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화 〉 몬스터 웨이브
* * *
"바리스, 아리나란."
"네, 준비되었어요."
"응, 언제라도."
살짝 긴장하면서도 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바리스와 아리나란.
그리고 뿌듯해하는 우든 엘프와 다크 엘프들.
그녀들은 숲속의 저택 앞 평지에 자리 잡은 거대한 물체를 자랑스러워하며 바라보았다.
엘프들은 인어의 눈물층에서 배를 만들고, 공중으로 띄워 올리고 크라켄과 충돌시키면서 배에 대한 실전 데이터까지 얻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늘로 띄울만한 배를 만들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배를 두 대의 갑판을 중앙에 두고 위아래로 합친 형태와 비슷했다.
하지만, 외벽은 막힌 벽이 아니라 그물처럼 성글었다. 외벽 안쪽에 서서 바깥을 향해 창을 내지를 수 있는 형태였다.
안쪽 중심부에는 튼튼하게 메워진 갑판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짐을 적재할 수 있다.
"가자, 킬덴 평원으로."
나는 거대한 종속물, 비행선으로 공중으로 띄웠다.
비행선이 나아갈 곳, 전면을 나의 영역으로 확보하고 종속물 배치를 반복했다.
거대한 비행선이 전장을 향해 움직였다.
하늘로부터의 접근은 왕국군을 홀로 상대할 때는 위험 요소가 있는 전술이었다.
강력한 마법사 그룹, 규율자는 공중으로 마법을 쏘아낼 수 있다.
'하지만, 난전이 벌어진 상황이라면?'
땅으로 달려드는 맹수를 상대하는 자는 하늘을 보지 못한다.
왕국군은 역량을 당장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내뿜을 것이다.
*
*
*
콰앙.
거대한 폭발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그들의 계획보다 이른 접전이긴 했지만, 킬덴 평원에 세워진 왕국군의 주둔지는 몬스터 웨이브를 상대하기 위한 진지였다.
대포 역시 지형을 반영해 몬스터가 밀집되어 밀려 들어올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마도공학으로 만들어진 마법용품이 측정을 보조하고, 산업이 따라가지 못해 불안정한 대포를 화속성 지원 마법사가 안정화하고 화력을 더했다.
광음이 터지고 밀려드는 고블린과 오크와 괴이하게 생긴 몬스터 무리에 빈 선이 만들어졌다.
포탄이 지나간 선상에 있던 몬스터는 모두 신체를 일부를 잃었다.
"폭발탄으로 전환해."
"폭발탄은 지원마법사들의 마력 소모가 큽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써야 할 때다."
초탄을 확인한 마법사 진영에서 지시가 갱신되어 내려졌다.
쾅 쾅콰앙.
몰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화력이 쏟아졌다.
*
가쁜 숨을 들이마시던 수희가 비행선 위, 선장실에서 나왔다.
"와, 화려하네요."
왕국군의 사격 준비가 끝났을 때, 몬스터 무리의 선두에서 달리던 수희를 숲속의 탑으로 [종속체 배치]를 이용해 순간 이동시켰다.
바로 이어서 왕국군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비행선을 전장 가까이 이동시키고, 수희 역시 비행선 위로 소환했다.
수희가 비행선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저놈들은 내가 도와주고 있는 거 알까 몰라?"
"수희님이 몰고 오지 않았다면, 싸울 적이 아니었다고 욕하지 않을까요?"
수희의 농담을 에리가 응해주었다.
"하긴 저놈들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자기들이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거 생각 안 하고 억울해할 것 같아."
왕국군의 대포가 계속해서 불을 뿜었다.
고블린급 몬스터들이 녹아내렸고, 오크급 몬스터들이 포격에 터져나갔다.
"사타로스가 나왔는데도 돌진 속도를 내지 못하잖아. 다 내 덕분이지."
반인반수의 몬스터 사타로스는 하체가 염소의 몸인 만큼, 빠르고 변화무쌍한 전투를 해냈다.
울퉁불퉁한 지형의 미궁층에서도 기병 이상의 돌진력을 발휘해내고 기병이 불가능한 선회력을 보이는 몬스터였다.
또한, 험한 지형에서 빠르다고 해서 평지에서의 기동이 느리지도 않았다.
고블린과 저층 오크가 나오는 미궁층보다 깊은 미궁층에서 나오는 몬스터라 늦게 나왔을 뿐이지, 처음부터 같이 나왔다면 수희의 유인이 더 까다로워졌을 것이다.
그런 사타로스가 돌격을 머뭇거렸다.
돌격해야 할 대상을 확정하지 못했다. 최우선 격멸 상대인 수희가 같은 공간에 있음이 느껴지는데도 달려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비행선 위에서 내려다보는 수희는 존재 자체만으로 몬스터 무리의 움직임에 혼란을 더했다.
포탄의 파편에 상처를 입고 나서야 왕국군에게 돌진했다.
수희의 유인에 당하면서도 회피 동작을 해내는 것과 비슷한 본능 레벨로 왕국군에게 반격했다.
"덕분에 첫 격돌은 무사히 넘겼군."
나는 부드럽게 수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렇지? 망할 왕국군이라고 해도 첫 격돌에 다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수희가 내게 살며시 기대며, 나의 손으로 자신의 젖가슴을 가리면서 미소지었다.
"전투 준비."
나는 수희를 더욱 품속 깊이 이끌며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수희가 격렬한 움직임으로 흐트러진 호흡과 거대한 업적을 다스리고, 이를 성장을 위한 토대로 이어내는 것을 도와주는 동시에, 지휘를 시작했다.
새까만 구름이 되어 비행선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 몬스터들.
뒤가 안 보일 정도로 몰려드는 하피와 살벌한 포효를 터트리며 날아오는 와이번. 하늘을 날며 위를 바라보는 몬스터들은 지상 몬스터와 달리 길을 잃지 않았다.
수희가 소환된 비행선을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우든 엘프 드리아데가 몰려드는 비행 몬스터를 주시했다.
"23, 14 외벽 개방."
"23, 14 외벽 개방."
드리아데가 지시를 내리자, 우든 엘프들이 움직였다.
비행 몬스터와 직시각을 이루는 비행선의 외벽을 열었다.
"시란느 잘하자."
머메이드 네리미아가 시란느의 상관인 양 독촉했다. 가르침이 귀한 세계, 시란느가 물 마법을 익히는데 도와준 네리미아가 시란느에게 우쭐대는 건 당연했다.
"네, 제대로. 워러 스피어."
"워러 스피어."
둘의 물 마법이 허공을 가르고 쏘아졌다. 비행선의 열린 외벽을 넘어 날아오던 하피에게 박혀 들었다.
하피가 추락했다.
"이만하면 훌륭하지요?"
"치, 부족해."
"딱 죽일 정도가 적당하다고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으으, 스승님 말씀이 무조건 옳긴 하지만."
머메이드 네리미아와 후작가 백작의 자녀 시란느가 투덕거리면서도 하피를 격추해 나갔다.
'스승님이라.'
시란느의 어머니 오노르는 헤스티를 보았다.
덤덤하게 몰려드는 비행 몬스터를 주시하는 헤스티, 시란느는 그녀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마법사의 배움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노르는 헤스티에게 도움을 받아 물의 마녀로 물 마법뿐만 아니라, 강제되었던 화속성 마법까지 의지 아래에 담을 수 있었다.
조화를 추구하는 헤스티의 도움이 있었기에 상반된 두 속성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속성.'
비행선의 공격을 위해 열린 외벽 너머 화염이 형성되었다.
스스로 타오르는 불덩어리는 비행선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온도를 더욱 올렸다.
하피와 와이번은 오노르의 화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비행선과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온도만 올릴 뿐인 불덩어리는 비행 몬스터에게 피해가면 되는 고정물에 불과했다.
옆으로 돌아서 비행선에 달라붙으면 될 뿐이었다.
"많이 가까워졌네요."
헤스티가 여유롭게 웃었다.
하피와 와이번은 헤스티가 이미 상대해본 몬스터, 수가 엄청나긴 하지만, 마법은 대량의 적과 광범위한 영역에 힘을 발휘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이미 이곳은 준영씨의 영역."
인어의 눈물층에서 싸울 때와 달리 일행이 유난히 편안한 이유였다.
비행선 안뿐만 아니라, 주변 영역이 이미 나의 영역이었다.
크라켄을 상대하던 바다와 반대였다. 크라켄의 영역을 뚫고 타격을 입히기 위해 막대한 위력을 일으켜야 했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나의 영역은 헤스티에게 친숙하고 우호적이었다.
[그라비티 콘트롤]
중력을 다루는 헤스티의 마법이 이루어졌다.
하피와 와이번의 진로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라비티 콘트롤]
중력을 다루는 마법. 굳이 상위 마법을 구현하지 않고 그라비티 콘트롤을 중첩하고 강화했다.
마법에 저항할 의지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비행선 주변은 이미 준영의 영역이었다.
거기다가 공중은 지상과 달리 대지와 마찰하지 않았다. 공기의 저항과 중력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그라비티 콘트롤]
내가 종속된 공기는 하피와 와이번의 날갯짓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중첩된 중력은 하피와 와이번을 한점으로 끌어모았다.
비행 몬스터가 만드는 새까만 구름이 한 점을 향해 응집하기 시작했다. 깨끗한 물에 떨어진 물감이 퍼지는 장면을 시간을 돌려 반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와, 어쩌면."
장엄함까지 느껴지는 광경에도 헤스티는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력이 모이는 한 점을 더 작게 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점을 더욱 작게, 계속해서 작게 만들고 그 작아지는 점에 무게를 계속해서 압축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대한 몬스터 무리를 학살해내면서도 나아갈 길을 탐색하는 헤스티에게 경의를 보내고 웃어줄 뿐이다.
나의 미소를 미주하고 헤스티는 웃었다.
헤스티가 오노르가 만든 불에 비행 몬스터를 모아 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