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7. fever time(6)
다음날.
나는 직장 동료인 이연주와 함께 본사인 피버 에이전트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본사로의 파견, 이연주는 연습생으로의 복귀.
물론 파견이라는 건 명목상이고 내 얼굴이라도 확인할 겸 불렀다는 것이 나와 최수민의 생각이다.
이연주 그녀야 원래 본사 소속이었으니 부르는 게 딱히 이상할 건 없고.
“쫄지 말고 하던 대로 하면 돼요.”
본사로 향하는 동안 연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괜히 반반하게 생긴 애들이 우르르 인사한다고 막 당황하지 말고요.”
“제가 연주 씨 같은 줄 압니까.”
“흥, 가면 저도 나름 선배라 밑에 애들 좀 많거든요? 인사하는 거 보고 놀라지나 마요.”
“연습생도 선후배가 있습니까?”
“좀 복잡하긴 한데……. 정확히는 데뷔 이후로 선후배를 결정해요. 일단 연습생끼리도 간단하게 높여 부르긴 하죠. 거기다 특히 전 좀 우수한 편에 속하거든요. 내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다 말해놓고는 무슨…….”
“네?”
“혼잣말입니다.”
“아, 그리고 저야 당연히 친하니까 괜찮지만 현수 씨는 저 따라하면 안 돼요.”
“뭘요?”
“다른 애들한테 편하게 대화하거나 그러지 말란 얘기에요. 저희야 동료 관계지만 애들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당연한 걸…….”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예요, 혹시나 해서.”
참 낯간지러운 얘기를 이렇게 뻔뻔하게 말하다니.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에휴.”
“웬 한숨이에요.”
“그 쪽 보면 한숨만 나와요.”
볼을 부풀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연주.
그런 그녀의 모습에 숨기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실제로 나이도 어리고 안하무인 같은 성격인 건 알고 있으니 이젠 당황스럽고 말고 할 것도 없긴 하다.
딱히 불쾌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름 친해졌다 생각해서 이러는 거라 생각하면 나름 이해는 간다만…….
“아무튼, 촌스럽게 막 힐끗거리거나 그러지만 마요. 옆에 있는 나까지 쪽팔리게 하지 말고요.”
“아, 예에…….”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요.”
아무리 그래도 수십 분 째 이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지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묘한 부심을 부리는 연주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나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이를 테면 앞으로 가게 될 본사에 대한 것이라던가.
‘피버 에이전트라.’
현재는 중소 기획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연예 활동까지 하고 있는 회사.
벌써 회사가 설립 지 10년이나 지난 만큼 나름 뼈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사실 처음에는 연예 기획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업을 하고 있었다.
아마 창조주가 보내준 설정이 아니었다면 진짠가 의심부터 하고 봤겠지.
피버 에이전트의 초기 형태는 다름아닌 인력 사무소였으니까.
소위 노가다라고 불리는 그곳.
각종 건설 및 산업 현장에 뛰어드는 진정한 산업역군들의 일터.
바로 그런 일을 과거의 피버 에이전트는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10년 전인 과거와 현재 본사의 대표는 동일하다.
즉, 노가다 판이었던 10년 전의 대표도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여자 인부라, 으음…….
뭐, 그래도 그 당시에도 대표였다고 하고, 그러니 직접 현장직에서 일하거나 하진 않았겠지.
실제로 상상하는 것만큼 우락부락한 모습은 아니리라 믿는다.
“후…….”
암울한 상황 속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온다.
10년 전에 차린 회사고, 당시에도 인력소 사장이었다면 최소 30은 넘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 나이가 40줄을 넘어간다는 얘기.
내 나이가 이제 스물 여섯이니, 나이차만 해도 띠 동갑은 훌쩍 넘어선다.
이 정도면 이모나 고모뻘에 가깝다.
참고로 소설 속 주인공인 정기발은 이런 여자를 성노예로 삼고 부려먹었다는 거다.
하물며 내가 지금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이 존경심이 든다.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라고는 하지만, 참 대단한 놈이야…….
“어떡한다…….”
“그렇게 긴장돼요?”
내 중얼거림에 앞서 걷고 있던 연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혼잣말이랍시고 말한 건데 어떻게 내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흐음……. 평소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그야 그럴 수밖에.
잘하면 쭈글쭈글한 아줌마를 상대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확실히 이런 걸 보면 정조역전세계라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정조만 역전된 것도 아니니 더 복잡하단 말이지.
이 세계는 정조역전세계이나, 단순히 ’정조‘ 하나만이 역전된 것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인력 사무소에 여자 인부가 대표로 앉는 상황도 나오는 걸 테고.
그렇다고 해도 육체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은 만큼, 세계 구조가 뒤바뀔 정도로 달라진 건 아니다.
전반적으로 직업에 따른 성별 분포가 원래 세계보다 조금 더 고르게 분포해있을 뿐.
따지고 보면 큰 틀은 원래 세계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의 여자 인부나 소방대원, 노가다꾼 등의 단순노동에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
원래 세계에서는 코스프레 취급이나 받을 멜빵바지에 곡괭이를 든 여자 광부 사진이, 10년 전에는 흔해빠진 흑백 사진으로 인터넷에 쉽게 검색된다는 것이 그런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치면 여자가 대표인 인력 사무소 자체는 그리 희귀할 것이 없긴 했다.
뭐, 지금은 세계 구조니 뭐니 하는 세계관 설정을 하나하나 파고들 틈 따위는 없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처리해야겠지.
마침 본사에서 내려온 사람도 있고 하니, 그 본사 대표라는 작자가 어떤지나 한 번 물어봐야겠다.
“본사 대표라는 분은 어떤 분인가요?”
“대표요?”
내 물음에 연주가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곧이어 그녀의 미간이 팍 찌푸려졌다.
“뭐……. 인간적으로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죠.”
“어떤 점에서요?”
“싸가지가 없어요.”
자신이 속한 회사 대표에게마저도 폭언을 일삼는 이연주.
이런 거 보면 한결같긴 하네.
“연주 씨가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제가뭘요.”
“처음에 만났던 거 기억 안 나요?”
“아, 그건 좀 넘어가요! 언제적 일이야, 그게. 뭐, 제가 좀 직설적인 건 인정하지만…….”
“단순히 직설적인 것만은 아닌 거 같지만요.”
“계속 태클 걸면 더 얘기 안 할 거예요.”
부루퉁한 연주의 표정을 보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쯧, 아무튼…….”
침묵을 지키는 내 모습에 연주가 작게 혀를 차더니 말을 이어갔다.
“대표라는 사람이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에요. 솔직히 우리 회사 대표이긴 하지만 존경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안 들거든요."
“그 정도예요?”
그래도 아이돌 데뷔까지 시켜줄 정도라면 나름 수완은 있다는 건데.
“뭐……. 그래도 능력은 인정해요.”
의아하게 여기는 내 모습에 연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수년 만에 저희 회사를 성장시킨 장본인이니까요. 단순 단역 위주의 아르바이트 회사를 아이돌 데뷔까지 시킬 정도로 성장시킬 정도면 말 다 했죠.”
“그런데도 싫다는 거예요?”
“네. 일단 입이 너무 더러워요. 무엇보다…….”
“무엇보다?”
“남자를 엄청나게 밝혀요. 그것도 대놓고.”
이 세계에서 여자한테 남자를 밝힌다는 소릴 비난으로 듣는 40대 여성이라…….
이쯤 되면 무서워질 지경인데.
팔에 소름이 돋는 사이 연주가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연습생은 물론이고 단역 배우나 다른 관련 종사자들 중에서도 대표 싫어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왜요?”
“생각해 봐요. 얼굴 볼 때마다 어디 업소에서 남자랑 잤다고 대놓고 말하는 대표를 누가 좋아하겠어요? 아무리 남자가 많이 없는 회사라고는 해도 그렇지.”
“……그런데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합니까? 그 정도면 신고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인데.”
“어차피 여초회사라 그냥 쉬쉬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에요. 남자 앞에서는 은근히 조신한 척 하기도 해서 남자 직원들은 대표 실체를 잘 모르기도 하고요.”
“회사가 굴러가는 게 신기하네요.”
“말했잖아요. 능력은 있는 사람이라고. 인간적인 관계 따위는 진작에 끝났어요.”
거기까지 말한 연주가 엄지와 검지로 작게 원을 만들었다.
“다들 이거만 보고 하는 거지.”
그냥 돈 때문에 이어지는 사무적인 관계에 불과하다 이건가.
뭐, 그건 이해하겠는데…….
“이런 이야기를 저한테 막 해도 되는 겁니까?”
따지고 보면 나는 본사 입장에서는 외부인이나 다름없을 텐데.
뭐, 나야 이런 정보를 들어서 나쁠 건 없다만.
“……으음.”
내 지적에 그제서야 연주가 작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설마 지금 말실수라는 걸 깨달은 건가?
“그, 그래도 저희 그래도 이 정도 얘기는 할 수 있는 사이잖아요. 아니에요?”
헐레벌떡 말을 잇는 연주의 모습에 절로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이걸 친분으로 무마하려는 건가.
여러모로 참 대책 없는 사람이네.
“뭐, 연주 씨가 그렇게 여긴다면 그런 거겠죠.”
“……어째 말투가 영 시원찮네요.”
“걱정 마요. 이런 얘기 누구한테 하진 않으니까.”
“다, 당연히 그래야죠.”
말까지 더듬는 걸 보아하니 꽤나 당황한 모양이다.
그렇게 불안하면 말 좀 조심해서 하지.
애써 당황한 표정을 숨긴 채 그녀가 말했다.
“아무튼 이참에 그냥 말해두는 거예요. 현수 씨는 남자기도 하고. 이런 얘기 들으면 조심해서 나쁠 거 없잖아요?”
“그렇네요. 고마워요.”
“크흠.”
머쓱한 표정을 지은 연주가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연주의 뒤를 따르며 머릿속으로 대표의 모습을 상상했다.
남자를 상상 이상으로 밝히는 40대 여성이라.
이래서 원작에서도 성노예로 부리는 게 가능했던 거겠지?
“…….”
물론 그리 생각할수록 나로서는 더욱 우울해질 뿐이었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성노예보다는 좀 더 온건한 방식으로 참교육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래도 이모뻘 되는 여자 보지에 박아대고 싶지는 않으니까…….
***
연주와 대화를 하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본사인 피버 에이전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
정문 앞에 선 내가 작게 감탄사를 뱉었다.
사옥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네.
중견 규모 회사라기에 그다지 클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그래도 10년 먹은 짬밥은 있다 이건가?
“감탄만 하지 말고 빨리 들어가요.”
멍하니 있는 내 팔목을 붙든 연주가 서둘러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앞서 수민이 방문할 것이라는 언급이 있었던 덕택일까.
가드들을 비롯해 꽤 삼엄해 보이는 경비와는 달리 출입 절차는 간단하게 진행됐다.
살면서 연예 기획사에 출입하는 날이 올 줄이야…….
“와, 저거 설마 식당이에요? 무슨 고급 뷔페 같은데.”
“실제로 뷔페식이긴 해요.”
“저기는요? 안에 사람 엄청 많이 있는 거 같은데.”
“그냥 단역 출연자들이 대기하는 곳이에요. 기획사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단역 배우나 엑스트라가 대다수인 곳이니까요.”
“오, 그럼 저기는?”
“에휴.”
으리으리한 건물 내부에 들떠 질문 공세를 퍼붓자 연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이런 내 모습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내 이럴 줄 알았어. 촌놈처럼 굴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구경도 못 합니까?”
“일단 3층에 대표님 사무실 있으니 거기부터 가 봐요. 전 먼저 들릴 곳이 있으니까.”
억울하게 반박하는 내 모습을 본채도 하지 않은 채 연주가 고개를 홱 돌렸다.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
“어디 가요? 연주 씨도 대표님 보러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전 원래 여기 소속이니 나중에 가도 괜찮아요. 그리고 그 인간 얼굴 보기 전에 다른 애들부터 보려고요.”
“다른 연습생들이요?”
“네.”
“여자예요?”
“……그런데요.”
“아이돌 연습생이면 다들 연주 씨처럼 예쁘겠네요?”
“네, 네?!”
갑작스런 칭찬에 연주가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립 서비스인데 너무 당황하네.
“무, 무슨 소리에요!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해요!”
“예이, 예이.”
뭐, 이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와 미모의 연습생들 사이에서 노닥거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우선 할 일부터 처리하는 게 순서겠지.
아쉬움을 거둔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럼 먼저 다녀올게요.”
“자, 잠깐……!”
몸을 돌리려던 순간 내 옷자락이 턱 걸렸다.
의아한 심정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내 소매를 붙잡은 연주의 모습이 보였다.
“왜요?”
“저기, 아까 그 말은…….”
내 소매를 붙잡은 채 복잡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연주.
아, 이거 보니까 또 놀리고 싶어지네.
“똥 마려우면 화장실 가요.”
피식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연주를 골렸다.
그 말에 연주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개졌다.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에이 씨!”
그제서야 내 소매를 거칠게 떨쳐내는 연주 양.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날 노려보며 씩씩거리더니, 결국 말도 없이 홱 몸을 돌렸다.
“큭큭.”
말도 없이 떠나는 연주의 뒷모습을 보며 참았던 웃음이 새어나왔다.
참 놀리는 맛이 있는 여자라니까.
어떻게 이렇게 찰지지?
“그럼.”
뭐, 노는 건 여기까지 하고.
이제는 진짜 볼일 봐야지.
그렇게 떠나가는 연주와 반대 방향으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목표는 바로 3층에 있다는 본사 대표의 사무실.
자, 그럼…….
어디 얼굴 구경이나 한 번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