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6. 양손에 꽃(3)
한바탕 소동을 벌인 다슬을 진정시킨 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술집으로 이동했다.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한 잔 두 잔 들이키며 우리는 잡담 겸 오늘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그렇게 나와 다슬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슬슬 석양이 저물고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슬슬 느낌이 나오네요.”
다슬이 500cc 맥주잔을 든 채 주변을 둘러보며 평가했다.
그런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슬슬 클럽 개장할 시간이지?"
"네. 9시니까 할때 됐네요."
도심 속 불빛이 별빛을 대신해 반짝이는 광경 속.
어느새 시끌벅적해진 술집 내부 분위기,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어두워진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젊은 남녀들이 보였다.
이제 막 9시를 넘었을 무렵이건만 바깥에는 벌써부터 끈적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난리도 아니네.”
다슬이 저 멀리서 보이는 남녀 한 쌍을 보며 낄낄 웃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키스를 하며 서로에게 앵겨 붙어있는 상태의 두 남녀.
허나 그런 두 사람을 제지하는 이들은 거리에 아무도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남녀를 응원하듯 휘파람을 부는 이들마저 보였다.
“오빠는 이런 데 처음 와 보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다슬이 딴죽을 걸었다.
이게 또 사람 놀리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뻔하죠 뭐.”
히죽거리는 다슬의 볼에는 약간의 홍조가 드러나 있었다.
‘아까 떼쓰던 건 다 풀렸나 보네.’
취하기만 하면 장난을 치면서 놀리는, 평소의 다슬다운 모습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그런 날 보며 다슬이 말을 이었다.
“야한 티는 다 내면서 은근히 숙맥이잖아요, 오빠는.”
“내가 숙맥이라고?”
“클럽도 처음이라면서요.”
“클럽이야 지금까지 관심이 없었던 거고.”
“그럼 살면서 제대로 놀아본 적도 없다는 거잖아요. 숙맥 맞으면서 변명은.”
“클럽에서 못 놀아봤으면 제대로 놀지도 못한 거냐……?”
“당연하죠.”
얘는 가끔 보면 노는 부분에 한해서는 뭔가 엄격한 기준이 있는 것 같다니까.
어차피 이런 상태의 다슬에게는 말로 이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디 클럽으로 가면 되는 건데?”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보는 다슬의 말에 나는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내 말에 다슬이 어깨를 으쓱였다.
“좀 기다려 보세요. 아직 멀었으니까.”
“벌써 두 시간이나 기다렸는데?”
그리 말한 나는 빈 맥주잔을 들고 흔들었다.
참고로 이미 나와 다슬은 7시부터 6잔의 맥주를 비운 상황.
처음 시킨 안주도 거덜나고 이미 두 번째 안주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다슬이 먹은 거지만.
“슬슬 개장 시간 아냐?”
“됐으니까 일단 마시자고요.”
“난 됐어.”
“그럼 내 거 시켜야지~. 사장님!”
내 물음에도 개의치 않는 듯 다슬이 고개를 돌려 빈 맥주잔을 들었다.
먹는 거 하나는 진짜 타고났네.
종업원에게 맥주 두 잔을 시킨 다슬이 나를 보며 말했다.
“누가 아마추어 아니랄까봐 진짜 하나도 모르네.”
“네, 선생님. 그러니까좀 가르쳐 주시죠.”
능글맞게 대꾸하자 피식 웃는 다슬.
곧이어 주문한 맥주가 나오자 잔을 들며 다슬이 말을 이었다.
“클럽 개장하자마자 가면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좀 불타오를 때 딱 가줘야 재밌게 놀 수 있는 거라고요.”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우리 목적 잊은 건 아니지?”
“안 잊었거든요.”
거기까지 말한 다슬이 새로 시킨 생맥주로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맥주를 마시는 소리와 함께 살짝 튀어나온 그녀의 목젖이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얘는 여자인데도 목젖이 보이네.
목젖 꿈틀거리는 게 술 한 번 참 맛깔나게 먹는다 싶다.
“푸하.”
탕.
금세 맥주잔 반을 비운 다슬이 테이블에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날 보며 씩 웃었다.
“그래도 좀 놀 수는 있는 거잖아요. 제가 클럽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랬어?”
“오빠 만나기 전에는 거의 클럽 죽순이였거든요.”
“아, 네. 그러시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훗, 저도 제가 대단한 거 잘 압니다.”
내가 비꼬는 걸 모르는 건지 자랑스럽게 웃는 다슬.
아무튼 술 마시면 넉살 하나는 참 대단하단 말이지.
“아무튼 좀 더 기다려 봐요.”
다슬이 시선을 바깥으로 던지며 말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스스로 죽순이라고 말할 정도니 잘 알겠지.
그렇게 우리는 별 의미 없는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허나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몇 시간 째 잡담을 나누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암…….”
서로간에 대화도 줄어들고 마시는 술도 늘어나면서 절로 하품이 나왔다.
허나 이미 못 볼 꼴 다 본 만큼 다슬은 그런 내 태도에 신경조차 쓰지 않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되는 거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다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슬슬 일어나죠.”
오, 드디어 타이밍인가.
계산을 마친 우리는 밤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해질녘이던 이전과는 달리, 주변은 완전히 혼란 그 자체였다.
“우웨에엑.”
“야, 저거 그 때 너 아니냐?”
“전 토는 안 했거든요.”
구석진 곳에서 토를 하고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이는가 하면,
“거기 잘생긴 오빠! 여기 좀 보고 가요! 우리 가게 물 괜찮다니까!”
호객행위를 하는 젊은 여자 삐끼들이 접근하기도 하고,
“네, 누님들! 오늘은 그 유명한 한밤 중의 XX로 한가운데에 나와 봤는데요!”
심지어 개인방송을 하는 예쁜 스트리머들도 눈에 띈다.
흠, 저 사람은 반반한 거 보니까 돈 좀 벌게 생겼는데.
“어때요?”
왁자지껄한 거리를구경하는 사이 다슬이 내 어깨를 툭 툭 치며 물었다.
여우같은 미소를 짓는 다슬의 모습에 나는 모른 척 되물었다.
“뭐가?”
“오빠 이런 거리 솔직히 처음 와 봤잖아요. 아니에요?”
일부러 모른 척 해도 얘는 꼭…….
“……그렇긴 하지.”
짓궂게 묻는 다슬을 보며 나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쪽팔리지만 인정한다.
유흥이 넘쳐나는 밤거리를 다니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아싸인 나는 고만고만한 친구들과 동네 술집이나 들락거렸을 뿐이다.
이렇게 대놓고 퇴폐적인 분위기를풍기는 거리에는 굳이 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나와 다슬이 있는 곳은 말 그대로 클럽으로 유명한 거리 중 한 곳.
원래 세계 기준으로든 이 세계 기준으로든, 이렇게 일부러 클럽이 성행하는 밤거리를 온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 온 소감이 어떠냐고요.”
“어떠냐고?”
기대하는 눈빛의 다슬을 향해 나는 가차 없이 말했다.
“개판이야.”
“푸하하!”
내 말에 다슬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빵 터뜨렸다.
뭐야?
이 말이그렇게 웃기나?
“오빠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한참을 웃은 다슬이 겨우 웃음기를 거두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오빠 은근히 선비 같은 기질이 있으니까요.”
“야, 내가 섹파가 몇 명인데선비래?”
“그래서 웃긴 거예요.”
참고로 또 다른 섹파가 있다는 얘기까지 대놓고 할 정도로 친한 건 다슬이 유일하다.
물론 화연도 내가 섹파 선언을 한 만큼 알고는 있을 테지만, 적어도 눈앞에서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화연이 다슬 만큼 대담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니 이런 얘기를 해도 받아줄 정도로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는 다슬이 유일했다.
“그래도 뭔가 재밌지 않아요?”
“뭐, 확실히 구경하는 재미는 있네.”
“그죠? 이런 거리 걸으면 뭔가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하잖아요.”
“그렇긴 하네.”
“그래서 진짜 심심할 땐 별 이유 없이 이 주변을 걸을 때도 있어요.”
거기까지 말한 다슬이 미소를 지었다.
허나 나는 그런 다슬의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랑 서로 개인적인 얘기는 거의 안 해봤네.’
나는 문득 다른 섹파들과 나와의 관계를 떠올렸다.
자매와 함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주화연.
남편과 사별하고 나와 짧은 정사를 즐긴 유진아.
각자 어느 정도 생활상을 알고 있는 반면, 다슬의 경우에는 대학생에 남자 경험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 외에는 사적으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어느 대학교 학생인지조차 모른다.
참고로 박소진 그 여자는 직업상 스스로를 감추는 데 특화된 데다, 아직 제대로 관계형성도 되지 않았으니 넘어가자.
아무튼.
어쩌면 다슬의 경우에는 남자를 갈구하고 친화적인 성격도 내가 모르는 사생활과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심하면 연락해.”
그런 다슬의 표정에 괜히 나조차 감상적이게 된 것일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네?”
생각지도 못한 내 말에 다슬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흠, 역시 괜히 말한 건가.
여친도 아니고 그냥 섹파인 관계인데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허나 이미 저지른 이상 후회해도 늦었다.
거기다 다른 섹파들과 달리 딱히 이런 말을 해도 집착할 것 같진 않으니까.
뭐, 이 녀석이라면 괜찮겠지.
“연락하라고. 나도 한가한 사람이니까.”
“아…….”
재차 말하자 다슬이 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눈빛이 부담스러운데.
“……그럴게요.”
한참 동안 말없이 날 보던 다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갑자기 씩 웃으며 내 팔뚝을 양팔로 확 붙잡는 게 아닌가.
“뭐야, 갑자기.”
“그냥요. 헤헤.”
억지로 다슬의 팔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작게 입꼬리를 올린 그녀의 미소가 너무도 기뻐 보였기에.
“나 참.”
나는 한숨을 쉬며 그런 다슬의 행동을 받아들였다.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내 팔뚝을 붙잡고 걷는 다슬과 나.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한 쌍의 연인이었다.
***
그렇게 연인 놀이(?)를 하며 거리를 걸은 지 약 10여 분.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야?”
커다란 입구 바깥으로 땅마저 울리는 소음이 여기서도 느껴질 정도다.
입구 앞으로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가드에게서 팔찌를 받아 한 명씩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판타지 소설 던전 입구 같은 느낌마저 드네.
“네. 으,빨리 들어가고 싶다.”
클럽 앞에 선 다슬의 표정에서 고양감이 전해져 왔다.
“사실 여긴 너무 노골적인 곳이라 저도 가끔만 오는 곳이긴 한데.”
“노골적?”
“오빠가 원하는 그런 거 말이에요.”
“얼마나 노골적인데?”
“화장실만 가도 알 수 있을 거예요.”
화장실?
이게 무슨 뜻이지?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해하지 못한 나를 보며 다슬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다슬이 내 팔뚝을 이끌며 말했다.
“한 번 직접 가서 봐요.”
“아니, 줄 서야지.”
“괜찮아요.”
아니, 저렇게 줄까지 서 있는데 마음대로 들어가도 되나?
허나 당황한 나와 달리 다슬은 당당하게 나와 함께 클럽 앞 가드에게 이끌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와 다슬을 본 가드가 잠시 나를 훑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깍듯한데?
“손목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아, 네.”
가드의 말에 따라 나와 다슬이 손목을 내밀었다.
놀이공원에서나 차던 입장 팔찌를 찬 뒤 가드가 입구로 들어가라는 듯 손짓했다.
“들어가시죠.”
“돈 안내도 되나요?”
“손님은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다 돈 내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
“야, 최다…….”
내가 부르기도 전에 다슬은 이미 입구 쪽으로 신이 나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벙찐 표정으로 그런 다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니, 뭔데.
내가 오자고는 했지만 나도 좀 챙겨달라고…….
“야, 야! 같이 가!”
나는 그녀를 따라 황급히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왜 이렇게 뜸을 들여요?”
뒤따라온 것을 확인한 다슬이 뭐 하냐는 듯 손짓했다.
허나 나는 그런 다슬의 태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쿵, 쿵, 쿵!
건물 내로 들어서기 무섭게 몰아치는 소음이 내 귀를 강타하고 있었으니까.
와, 진짜 존나 시끄럽네.
“야!”
하도 시끄러운지라 대화를 하는 데에도 거의 소리를 쳐야 할 정도다.
심지어 입구 근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내 부름을 들었는지 다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우리는 왜 그냥 통과시키는 건데!”
“오빠는 잘생겼으니까 그냥 통과시켜주는 거잖아요!”
……그런 건가?
클럽을 내가 와 봤어야 말이지.
“이래서 아마추어는!”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던 다슬이 나를 보며 손짓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에서 엄청난 소음과 불빛이 나오고 있었다.
“빨리 와요! 놀아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