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8. 연예계의 사정(2) (71/152)



〈 71화 〉8. 연예계의 사정(2)

”화정 씨!“

환한 미소를 지으며 웃는 훤칠한 이미지의 사내.
김현수라는 이름의 남자를 보며 나는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했다.

”……안녕하세요.“

이 남자를 볼 때마다 이유도 없이이렇게 짜증이 치솟는다.

물론 현수 씨가 잘못한 건 없다.
그저 나 혼자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뿐.

어쩐지 감정 제어가 안 된다고 해야 할까.

이 남자는……. 왠지 불편하다.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물론 아무 이유도 없이 대놓고 적대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프로답게 미소를 지으며 그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마다 대화할 자리를 가지게 된 지 오늘로 3일.

이 3일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나와 현수 씨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좁혀지게 되었다.
애초에 기획사에서도 예능을 목적으로 게스트 중 한 명인 그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었으니까. 아무튼 친해져서 나쁠 건 없기도 하고.

물론 겉으로만 좁혀졌다는 얘기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연예인이고, 그는 생판 남이다. 여기서는 거리를 둬야 된다고 생각했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겠지.

“현수 씨는 좀 다르시네요.”

그렇게 3일째 되는 날 밤 술을 마시며 평소처럼 별  아닌 신변잡기를 하던 와중.
문득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다.

“뭔가 다른 남성분들과 비교해서 다른 느낌이에요.”
“그래요?”
“네. 마치 저처럼 말이에요.”

흥미롭다는 듯 날 보는 현수 씨의 표정을 보며 직감했다.

내가  저질렀구나.

“저처럼, 이란 건 무슨 뜻인지 궁금하네요.”
“아, 방금은 제가 말실수한 걸로…….”
“왜요. 한 번 말해 봐요.”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는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긋이 날 바라본다.
제발, 그냥 한 번 정도는 넘어가주면 안 되나.

“화정 씨는 스스로가 다른 여자들이랑 다르다고 느끼는 거예요?”
“……방금 건 그냥 모른 척 지나가면 안 돼요?”
“안 돼요.”
“으…….”
“흠, 그렇게 대답하기 어렵다면 이건 어때요.”

곤란해 하는 날 향해 현수 씨가 빈 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소주를 쪼르르 따른 그가 날 한  보더니 잔을 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뭐, 뭐예요?”
“흑기사 몰라요? 대답 못하면 한  마시는 걸로 하죠. 번갈아가면서.”
“흑기사가 아니라 흑장미겠죠…….”
“아, 하긴. 여기서는 흑장미가 보통이겠네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그렇게 묻기도 전에 현수 씨는 내게 잔을 들이밀었다.

“한  해요.”
“……이거 마시면 저도 질문할 수 있는 거죠?”
“당연하죠.”

또 이렇게  남자의 말에 넘어가는 거구나.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미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있었다.

“크으…….”

이미 꽤나 들이킨 상태이기에 이 한 잔으로도 머리가 핑핑 돌려고 한다.
그나마 내일 스케줄이 오후에 있기에 망정이지.

“힘들면 굳이 안 마셔도 돼요.”
“됐고, 질문!”

도발하는 것이 명백한 현수 씨의 말투를 씹으며 나는 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두고 봐, 내가 그 여유 만만한 얼굴을 금세 무너뜨려  테니까.

“현수 씨는 도대체 왜 그렇게 무신경한 거예요?”
“질문 범위가 너무 광범위한데요.”
“그러니까…….”

안 돼, 벌써부터 살짝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처음부터 좀 적당히 달릴걸.

“아까 저처럼, 이라고 제가 말했잖아요.”
“그랬죠.”
“그걸 그대로 되돌려 묻는 거예요.”
“쉽게  말해보세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가는데…….”

꼭 직접적으로 말을 하게 하는구나,  남자는.

나는 민망한 기분을 무릅쓰고 오랫동안 참고 있었던 말을 꺼냈다.

“왜 여타 남자들처럼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느냐,  말이에요.”
“풉!”
“왜, 왜 웃는 거예요?”
“아니, 죄송합니다.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라서……. 그, 일단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렇잖아요. 그게 여자들한테 인기도 더 많고 살기도 더 편할 텐데.”
“조신하게 행동하는 게 인기가  많다고요?”
“당연하죠. 지금처럼 기 센 남자라는 이미지는 여자들이 안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흠…….”

드디어 할 말이 궁해졌구나, 이 악당.
통쾌한 기분에 내심 작게 웃었다.

허나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현수 씨는 곧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화정 씨는 여자면서 저보다 여자에 대해  모르시네요.”
“뭐라고요?”
“의외로 저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고요, 여자들은.”
“그게 무슨……. 말도  돼요!”
“정말이라니까요? 연주 씨 보면  수 있지 않아요? 그 사람 다른 남자랑은 아예 같이 다니지도 않던데.”

아니,확실히 연주 걔가 남자를 가리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어차피 미남미녀면 조신하나 왈가닥이나  좋아합니다.”

말문이 막힌  보며 현수 씨가 한 마딜 툭 내뱉었다.

“그게 제가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는 이유에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정말 뻔뻔하구나, 이 남자.
심지어 웬만한 여자보다 더.

이미 위장용으로 짓고 있던 밝은 표정이 확 날아가 버린지 오래.
하지만 이번의 대답만큼은 정말로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제 차례네요.”

황당한 내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현수 씨가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아까 저처럼, 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스스로가 남들과 다르다 느낀다는 얘기일 텐데. 그렇게 느낀 적이 있다는 거죠?”
“……그 질문 계속하는 거예요?”
“싫으면 아까반복질문은 안 된다고 했어야죠.”
“와, 그건 진짜 치사하다!”
“싫으면  잔 해요.”

진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능글맞을 수가 있지?

싱글싱글 웃으며 잔을 내미는 현수의 잔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곧바로 원샷.

으으, 목젖이 타는  같네…….

“이야, 잘 마시네.”

흔들거리는 시야 속에서 나는 가까스로 다음 질문을 떠올렸다.

“질문!”

아, 안 돼. 벌써 현수 씨가 두 명으로 보이기 시작했어.
이젠 진짜 대답 못할 질문을 해야 된다.

좋아, 이거다.
이건 절대 대답 못 하겠지.

“현수 씨, 저한테 관심 있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놀릴 거리가 충분한 질문.
음, 나지만 이번 껀 진짜 괜찮은 질문이었어.

그제서야 주도권을 잡은 나는 겨우 여유를 되찾고 현수 씨를 바라볼 수 있었다.

“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 착각이었을 뿐.

현수 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내 곤란한 질문을 시원스레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은 건가?

“네?”
“네. 관심 있다고요.”

뭐야, 나.
진짜 취했나?

“제대로 들은  맞아요.”
“아, 으, 그, 제,  질문은 남녀로서의 관심을…….”
“저도 그런 의미로 대답한 건데요.”

도대체 뭐냐고, 이 남자는!

순간적으로 팍 치솟는 짜증.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런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짜증이  건지.
왜 이렇게 감정제어가 안 된 건지.

‘그래, 이 남자 앞에서는 내 마음대로 되질 않으니까……!’

지금까지의 나는 철저하게 이성 관계를 선을 긋고 지내왔다.
행동은 커녕 말실수 한  한 적이 없다.
물론내가 연예인이기에 더 철저하게 관리를 한 탓도 있다.

하지만 연예인이 되기 전에도 나는 그저 남자라는 생물에게 흥미를 가지질 못했었다.

아, 물론 야동은 본다.
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얘기니까.

반면 지금의 나는 그때의 냉철함을 전혀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순히 술 때문은 아니다.
애초에 술을 적당히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 사내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술을 들이키고, 다음날 숙취에 괴로워하며, 지금처럼 후회할 만한 속내들을 떠벌리고 만다.
현수 씨를 볼 때마다짜증이 치솟는 이유였다.

실은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저 내가 마주보려 하지 않았을 뿐.

공사(公私)니 뭐니 머릿속으로는 떠들어도 실제로는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3일 만에 나는 이 남자가 꽤나 마음에 들어 버렸다는 것을.

‘아, 진짜 멍청하게……!’

지금의 욕은 누구한테 하는 욕일까.

나? 아니면 눈앞에 있는 사내?

사실은……. 알고 있어.
멍청한 건 나라는 걸.

“다시 제 차례네요.”

혼란스러운 내 기분을아는지 모르는지 눈앞의 사내는 다음 질문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조마조마한 채 있는 날 향해 사내는 결정타를 날렸다.

“화정 씨는 제가 싫은 건가요?”

현수 씨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떠올렸다.

-팬이에요, 진짜로.

처음에 팬이라는 말에 다가와 줬을 때는 순수하게 기뻤다.
그래. 처음엔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예쁘시죠. 하지만 전 순수하게 노래가 좋아서 들었을 뿐입니다.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얼굴도  몰랐어요.

허나 3일간 대화를 나누고 친분을 쌓으면서 나는 현수라는 사내가 일반적인 남자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가 내게 말하는 것처럼.

-남자면 어떻고 여자면 또 어때요. 뭐, 속물이라 얼굴은 좀 보지만요.

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들이 좋아할 남성적인 모습을 전혀 분출하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면에서는 여자보다 더 털털하고 솔직한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3일간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것이 현수라는 사내 그 자체의 꾸밈없는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네일아트? 전 오히려 그런 거 하는 남자들이 더 역겹던데……. 아니, 이 말이 그렇게 웃겨요?

여자면 여자답게 살아라.
부모와선생,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귀에 딱지가 얹게 살아왔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그런 말이 싫었다.

귀여운 거 좋아하는 게 뭐가 나쁘다고?
화장하는 게 그렇게 몹쓸 일인가?
쇼핑? 여자가 혼자 백화점에서 쇼핑 좀   있지. 그게  대수라고.

-그냥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남녀구분을 떠나,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봐 주었다.

-저는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난생 처음으로남자라는 생물에게 끌림을 느낀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22년이라는 세월 동안, 난생 처음으로.

그리고 이제야 다른 여자애들이 하던 말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있었다.

-진짜 좋아하면 그 남자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지는 거야. 그러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지.

그렇구나.
그 때는 그저 한심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는…….”

대답을 기다리는 현수 씨를 보며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않았다.

‘결국은얼굴만 보고 껄떡대는 여자들이랑 다를  없잖아.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잘생겼으니까.’

현수 씨가 나를 아무 남자나 건드리고 다니는 여자라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단순히 연예인이라는 입장을 떼놓고 봐도 그것만은 정말 싫았다.

차라리 눈앞의 남자가 좀  평범하게 생기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런 고민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돼. 나 너무 취했나 봐.
머리가하나도 안 돌아가.

“싫은 건 아니지만…….”
“그래요?”

울렁이는 상태로 나는 가까스로 겨우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다행히 현수 씨는 그 정도의 대답으로도 만족한 모양이었다.

“다행이네. 혹시 절 싫어하는 건 아닌가 했거든요. 술 안마시면 말도 잘 안 하고.”
“그건 그냥 제가 낯을 좀 가려서…….”
“사실 전 직접 만나고 나니 더 좋아졌어요. 솔직히 캐릭터라고 생각했거든요.”
“캐릭터요? 방송에서의 제 모습 말이에요?”
“네. 겉과 속이 다르면 전 별로더라고요. 뭐, 연예인인 이상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너무 다르면 그건 그거대로 괴리감이 심해서.”

머릿속은 띵 울리고 있고 땅은 날 잡아먹을 듯 요동치는 상황.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현수 씨의 말들만은 뇌리에 하나씩 박혔다.

안 돼, 내일이 되면 무조건 후회할 거야.
그리 생각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수 씨는 그런 제 모습이 좋다는 거예요? 우유부단하고 여성스럽지 못할 뿐인데도요?”

제대로 얼굴도 바라보지 못한 채 툭 내뱉었다.
망했다, 망했어.

“뭐,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없잖아요.”

그런  시야 한켠으로 피식 웃는 현수 씨의 얼굴이 보였다.

“저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아요. 귀엽잖아요.”
“…….”
“화정 씨?”
“혀, 현수 씨도…….”
“네?”
“현수 씨도,  생겼어요…….”
“그,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거 때문만은 아니라고요오…….”
“네?”

그것이 마지막으로 내가 떠올린 대화였다.

“헉, 화정 씨!”

철푸덕 소리와 함께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 내 귓가로 현수씨의 당황한 목소리가 장가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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