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8. 연예계의 사정(2)
”화정 씨!“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훤칠한 이미지의 사내.
김현수라는 이름의 남자를 보며 나는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했다.
”……안녕하세요.“
이 남자를 볼 때마다 이유도 없이이렇게 짜증이 치솟는다.
물론 현수 씨가 잘못한 건 없다.
그저 나 혼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뿐.
어쩐지 감정 제어가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이 남자는……. 왠지 불편하다.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물론 아무 이유도 없이 대놓고 적대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프로답게 미소를 지으며 그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마다 대화할 자리를 가지게 된 지 오늘로 3일.
이 3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나와 현수 씨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좁혀지게 되었다.
애초에 기획사에서도 예능을 목적으로 게스트 중 한 명인 그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친해져서 나쁠 건 없기도 하고.
물론 겉으로만 좁혀졌다는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연예인이고, 그는 생판 남이다. 여기서는 거리를 둬야 된다고 생각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겠지.
“현수 씨는 좀 다르시네요.”
그렇게 3일째 되는 날 밤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별 거 아닌 신변잡기를 하던 와중.
문득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뭔가 다른 남성분들과 비교해서 다른 느낌이에요.”
“그래요?”
“네. 마치 저처럼 말이에요.”
흥미롭다는 듯 날 보는 현수 씨의 표정을 보며 직감했다.
내가 또 저질렀구나.
“저처럼, 이란 건 무슨 뜻인지 궁금하네요.”
“아, 방금은 제가 말실수한 걸로…….”
“왜요. 한 번 말해 봐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긋이 날 바라본다.
제발, 그냥 한 번 정도는 넘어가주면 안 되나.
“화정 씨는 스스로가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다고 느끼는 거예요?”
“……방금 건 그냥 모른 척 지나가면 안 돼요?”
“안 돼요.”
“으…….”
“흠, 그렇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건 어때요.”
곤란해 하는 날 향해 현수 씨가 빈 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소주를 쪼르르 따른 그가 날 한 번 보더니 잔을 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 뭐예요?”
“흑기사 몰라요? 대답 못하면 한 잔 마시는 걸로 하죠. 번갈아가면서.”
“흑기사가 아니라 흑장미겠죠…….”
“아, 하긴. 여기서는 흑장미가 보통이겠네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그렇게 묻기도 전에 현수 씨는 내게 잔을 들이밀었다.
“한 잔 해요.”
“……이거 마시면 저도 질문할 수 있는 거죠?”
“당연하죠.”
또 이렇게 이 남자의 말에 넘어가는 거구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미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크으…….”
이미 꽤나 들이킨 상태이기에 이 한 잔으로도 머리가 핑핑 돌려고 한다.
그나마 내일 스케줄이 오후에 있기에 망정이지.
“힘들면 굳이 안 마셔도 돼요.”
“됐고, 질문!”
도발하는 것이 명백한 현수 씨의 말투를 씹으며 나는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두고 봐, 내가 그 여유 만만한 얼굴을 금세 무너뜨려 줄 테니까.
“현수 씨는 도대체 왜 그렇게 무신경한 거예요?”
“질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데요.”
“그러니까…….”
안 돼, 벌써부터 살짝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처음부터 좀 적당히 달릴걸.
“아까 저처럼, 이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랬죠.”
“그걸 그대로 되돌려 묻는 거예요.”
“쉽게 좀 말해보세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꼭 직접적으로 말을 하게 하는구나, 이 남자는.
나는 민망한 기분을 무릅쓰고 오랫동안꾹 참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왜 여타 남자들처럼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느냐, 이 말이에요.”
“풉!”
“왜, 왜 웃는 거예요?”
“아니, 죄송합니다.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라서……. 그, 일단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렇잖아요. 그게 여자들한테 인기도 더 많고 살기도 더 편할 텐데.”
“조신하게 행동하는 게 인기가 더 많다고요?”
“당연하죠. 지금처럼 기 센 남자라는 이미지는 여자들이 안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흠…….”
드디어 할 말이 궁해졌구나, 이 악당.
통쾌한 기분에 내심 작게 웃었다.
허나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현수 씨는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화정 씨는 여자면서 저보다 여자에 대해 더 모르시네요.”
“뭐라고요?”
“의외로 저 같은 남자를 더 좋아한다고요, 여자들은.”
“그게 무슨……. 말도 안 돼요!”
“정말이라니까요? 연주 씨 보면 알 수 있지 않아요? 그 사람 다른 남자랑은 아예 같이 다니지도 않던데.”
아니,확실히 연주 걔가 남자를 가리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어차피 미남미녀면 조신하나 왈가닥이나 다 좋아합니다.”
말문이 막힌 날 보며 현수 씨가 한 마딜 툭 내뱉었다.
“그게 제가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에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정말 뻔뻔하구나, 이 남자.
심지어 웬만한 여자보다 더.
이미 위장용으로 짓고 있던 밝은 표정이 확 날아가 버린지 오래.
하지만 이번의 대답만큼은 정말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제 차례네요.”
황당한 내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현수 씨가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아까 저처럼, 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 느낀다는 얘기일 텐데.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는 거죠?”
“……그 질문 계속하는 거예요?”
“싫으면 아까반복질문은 안 된다고 했어야죠.”
“와, 그건 진짜 치사하다!”
“싫으면 한 잔 해요.”
진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능글맞을 수가 있지?
싱글싱글 웃으며 잔을 내미는 현수의 잔을 홱 낚아챘다.
그러고는 곧바로 원샷.
으으, 목젖이 타는 거 같네…….
“이야, 잘 마시네.”
흔들거리는 시야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다음 질문을 떠올렸다.
“질문!”
아, 안 돼. 벌써 현수 씨가 두 명으로 보이기 시작했어.
이젠 진짜 대답 못할 질문을 해야 된다.
좋아, 이거다.
이건 절대 대답 못 하겠지.
“현수 씨, 저한테 관심 있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놀릴 거리가 충분한 질문.
음, 나지만 이번 껀 진짜 괜찮은 질문이었어.
그제서야 주도권을 잡은 나는 겨우 여유를 되찾고 현수 씨를 바라볼 수 있었다.
“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 착각이었을 뿐.
현수 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내 곤란한 질문을 시원스레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네?”
“네. 관심 있다고요.”
뭐야, 나.
진짜 취했나?
“제대로 들은 게 맞아요.”
“아, 으, 그, 제, 제 질문은 남녀로서의 관심을…….”
“저도 그런 의미로 대답한 건데요.”
도대체 뭐냐고, 이 남자는!
순간적으로 팍 치솟는 짜증.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런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왜 이렇게 짜증이 난 건지.
왜 이렇게 감정제어가 안 된 건지.
‘그래, 이 남자 앞에서는 꼭내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까……!’
지금까지의 나는 철저하게 이성 관계를 선을 긋고 지내왔다.
행동은 커녕 말실수 한 번 한 적이 없다.
물론내가 연예인이기에 더 철저하게 관리를 한 탓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이 되기 전에도 나는 그저 남자라는 생물에게 흥미를 가지질 못했었다.
아, 물론 야동은 본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얘기니까.
반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냉철함을 전혀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술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술을 적당히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사내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술을 들이키고, 다음날 숙취에 괴로워하며, 지금처럼 후회할 만한 속내들을 떠벌리고 만다.
현수 씨를 볼 때마다짜증이 치솟는 이유였다.
실은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저 내가 마주보려 하지 않았을 뿐.
공사(公私)니 뭐니 머릿속으로는 떠들어도 실제로는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3일 만에 나는 이 남자가 꽤나 마음에 들어 버렸다는 것을.
‘아, 진짜 멍청하게……!’
지금의 욕은 누구한테 하는 욕일까.
나? 아니면 눈앞에 있는 사내?
사실은……. 알고 있어.
멍청한 건 나라는 걸.
“다시 제 차례네요.”
혼란스러운 내 기분을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사내는 다음 질문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채 있는 날 향해 사내는 결정타를 날렸다.
“화정 씨는 제가 싫은 건가요?”
현수 씨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렸다.
-팬이에요, 진짜로.
처음에 팬이라는 말에 다가와 줬을 때는 순수하게 기뻤다.
그래. 처음엔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예쁘시죠. 하지만 전 순수하게 노래가 좋아서 들었을 뿐입니다.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얼굴도 잘 몰랐어요.
허나 3일간 대화를 나누고 친분을 쌓으면서 나는 현수라는 사내가 일반적인 남자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또 어때요. 뭐, 속물이라 얼굴은 좀 보지만요.
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들이 좋아할 남성적인 모습을 전혀 분출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여자보다 더 털털하고 솔직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3일간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것이 현수라는 사내 그 자체의 꾸밈없는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일아트? 전 오히려 그런 거 하는 남자들이 더 역겹던데……. 아니, 이 말이 그렇게 웃겨요?
여자면 여자답게 살아라.
부모와선생,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귀에 딱지가 얹게 살아왔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그런 말이 싫었다.
귀여운 거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쁘다고?
화장하는 게 그렇게 몹쓸 일인가?
쇼핑? 여자가 혼자 백화점에서 쇼핑 좀 할 수 있지.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남녀구분을 떠나,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었다.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으로남자라는 생물에게 끌림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이제야 다른 여자애들이 하던 말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좋아하면 그 남자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지는 거야.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그렇구나.
그 때는 그저 한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대답을 기다리는 현수 씨를 보며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않았다.
‘결국은얼굴만 보고 껄떡대는 여자들이랑 다를 게 없잖아.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잘생겼으니까.’
현수 씨가 나를 아무 남자나 건드리고 다니는 여자라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단순히 연예인이라는 입장을 떼놓고 봐도 그것만은 정말 싫았다.
차라리 눈앞의 남자가 좀 더 평범하게 생기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안 돼. 나 너무 취했나 봐.
머리가하나도 안 돌아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요?”
울렁이는 상태로 나는 가까스로 겨우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행히 현수 씨는 그 정도의 대답으로도 만족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혹시 절 싫어하는 건 아닌가 했거든요. 술 안마시면 말도 잘 안 하고.”
“그건 그냥 제가 낯을 좀 가려서…….”
“사실 전 직접 만나고 나니 더 좋아졌어요. 솔직히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캐릭터요? 방송에서의 제 모습 말이에요?”
“네. 겉과 속이 다르면 전 좀별로더라고요. 뭐, 연예인인 이상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너무 다르면 그건 그거대로 괴리감이 심해서.”
머릿속은 띵 울리고 있고 땅은 날 잡아먹을 듯 요동치는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현수 씨의 말들만은 뇌리에 하나씩 박혔다.
안 돼, 내일이 되면 무조건 후회할 거야.
그리 생각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수 씨는 그런 제 모습이 좋다는 거예요? 우유부단하고 여성스럽지 못할 뿐인데도요?”
제대로 얼굴도 바라보지 못한 채 툭 내뱉었다.
망했다, 망했어.
“뭐,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건 없잖아요.”
그런 내 시야 한켠으로 피식 웃는 현수 씨의 얼굴이 보였다.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아요. 귀엽잖아요.”
“…….”
“화정 씨?”
“혀, 현수 씨도…….”
“네?”
“현수 씨도, 잘 생겼어요…….”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거 때문만은 아니라고요오…….”
“네?”
그것이 마지막으로 내가 떠올린 대화였다.
“헉, 화정 씨!”
철푸덕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 내 귓가로 현수씨의 당황한 목소리가 장가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