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시란느
* * *
네리미아가 만든 여자 손 크기의 물방울.
맑고 깨끗해서 그 너머가 비쳤다.
비치는 상이 물방울의 움직임에 따라 굴렁굴렁 거렸다.
단정한 단발. 부드러운 피부, 촉촉한 몸, 매끄러운 배.
앳돼 보이는 피부임에도 차분한 라인은 시란느가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런 단련에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물방울이 시란느의 몸을 훑었다.
“참지 않아도 돼. 아니 참지 마.”
이때까지 천연덕스러운 느낌과 다르게 네리미아가 찬찬하게 조언했다.
“네?”
“으음, 부끄러움 때문인가…. 솔직하지 못하니까, 내면과 외면의 이격이 일어나는 거예요.”
네리미아의 조언에 당황하는 시란느에게, 헤스티가 자세히 설명했다.
“솔직해지라고 말씀하셔도….”
물에 젖은 채지만, 네리미아가 옷을 입고서 시란느의 앞에 섰고, 그 옆에는 헤스티가 옷을 입은 채로 서 있다.
거기에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도 내가 셋을 지켜보고 있다.
시란느의 반응은 경험 없는 여성이 보일만 한 반응 그대로였다. 차라리 적에게 둘러싸였다면 생존이라는 최우선 가치에 자신의 반응과 행동을 꾸몄을 테지만, 우리는 적이 아니었다.
‘시란느도 느낄 테니까.’
우리가 그녀를 이용하는 데에는 원칙이 있다.
그녀의 생존과 그녀가 보여줬던 욕망을 존중했다.
그래서, 당당함을 가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랬다면, 이 시도 자체를 그만뒀을 테지.’
마법에서는 직관이 중요했다. 자신만큼은 자신을 가식 없이 바라봐야 한다.
다만, 지금은 시란느 스스로 마법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네리미아의 유도로 헤스티의 도움을 받아 마법을 일으키는 것이다.
네리미아가 고개를 흔들었다.
“까다로운 아이네.”
네리미아가 한숨을 내쉬면서 옷을 벗었다. 이어 차분한 분위기를 유지하던 헤스티까지 옷을 벗었다.
다만, 나는 벗지 않았다. 시란느의 경계심을 끌어올릴 때가 아니었다.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 쾌활하게 조잘거리며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세 미녀.
나는 충분한 자극에 솟아오르는 자신을 느끼며 주시했다.
*
공중으로 떠오른 물 덩어리가 여린 몸을 노렸다.
서늘한 공기에 놀란 분홍빛 유두를 살짝 접촉해 놀라게 하고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왔다.
차가운지, 흠칫 떠는 모습은 안타까워 보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저…. 저 왜 가슴인가요?”
물 덩어리의 움직임은 노골적이었다. 물 덩어리이기에 신비해 보일 뿐이지, 성욕에 물들어 탐하는 인간의 혀라고 해도 다르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목걸이가 있던 자리.”
네리미아가 짧게 내뱉고는 물 덩어리의 움직임을 이었다.
시란느의 촉촉한 가슴이 물 덩어리의 압박에 부드럽게 눌러졌다.
옆으로 흐르는 듯한 움직임이 더해졌다. 시란느의 가슴이 커다란 남성의 손에 마구 만져지는 것처럼 푸릉거렸다.
“가장 친숙한 자리니까.”
마치 푸딩으로 푸딩을 누르는 모양새가 이어졌다.
“흐음.”
헤스티가 머리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이대로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얼마나요?”
“한 달?”
시란느의 얼굴이 아연해졌다.
한 달이면 전세가 결정되고도 남았다. 이때까지의 정보에 의하면 후작가는 보급이 여의치 않아서 단기 결전으로 나올 가능성이 컸다.
“시란느가 반응을 증폭해줘야겠어.”
“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느낌을 그대로 말해봐.”
의아해하는 시란느에게 헤스티는 설명을 이었다.
“그냥 추상적으로 솔직해지라고 한들 쉽지 않겠지. 이때까지 쌓아왔던 인식에 얽매일 테니까. 그러니까. 그냥 느낀 것을 그대로 말해봐요. 자세하게.”
“부끄러워요.”
“더.”
“간지러우면서 부끄러워요.”
“어디가?”
“가슴.”
“가슴의?”
“살 부분….”
“….”
“누를 때.”
“….”
“또, 그 끝을 핥듯이 움직이는 물이 야해요.”
헤스티가 계속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지작…. 만지작거려요.”
“그래서, 어떻게 느껴져?”
시작은 외부 현상의 관찰, 다만 이로 끝나면 안 된다. 마법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작용이 전부가 아니다.
내부로서 외부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야해요….”
“야하면서?”
“기분이 이상해요. 간지러운데, 살짝 애달픈?”
네리미아의 물 덩어리의 움직임이 더욱 야릇해졌다. 가슴을 꼭 안고 탐할 뿐만 아니라, 아래로 한줄기 내려 배에 닿을 듯 말 듯 간지럽혔다가, 허리 옆을 부드럽게 감쌌다.
“흣.”
“괜찮아. 더욱 음미해.”
“흐. 엉덩이를 꽉 잡으시니까, 묘한 느낌.”
“어떻게 해주길 원해?”
“모르겠어요. 거부하고 싶으면서도, 더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흐으.”
물 덩어리가 꾹 눌렀다. 부드럽게 풀었다.
“저…. 저.”
“그래, 잘하고 있어.”
“가슴도….”
조그맣게 만져주세요라고 속삭였다.
시란느에게 성은 묘한 위치였다. 시란느가 어릴 때 성은 금기이자, 그녀를 집어삼킬지도 모르는 함정이었다.
시란느의 어머니는 정염에 빠져 도망쳤다고 알려졌다. 그 때문에 시란느는 어린 날을 힘들게 보냈다.
그래서, 여성으로서 이성과 맺는 관계를 포기했다. 집안의 권력 다툼에 혼인을 포기했다.
그런 시란느에게 에리와 일행이 나타났다.
사랑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들. 암시하는 것만으로도 시란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이들.
착각마저 일어날 정도였다. 강하기에 사랑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 충실하기에 강한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의혹이, 네리미아가 이끌고, 헤스티가 설명할 때마다 설득력을 더해갔다.
‘마녀.’
준영씨가 해준 마녀에 대한 설명은 실감하기 어려웠다. 다만, 시란느는 이전부터 마녀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음란한 년. 마녀는 음란한 년. 나의 어미가 마녀라면 나도 음란한 걸까. 음란해도 되는 걸까?’
이런 미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위대에서 수련에 더욱 몰입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내게 음란해지라고 하고 있어. 음란해져도 된다고 하고 있어.’
솔직해지라고 하는 말은 속에 품은 열망을 풀어놓으라고 속삭이는 것과 같았다.
‘나도 꼭 안아줬으면 좋겠어.’
어린 날의 차가운 침대. 홀로 깨어나면 밀려드는 추위.
억지로 몸을 움직여 스스로 몰아내야만 하는 냉기.
“흐으읏. 하아.”
시란느는 크게 신음을 흘렸다.
“따뜻해요. 꽉 잡아주세요.”
시란느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꽉 잡아 욕망이라는 열기를 전해오는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등 뒤의 남성에게 몸을 기대었다.
“뜨거워요. 저도.”
몸을 기대는 순간 알았다. 뒤에서 안아준 남자는 옷을 입고 있지 않다.
“좀 더 솔직하게.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봐.”
헤스티의 속삭이는 소리에 두 눈을 감았다.
“꼭 안아주세요. 차가운 저를 뜨겁게 해주세요. 흐읏.”
시란느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새 네리미아가 물 덩어리에 대한 통제를 내려놓았음을. 하지만, 물 덩어리는 처음처럼 계속 시란느의 몸을 부드럽게 만지고 핥으며 훑고 있음을.
네리미아가 시란느에게 가하는 애무가 아니라, 시란느가 자신에게 행하는 자위가 되었음을.
어느새 시란느는 자신의 등 뒤에선 남자를 물 덩어리를 이용해 끌어당기고 있었다.
* * *
나는 시란느를 꼭 껴안았다.
속성으로 시란느를 개방하기 위해, 그녀가 살아오는 동안 억눌러져 있던 성감을 이용했다.
왼손으로 시란느의 가슴을 꽉 잡았다.
내 손이 뜨거운지, 흐늘거리며 늘어졌다.
오른손으로 탄력 있는 아랫배를 훑으며 더 아래로 탐했다.
두 다리의 보드라운 살이 나의 오른손을 눌렀다. 차가운 물과는 다른 열기가 느껴졌다.
생존이 중요한 세상일수록 수컷의 매력은 무력으로 결정된다. 그와 비슷하게 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여인은 강렬하게 일어선 존재에 매력을 느낀다.
자신이 기댈 곳이며, 자신에게 머물게 만들어야 할 대상임을 본능으로 느끼고 반응한다.
“흐읏, 제 몸 뒤에 뜨거운 게.”
이미 성애였다. 마녀로 개화하기 위해 받았던 가르침으로, 처녀의 몸임에도 시란느는 자신의 허리 뒤쪽에 닿는 것이 무엇인지 말했다.
“아이아이 흐으.”
배를 넘어 아래쪽으로 파고든 오른손바닥은 시란느의 치골에 닿았다.
나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 나의 가슴에 기대어진 시란느의 등이 애무하듯이 가슴을 간지럽히며 올라갔다.
서 있는 나의 입가까지 올라온 시란느의 단발을 헤치고 귀를 살짝 물었다.
“하으으….”
시란느의 입이 저절로 크게 벌어졌다.
귀를 무는 나의 이빨에 몸을 움츠리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키보다 작은 그녀가 들어 올려져, 잔뜩 화가 난 남성이 시란느의 치골 아래와 두 다리가 만드는 삼각형 안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시란느가 앞으로 내민 두 팔이 흐느적거렸다. 갓 개화한 마녀의 능력으로 그녀의 앞에 물을 뭉치게 하고 잡아서 불안정하게 떠오른 자신의 몸을 고정하려고 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아으으 흑. 아파.”
비명을 터트렸다.
처음 남성을 받아들이는 여성의, 애처로우면서 짙은 압박감과 떨림에 본능적으로 시란느의 가슴을 잡은 손과 치골을 잡듯이 누른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파. 흐으. 흐으윽.”
몸을 당기면서 아래를 밀어 넣었다. 시란느를 끌어안으면서 허리를 쳐올렸다.
비명이 젖어 들 때까지.
멀지 않을 것이다.
내면에 엉겨있던 힘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 느끼는 쾌감은 무술의 깨달음과도 닮았다.
자신의 한계를 넘나드는 쾌감은 고통을 잊기 충분하고, 나에게 이를 유도하는 경험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시란느를 탐하는 나를 헤스티와 눈이 마주쳤다.
헤스티가 웃었다.
나는 헤스티의 미소에서 헤스티 역시 마녀에 대한 끄나풀을 잡았음을 알아차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