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포격
* * *
양쪽 옆 멀리 산이 보였다.
그 중앙에 위치한 굴곡이 적고 완만한 지대, 통로가 되는 곳.
통로로 지나가는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언덕에 가설 건축물들이 보였다.
켐프텐 주둔지를 앞뒀다.
적은 멀리서도 접근하는 우리를 확인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긴장한 에리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에리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또 하나는 최상급자가 누구인지 모두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외부와 사통하는 창구로서 에리는 중요했다. 이에 전장 지휘관 역할을 더하는 것도 괜찮았다.
바리스는 소규모 미궁 탐색대 리더에 최적화되어있고 나는 전투에서 정석적인 전진보다 기책과 응용에 익숙했다.
괜히 전투에서 장군기를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높이 세우고, 강한 병사에게 기를 들도록 하는 것이 아니었다.
냉병기가 주가 되는 난전에서 고개만 돌리면 장군기가 보인다는 사실은 전투의 중요한 요소였다.
대장이 건재하다는 의미였고, 이는 이기고 있음을 뜻했다. 각 병사들이 도망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보다 에리가 전장 지휘관으로 어울렸다.
나는 수희만큼은 아니지만, 적 주력이 나를 놓칠 정도로 모습을 숨기는 전투를 하는데, 아군의 노예병은 당연히 나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시란느의 호위대나 병사들에게 최상급자가 누군지 알게 해야 한다.
에리는 작전의 난이도 때문에 긴장하지 않았다.
전장 지휘관으로서 집단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매몰되지 않을 것이다.
여려 보이지만 어린 날, 비극 속에서 타인의 비극에서 눈을 돌리며 살아왔다.
바리스와 달리 타인과의 인연의 깊이에 따라 감정을 끊어내는 데 익숙했다.
“장거리 저격은 하지 않는군요.”
“그래, 상급 궁수가 없거나, 우리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는 뜻이야.”
우리 부대와 주둔지와의 거리는 활 사격 거리 밖이지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궁수라면 저격할만한 거리였다.
거기에 직선상 화살이 날아갈 경로가 열려 있다.
적도 아는 것이다. 이쪽은 후작가 부기사단장 마그레를 죽일 정도의 무력을 가진 자가 있다.
장거리 저격은 화살을 쳐낼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나서줄까.”
*
부대 전진을 중지시키고, 나는 앞으로 나섰다.
준비해두었던 주머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주머니 안에는 던지기에 적당한 돌이 잔뜩 들어가 있다.
투석, 의외로 실제 전쟁에서 많이 썼다. 소규모 전투에서는 더할 나위 없었다.
준비와 훈련에 들어가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싸서, 오지의 마을에서는 접근하는 몬스터를 쫓아 보내기 위해 돌을 모아두기도 했다.
나는 돌을 들고 어깨를 젖혔다.
활의 사정거리 밖이기에 적도 아군도 아직 엄폐하지 않았다. 적은 구조물 뒤에 숨지 않고, 자세를 뻣뻣이 한 채 사기를 유지했다.
허리와 등을 이용해서 던졌다.
예행 동작이 크고 충분한 덕분에 돌멩이에 강력한 힘이 실렸다.
미궁 안에서는 예행 동작이 길면 반격의 위험 때문에 기술의 가치가 급락하지만, 두 부대가 대치 중인 상황에서는 달랐다.
거리가 멀기에 아군들은 멀어지는 돌멩이를 똑똑히 볼 수 있었지만, 저격당하는 병사는 아니었다.
그대로, 적 병사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단순하게 보면 적 병사 1의 감소.
하지만, 시란느의 호위대와 호위대 산하 징집병들은 웅성거리면서 껄껄거리고, 환호를 터트렸다. 엘프 산하 노예병들도 이에 호응하듯 웃음을 터트렸다.
시란느와 엘프들은 이를 저지하지 않았다.
노예병과 시란느 산하 징집병에게는 행운의 징조가 필요했다. 지키는 자와 공격하는 자가 전투를 벌이면 대부분 공격하는 자에서 첫 희생자가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이는 개인 전투능력 확연하게 떨어지는 시란느 산하 징집병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저 첫 번째 희생자가 자신이 아니길 바라는 병사들에게 행운의 징조가 되기에 충분했다.
*
너머에 방어 병력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선임병들이 숨으라고 외치는 것이 보였다.
적들은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고 나서야 모두 구조물 뒤로 엄폐했다.
“덕분에 희생을 줄일 수 있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시란느가 허리를 살짝 숙여 예를 표했다. 우리가 강력하게 주장했기에 주둔지 점령 명분의 소유자는 시란느가 되었다.
백작가에서 공식적으로 받은 첫 임무였다. 이전의, 호위대를 거느리고 떠도는 자녀의 이탈이 아니었다.
이번 전투의 결과가 시란느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둔지를 향해 군대를 진격시켜야 했다.
당연히 주둔지에서는 유효 사거리가 되면 활 등을 이용한 사격을 할 것이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단계였다. 진격 속도가 느리거나 적진의 원거리 공격 준비가 충실하면 할수록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넘은 자가 적진의 원거리 공격자를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의 원거리 공격이 위축될 것이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줬다.
“진격할까요?”
시란느의 지식 내에서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적 원거리 공격자가 위축되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눈앞에 보호해주는 구조물이 있는 만큼 빠르게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날 것이다.
“아니, 기다려. 본격적인 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의 말에 시란느는 예의를 표하고 물러났다.
*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피해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쪽에서 부대를 진격시켰다면, 억지로라도 원거리 공격을 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을 텐데, 부대를 진격시키지 않으니 적들은 그냥 구조물 뒤에 숨어서 대기할 뿐이었다.
“적에게 마법사도 귀족가의 지원마법사도 없군.”
내가 주둔지를 향해 던지는 돌은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종속화한 돌멩이. 눈과 피부가 없지만, 주변을 인지하고 관찰, 특히 다른 이의 마력이나 기파를 감지할 수 있다.
교단의 사도급에 가까운 마법사가 있다면, 투석에 반응했을 것이다. 전부를 쳐내지는 않더라도 주변에서 굴러다니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귀족의 지원마법사가 있다면, 미리 준비해둔 마법과 장치의 도움을 받아 반응했을 것이다.
마법 수준 자체는 지원마법사가 사도급에 비할 수 없지만, 전투의 규모를 넘는 전쟁에 특화한 것이 지원마법사였다.
“궁수의 위치를 모두 파악했다.”
주둔지의 방벽과 구조물 뒤에 숨어있지만, 주둔지 안에 떨어져 튕기고 구른 돌멩이의 인지에 벗어날 수 없다.
“에드샤.”
이전에 썼던 뭉쳐진 암석 덩어리를 떨어트리고, 암석 덩어리가 확보한 영역으로 에드샤를 배치하는 방식은 쓰지 않을 것이다.
아군과 적군이 접전을 벌이는 사이에 에드샤를 투입하는 건 부담이 적지만, 아군이 멀리 있는 상태에서 경계하는 적 한가운데 투입하는 것은 위험을 동반한 하책이 된다.
“에드샤, 보호받는 길을 내줘.”
“네, 뜻대로.”
에드샤가 대지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진득해진 공기. 고고히 선 에드샤의 전방으로 의지가 투사되고 에드샤의 의지에 반응하는 영역이 되었다.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마법사가 없더라도 강자가 있거나, 의지가 굳건한 병사가 모여있으면 큰 힘이 소모되지만, 위치는 적보다 아군에 가까웠다.
고랑이 파이고, 그 앞으로 흙으로 된 담이 세워졌다.
다만 인간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컸다. 참호 중에 교통호와 닮았다.
직선으로 전진하던 고랑은 적의 유효 사거리 안에 들자, 사선으로 파면서 좁은 지그재그 형태가 되었다.
시란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형지물을 바꾸는 광범위 마법이지만, 엄청난 이력에 비해 살상 효과가 없었다.
“에리, 헤스티를 부탁해.”
“네, 맡겨주세요.”
헤스티의 [파이어 익스플로젼]은 넓은 반경의 적을 살상할 수 있다.
다만, 헤스티도 위험에 노출된다. 직사 형태로 발사되기 때문에 캐스팅하는 헤스티를 적 역시 마법사가 노린다.
폭발의 중심에 극대한 데미지를 주고 둥글게 퍼지는 화염 폭풍이 주변을 파괴한다.
중심지는 구조물이 무용할만한 데미지를 주지만, 파문처럼 퍼지는 화염 폭풍은 구조물에 영향을 받는다.
주둔지는 아예 전투를 위해 건설된 만큼, 마법 한방에 모든 궁수가 처리되지 않도록 분리 배치되어 있다.
켐프텐 주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종속시켜 던진 돌멩이로 궁수의 위치를 모두 파악했다.
에리와 헤스티가 참호로 들어갔다. 교통호를 통해 주둔지로 다가갔다.
적은 주둔지와 가까워지는 마법사를 저지할 수 없다.
*
“시란느. 드리아데, 피리레.”
“네, 지시하세요.”
“명령을 받듭니다.”
“명령을 받듭니다.”
“헤스티가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진격을 개시한다.”
“알았어요.”
“명령에 따릅니다.”
“명령에 따릅니다.”
헤스티는 파이어 계열 마법을 충분히 숙성시켰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통제력과 효율까지 확보하고, 거기에 중력 계열 마법과의 조화까지 이루어냈다.
‘화염 마법이 직사 공격이라 마법사가 위험하다면.’
헤스티와 에리가 에드샤가 만든 참호 끝에 도착했다. 에리를 통해 내게 알려왔다.
‘숨어서 곡사 공격을 하면 된다.’
이어진 참호 끝에서 화염이 피어올랐다. 하늘을 향해, 주둔지 방향으로 쏘아졌다.
하나가 오르고 다시 하나가 올랐다. 총 일곱 개의 화염이 하늘로 쏘아졌다.
[파이어 스트라이크]
화염 마법과 중력 마법 모두 익숙해진 헤스티가 새로운 마법을 선보였다.
와아아.
시란느와 드리아데와 피리레가 병사들과 함께 진격했다.
호위대와 징집병, 그리고 노예병들이 사격에 대한 두려움을 억지로 떨치고 달려나갔다.
파강, 파앙, 파파팡.
하지만, 진격하는 병사들을 향한 사격은 없었다.
미리 파악한 궁수들이 모인 곳을 향해 화염이 하나씩 내리찍혔다. 화염에 강한 흙으로 된 벽도 소용없었다.
애초에 직사각을 막는 흙벽이지, 하늘에서 내리찍히는 화염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사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에드샤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마법을 이용해 직접 파고들어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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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 속에 숨은 헤스티 앞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지형도와 주둔지 모형이 있었다.
내가 인지한 정보가 에리의 대지 마법을 통해 지형도와 모형으로 만들어졌다. 전투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고, 바뀌는 상황에 따른 목표점이 실시간으로 반영되었다.
에리가 참호 밖에서 고고히 선 채 전투를 바라보았다. 시란느와 피리레, 네리미아와 그들의 부대를 지휘했다.
참호 안에서는 헤스티가 간간이 화염을 하늘로 쏘아 올리며 마녀처럼 웃었다.
공격받지 않고 공격만 하는 것, 마법사가 좋아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