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8. 연예계의 사정(1)
미리 예약해둔 이자까야로 향하는 길.
그 사이 우리는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방송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예쁘신 거 같아요.“
”정말요?“
뻔한 칭찬임에도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 그녀, 윤화정.
“아핫, 쑥스럽네요.”
옆머리를 슬쩍넘기는 행동에서 이미 단아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풀풀 풍긴다.
이 세계 치고는 참 드문 스타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멍 때린 이유이기도 했고.
참고로 여성스럽다는 건 원래 세계 기준으로 한 말이다.
이 세계 기준으로 여성스럽다는 말은 정반대의 뜻이 되어 버리니까.
“설마 화정 씨 같이 유명한 분과 함께 일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대화를 이어가며 그녀의 프로필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이름. 윤화정.
나이. 스물 두 살.
조용한 스타일의 발라드 가수로 데뷔한 화정은, 데뷔와 동시에 온갖 음악 프로그램 순위에서 TOP10을 달성하며 데뷔와 동시에 실력파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처음 음반이 발매될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1집 앨범에 수록된 음악 10곡 중 4곡이 10위권 내로 들어갈 정도였다.
심지어 그녀의 재능은 음악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정 씨의 용모는 내노라하는 연예인 사이에서도 가히 정점을 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가 유명세를 타게 되는 것은 삽시간이었다.
노래 실력도 출중하고 예쁘기까지 한 그녀였기에 주변에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데뷔와 동시에 엄청난 외모로 화제를 탄 화정은,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예능 방송과 라디오, CF 등등 다양한 활동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킬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데뷔한 지 1년.
현재 20, 30대 중에서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말 그대로 슈퍼스타인 셈이다.
원래 세계의 나였다면 이렇게 만나는 건 꿈도 못 꿨을 정도로 테지.
“감사한 말씀이네요.”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화정이 말했다.
“그래도 유명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에요. 아직 데뷔한 지 1년도 안 됐는걸요.”
“화정 씨 정도 인지도면 꽤 유명하다고 생각되는데요.”
“아하하, 고마워요.”
“아, 그리고 저 지금도 화정 씨 노래듣고 있어요.”
“네? 정말요?”
“팬이거든요. 여기 플레이리스트 보세요.”
곧바로 음원 앱을 켜서 이전에 받았던 노래 파일의 설정창을 띄워 그녀에게 보여줬다.
“와, 엄청 자주 들으셨네요?”
수치를 확인한 화정의 눈이 동그래졌다.
액정에 표시된 재생횟수는 자그마치 789회.
참고로 이건 음원 사이트 자체에서 계산하는 거라조작도 안 된다.
시작부터 끝까지, 배속 없이 완벽하게 들어야 겨우 1회를 채울 수 있는 것이므로.
발라드는 별로 안 듣는 나도 이 사람 노래는 엄청 좋아했다.
오늘 그런 내 취향이 도움이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진짜 팬이셨어요?”
“그렇다니까요.”
“우와, 설마 제 노래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신기하다…….”
“왜 화정 씨가 신기해하세요.”
“역시 이상한 걸까요?”
그리 말하며 쑥스러운지 고개를 돌리는 화정 씨.
그런 한 편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크, 이런 세상에서 저런 여성스러운 면모를 볼 줄이야.
보기 드문 광경에 내 입가에도절로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헤벨레 웃는 거 봐.”
그 순간 옆에서 들리는 불만어린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쯧쯧 차는 연주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선수네, 선수야.”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그보다언니.”
내 말은 대꾸도 안 하고 화정 씨에게 시선을 던지는 연주 씨.
뭐야, 내 말은 왜 씹는데.
“응? 왜?”
“저기.”
뒤를 가리키는 연주의 모습에 나와 화정 씨도 함께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사람들 몇 명이 옹기종기 모여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저기, 윤화정 씨 맞으신가요?”
“꺄악, 언니! 팬이에요! 싸인 좀 해주세요!”
의아하게 여기는 것도 잠시, 돌아보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아, 그렇지.
하긴 연예인이니까.
“뭐야 저거?”
“연예인인가 본데. 그 가수 있잖아…….”
“엥? 진짜?”
내가 홀로 납득하는 사이 환호성에 갈 길을 가던 주변 사람들마저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어느새 우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쌓인 모양새가 되었다.
“아……. 큰일 났네.”
계속해서 모여드는 사람들을 죽 둘러보며 화연 씨의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드러났다.
“어쩌지, 연주야?”
“어쩌기는. 방금 모인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아까부터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던데. 인사라도 하고 오는 게 좋지 않을까?”
“음, 하지만 현수 씨도 있고.”
그리 말하며 미안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화정.
뭐, 약속도 중요하지만 이런 건 이해해 줘야겠지.
화정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팬 관리를 소홀히 하다가는 뒤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오히려 잘 하고 있더라도 욕을 먹는 게 연예인이란 직업이 아닌가.
무엇ㅂ돠 저 표정을 보고 그냥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곤란한 화정을 향해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손을 내저었다.
“아, 전 상관없어요. 연주 씨 말대로 인사라도 하고 오시죠.”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아……. 정말 죄송해요.”
거듭 양해를 구한 화정이 연주에게도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미안해, 연주야. 금방 올게.”
“괜찮으니까.”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화정이 곧바로 팬들 사이로 향했다.
“누나! 팬이에요!”
“저 싸인 좀 해주세요!”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신이 났는지 더욱 커지는 환호성.
갑작스러운 길거리 팬미팅이 된 현장임에도 불구하고, 화연의 표정은불쾌한 낮빛 하나 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나는 군중 속에서 능숙하게 인사를 나누는 화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역시 이런 걸 보면 연예인은 연예인이네.”
“역시는 무슨.”
내 중얼거림에 반응하듯 불쾌한 듯한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고개를 돌린 내 시야로 연주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얘는 또 갑자기 왜 이런데?
“뭐 불편한 거 있어요?”
“제가요?”
“네. 왠지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아뇨, 전혀!”
“…….”
또 시작이네.
솔직하지 못한게 이 여자의 장점이자 단점이란 말이지.
“불만 있으면 그냥 말해요.”
한숨을 쉬고픈 것을 참으며 연주에게 말했다.
“그렇게 뚱하게 있으면 저도 모르니까.”
“제가 언제 뚱하게 있었다고 그래요?”
“지금도 그렇잖아요. 누가 봐도 화난 얼굴인데.”
“화 안 났어요!”
“아, 네. 그러시겠죠.”
“……그 말투 열 받으니까 하지 마요.”
“왜요? 또 때리게?”
“또라니! 안 때렸잖아요! 언젠 누구 때려봤다는 것처럼 그러네!”
“아, 실수. 이런 적이 한 번이 아니다 보니 영 불안해서.”
“으, 진짜……!”
나를 노려보는 연주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됐으니까 말해 봐요.”
뭐,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할까.
저러다가 진짜 화병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 안 하면 저도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 모른다고요.”
“……딱히 화가 나서 말하는 건 아니에요.”
슬쩍 부드러운 말투로 살살 달래니 뚱한 표정이 금세 한층 풀어진다.
허나 말투에서 여전히 부루퉁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아셨죠?”
“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요.”
못마땅하다는 시선과 함께 연주가 말문을 열었다.
“현수 씨는 혹시 사람 가리는 스타일이에요?”
“네? 아뇨, 딱히?”
“그런데 왜 그래요?”
“뭐가요?”
“하는 짓이 평소랑 다르잖아요.”
“제가요?”
“네.”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나만큼 한결같은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도 그럴 게 나한테는 맨날 틱틱거리면서, 언니 앞에서는 헤벌레 웃고 있고…….”
“저기요, 크게 좀 말해주세요. 잘 안 들리거든요?”
“그러니까!”
이해하지 못한 날 향해 연주가 빽 소리를 질렀다.
“왜 사람을 차별하냐 이 말이에요!”
차별?
내가 얘를 차별했다고?
“아니……. 전 딱히 차별한 적 없는데.”
“하지만 딱 봐도 태도가 다르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죠. 화정 씨는 전부터 팬이었는데.”
“저, 저도 곧 연예인 데뷔하거든요?!”
“지금은 일반인이잖아요.”
“큭……!”
별 생각 없이 한 대꾸하자 연주의 입이 다물어진다.
분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는 연주를 향해 내가 재차 물었다.
“설마 제가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 말에 연주가 한동안 나를 말없이 가만히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슬쩍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야, 약간요.”
와, 사람 참 알기 쉽네.
혹여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그대로 아빠 미소가 나올 것 같아입을 꾹 닫았다.
여기서 풀린 모습을 보이면 또 기고만장해서 나불거릴 테니까.
“어…….”
어지저찌 표정을 제어하며 내가 말했다.
“저기, 연주 씨.”
“왜요.”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미안해요.”
“…….”
“설마 연주 씨가 소외감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연주 씨는 좀편하니까 제가 좀 무신경하게 행동하게 되더라고요.”
“친해서 그런 거라고요?”
“왜, 좀 친한 사이끼리는 덜 신경 쓰는 게 있잖아요. 예의도 좀 덜 차리게 되기도 하고. 변명이긴 해도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죠.”
내 해명에 그제야 연주의 표정이 확 풀어졌다.
아무튼 알기 쉬운 여자라니까.
흠, 그보다 저 입가 씰룩이는 거 보니 또 놀리고 싶어지는데.
“그런데 지금 보니 친하다고 생각한 게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나 봅니다.”
“네,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어지는 내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 연주 양.
묘한 쾌감 속에서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이어갔다.
“결국 저 혼자 착각한 거였네요.”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괜히 혼자 나대다가 연주 씨만 불편하게 만들었네요.”
“아니, 그, 그게…….”
“죄송해요. 앞으로는 친한 척 안 할게요.”
“으, 으으으, 그런 게 아니라……!”
놀림 받는 줄도 모른 채 당황해서 손을 휘젓는 연주.
그런 그녀를 보며 나는 속으로 낄낄 웃었다.
그렇게 나는 화정이 볼일을 마칠 때까지 그녀를 놀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뭐, 나중에 진상을 깨달은 연주가 얼굴이 시뻘개져서 고래고래 소리치긴 했지만.
***
팬들과의 만남을 끝낸 뒤 우리는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예요.”
마침내 이자까야에 도착하자 앞서 화정이 앞장서서 문을 열었다.
입구로 들어서는 화정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기대감이 드러났다.
아마 상당한 애주가인 모양이다.
딸랑.
문이 열리는 것과 함께 울리는 방울 소리.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며 가게 내부를 살피니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 괜찮은 거 맞나?
손님이 하나도 없는데?
“아무도 없네요.”
“가게를 통째로 예약했거든요.”
“통째로 예약했다고요?”
“네. 사람들이 많으면 현수 씨나 연주가 불편해질 거 같아서요.”
“왜 저희가 불편…….”
말을 이어가던 중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하긴 방금 전 길거리에서도 사람이 그렇게 몰렸는데.
하물며 일반적인 술집에서라면 몰리면 몰렸지, 분명 덜하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술집 하나를 통째로 빌리다니,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텐데…….
“사장님이랑 친분이 있어서 괜찮아요.”
그런 내 걱정을 빠르게 눈치채고 앞서 말하는 화정.
그 배려심 깊은 모습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저 때문에 너무 무리하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자주 회사에서 회식을 하는 가게라서. 가게 빌리는 건 종종 있는 일이라 사장님도 이해해 주세요.”
“그렇군요.”
곧이어 자리에 앉은 우리는 적당히 안주와 사케를 주문했다.
사람 하나 없이 잔잔한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게 안에서 우리는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연주한테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아, 네. 두 분 다 같은 연습시절을 보냈다고.”
“네. 그 중에서 제일 친한 동생이에요.”
여성스러운 첫 인상과 달리 화정은 의외로 거리낌이 없는 성격인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처음 보는 나와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화제를 주도하고 있었으니까.
“…….”
그런 반면 내 옆자리에 앉은 연주는 꿀먹은 벙어리 상태.
평소와 다른 연주의 모습에 괜시리 불안한 기분이 앞섰다.
얘는 또 뭐가 불만인데 이러고 있냐.
“그보다 연주 너는 오늘따라 조용하네?”
화정도 그런 연주가 신경이 쓰였던 건지 슬쩍 운을 띄웠다.
그런 화정의 배려에도 연주는 고개를 작게 저었다.
“됐어. 오늘은 둘이 얘기하라고 만든 자리니까.”
“음, 그렇긴 하지만…….“
”그냥 공짜 밥이나 먹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신경 쓰지 마.“
거기까지 말한 연주가 나만 보이는 각도로 슬쩍 눈짓했다.
의미심장한 연주의 시선을 보며 나는 문득 이 자리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현재 나는 화정과 친구라는 관계로 ‘너 혼자 산다’에 출연하게 될 예정.
이는 본사의 방침으로 내려진 결정이라고 연주에게 들은 사항이었다.
설마 그게 눈앞의 거물 가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지만.
아무튼,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덜컥 방송에 출연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는 서로간의 친목을 다지기 위한 자리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혹여 어색해질지 모를 나와 화정의 사이를 중재하고자 연주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화정과는 친한사이고 나와도 나름대로 친분이 있으니까.
그런 사실만 따지고 보면 연주의 역할은 나와 화정의 사이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긴 하다.
어찌 보면 지금처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나와 화정의 모습에서 자기 역할을 알아서 정해버린 걸지도.
대화를 이을 의지가 없는 연주를 보던 화정이 결국 내게로 다시 시선을 던졌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대표님도 현수 씨를 좋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대표님이요?”
“네. 마인드가 많이 열린 사람인 거 같다고요. 그 분이 누굴 칭찬하는 건 드문 일이거든요.”
그 우락부락한 여자가 날 칭찬했다고?
뭐, 첫인상이 좋았다면야 나야 나쁠 거 없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순수하게 기뻐하기가 힘드네.
“그리고 사실…….”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던 화정이 말을 이었다.
“저도 여기 오면서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어요.”
“네? 저를요?”
“네.”
“어째서요?”
“전에 패션몰에 올라온 사진을 봤거든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설마 저희 회사 패션몰에서 이렇게 잘생긴 분이 있나 싶었거든요.”
“어, 그러면 절 이전부터…….”
“네. 방송 출연이 결정되고 게스트를 누구로 할지 의논하기 전부터 현수 씨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어요. 연주가 말해준 것도 있고 해서요.”
어쩐지 첫 만남부터 묘하게 반기는 거 같더라니.
이미 머릿속으로 나름대로 나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해둔 모양이다.
“사실 패션몰에 찾아가볼까 했는데 그러면 너무 민폐가 아닐까 해서…….”
“에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쉽네요. 진작에 오셨다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들으니 정말 아쉽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지금부터 더 친해지면 되는거 아니겠어요?”
거기까지 말한 화정이 환하게 웃었다.
뭐랄까, 상당히 긍정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이네.
특히 이런 세계의 여자에게서 보기 힘든 분위기라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그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안주와 술이 나왔다.
쪼르륵.
말도 하지 않고 스스로의 잔에 자작을 하는 화정.
다 따르고 나서야 눈치 챘는지 미안한 표정으로 나와 연주를 번갈아 보았다.
“아.”
“난 됐어. 컨디션이 별로라.”
“그럼 현수 씨는…….”
“전 한 잔 받겠습니다.”
이런 미녀가 따라준다는데 마다할 거 없지.
“네,그러면 한 잔 드릴게요.”
자연스럽게 잔을 내밀자 화정이 쿡쿡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곧이어 내 잔에도 화정이 따른 술이 채워졌다.
“짠하죠.”
“아, 네.”
먼저 잔을 들어 올리는 화정에게 호응하고자 채워진 잔을맞부딪혔다.
“건배!”
시원하게 잔을 부딪힌 화정이 술을 망설임 없이 술을 비웠다.
“크으~!”
탕.
원샷을 하기 무섭게 잔을 테이블에 내려치는 화정.
그러고는 다시 자신의 잔에 자작을 했다.
꼴꼴꼴.
망설임 없이 술잔을 채우는 화정의 모습을 보며 나는 묘한 박력을 느꼈다.
분명 분위기나 말투는 나긋나긋한데 어째행동하는 건 여장부 느낌이네.
……내 착각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