 조용히 다가가 리크의 뺨을 쓰다듬었다.
리크 특유의 불쾌한 점액이 에드샤의 손에 닿았으나 뭍지 않았다.
이곳의 리크는 나에 의해 과거의 악연이 끊어진 리크였다.
“괜찮지?”
“…. …네. 고마워요.”
리크는 키벨레 종족의 죄니까.
구원은 아니었다. 그래도 묶은 원한에 얽매여 미궁에 고정되어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나는 ‘신성 영역’ 내의 존재에게 성장 가능성을 설정했다.
미궁 지하 5층의 리크는 침입자를 죽여도 성장하지 않는다. 그저 반복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성장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투쟁에서 의미를 찾는다는 오크와 유사한 리크라면, 반복되는 전투를 쌓아 원래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성 영역’ 지상 1층은 미궁 지하 5층의 1/4 정도 되는 크기였다. 벽은 없고 미궁지하 5층과 닮았다.
에드샤에게 유리한 지형과 지질을 선택했다.
지상 1층에서 단 한 곳만 달랐다.
과거의 투르반을 떠올리게 하는 리크가 올라가는 계단을 지켰다.
신성 영역의 계단은 미궁의 계단과 비슷하면서 달랐다. 환경이 다른 지상 2층과의 연결이라는 특이성을 발휘하긴 하지만, 위치가 고정되었다.
지상 1층에서 한 곳에만 존재하며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일행은 나를 따라 2층으로 올랐다.
“이거 왠지 탑 같아요.”
헤스티에게는 미지의지역이지만, 편안하게 말했다. 나의 의식으로 창조된 만큼 내게 종속된 이들뿐만 아니라 바리스와 헤스티도 긴장하지 않았다.
“그럼, 탑이라고 부를까?”
“흐, 그래도 돼요?”
“당연히. 내가 소유한 공간인데, 누가 뭐라고 할까?”
헤스티가 싱글벙글 웃었다. 탐색자에게는 미궁은 악몽과 같았다.
나에게조차 그랬다.
‘나와 함께 하는 이가 아니면, 이곳도 악몽이 되겠지만.’
우리가 탑이라고 부르고, 저택 아랫마을 사람들에게 ‘탑’이라고 소문을 퍼트리면 된다.
*
숲속의 탑 2층.
“아리나란, 아리시를 이곳에 머물게 해도 될까?”
나는 물었다.
강요하지 않았다. 아리시의 이용보다 아리나란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다만, 미궁 심층으로 접어들어, 아리시가 종속에서 벗어날 상황이 닥친다면 아리나란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과감하게 움직일 것이다.
“웅.”
아리나란이 볼을 부풀리고입술을 내밀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기다렸다.
이제 아리나란은 마냥 부족한 존재가 아니었다. 일행, 특히 바리스와 함께하면서 내면이 어느 정도 치유되었다.
그 치유에 아리시도 큰 역할을 했지만, 아리시를 위해서 아리시를 품에서 놓아야 함을 느낄 것이다.
“알았어.”
아리나란이 토라진 아이처럼 주저앉았다.
나는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바리스를 비롯한 주력 인원이 뒤로 물러서고 엘프들은 더 뒤로 빠졌다.
“탑 2층, 아리시를 배치한다.”
멍한 눈빛의 아리시.
검은 날개 소녀의 잔해로 시작해,
아리나란의 피막으로 내부를 채웠던 존재가 스스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흐으-흑.”
아리나란이 눈물지었다.아이를 독립시키는 어미처럼 훌쩍거렸다.
아리나란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돌아오려는 피막을 고개를 저어 아리시에게 도로 보냈다.
아리시의 피막과 아리나란과의 연결이 끊어졌다.
꾸꺽.
불쾌한 소리. 하지만, 태어난 아이가 첫 숨을 내뱉기 위해 토해내는 소리와 닮은 소리.
아리시가 홀로 이루어졌다.
내가 종속되고 나에 의해 탑에 배치되었지만, 홀로존재했다.
“아리시.”
아리나란이 벌떡 일어나 다가갔다.
성큼성큼 주저하지 않고 다가간 것과 다르게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성장이 멈춘 소녀의 모습.
등에 달린 검은 날개가 아니라면, 그저 아름다운 어린 소녀 같았다.
피부마저 완전히 재생된 아리시에게 다가가는 아리나란이 소녀를 잡아먹으려는 괴물로 보일 정도였다.
“어머니.”
피막이 만드는 소리가 아니라, 재생된 입술과성대로 소리를 만들었다.
“응, 아프지 않아?”
아리나란이 조심스럽게 껴안았다.
“괜찮아요. 어머니.”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아리나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
‘다행이군.’
아리시의 자아가 완성되었다.
나를 향하는 눈빛이 복잡한 것을 보면, 검은 날개 소녀였던 기억을 함께 가진 듯했다.
하지만, 아리나란을 향하는 눈빛은 달랐다.
오히려, 내가 아리나란을 이용하고 소모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눈빛.
아리나란의 일부를 받아들이고 태어났음을 인정했다.
“어머니, 잠깐….”
아리시가 아리나란이 상처 입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아리나란과 멀었다.
아리시의 몸에 저절로 상처가 생겨났다.
오른쪽 날개에 하나, 왼쪽 날개에 하나. 오른팔과 왼쪽 허벅지에 하나.
나는 어떤 상처인지 알고 있다.
검은 날개 소녀와 싸우고 그녀의 기억이 범람할 때, 엿보았다.
그녀를 붙잡고 고문한 흔적, 그녀의 몸을 뚫은 사슬이 있던 자리였다.
“아.”
아리나란이 멀어진 아리시에게 다시 다가가려 했다. 몸이 소녀로 완전히 재생되었기에 확연하게 비교되는 상처에 눈물지었다.
“어머니, 이제는 아프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것으로 덮어졌으니까요.”
두 날개와 오른팔과 왼쪽 허벅지 상처에서 피막이 사슬처럼 밀려 나왔다.
깨끗한 피부 때문에 더 기괴하게 보였지만, 아리시는 미소지었다.
“저는 괜찮아요.”
아리시가 아리나란을 감싸듯 손을 내밀었다.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여기서 너의 적을 상대하면 되는가? 나를 소유한 자여.”
나는 아리시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일단….”
“일단?”
“네 방을 꾸며보자.”
검은 날개 소녀가 폭주할 때, 엿본 기억 속에는 검은 날개 소녀가 평범한 소녀였을 때의 기억도 있었다.
아기자기한 소녀의 방.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 받은 듯한 곰인형과 여러 인형으로 장식된 방.
나는 그녀를 전투로 이끌 것이고, 그녀 역시 자신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괴롭혔던 과거의 존재처럼 고문하고 억압할 생각 없다.
나는 뒤로 돌아 걸었다.
계단으로 적이 올라온다고 가정했을 때, 전투의 여파가닿지 않을 만한 곳에 독립된 방을 만들었다.
주변에 가구부터 소환했다. 이어 수희가 아무나 필요하면 쓰라고 사 온 천과 옷.
미궁에서 구했지만, 네리미아가 정화한 장식품까지.
“끼아. 예뻐요.”
네리미아가 헤스티의 손을 잡고 먼저 움직였다.
방으로 설정한 황량한 공간은 아기자기한 물품으로 꾸며지기 시작했다.
아리나란이 미소지었다. 아리시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아리시가 머물 곳이 만들었다.
나는 다시 [신성 영역]을 조작했다.
탑 2층, 아리시의 방 옆에 저택과 연결되는 문을 만들었다.
만일의 사태 때, 저택에서 [신성 영역]으로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리나란이 아리시를 보러 올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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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숲속.
탑으로 연결되는 문이 발견되었다.
소유자가 없는 땅. 애매한 위치.
귀족들이 자신의 영지로 선언하면 미궁의 토해내는 몬스터에 보복당할까 봐 내버려 두었던 토지.
교단과 끈이 있는 귀족들은 교단에 문의하고, 탐색자 중에 겁이 없는 자들과 접선했다.
그저 정보를 팔라고 권유했다.
탐색자를 직접 고용해 투입하면 미궁에 보복당한 것처럼 당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다만, 미궁 10층 이상을 누비는 탐색자들은 관망했다.
보상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