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7. fever time(7)
사옥의 3층에 위치한 대표의 사무실.
도착한 그곳은 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무실 옆에는 떡하니 비서로 보이는 20대 남성까지 있었다.
여기 비서까지 있어야 될 정도로 큰 회사였던가?
“피버샵에서 오신 분 맞으시죠?”
“네.”
“들어가시죠. 안에서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등장에 꾸벅 고개를 숙이며 사무실로 손짓하는 남성.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들리는 명령조의 어투.
일단 목소리는……. 생각만큼 나쁘지 않은 느낌.
다만 싸가지가 없다더니 그 말대로인 모양이다.
끼익.
나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문을 열었다.
부디 아줌마가 아니기를.
“안녕하십니까.”
문을 열자마자 상대방을 확인하지도 않고 고개를 꾸벅숙였다.
피버 에이전트의 대표이자 사장.
그는 이 세계에서 아이돌 산업까지 손을 댈 정도의 수완과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대표의 인성이 어떻든 간에, 그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봐야겠지.
지금은 적의가 없다는 첫 인상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욱 방심을 하고 내가 다루기도 쉬워질 테니까.
“이번에 피버샵에서 파견 근무를 나오게 된…….”
“아, 됐어.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고개를 숙이며 말하는 내 말을 끊는 여성.
가만히 바닥을 보고 있는 와중 끼익 의자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김현수라고 했지?”
“네.”
“그만 고개 숙이고 얼굴 좀 들어봐. 구경이나 해 보자.”
아예 대놓고 하대네.
그녀의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듦과 동시에 마침내 대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눈앞에는 빳빳하게 고개를 든 나를 품평하듯, 턱에 손을 집고 날 관찰하는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성.
탁자 위 명패에는 ‘피버 에이전트 대표 김옥희’라는 이름이 떡하니 보였다.
얼굴을 보면 그렇게 옛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이름은 무슨 70년대에서나 지을 법한 감성이다.
“흐음…….”
날 바라보는 대표 김옥희의 시선이 점차 노골적으로 변했다.
대놓고 위아래로 훑어보는 대표의 시선은 마치 내 몸을 구석구석 핥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런 기분이었나.
원래세계에서 종종 남성들에게 시선 받는 걸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 순간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생긴 값은 했나 보네.”
속으로 나에 대한평가가 끝난 것인지 툭 던지는 대표.
어째 칭찬이랍시고 한 거 같은데 왜 기분이더럽지?
“멍하니 서 있지 말고 앉지 그래?”
“아, 예.”
감사를 표해야 되나 겸손한 척을 해야 되나 고민하는 사이, 대표가 근처의 접객용 소파로 손을 뻗었다.
내가 소파로 다가가 앉자 그녀가 자신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자리에서 내 맞은편 소파로 자리를 옮긴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흠…….”
“저, 대표님?”
“얼굴로 돈 벌 만하네.”
“네?”
“그 얼굴이면 돈 줄 만하다고.”
“그, 그렇습니까.”
당사자 앞에서 이렇게 대놓고 얼굴 품평을 하는 사람이라니.
인성 얘기는 앞서 들었다만 막상 눈앞에서 겪으니 나름 각오를 했는데도 황당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할 말을 잃은 내게 대표가 거리낌 없이 내게 질문을 쏟아냈다.
“나이는?”
“스물여섯입니다.”
“조금 많긴 해도 뭐, 그 정도 얼굴이면 괜찮겠네. 대학교는 나왔나?”
“휴학했습니다.”
“그래? 아깝네. 돈 때문에?”
이것도 일종의 면접시험인 걸까.
그렇다기엔 질문 의도가 너무 개인적인 것까지 묻는 거 같은데.
“네, 뭐…….”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눈앞에 있는 대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의외로 본사 대표인 김옥희의 얼굴은 상당히 괜찮은 편에 속했다.
물론 그녀가 40대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는 전제 하에.
단순히 얼굴만 보면 지금껏 만난 섹파들과는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젊게 쳐도 30대 중반 혹은 그 이상.
그나마 자글자글한 주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다행일까.
특히 저 몸매.
저 정도면 쭉 빠진 내 섹파들도 혀를내두를 정도였다.
무슨 근육이 웬만한 남자보다도 울끈불끈했으니까 말이지.
티셔츠 안의 적당히 볼륨이 있어 보이는 가슴은 처진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쫙 달라붙은 청바지 아래로 보이는 허리 라인은 잘 관리한 20대로 보였다.
특히나 저 팔뚝.
짧게 입은 티셔츠 너머로 보이는 알통은 3대 500은 좆밥임을 과시하는 듯했다.
쉽게 예시를 들자면…….
옛날 남자 목욕탕 입구에 달린 달력에서 종종 본, 보디빌더 여성들의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면 부담스러울 지경인데…….
“그럼 형식적인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
그리 말한 대표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들었다.
곧이어 내게 건네는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하얀색 봉투.
“자.”
“이게 뭡니까?”
“이번에 패션몰에서 덕분에 수익이 많이 늘었더라고. 이건 그에 따른 보상이야. 금일봉 정도는 너도 알지?”
“아……. 네.”
뭐야, 진짜 주네?
심지어 슬쩍 살펴본 봉투 안은 표정 관리가 안 될 정도로 빵빵했다.
인간이 덜 된 거 같아서 안 주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돈 쓰는 데는 그다지 인색하지 않나 보다.
아니면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줄 정도로, 패션몰에서 증가한 수익이 본사에도 꽤나 영향을 끼친 걸지도 모르고.
“좋아하기는.”
내 표정을 보며 김옥희가 피식 웃었다.
“아무튼 앞으로도 힘내 달라고.”
“감사합니다.”
떨떠름한 기분을 숨긴 채 나는 순순히 봉투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돈 준다는데 마다할 필요는 없지.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본론이요?”
“그래. 오늘 내가 자네를 부른 진짜 이유 말이야.”
진짜 이유?
지금까지 면접이랍시고 대화 나눈 건 본론이 아니었단 말인가?
“현수 군.”
매서운 표정으로 날 보던대표가 돌연 씨익 웃었다.
청바지 너머로 느껴지는 튼실한 허벅지를 꼬는 그녀.
그러고는 내 앞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자네도 연예계에서 일하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지?”
“뭐, 꼭 그런 것만은…….”
“에이, 여기까지 와서 뭘 빼고 그러나. 자네도 그 얼굴로 돈 좀 벌려고 여기에서 일하는 거잖아. 특히 연예인이 되면 수십 배는 더 벌 수 있을 테니까. 아니야?”
“…….”
뭐, 이 세계에서 꽃뱀 비스무리하게 산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만…….
막상 이런 인간한테 들으니 뭔가 열 받네.
“자네가 여기서 계속 일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알아?”
“글쎄요.”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돼.”
거기까지 말한 대표가 오른손의 검지를 치켜들었다.
“첫 번째는 돈. 뭐, 하지만 이건 우리 회사에 일하기로 결심한다면 내가 얼마든지 지원해줄 테니까 일단 넘어가고.”
여전히 손을 든 채로 대표의 중지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브이 표시를 한 채로 대표가 물었다.
“두 번째는 뭐일 거 같아?”
“모르겠습니다.”
“젊은 사람이 좀 생각하는 척이라도해 봐. 어딜 날로 먹으려 그래.”
“아, 예…….”
“쯧쯧, 나 때는 안 이랬는데.”
말을 아끼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차는 김옥희 대표.
이거 완전 하는 짓이나 말이 완전히 꼰대 스타일인데.
이 집 비호감 스택 잘 쌓네.
“두 번째는 말이야. 바로 자존심이야.”
“자존심이요?”
“그래. 자존심. 특히…….”
거기까지 말한 대표가 돌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라면 더더욱 자존심을 접어야 할 때가 있단 말이야.”
“여자는 안 그렇다는 얘기인가요?”
“다르지.”
점차 대표의 음흉한 미소가 한층 더 짙어졌다.
“여자와 남자는 아주 달라. 아주…….”
중얼거리는 대표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역겹네 진짜.
뭐라고 해야 될까.
컨디션 안 좋을 때 술 먹었다고 진창토할 때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원래 세상에서 살던 미녀들도 이런 기분을 달고 살았던 거겠지.
지금까지 얼굴 믿고 나댄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해질 지경이다.
“자네도 잘 생겼으니 잘 알 거야.”
내가 내심 불쾌해 하는 것도 모른 채 대표는 말을 이었다.
“어렸을 적에 여자 좀 꼬이거나 했던 것 말이야.”
“글쎄요, 딱히…….”
“뭘 점잔을 떨고 있나.”
내가 원래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른 채 지껄이는 대표.
“여자란 그런 동물이야. 남자를 보면 환장하는 본능에 지배당하는 짐승이지. 물론 남자도 그런 면모가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여자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할 수 있어. 남자와 달리 여자는 즉발성이고 단순하지만, 그런 만큼 솔직하거든.”
처음 보는 남자에게 참으로 저급한 말을 쏟아내는 대표.
허나 막상 그 말을 듣고 있음에도 쉽사리 대꾸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나도 내심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나도 이 세계에서 정조역전이라는 것을 이용하며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니까.
”그 말인 즉슨, 남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일들을 하는 걸로도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거야. 왜냐? 단순하고 솔직하다는 건 그만큼 다루기가 쉽다는 얘기거든.“
눈앞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들을수록 토악질이 나올 것만같았다.
이건 아마도 일종의 동족혐오겠지.
“설마 그 자존심을 접어야 될 일이라는 건.”
이쯤 되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모를 수가 없었다.
내 물음에 대표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정도 말했으면 자네도 알아들었을 거 아냐.”
역시 그런 뜻이었나.
그래, 분명 지금까지의 나와 눈앞의 대표와는 비슷한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나라고 해도 나름의 원칙이 있었다.
지금의 나와 대표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는 부분.
적어도 나는…….
“몸이라도 팔라, 이 얘깁니까?”
눈앞의 인간마냥, 성적 욕망을 도구처럼 취급하지는 않는다.
“어허!”
내 말에 대표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경고하듯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대표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말 함부로 하지 말게. 이건 서로간의 합의에 따른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합의요?”
“그래. 어디까지나 이건 강요가 아니야. 그저 자존심을 접으면 더욱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걸 얘기하는 거니까. 남자는 돈과 명예, 여자는 순간의 쾌락. 이걸로 서로 윈윈하는 거지.”
가만히 바라보는 내 시선을 어떻게읽은 것일까.
돌연 씨익 웃은 대표가 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주었다.
“뭐,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 아니겠나?”
“명함은 왜 주는 겁니까.”
“생각나면 언제든 내게 언질을 달란 얘길세. 다리 정도는 놓아줄 수 있으니.”
이 인간……. 진짜 인간말종이네.
아이돌이란 무엇인가.
바로 대중들의 우상(idol)이 아닌가.
그런 일의 최고봉에 있는 사람이 이런 소리를 할 수가 있다니.
뭐……. 확실히 이 여자와 나는 비슷한 느낌이 있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나도 확실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섹스라는 것을 ‘수단’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거다.
걸레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선을 넘지 않고자 항상 주의해 왔다.
적어도 섹스로 인한 어떤 보상을 원한 적은 없었다.
차라리그냥 너랑 한 판 하고 싶다, 이랬으면 나았겠지.
본질적으로는 나도 다를 것이 없으니까.
”그렇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에는 저도 백분 동의합니다.“
아이돌을 목적으로 성상납을 하라니.
그런 방식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좋다.
네가 이 세계 여자들의 ‘성욕’을 이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나도 네 식대로 맞춰 행동해 주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저도 대표님께서 좋아하실 만한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그리 말하는 너도 이 세계의 ‘여자’란 걸 내가 똑똑히 알려 주지.
”오오, 그래?“
내 말에 대표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로군. 젊은 사람들이 피곤한 경우가 많은데 말이야. 아주 흘륭해. 어때? 뭣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아,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요. 오늘 면접 이후에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이구, 조심성이 많은 청년이구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그러면 오늘 면접은 여기까지 하지.“
”네?“
갑자기 문 밖으로 안내하는 대표의 모습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만. 이게 끝이라고?
파견 건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디로 가고?
설마 이 여자…….
진짜 내 얼굴만 보고 말 생각이었던 건가……?
”저, 여기까지 왔는데 우선 제가 할 일부터…….“
”됐어, 그런 사소한 건. 정 궁금하면 앞서 본 비서한테 얘기하면 대답할 거야.“
내 물음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휘 내젓는 대표.
그런 대표의 모습에 속으로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무슨 일을 이렇게 대충 진행해?
”그럼 시간 날 때 다시 들르라고.“
내가 문을 나서기 무섭게 대표가 문을 쿵 닫았다.
나는 그런 사무실 앞에서 멀거니 선 채로 중얼거렸다.
”진짜 능력 있는 거 맞아……?“
이건 뭐…….
그냥 섹스만밝히는 무능한 변태 사장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