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8. 연예계의 사정(5) (74/152)



〈 74화 〉8. 연예계의 사정(5)

여느 때와 같은 출근길.

“…….”

연예 매니지먼트 ‘피버 에이전트’의 비서장, 이우진은 사이트 연예 뉴스에 뜬 기사들을 쭉 훑고 있었다.

-발라드 가수 Y양, 데뷔 1년 만에 터진 열애설?
-네티즌, “단순한 친구” vs “친구라기엔 너무 깊어 보이는 사진 속 관계” 갑론을박 펼쳐
-소속사 피버 에이전트, “아직은 답변드릴 때가 아니므로” 말 아껴
-오늘의 이슈 연예 포토타임! 발라드 가수 Y양의 숨겨둔 남자친구?
-단독보도! 화제로 떠오른 Y양의 사진 속 남자, 그의 정체는?

기사를 보는 우진의 입가로 비릿한 미소가 드러났다.

“생각보다 훨씬 더 이슈화가  됐는걸.”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며 우진이 작게 중얼거렸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이 자신과 사장이 꾸민 계략.
그렇기에 우진으로서는 이런 상황이 무척 달가웠다.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가지.

 번째는  있을 방송에 대한 노이즈마케팅이다.
이번 건으로 대박이 나게 된다면, 이후 3대 공중파 중 하나인 M사와의 협업도 이후로 아주 쉽게 풀릴 공산이 컸다.

그리고  번째는 윤화정의 기를 잡기 위함이었다.
우진은 전부터 말을 잘 듣지 않는 윤화정의 버릇을 고치고자, 이번 건을 꼬투리로 잡아계약기간을 늘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회의실에서 사장에게 제대로  소리 듣고 있을 터.

“후후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화정의 모습을 상상하는 우진의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여자, 회사에서도 남자 직원들한테 눈웃음이나 치고 다니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던 참이었다.
심지어 따로 높으신 분들과 접선을 주선했는데도 주제에 거부를 하지 않나.
 이후로 날 볼 때마다 못마땅하다는 듯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참 재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그 사장님을 꼬셔서 겨우 비서장이 될  있었는데, 그 년은 얼굴 하나만 믿고 승승장구해서는…….

으드득.

언제 웃었냐는 우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개 같은 년이…….”

나직히 욕설을 중얼거리며 우진은 그녀의 처우에 대해 고했다.

지금이야 어떻게 요행으로 국민 가수니 뭐니 하지만, 그것도 다 일시적일 뿐.
애초에 피버 에이전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묻힐, 그저 그런 년에 불과했다.
자신과 사장님의 능력이 있다면 제2, 제3의 윤화정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

재수 없는 년이긴 하지만, 아직 단물 빨아먹을 구석은 남아 있는 여자다.
지금도 호구 같은 남성 소비자들한테  좀 뽑아먹고, 이사들한테 돈 좀 돌리고, 적당히 장부를 조작해서 사장님과 내 배를 불리는 데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일단은 그 년의 버르장머리부터 고치는 데 집중할 뿐.

“방법이야 어찌되든 좋지. 내 지분만 늘릴수 있다면…….”

그 때는 날 깔보는 윤화정 그 년도 끝이다.
오늘 일을 건수로 잡아서 이후에 계약을 해지하면 되니까.

꽈악.

운전 중인 핸들을 부서져라  쥐는 우진.

덜덜 떨고 있을 그녀를 어떤 식으로 요리할까.
 생각만으로도 고양감에 절로 흥분이 몰려왔다.

“후후…….”

그렇게 우진은 잔뜩 기대를 하며 본사로 향했다.

그리고 본사에 도착해 사무실로 들어선 순간.

“죄송합니다. 제가 좀 늦었…….”
“안 부르면 저 일 안 합니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유지하던 사내, 우진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방송 출연도 안 할 거고요.”

막 사무실로 들어선 우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소 본  없는 당황한 얼굴의 사장님.
처량하게 있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멍하니 옆을 바라보고 있는 윤화정.

그리고,  중심에는 사내 김현수가 당당한 눈빛으로 좌중을 휘어잡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대충 상황을 파악한 우진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다.

고작 알바생, 그것도 남자가 이런 일에 나서다니?

‘어째서?’

우진의 머릿속으로는 그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김현수라는 사내는 애초에 굳이 신경  필요도 없는 요소 중 하나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아니, 남자면 그냥 모른  있으면 나쁠 거 하나도 없는 입장 아닌가?
적당히 피해자 코스프레로  좀 쥐어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거잖아?
멍청한  있으면 알아서 챙겨줄 텐데,  굳이 나서서  계획을 망치려고 하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사내가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바로 자신을 향해서.

“사장님과 비서실장님 사이가 좋으신 모양이더군요.”
“!!”

그리 말하며 지긋이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김현수.
무의식중에 눈빛을 피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꿀꺽.

그 모습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알고 있는 건가?
나와 사장님의 관계를?

***


시간을 되돌려 본사로 오기로 결정하기 하루 전.

그 날, 나는 소진 누나와 함께 앞으로의 전략을 짜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내연녀?”

내 설명에 누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서장과 사장이 부적절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는 창조주가 보여준 소설 속 설정 중에 포함된 내용이었다.

“네. 제가 알기론 그래요.”
“그래……?”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이는 누나의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다.
애초에 내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니까.

“흠, 내연녀라…….”

이 상황을 끝낸 뒤로 대답하기로 했기 때문일까, 누나도 그 이상 묻는 일은 없었다.
내심 안도한 내가 물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써먹기 괜찮지 않은 정보이지 않을까요.”
“그런 개인적인 정보라면 글쎄다. 뭐, 법적으로 파고들면 틈이 보일지도. 예를 들면 빼돌린 돈을 비서실장  명의로 넘겨놨다든가. 그런 부분은 이후로 조사하면 나오겠지.”
“조사가 가능할까요?”
“혼자서는 힘들지. 하지만 검사나 금융감독원  도움이 있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물론 네가 건네준 정보가 사실이라는 조건 하에.”
“당연히 사실이긴 한데……. 그보다 그런 인맥이 있긴 해요?”
“있지.”

아무렇지 않게 대단한 소릴 하는 소진 누나.
놀라서 바라보는  시선이 기분 좋은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젖혔다.

“야, 이래봬도 나 나름 엘리트라고?”

엘리트라.

사실 섹스할 때는 기도 차는 짓을 하기에  의심은 했다만…….
누나 말대로 진행이 된다면 엘리트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거 같다.

“문제는 시간이야.”
“시간이요?”
“하루 이틀로 조사할  있는 정보량은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그러니 언제쯤 마무리가 될진 나도 정확하게 몰라. 뭣보다 비밀스럽게 진행해야 되는 일인 만큼 더 오래 걸릴 테고.”

확실히 소설 속에서도 비리 관련 부분은 시간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묘사했었지.

시간상으로 따지면 약 1년.

다행히 현재 각종 정보들을 미리 가지고 있으니 조사하는 부분을 특정 짓는 게 가능했다.
소설 속에서처럼 1년이나 걸리진 않을 테지.

그래도 그에 준하는 시간이 걸릴 거라는 예감은 든다.

이거, 잘하면 생각보다 피곤해질지도.

“그럼  뭘 하는  좋을까요?”

나로서는 어떻게든 빠르게 일을 끝내고 마음껏 즐기고 싶을 따름이다.
내 물음에 소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딱히 네가  일이 있으려나?”
“그런가요…….”

기왕 역전세계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력한 내 모습에 절로 우울해졌다.
역시 고졸 따위는 이런 데서 아무 도움도 안 되는군.

“정 그러면 본사에 가서 분위기나 파악해 보는 건 어때?

축 처진 내가 안쓰러웠는지 소진이 말을 덧붙였다.

“본사 쪽에서 연락 왔다며.”
“아직 갈지 말지 결정한 건 아닌데…….”
“그럼 이번 기회에 한 번 살펴보지 그래. 내연녀 관계라고 했지? 그것도 적당히 눈치 보면서 사실인지 파악해두고.”

다행히 내가 전혀 할 일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걸 겸사겸사 얘기한 거 같은 기분은 들지만…….
더 생각하면 우울하니까 그냥 모른 척 하자.

“음……. 알겠어요.”

결정을 마친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서로 잘 해보자고.”

시원스레 손을 뻗는 소진 누나와 악수를 한 것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이후로는 뭐, 그냥 떡 쳤고.

아무튼 회상은 여기까지.

곧이어 정신을 차린 내가 눈앞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은 세 사람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네, 네놈이……!”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어진 얼굴의 김옥희 사장이었다.
회의실 나가기 전에 맞아죽는  아닐까 걱정될 지경이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다음으로는, 지금껏 보여준 태연한 표정관리가 무색하게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비서실장 이우진이었다.

“자, 잠깐만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문을 모른 채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고 서 있는 윤화정.

연예인 아니랄까봐 당황한 표정마저 예쁘다……. 고 말해주고 싶지만.
 창백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먼저  말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화정 씨.”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나가서 뭐라도 챙겨먹고 와요.”
“네? 아니, 하지만…….”
“괜찮죠,  분 다?”

그리 말하며 이번에는 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뿌드득.

방금 이 가는 소리가 들린 거 같은데.
어쩌면 나 진짜 맞아 죽을지도……?

“……갔, 다와.”

사장의 대답에 화정이 이번에는 비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하시죠.”

화연을 향해 무덤덤한 어투로 말하는 우진.
방금 전의 당황한 기색이 무색하게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저도 누구 쓰러지는 꼴  생각은 없으니.”
“하지만…….”
“괜찮으니 갔다 오시죠.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아, 네…….”
“그리고 앞으로는 행동에 주의하도록 하세요. 다들 지켜보고 있으니.”
“며, 명심하겠습니다.”

꾸벅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화정이  한 번 힐끗 보고는 회의실을 나섰다.

탕.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 너……!”
“네?”
“그런 정보는 어디서 얻은 거야!”

말 하겠냐, 이걸.
사실대로 말해도 믿을 수가없는 내용인데.

“이, 이이이……!”

꾹 입을 닫은 채 미소만 짓고 있자, 사장의 얼굴에 핏줄이 팍 돋아났다.

씨발 존나 무섭네…….

“말해!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었냐고!”
“제가 말 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 새끼……! 설령 그 말대로라 해도 넌 외부인이야! 알바라고! 내가 누구를 만나든 네가 신경쓸 바는 아니란 걸 몰라?!”
“그건그렇죠.”

사장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반적인 알바라면 알고도 모른 척 해야 되는 정보겠지.
굳이 파고들어봤자 좋을 게 없는 정보니까.
사실  정보도 내가 위험할 때가 아니라면 약점으로나 써먹을, 일종의 보험에 가까운 의미로 몰래 간직해둘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근데 꼴을 보니까 도저히 못 참겠더라.

이런 불합리한 걸 받아들이는 화정과 매니저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 탓에 굳이 지금 말할 필요가 없는 무기를 나도 모르게 꺼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왜냐고?

기왕이면 내가 점찍은 여자들만큼은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웃기는 놈이군.”

한심하다는 듯  보던 사장이 작게 콧방귀를 꼈다.
한참을 벌개진 채로 화를 참더니, 이제야 이성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디서 그딴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었는지 몰라도 지금 자네 말은 이 회사에 대한 도전일세.나로서는 지금 당장 계약파기를 할 수도 있어. 우리한테는 별 손해도 없고.”
“그럴까요? 방금 제가 말한 게 드러난다면 회사에도 나름의 피해가…….”
“괜한 유언비어를 흘린다면.”

그 순간, 지금까지 조용히 상황을 보던 비서장이 입을 열었다.

“저희도 법적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겠네요.”
“아, 그래요?”
“지금도 이미 선을 넘으신 상황인 걸  아실 겁니다. 섣부른 판단은 자제하시길 바랍니다.”
“아, 네. 저도 매니저 분만 복직시켜 준다면  이상 얘기할 생각 없어요.”

능청맞게 대꾸하자 비서장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뭐랄까, 사장이 불같다고 한다면 이 남자는 마치 얼음같이 차가운 느낌이다.

나는 차갑게 노려보는 비서실장의 눈빛을 태연하게 맞받아쳤다.

“…….”
“…….”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길 수십 초.

“사장님.”

먼저  풀 꺾은 것은 내가 아닌 비서장이었다.

“이 남자 말대로 하시죠.”
“뭐?”

그 말에 사장이 펄쩍 뛰었다.

“그게  소리야!”
“냉정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사장님.”

길길이 날뛰는 사장을 보면서도 실장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고작 매니저  그대로 유지하는 것뿐입니다. 계약파기로 이 남자를 보내면 저희로서는 잃는 게  많습니다.”
“크윽……!”

확실히 냉정하게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
고작 나 한 명을 상대하기에는 귀찮은 것들이 워낙에많을 테니까.

사실 나로서는 더 막나가는 게 좋았을 거 같지만.

“하, 짜증나는군…….”

허나 사장도 그런 실장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듯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나를 한참 째려보던 사장이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훌쩍…….”

이 목소리는……. 매니저분인가?
울고 있었는지 코맹맹이 소리다.

“여, 여보세요.”

나도 들릴 수 있게스피커폰으로 한 것인지 소리가 방 전체로 울려 펴졌다.
한 번 코를 푼 소리가 들리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차분해진 목소리가 이어졌다.

눈빛으로  훑어보는 사장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혀를차고는 말을 이었다.

“쯧……. 지수 양.”
“네, 네에.”
“생각해보니 한  실수로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던  같네.”
“네, 네?”
“다시 복귀하게.”

헛, 하고 숨을 삼키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렸다.
그런 매니저를 향해 사장이 말했다.

“자네만 괜찮다면 회의실에서 다시 이후 일정에 대해서 얘기하도록 하지.”

그리 말한 사장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뭐, 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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