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1화 〉 미궁 지하 15층, 인어의 눈물 (121/139)

〈 121화 〉 미궁 지하 15층, 인어의 눈물

* * *

헤스티와 네리미아, 오노르와 시란느가 마력을 일깨웠다.

나는 예전 회차에 마법사였던 기억을 되살렸다.

다만, 이 기억은 보조로만 이용했다. 이번 회차의 경험과 경험에 기반한 깨달음을 중심으로 삼았다.

헤스티에 호응했다.

나의 육체로 호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네리미아와 오노르는 내게 종속되었다. 내게 종속된 만큼 그녀들의 감각을 공유하고 나의 의지를 그녀들에게 투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보다 중요한 것은 헤스티.

헤스티가 중심이 된다.

나의 역할은 네리미아, 오노르의 제약을 뚫어내는 것.

네리미아에게 가능한 영역이지만, 지식과 경험 부족, 무엇보다도 통제할 수 없어 접근하지 못했던 힘을 이끌어내고 유도하는 것.

네리미아는 채찍을 처음으로 든 초보자와 같았다. 하지만, 채찍의 숙련자가 채찍을 잡은 초보자의 손을 잡고 함께 휘둘러주면 안전하게 휘두르는 법을 빠르게 익힐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오노르는 네리미아보다 쉬웠다.

그녀에게 가해졌던 세뇌는 종속으로 깨어졌다. 세뇌로 잃은 부분은 종속으로 대체되었다.

덧씌워졌던 육체 강화를 최대한으로 유지하면서, 억제되어 있던 물의 마법을 위한 경로를 복구하고 더욱 넓게 열기 위해 집중했다.

헤스티가 물의 힘을 일으켰다.

공중에서 수분이 파문을 이루며 퍼져나갔다. 아래 샘보다 크고 호수보다 작은 못의 물이 헤스티가 일으킨 힘에 공조했다.

중요한 순간.

물의 힘에 심취한다면 헤스티는 마녀가 된다.

마녀, 외력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힘을 추구하기에, 광기에 쉽게 물드는 존재.

그리고 광기에 물든 순수는 인간에게 이용당하기 좋았다. 지원마법사는 마녀의 재질이 있는 이를 이용한 결과물이었다.

헤스티가 몸을 바로 세웠다.

그녀의 시야가 확장되었다. 물만 바라보던 눈이 네리미아를 보고 오노르를 보고 그 둘의 뒤에서 지탱하는 나를 보았다.

싱긋 웃었다.

이때까지 헤스티가 이루어낸 성취를 펼쳤다.

화염과 중력을 펼치고 조율하던 조화로 네리미아와 오노르의 힘을, 그 두 힘과 자신의 힘을 이어내고 포용했다.

자신의 힘, 공중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수분과 못 아래 거력을 담고 있는 물의 힘을 조화롭게 이어냈다.

헤스티의 격이 올랐다.

*

나는 천천히 집중을 풀었다.

중요한 순간은 지나갔다.

헤스티가 성장한 이상, 네리미아와 오노르가 극단적으로 힘을 이끌어내더라도 일상적인 훈련의 위험도 정도가 될 것이다.

일상 훈련에서도 집중을 흩트리면 위험했다. 역으로, 헤스티가 집중을 유지한다면 위험을 관리할 수 있다.

못의 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헤스티의 의지를 반영했다.

식물의 줄기처럼 물줄기가 솟아났다.

“저 상을 받고 싶어요.”

헤스티의 두 뺨이 붉게 물들었다. 뺨은 부끄러워하면서도 두 눈은 요염하게 빛났다.

덩굴처럼 뻗어 나온 물줄기가 나를 잡고 이끌었다.

네리미아와 오노르를 초대했다. 헤스티가 이루어낸 물의 가호를 받고 순식간에 상승한 물의 적응력에 벅차하던 시란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못의 위.

수중이 아니라 물 위의 공간인데도 부유했다.

헤스티의 영역이 되어 가득 채운 네 명의 몸을 띄워 올렸다.

나는 부드럽게 헤스티의 어깨를 잡고 키스했다.

살며시 안았다. 네리미아가 장난치듯이 나와 헤스티를 함께 껴안았다.

오노르와 시란느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나의 몸을 훑었다. 조금씩 끈적하게 나를 탐했다.

수상과 수중에서 쾌감을 누렸다.

*

*

*

엘프들이 소수로 데리고 다니던 노예병 부대는 ‘숲의 부대’로 이름 붙였다.

노예병 취급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엘프들을 따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받은 훈련이 누적되었고, 두 번의 전투를 경험해 전투가 시작되어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백작가 영민을 상대로 모집한 상비병의 선임으로 인명했다. 전투 시에는 하급 지휘관의 역할을 하도록 계급을 부여했다.

식량이 많은 만큼 훈련과 공사에 전념시켰다.

백작가를 중심으로 작은 도랑을 거미줄처럼 냈다.

손을 빌린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보안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에드샤와 네리미아로만 토목 공사를 하면 둘의 능력이 적에게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있었다.

“왕국의 마법사들, ‘규율자’는 불에 강하고 물에 익숙하지 못하니까.”

오노르를 통해 추측해냈다.

물에 익숙하다면, 굳이 오노르의 물 속성을 제한하고 화염 마법을 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미궁 15층, 인어의 눈물층이 더욱 의미가 있어.”

“오래간만에 미궁 도전이군요.”

바리스가 나의 말에 호응하며 양손검을 만지작거렸다.

그동안 미궁 출입을 꾸준히 해왔지만, 훈련의 용도였다. 엘프들이 강한 적을 상대하더라도 즉사를 피하도록 체력을 키우고, 오노르와 시란느를 미궁에 적응시키기 위해 14층 이전 층을 반복했었다.

“흐흐, 떨려요.”

네리미아가 두 손을 모아 설렘을 드러내자 헤스티가 네리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궁 16층 ‘오크 사냥터’에서 네리미아를 종속시키고 데려왔었다.

인어의 눈물층은 오크 사냥터보다 낮은데도 지형의 특성 때문에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오노르와 시란느의 합류와 헤스티와 네리미아의 성장으로 15층 인어의 눈물층을 공략할 토대를 완성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궁이지만, 한 가지만은 배신하지 않았다.

고난을 돌파하면 그만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인어의 눈물층 보상은 왕국과 싸우는 데 힘을 줄 것이다.

아리나란 역시 오래간만에 미궁 공략이 즐거운지 내게 몸을 가져다 댔다.

바바리안 베르칸의 딸로 태어났으나 제물이 되어 피막을 가진 존재가 되어버린 아리나란.

강해짐에 따라, 불완전성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다른 이의 몸에 자신의 몸을 붙이는 것은 여전히 좋아했다.

“주인님. 가자. 미궁으로.”

나는 몸을 붙여오는 아리나란을 꼭 안아주었다.

*

*

*

가득한 물 냄새. 넓은 바다에 섬이 떠 있는 구조.

미궁 지하 15층 인어의 눈물층은 변함없었다.

땅이 끝나고 물이 시작되면서, 대지를 통한 에드샤의 감지가 제약받았다. 줄어든 인지에 에드샤가 침울해지는 것까지 예전과 같았다.

나는 에드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어, 살짝 긴장한 헤스티를 바라보았다.

헤스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리미아의 손을 잡고 마력을 모았다.

“물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해요.”

[물의 가호]

캐스팅의 시작과 함께 헤스티의 영역이 형성되었다.

마력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파문처럼 퍼져나가던 마력이 일행에게 닿자 일행의 기운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전사 계열이든 마법사 계열이든 품고 있는 기운과 마력의 종류에 상관없는, 생명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물에 호응했다.

물의 가호가 모두에게 부여되었다.

각자의 의지가 닿는 내라면 물과 수분에 대한 대응을 직접 행할 수 있게 되었다.

“히힛.”

가장 신이 난 건 네리미아였다.

머메이드에게 극단적으로 유리한 환경.

네리미아에게도 적용되었다. 거기다가 헤스티와 네리미아가 함께 시전한 [물의 가호]에 가장 크게 버프 받았다.

확장된 감각을 통해 초과해서 밀려드는 정보는 문제없었다. 에드샤의 인지를 이용하는 데 익숙한 내가 있기에,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는 그대로 인지로 이어졌다.

바리스가 물 위를 걸었다.

물의 가호를 통해 확보한 통제력은 단순히 물을 이용한 공격에 저항하는 힘이 아니었다.

이미 바리스는 자신의 기운을 외부로 투사하는 단계를 넘었기에, 발아래에 닿는 물에 의지를 투사해 낼 수 있었다.

물이 바리스의 의지를 투사해 바리스의 몸을 붙잡았다.

붙잡는 힘은 바리스를 미끄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붙잡으면서도 투사되는 의지에 따라 물이 결집해 바리스를 밀어냈다. 발아래를 지지하는 발판이 되었다.

바리스가 물 위에 선 채 양손검을 휘휘 휘둘렀다.

수희 역시, 물을 이용해냈다.

다만, 바리스와 다르게 물 위에 섰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수면과 수중을 오갈 때 생기는 굴절을 이용해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고자 했다.

오노르와 시란느가 한 손으로 서로의 손을 잡은 채, 바깥쪽 손을 들어 올렸다.

둘의 의지에 따라 물이 응집되어 기둥이 만들어졌다.

수중에서 물 위까지 드러나도록 박힌 기둥은 장애물로서 전투 감각이 부족한 시란느의 방어에 이용될 것이다.

이전 인어의 눈물층 공략은 절반의 공략이었다.

내려와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까지 직진했고, 머메이드 챔피언을 잡았었다.

그리고는 바로 계단을 내려가고 길잡이 특성을 이용해 인어의 눈물층을 건너뛰었었다.

“인어의 눈물층 중심부를 향한다.”

엘프들을 소환했다.

우든 엘프들은 자신이 축복한 나무를, 다크 엘프들은 축복한 흙을 가지고 왔다.

이전처럼 구조물을 쌓는 건 지금 목적에 어울리지 않았다. 계단 앞 머메이드 챔피언은 고정된 위치에 있지만, 일행은 직진하지 않고 탐험을 해야 했다.

엘프들은 작은 보트를 만들고 흙을 안쪽 면에 발랐다.

선박 기술은 백작가에 있던 책 한 권이 전부지만, 충분했다. 항해가 아니라 안정된 영역을 확보하는 목적이라 형태만 빌리면 충분했다.

보트 위에는 흙을 담고 에리와 에드샤가 탔다.

언제든지 미궁층 밖으로 보낼 수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전투를 기대한다기보다 적대적인 환경에서의 전투를 경험시킨다는 의미가 컸다.

또한, 흙이 채워진 보트는 아라나란에게도 좋았다.

피막을 이용해 하늘을 난다고 해도, 휴식은 흙이 있는 내게 장악된 공간에서 취하는 것이 나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